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무사-403화 (401/425)

# 403

<귀환무사 403화>

귀환무사 2부

178화

대륙의 모든 이들이 홀베른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모든 이들이 한입으로 말했다.

“그곳은 초인을 능가하는 초월자들의 고향이다.”

전쟁을 통해 드러난 초월자들의 능력은 입에서 입을 타고 대륙 전체로 퍼져 나갔다.

어떤 이들은 그곳에 흑안의 마검사들이 있다고도 했으며 또 어떤 이는 흑안의 마검사가 그곳의 왕이라는 말까지 하고 다녔다.

소문이 점점 더 확산되어 갈 때 대륙에 새로운 움직임이 일어났다.

“기사들이여! 홀베른으로 수련을 떠나자!”

수행을 원하는 기사들이 홀베른으로 발길을 돌렸다.

사라진 드래곤의 유물을 찾겠다며 세상을 떠돌던 파티들은 홀베른의 강력함이 드래곤의 유물 때문이라 여기고 모조리 그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귀족들의 착취에 힘겨워하던 인근 왕국의 백성들은 홀베른엔 신분의 귀천이 없다고 전해지자 삶의 터전을 버리고 새로운 희망을 찾아 나서기도 했다.

대륙의 여론이 일방적으로 홀베른을 찬양하는 분위기로 이어지자 패전국 요란 제국은 결국 홀베른에 전쟁 보상금까지 지불해야만 했고 케이론 제국에도 케논 산맥의 소유권을 돌려주었다.

그리고 이듬해 봄이었다.

요란의 새로운 황제로 추대된 케이시 공작은 홀베른 대평원에서 스스로 왕관을 벗고 홀베른의 상왕 앞에서 불가침 협정과 전쟁 예방 차원에서 장남을 홀베른에 볼모로 보낸다는 서약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 * *

요란 제국의 황궁은 대륙 최고, 최대의 규모를 자랑한다.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른 거대한 건물들과 자연적으로 형성된 암벽과 절묘한 조화를 이룬 성곽은 이것이 진정 제국의 수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들게 만들었다.

비록 전쟁에서 패했지만 요란 제국의 수도는 평온했다. 다만 패전의 영향으로 불야성을 이루던 밤거리가 평소보다 다소 어두울 뿐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황궁의 앞은 오가는 사람들로 붐볐고 고급술집들이 등을 밝히고 오가는 사람들을 유혹했다.

다른 나라의 황궁 주변은 일반인들의 접근을 원천 봉쇄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곳은 그렇지 않았다. 성문을 넘어서지만 않으면 뭘 해도 제재하지 않는 곳이 요란 제국이었다.

그래서 고급 관료들이 출입하는 성곽 주변은 술집과 고급 음식점들로 넘쳐 났다.

하지만 성곽 너머는 달랐다.

경계를 서는 기사들의 눈빛은 매처럼 날카로웠고 황궁이 늘어선 거리는 상당히 고요했다.

달이 하늘의 가운데에 떠올랐을 즈음, 경계를 서던 기사들의 하늘 위로 요란의 황궁으로 날아드는 그림자들이 있었다.

달을 가로지르는 그들을 본 기사들은 그냥 고개를 돌렸다.

밤하늘을 이동하는 새의 무리로 여긴 것이다.

그들은 황제가 기거하는 궁전으로 빠르게 사라져 갔다.

* * *

요란의 새 황제에 오른 케이시 공작은 뒷짐을 지고서 실내를 서성거렸다.

자꾸만 창 쪽을 흘긋거리며 다소 불안함을 드러내곤 했는데 어둠 속을 가르며 날아오는 그림자들을 발견하고는 오히려 반가움을 드러냈다.

그가 창문을 열어젖히자 그림자들이 실내로 들어섰다.

“어서 오십시오.”

제국의 황제가 깊숙이 허리를 숙여 맞이하는 그림자들은 바로 혁련천후와 그 일행들이었다.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혁련천후는 케이시가 권하는 자리에 앉았다.

그와 함께 온 흑야와 조윤이 그의 좌우에 시립하듯 섰다.

혁련천후가 케이시에게 물었다.

“준비는 다 되었겠지?”

“직접 가셔서 확인만 하시면 됩니다.”

“좋아. 당장 가 보도록 하지.”

“아닙니다. 그곳으로 향하는 출입구는 바로 이곳에 있습니다.”

케이시의 그와 같은 말에 모두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케이시가 다시 말했다.

“켈베로스, 놈이 머물던 곳이 이곳입니다. 제가 황제가 된 이후, 거처를 아예 이곳으로 옮겼습지요. 스스로 경계하고 지키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으로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케이시는 말과 행동에 최선을 다했다.

혹시라도 심기를 건드리면 그 자리에서 자신은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게 된다.

“고려해 보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인 혁련천후가 케이시를 유심히 응시했다.

그의 눈빛을 받은 케이시는 자리에서 일어나 벽 쪽으로 걸었다. 조윤과 흑야가 그의 좌우를 따랐다.

케이시가 손을 뻗어 뭔가를 누르자 갑자기 벽면이 좌우로 갈라지며 놀라울 정도로 아름다운 풍경이 나타났다.

‘저곳은……!’

혁련천후의 눈동자가 가늘게 흔들렸다.

그에겐 너무나도 익숙한 풍경이었다. 조윤과 흑야도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혁련천후를 돌아봤다.

“이곳입니다.”

케이시가 붉은색으로 넘실거리는 연못을 가리키자 혁련천후는 그곳으로 걸어갔다.

투명한 방어막이 그가 다가가자 연기처럼 꺼지듯 사라졌다.

“중원과 똑같은 지형이군.”

“그렇습니다. 천년금역의 혈지를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습니다. 놀랍습니다. 이곳에 이런 것이 있었다니 말입니다.”

혁련천후가 케이시를 돌아봤다.

그는 연못을 가리키며 물었다.

“저곳이 확실한가?”

“틀림없습니다. 이계의 고수들이 그곳을 통해 오간다는 것은 진즉에 알고 있었으니까요.”

흑야가 끼어들었다.

“신교의 고수들이 이곳으로 넘나드는 모양입니다. 그렇다면 이곳의 다른 존재들이 중원으로 갔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건 상당히 위험하겠군. 전혀 새로운 생명체가 중원으로 넘어간다면 생태계 자체가 뒤바뀔 수도 있어.”

조윤이 고개를 끄덕이며 심각한 얼굴을 했다.

“오우거라는 놈들이 만약 중원의 산악 지역으로 넘어간다면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 되겠군요. 오크나 고블린도 마찬가지고 말입니다. 정말 중원으로 넘어간 것들이 있다면 이거, 꽤 심각한데요?”

틀린 말이 아니다.

오우거를 본 중원인들의 표정을 상상해 보면 쉽게 짐작이 갔다.

물론 전혀 다른 차원이라 반드시 생존한다는 보장은 없었지만 인간이 괜찮다면 몬스터들도 충분히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가능성이 높았다.

혁련천후가 케이시에게 다시 물었다.

“혹시 최근에 이곳을 들어섰던 자들이 있었나?”

“이곳은 켈베로스와 황제를 제외한 그 누구도 들어설 수 없는 곳입니다. 공작 시절의 저로서는 그것까지는…… 다만, 최근에 의문의 실종을 당한 자들은 몇 있습니다. 그중에 죽은 대마법사 율튼의 시신도 포함됩니다.”

“죽은 대마법사의 시신이 사라졌단 말이냐?”

“그렇습니다. 이곳은 차원을 오가는 기능 외에도 죽은 자들을 살려 낸다는 기괴한 전설이 깃든 곳이지요. 그래서 제가 전임 황제께 간곡히 부탁하여 율튼을 이곳으로 보냈었는데 연못에 담그는 순간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케이시의 입에서 놀라운 말이 이어졌다.

죽은 자를 살려 낸다는 기괴한 전설은 또 무엇이며 시신이 사라졌다는 건 또 무엇인가.

혁련천후의 미간에 주름이 생겨났다.

“전설이 사실이라면 대마법사라는 놈이 살아서 중원으로 이동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겠군.”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조윤이 고개를 끄덕인 뒤에 케이시에게 물었다.

“대마법사 말고 다른 자들은 누군가?”

“이계에서 넘어왔던 자들인데 레인의 전사 소식을 듣고는 곧장 사라져 버렸습니다.”

“신교의 놈들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주공!”

“그렇겠지.”

레인을 추종하는 자들이라면 분명 신교의 인물들일 것이다.

잠시 적막감이 흘렀다.

혁련천후는 말없이 붉은 연못을 바라보았다.

조윤과 흑야는 그런 혁련천후를 응시하며 움직이지 않았다.

케이시는 다소곳한 자세로 한쪽에 우두커니 서 있을 뿐이었다. 사실 케이시는 혁련천후에게 무척 감사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자신이 황제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고 여겼다.

그들이 마음만 먹었다면 자신은 홀베른의 평원에서 죽었을 것이다.

하지만 또 다른 전쟁을 원치 않았던 그들은 자신을 추격하지 않았다.

전쟁이 끝나고 며칠 뒤, 케이시는 한밤중에 자신을 찾아온 그들을 보고는 기겁을 했었다.

자신의 침실까지 들어선 그들의 능력에 케이시는 그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들어주어야만 했다.

대신 그 대가로 자신은 요란의 황제가 될 수 있었다.

그들이 원한 것은 바로 차원을 오가는 장소를 알려 주는 것이었다.

자신이 알려 주지 않아도 찾아낼 능력이 있다고 믿었던 케이시는 무조건 약속을 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물론 또 다른 맹세도 했어야 했다.

다시 한 번 전쟁의 야욕을 드러내면 그땐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여 버린다는 말에 신의 이름을 걸고 타국에 대한 불가침 조약서에 사인을 했다.

케이시 스스로도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황제의 자리에 올랐으니 그저 여생을 편안하게 살고자 하는 마음이 더 컸던 까닭이었다.

혁련천후가 등을 돌렸다.

“준비가 끝나면 모두를 이곳으로 데리고 오도록 해.”

“그동안 이곳에서 기다리실 겁니까?”

“그럴 생각이다.”

“알겠습니다. 그럼 돌아가서 주모님들과 모두를 모시고 오겠습니다.”

흑야와 조윤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제국의 황제인 케이시는 자신의 침실을 당분간 혁련천후에게 내놓아야만 했다.

그로서는 감히 거부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 * *

뾰르릉!

정겨운 새들의 울부짖음을 들으며 혁련소는 눈을 떴다.

자신의 팔을 감고 들어오는 미끈한 감촉에 그는 고개를 돌렸다. 탐스러운 가슴을 살짝 드러낸 연소민이 자신을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조금 더 자고 일어나요.”

“그럴까?”

“딱히 할 일도 없잖아요.”

“그럼 그러지 뭐.”

혁련소는 이불을 슬쩍 들추고는 그녀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물컹한 가슴의 촉감을 혁련소는 무척 좋아했다. 잘 때도 그녀의 가슴에서 손을 떼지 않는다.

연소민도 혁련소의 손길을 거부하지 않았다.

그녀가 살짝 들뜬 어조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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