소설리스트

귀환무사-405화 (403/425)

# 405

<귀환무사 405화>

귀환무사 2부

180화

노도인이 드디어 허리를 펴고 일어섰다.

주름에 묻힌 가느다란 눈동자에 애틋함이 잔뜩 어려 있었다.

“허어! 올 겨울은 꽤 춥겠구나. 벌써 이렇게 나무들이 제 잎을 버리다니…… 쯧쯧쯧!”

주름진 얼굴에 시커먼 반점은 노도인이 살아온 세월이 결코 적지 않음을 나타냈다.

그러나 하얀 눈썹 속에 감추어진 눈동자는 형형한 안광으로 번뜩였다.

내가고수들만이 보일 수 있는 그런 눈빛이었다.

“올해도 돌아오시지 않으려나…….”

누구를 기다리는 걸까?

눈동자에 다시금 애틋한 그리움이 맺혔다. 그런 그의 뒤로 헌앙한 기도를 자랑하는 장한이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노도인은 돌아보지 않아도 누군지 아는 듯하늘을 우러르며 말문을 열었다.

“놈들이 벌써 온 모양이구나.”

“반나절 거리에 들었습니다.”

“그래, 너희들은 어떻게 하기로 하였느냐?”

“산문으로 끌어들여 일망타진을 할까 합니다. 놓아두면 다시 무리를 이끌고 돌아올 놈들이니 죽어 지옥에 가는 한이 있더라도 모두 죽일 생각입니다.”

장한의 대답은 단호했다.

그는 화산이 낳은 불세출의 천재이자 당대 천하의 최고수군에 들어가는 매화무적 진유자란 인물이었다.

강력한 내공 때문에 삼십 대 초반 정도로 보이지만 실상은 그보다 훨씬 나이가 많다.

한때 신마와 더불어 중원을 호령했던 그였지만 노도인 앞에서는 한없이 공손하게 행동했다.

노도인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그래야겠지. 승려이되 피 맛을 보아 불자가 되기를 포기한 놈들이니 죽여도 무방할 게다. 그건 그렇고 태사조껜 기별을 넣어 드렸느냐?”

“아침에 아이 하나를 보냈습니다. 놈들과의 싸움에 관해선 숨기는 것이 좋을 것 같아 그러지 말라고 시켰습니다.”

노도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잘했다. 더 이상 강호의 추잡한 일로 그분께 폐를 끼쳐선 곤란하지. 잘했다, 잘했어.”

찬 바람이 불어와 노도인의 도포 자락을 쓸고 지나갔다.

도포 자락이 몸에 달라붙자 앙상한 몸매가 그대로 드러나며 진유자의 눈빛을 흔들리게 만들었다.

“바람이 매우 차갑습니다. 어서 태청전으로 드시지요.”

“이 늙은이가 걱정이 되느냐?”

“그렇습니다. 그래서 밤잠을 설치기가 일숩니다. 솔잎 떨어지는 소리만 들려도 가슴이 철렁거립니다. 기침소리만 들려도 맨발로 태청각을 찾게 됩니다. 모두가 제 심정과 같습니다, 장문 사형…….”

그랬다.

노도인은 화산의 당대 장문인 태허였다.

그는 갑작스럽게 건강이 악화되어 검조차 들지 못한다.

모두는 혁련천후가 돌아오지 못하는 것을 염려하다가 마음의 병을 얻은 것이라 여기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이었다.

갑자기 사라져 버린 혁련천후는 그에게 사숙이기 이전에 화산의 부흥을 이끈 은인이었다.

쇄락해 가던 화산이 그로 인해 천하제일문파로 올라섰음은 천하가 인정하는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 그가 갑자기 사라져 버렸으니 태허의 근심이 어떨지는 타인으로서는 가히 짐작조차 할 수가 없으리라.

태허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들어가자꾸나. 사조들께 제를 올리고 너희들의 무운을 빌어야겠다.”

“예. 장문 사형.”

“나를 좀 부축해 주겠느냐.”

“제게 팔을 얹으시지요.”

“그래, 고맙구나.”

태허는 진유의 부축을 받고 서둘러 태청전으로 걸음을 옮겼다.

* * *

혈승(血僧) 광요(光耀)는 뇌음사의 주지임과 동시에 서장 최강의 고수로 불리는 인물이다.

포달랍궁과 더불어 세외의 양대산맥인 뇌음사를 전성기로 이끌고 있는 광요는 일신에 가공할 마공을 지녔다고 알려져 있다.

위대한 절대자 신마가 사라져 버린 중원을 노리고 서장을 떠난 그가 수하들을 이끌고 화산의 초입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해가 서산으로 기울어 갈 즈음이었다.

광요의 제자이자 뇌음사의 이 인자인 마승 아불타가 화산의 정상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사부님! 놈들의 매복 따윈 없는 것 같습니다. 곧장 화산의 산문을 넘어서 끝장을 보는 게 좋겠습니다.”

“세가 불리하다고 느꼈다면 당연히 산문 안에서 총력전을 생각하고 있을 게다. 호랑이가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데 고개를 들이밀 순 없지. 잠시 대기하라!”

“화산 따위가 아무리 총력전을 펼친다고 해 보았자 본 뇌음사의 적수가 될 리 없습니다, 사부님!”

아불타는 당장에 공격을 하자고 재촉했다.

그러나 광요의 눈은 매우 차갑게 식어 있었다.

“어리석은! 화산엔 매화무적과 화산오웅이 있음을 잊었느냐? 게다가 신마성의 무공을 이어받은 사대 제자들이 오백을 넘어간다. 결코 서둘러선 될 게 아닌 것이다.”

광요의 질책에 아불타는 고개를 숙이지 않고 다소 불만 어린 눈으로 물었다.

“포달랍궁과 함께 오르실 복안이십니까?”

“당연하지 않느냐? 어차피 놈들은 산문을 벗어나지 못한다. 이곳에서 놈들과 외부 세력과의 합류를 차단하며 포달랍궁을 기다릴 것이다.”

광요의 말은 곧 뇌음사의 법이다.

그가 그렇게 단호하게 명을 내리자 모두는 주변에 은신하며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아불타가 다시 물었다.

“그들이 오려면 이틀은 족히 걸립니다. 그럼 그동안 제가 은밀하게 화산을 살펴보고 오겠습니다.”

광요는 그것까지는 차마 거부하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객기는 금물임을 명심하여라.”

“알겠습니다!”

아불타가 자신의 측근 고수들을 몇 데리고 빠르게 산 위로 사라졌다.

그를 바라보는 광요의 눈동자가 가볍게 흔들렸다.

‘언젠가 저 급한 성정 때문에 큰 화를 입을 놈이구나.’

언제나 제자의 성급함을 질타했던 광요다.

하지만 천성이 그러했던 아불타는 좀처럼 고쳐지지 않았다.

다만 무공에 대한 재질이 워낙 뛰어났기에 자신의 모든 것을 물려주고 뇌음사까지 그에게 넘기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걱정이 더 컸다.

뇌음사의 천년영광이 어쩌면 제자의 대에서 끊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항상 그를 괴롭히고 있었다.

중원 침공을 서두른 것도 신마가 사라진 기회를 노리고자 함도 있었지만 자신의 대에서 대업을 이루고자 함이 더 컸다.

광요가 수하들을 향해 명령을 내렸다.

“전서를 띄워 포달랍궁의 위치와 도착 시간을 알아보아라.”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전서구가 하늘로 솟구쳐 날아갔다.

방향은 호북성이 있는 남쪽이었다.

* * *

퍽!

검이 베고 지나간 자리엔 어김없이 수급이 뒹굴었다.

머리털이라곤 하나 없는 수급은 자신의 죽음을 믿지 못하겠다는 듯 눈을 부릅뜨고 죽어 있었다.

“감히 세외의 잡놈들이 중원을 넘보다니! 이리 오라! 모조리 지옥으로 보내 주마!”

묵빛 검을 든 중년인의 노호성이 천지를 쩌렁쩌렁 울렸다.

그 앞에 수십이 마승들이 중년인을 노려보며 검을 맞잡고 있었는데 붉은 홍포가사를 걸친 포달랍궁의 무승(武僧)들이었다.

“십지신검! 이놈!”

장대한 체구를 지닌 인물이 장한을 노려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런데 십지신검이라면?

그 누가 그를 모를까. 신마성주의 손위 처남이자 당대 천하오객의 일인인 검의 달인, 십지신검 독고무가 바로 중년인의 정체였다.

한 마리 대호(大虎)를 보듯 강렬한 안광을 번뜩이는 독고무의 주변은 이미 싸늘하게 굳어 가는 포달랍궁의 마승들이 수십은 넘어가고 있었다.

모두가 독고무, 그 혼자에게 당한 것이다.

그런 독고무의 뒤쪽엔 독고무가 문주로 있는 십지문의 고수들이 사나운 늑대와도 같은 기운을 발산하며 늘어서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우측, 그곳엔 독고무보다 더 강력한 존재가 상황을 지켜보며 서 있었다.

당대 천하를 아우르는 중원의 다섯 개 별, 오성의 일인인 십전무제 영호도성이 영호세가의 무사들과 함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포달랍궁의 무승들은 독고무를 향해 적개심을 드러내면서도 섣불리 달려들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그들 때문이었다.

저기서 영호도성만 뛰어들어도 사태는 심각해진다.

‘어떻게 이놈들이 우리의 이동 동선을 파악했단 말인가?’

포달랍궁의 궁주인 야율모영은 분노와 당혹감이 교차하는 눈으로 독고무와 영호도성을 번갈아 살폈다. 그들은 지금 한시라도 빨리 화산으로 가야만 했다.

그곳에서 뇌음사와 합류하여 화산을 무너뜨리고 곧장 호북으로 돌아와 무당을 쓸어야 했다.

하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느닷없이 십지신검과 십전무제가 나타나더니 자신들의 이동을 막아섰다.

그리고 두 시진이 흐르는 지금껏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상당한 피해만 입고 말았다.

더더욱 심각한 문제는 도저히 빠져나갈 도리가 없다는 점이었다.

“신마성주가 자리를 비우니 중원이 우습게 보였느냐?”

독고무의 싸늘한 일갈이 야율모영의 귓속을 천둥처럼 울렸다.

생각 이상으로 그의 내공이 고절하자 야율모영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자칫 잘못하면 여기서 포달랍궁은 모조리 뼈를 묻어야 한다.

그때 영호도성이 움직였다.

“돌아갈 때는 허락을 받고 가야 하네, 야율 궁주.”

“흥! 누구의 허락을 받는단 말이냐?”

“누구긴, 염라대제지.”

스르릉!

패배를 모른다는 십전무제의 검이 드디어 뽑혔다.

섬광이 번뜩이는 검을 보자 무승들의 눈빛이 가늘게 흔들렸다.

누군들 십전무제의 무서움을 모를까.

‘큰일이다. 저들까지 가세한다면 모조리 이곳에서 뼈를 묻어야 한다.’

야율모영의 눈가가 파르르 떨림을 보인다.

그는 빠르게 남은 전력을 살폈다. 생존해 있는 고수들의 수는 대략 오십 명. 결코 약한 전력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야율모영의 얼굴은 밝지 못했다.

바로 십전무제와 십지신검이라는 존재들 때문이었다. 하나가 일개 문파에 필적한다는 오성의 일인에다.

게다가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는 천하오객의 일인까지 떡하니 버티고 섰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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