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4
<귀환무사 404화>
귀환무사 2부
179화
“가슴이 떨려요.”
“왜?”
“아버지와 오라버니를 찾으러 갈 것을 생각하니 두렵기도, 설레기도 해요. 혹시라도 잘못되셨다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도 앞서고…….”
혁련소가 고개를 들어 연소민을 응시했다.
“어딘가에 분명 살아 계실 거다. 그러니까 걱정 따윈 하지도 마. 중원의 평화와도 관련이 있으니 아버지께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찾아내실 거야.”
“만약 다시 만나게 되면 정말 잘해 드리고 싶어요. 너무 속을 썩여 드린 것 같아요. 그렇게 힘드신 줄도 모르고…….”
“하하! 멋진 사위까지 보셨으니 분명 환하게 웃으실 거야. 무진, 놈도 마찬가지고 말이지.”
“그래요. 정말 그랬으면 좋겠어요.”
혁련소의 팔이 연소민의 매끄러운 허리를 감아 당겼다.
“불끈 솟았다!”
“……뭐가요?”
“뭐긴.”
“어머……!”
뜨거운 춘풍이 다시 실내를 요동쳤다.
그때였다.
밖에서 누군가의 고함이 들렸다.
“지금 출발하신답니다! 늦으면 영영 이곳에서 살아야 한답니다!”
* * *
중원 십팔만 리에 걸쳐 펼쳐진 이 광대한 제국은 오늘도 그 고고함을 자랑하며 잠을 자듯 고요했다.
중원의 최북단에는 검에 미쳐서 살아가는 전귀들의 대지 신강이 있다.
신교의 위대함이 하늘을 덮고 대지를 드리웠던 이곳이 언제부턴가 피와 죽음의 땅으로 변모했다.
천축의 마승들과 서장의 살인마들은 툭하면 이곳 신강으로 들어와 살인과 약탈을 일삼았다.
신강을 지배했던 신교조차도 그들을 막아 내지 못했다.
오히려 그들은 강제적인 방관만을 할 뿐이었다.
신교의 앞마당이었던 고란 평원은 이미 서장의 지배하에 들어갔으며 북해의 패자, 빙궁은 신교가 빤히 내려다보이는 곳에 교두보를 마련하고 중원 침공의 야욕을 노골적으로 불태우고 있었다.
사람들은 신교를 원망했다.
신강의 지배자로 군림해 온 그들이라면 당연히 세외 세력들의 중원 난입을 막아줄 거라고 여겼다.
그러나 그들은 아무런 조치조차 취하지 않았다.
천축의 마승들이, 서장의 살인마들이 자신들의 영역을 헤집고 다녀도 그들은 성문을 굳게 닫고는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미 그들과 항전하다가 죽어 간 강호의 고수들은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북쪽에서 불어온 피바람은 서서히 중원의 중심으로 남하하기 시작했다.
천 년의 고도 장안이 서장의 살인마들에 의해 무너졌고 청해의 곤륜이 천축의 마승들에 의해 스스로 봉문의 길을 걸었다.
중원의 북방은 죽은 자들이 흘린 피로 대지를 흥건히 적셨다.
보다 못한 정도맹이 나섰지만 그들의 발길을 조금 묶어 두는 성과만을 거두었을 뿐, 그들을 패퇴시키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나마 화산과 무당이 선전을 펼친 탓에 세외 세력은 더 이상 중원의 중앙으로 진출을 하지 못하고 사천과 섬서의 경계 지역을 가운데 놓고 중원의 연합군과 대치하는 상태로 돌입했다.
대치 상태는 육 개월이 넘어갔다.
그러자 사람들은 한곳을 우러르기 시작했다.
무적의 절대자들이 숨을 쉬고 있는 곳, 신마성으로 모든 이들이 구원의 눈길을 보냈다.
“신마성이 움직이면 세외 세력들도 한 방에 꺼꾸러뜨릴 수 있을 텐데.”
“사자를 보내서라도 그분들을 설득해야 한다. 아니면 중원 천하가 적들의 손에 넘어간다.”
모두는 이구동성으로 신마성을 원했다.
강호의 은원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그들의 철칙을 깨고 강호로 나와 줄 것을 그들은 원했다.
하지만 신마성의 문은 열리지 않았다.
곳곳에서 그들을 성토하는 목소리도 들렸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정도맹이 수차례에 걸쳐 사자를 보내어 간곡히 청했지만 그들은 단호하게 외면했다.
그러기를 육 개월이 흘렀을 때, 세외 세력들의 총공격이 감행되었다.
바야흐로, 건곤일척의 대전쟁이 도래하고야 만 것이었다.
* * *
산 전체를 두른 자욱한 안개는 고수들의 시야마저도 빼앗아 가 버렸다.
스스슥!
수풀이 흔들리며 안개와 어우러진 일단의 무리들이 빠르게 북쪽으로 이동을 하고 있었다.
안개 때문에 희미하게 보였지만 복장이나 간간이 들려오는 언어로 보아 그들은 서장에서 온 자들이 분명했다.
“정지!”
굵직한 목소리에 이동하던 자들이 멈추었다.
핏빛 가사를 걸친 승려들이 잡아선 안 될 대도를 움켜쥐고서 사악한 시선을 북쪽으로 던졌다.
무리의 수는 대략 백여 명. 하나같이 사악한 기운을 발산하는 그들은 바로 천축의 패주라는 뇌음사의 고수들이었다.
“저곳을 넘어가면 곧장 화산이 나온다. 여기서부터는 놈들의 매복이 있을 수 있으니 모두 흩어지지 말고 뭉쳐서 이동한다!”
선두에 선 승려가 손을 들어 앞으로 뻗자 이동은 다시 시작되었다.
상당수가 함께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숲은 미세한 반응만을 보였다. 모두가 고수라는 것을 대변하는 광경이었다.
그렇게 반 시진 정도를 이동하자 유운곡이라는 제법 협곡이 그들을 막아섰다.
이름 그대로 사시사철 구름이 흐른다는 유운곡(流雲谷)은 천험의 요새와도 같은 지형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나는 새가 아니라면 절대 넘어갈 수가 없을 정도로 절벽은 엄청난 높이를 자랑했다.
우두머리가 손가락 세 개를 펼치자 뒤쪽에서 세 명이 앞으로 나섰다.
“살펴보고 오너라!”
우두머리의 명령에 그들은 빠르게 유운곡으로 스며들었다.
“활불님! 곧장 화산을 치실 생각입니까?”
“북부 지역은 놈들만 깨면 거칠 게 없으니 당연히 화산부터 쓸어야 하지 않겠느냐?”
“하지만 신마성이 지척에 있지 않습니까? 게다가 신마성주가 화산을 총애하는 건 세상이 다 알고 있는 것인데…….”
수하의 불안감을 우두머리는 웃음으로 해소했다.
“흐흐! 놈들의 내부에 무슨 일이 벌어진 게 틀림없다. 그렇지 않다면 지금껏 중원을 방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첩보에 의하면 아들을 찾으러 간 이후에 신마성으로 돌아오지 않았다고 했으니 필시 무슨 일을 당했을 것이야.”
“천하에 그를 어찌할 자가 감히 있겠습니까?”
수하의 여전한 불안감에 그는 다시 사악하게 웃었다.
“어리석긴, 신교가 하루아침에 박살이 나질 않았느냐? 어쩌면 그들과 신마성주가 동귀어진했을 가능성이 높다. 제아무리 그자라도 신교의 고수, 수십 명이 덤벼든다면 죽을 수밖에.”
“듣고 보니 그럴 수도 있겠군요.”
둘의 대화는 척후를 갔던 승려들이 돌아오면서 끝났다.
“아무런 기척이 없습니다! 지나쳐도 될 듯합니다.”
“좋아! 모두 이동한다!”
뇌음사의 고수들은 일제히 유운곡 안으로 스며들었다.
* * *
화산의 아름다움은 여전히 천하에 으뜸을 자랑했다.
품은 문파 또한 천하에 으뜸이요, 문파가 품은 인재 또한 천하제일이니 당대의 화산은 모두가 우러르는 태양과도 같았다.
당대의 화산을 실질적으로 이끌어가는 진유자는 매화무적이란 별호로 그 명성이 천하를 진동시키는 인물이다.
그리고 그의 사제들로 이루어진 화산오웅(華山五雄) 역시 사파의 무리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당대의 협객들이다.
한때, 잠시 행방이 묘연해 화산의 애간장을 끓게 만들었던 화산오웅은 화산의 정상에서 천하를 굽어보며 바람에 몸을 맡기고 서 있었다.
첫째 진호의 눈이 분노로 이글거렸다.
“사숙조께서 계시지 않으니 별 잡놈들이 다 설치는구나.”
“놈들이 유운곡을 벗어났다는 전갈이 있었습니다. 이동 속도로 보아 내일 오후쯤이면 화산에 도달할 듯합니다.”
둘째 진명이 무거운 어조로 말을 받았다.
“잘못했다. 그때 우리만 돌아올 것이 아니라 함께 남아서 사숙조님을 찾았어야 했을 것을…….”
“자책하지 마십시오. 그땐 어쩔 수 없었지 않습니까? 만약 태사숙조님과 우리마저 돌아오지 못했다면 강호는 피바람에 잠겨도 벌써 잠겼을 겁니다. 그것을 염려한 태사숙조님의 판단이 옳았음이 지금 현실로 나타나지 않습니까?”
진명은 진호를 달랬다.
그때 뒤쪽에서 나무에 등을 기대고 섰던 날카롭게 생긴 청년이 둘의 곁으로 다가오며 말문을 열었다.
“미리 출전해서 매복을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화산에 더러운 잡놈들의 피를 흘리게 할 셈입니까?”
진청이었다.
누구보다 호전적인 성격을 지닌 그 다운 말이었다.
진명이 고개를 저었다.
“놈들은 결코 약한 상대가 아니다. 진청! 화산으로 끌어들여 일거에 쓸어버리는 것이 앞으로의 판세에 더욱 좋은 영향을 끼치게 된다.”
“솔직히 판세 따윈 그다지 생각하고 싶지 않습니다. 강호는 스스로 세외 세력들을 불러들였습니다. 보호요? 젠장! 우리가 왜 그치들을 보호해 줘야 합니까?”
“진청!”
“생각이 그렇다는 말입니다. 화산에서 일거에 핏물로 만들어 주지요. 대신 놈들의 대가리는 제 것입니다, 사형들!”
진명이 웃으며 대답했다.
“하하! 하여튼 그놈의 성질 머리는 죽을 때까지 고칠 수 있겠느냐?”
“배우길 이렇게 배우질 않았습니까. 가짜 사부들한테서 말이죠.”
그 말에 진호의 미간에 힘줄이 돋아났다.
“자식이 왜 그 양반들 얘긴 꺼내고 지랄이야?”
모두의 얼굴이 우울하게 변해 갔다. 뒤쪽에 섰던 막내들도 진청의 뒤통수를 매섭게 째려보았다. 뒤통수가 근질거린 진청이 돌아보며 눈을 부라렸다.
“지금 째려보냐?”
“아닙니다. 눈에 뭐가 들어가서…….”
“눈에 두 번만 뭐가 들어갔다간 내 뒤통수에 구멍이 나겠네.”
투덜거린 진청은 다시 나무에 등을 기대고는 눈을 감았다. 잠시 산 아래를 내려다보던 진호가 등을 돌렸다.
“대사형께 가 보자! 지금쯤이면 작전이 다 수립되었을 게다.”
“예!”
모두는 빠르게 자리를 벗어났다.
* * *
스르륵! 스르륵!
나뭇잎이 떨어진 연무장을 쓰는 노도인의 등은 주변 산세를 덮고 있는 고목만큼이나 오랜 연륜이 묻어났다.
쓸고 돌아서면 또 다른 나뭇잎이 떨어져 내렸지만 노도인은 빗자루질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기를 얼마가 지났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