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무사-402화 (400/425)

# 402

<귀환무사 402화>

귀환무사 2부

177화

* * *

홀베른의 왕궁을 감싸고 흐르는 강변의 마을들은 전쟁과는 무관하게 여전히 평화로웠다.

엘프의 아이들은 건너편 마을에 정착한 다크 영지의 아낙들이 전해 준 과자를 먹으며 웃음꽃을 피우고 있었다.

다크 영지와 아르소에서 이주해 온 아이들도 그들과 함께 어울렸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과자를 손에 쥐고 재잘거리는 아이들의 얼굴은 평화로움, 그 자체였다.

“이게 더 크다!”

“우와! 좋겠다!”

“그래도 내 것이 더 맛있어!”

“깔깔깔!”

저마다 자기가 쥔 과자를 자랑하는 아이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그런 아이들의 뒤쪽에 시커먼 그림자가 나타났다.

인간보다 훨씬 예민한 감각을 지닌 엘프의 아이들이 깜짝 놀라며 벌떡 일어섰다.

순간 아이들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해 갔다.

“괴, 괴물이다!”

“꺄악!”

아이들이 비명을 지르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얼굴 한쪽이 완전히 사라져 버린 괴인영이 아이들 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그 뒤에 갑주를 걸친 건장한 체격의 기사도 모습을 드러냈다.

“빌어먹을! 이곳이 어디냐?”

놀랍게도 괴인영은 칸빌이었다.

그리고 뒤쪽의 기사는 카르스였다. 칸빌은 하나 남은 눈으로 주변을 살폈다.

그런 그의 반쪽 얼굴은 매우 초췌한 데다 눈동자에는 극도의 초조함이 어려 있었다.

“부족한 마나로 인해 텔레포트가 잘못되었습니다. 이곳은 여전히 홀베른입니다.”

카르스가 감정 없는 어조로 대답했다.

칸빌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섬뜩하기 그지없었다. 칸빌이 두려움에 떨고 있는 아이들에게로 다가갔다.

“꺄악!”

아이들은 다시 소스라치게 놀라며 비명을 질렀다.

아이들의 비명을 들은 주민들이 건너편에서 발을 굴렀다.

그중 몇 명은 도움을 청하기 위해 재빨리 왕궁이 있는 쪽으로 뛰었다.

“돌을 던져!”

“저자를 막아!”

휘휙!

남은 사람들이 돌멩이와 집기들을 던졌지만 그것으로 칸빌을 어쩔 수는 없었다.

칸발의 눈동자에 혈광이 어렸다. 하지만 이내 급격히 흐려졌다.

“젠장! 흡수할 기운조차 없는 인간들이구나. 이봐, 카르스!”

칸빌이 카르스를 불렀다.

카르스는 차가운 눈으로 칸빌을 응시했다.

“네 힘을 내게 빌려 다오.”

“힘이 필요하십니까?”

“마계로 돌아가야 한다. 돌아가서 힘을 회복한 다음, 다시 올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로는 차원의 문을 넘어갈 힘조차 없구나, 크흐……!”

카르스의 잿빛 눈동자가 새하얗게 빛났다.

“당신이 사라지면 내가 어둠의 제왕이 되는 것입니까?”

“당연히 그렇다. 그……!”

“후후후! 그걸 이제야 말해 주다니…….”

카르스의 돌연한 태도에 칸빌이 흠칫하며 뒤로 물러섰다.

마침 그가 물러난 쪽은 아이들이 몸을 웅크리고 있는 곳이었다.

카르스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차갑게 웃었다.

힘이 바닥이 나 버린 칸발에게는 죽음의 미소나 다름없었다.

“무능하면 당연히 죽어야 하는 게 어둠의 법칙이라 들었지. 물론 당신이 그 법칙을 만들었고 말이야. 그렇다면 당연히 내게 힘을 빌려 달라는 말 따윈 해선 곤란하지, 칸빌!”

“이, 이놈! 카르스! 감히 네놈이 나를 배신하겠다는 것이냐?”

카르스의 입가가 차갑게 말려 올라갔다.

반대로 칸빌은 절망감에 휩싸였다. 이 상태에서 카르스를 막을 방도가 없다.

저 눈빛을 보니 자신을 죽이겠다는 뜻이 확고하지 않은가.

“배신이 아니라 어둠의 법칙을 지키겠다는 것이다.”

카르스의 검이 시커먼 빛을 뿜어내며 서서히 드러났다.

칸빌의 하나 남은 눈동자에 먹구름보다 더 짙은 절망이 번져 갔다.

그러나 대항할 힘이 그에겐 없었다. 최후의 순간에 켈베로스와 마계의 왕자가 폭발을 일으키며 그의 모든 힘을 앗아 간 탓이다.

“카, 카르스!”

“후후! 이젠 영원히 어둠 속에 너를 봉인시키겠다. 칸빌! 너를 대신해서 어둠의 세상은 나, 카르스가 지배하겠다.”

그때였다.

뒤쪽에서 날카로운 여인의 음성이 들렸다.

“흥! 꼬락서니들하고는…….”

카르스의 고개가 뒤로 돌아갔다.

순간 그의 두 눈이 급격하게 커졌다. 칸빌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뒤에 인간이되 인간의 영역을 넘어선 존재가 나타나 있었다.

인간의 언어로는 도저히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지닌 여신들이 그의 좌우를 함께하고 있었는데, 우측의 여신이 차가운 눈으로 자신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칸빌이 알고 있는 존재들이었다.

바로 혁련천후와 검후, 그리고 영호수란이었다.

검후의 입을 통해 서릿발 같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지금껏 죽지 않고 살아 있었구나, 칸빌!”

“너, 너희들은…… 크악!”

칸빌의 떨리는 목소리가 끝을 보지 못했다.

카르스의 검이 그의 가슴을 갈랐기 때문이다. 한 줌 연기로 화해 버린 칸빌의 모든 것이 카르스의 체내로 통해 흡수되었다.

“후후후, 이로써 어둠의 제왕은 나의 몫이 되었구나.”

그때 카르스의 지척에 검후가 나타나 있었다.

움찔하는 카르스를 쳐다보지도 않은 그녀는 웅크린 아이들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이젠 괜찮단다, 아이들아…….”

그녀의 음성엔 사람을 안정시키는 마력과도 같은 기운이 어려 있었다.

아이들이 비로소 그녀의 손을 잡았다. 바로 지척에 카르스가 있었지만 그녀는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카르스는 항거할 수 없는 마력과도 같은 힘이 검후에게서 발산되자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이 계집들은 도대체 뭐지? 이런 강력한 기운은 또 뭐냐?’

카르스는 잔뜩 긴장했다.

종류를 알 수 없는 힘이 두 여인에게서 느껴졌는데 그게 어찌나 강력했던지 감히 공격을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때였다.

“얘들아!”

아리엘이 장내로 떨어져 내렸다.

“아리엘! 아리엘!”

아이들이 그녀를 보고는 울먹였다.

아이들을 데려가던 검후가 아리엘에게 말했다.

“조금 놀란 것 같으니 데려가서 재워야겠어요. 괜찮겠죠?”

“그, 그러세요.”

아리엘은 두 여인과 함께 서 있는 혁련천후를 응시했다.

그녀의 눈동자에 진한 아픔이 스쳐 지나갔다. 뒤이어 눈물을 글썽거렸다.

그 모습을 본 다른 영호수란이 매서운 눈으로 사내를 노려보았다. 마침 혁련천후와 검후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혔다.

“바람둥이 같으니.”

움찔!

한 차례 움찔한 혁련천후가 돌연 검을 뽑았다.

어색한 분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카르스를 죽일 심산이었다.

스르릉!

그는 카르스를 향해 성큼 다가갔다.

뜨거운 기운이 몰아치며 카르스의 앞에 영호수란이 나타났다.

“당신은 빠져요.”

“……알았소.”

영호수란의 앙칼진 외침에 카르스를 향해 다가가던 혁련천후가 걸음을 멈추고는 검을 도로 집어넣었다.

화가 난 듯 보이는 영호수란이 다짜고짜 카르스에게 공격을 펼치며 소리쳤다.

“바람둥이! 고작 몇 년을 헤어졌다고 그새를 못 참고 새파랗게 어린 계집과 놀아날 수 있어!”

쾅! 쾅! 쾅!

카르스는 연방 뒤로 물러났다.

칸빌의 힘을 얻었다고는 하지만 그는 이미 대부분의 힘을 소진한 상태였기에 별다른 도움이 되질 않았다.

영호수란은 쉴 틈을 주지 않았다.

“내가 그동안 잠을 자지 않았으면 바람을 어떻게 피워? 그러니까 이게 다 너희 마계의 잡졸들 때문이야! 죽엇!”

영호수란의 맹공은 폭풍처럼 사납고 거칠었다.

카르스를 몰아붙이면서도 그녀는 누군가를 향해 매서운 말들을 쏟아 냈다.

그때마다 혁련천후의 낯빛이 실룩거렸다.

모두가 다 자신을 향한 것이었다.

안간힘을 다해 공세를 막아 내고 피해 가던 카르스가 한 칼을 얻어맞고 휘청거렸다.

“크윽!”

그는 불신에 찬 눈으로 영호수란을 응시했다.

“뭘 봐! 개자식아!”

번쩍!

영호수란의 검이 허공을 가르며 날아들었다.

카르스에게는 그 검을 피할 여력이 없었다.

퍽!

카르스의 목이 뎅강 잘려 날아갔다.

뒤디어 육신이 한 줌 연기로 화해 소멸되었다.

영호수란은 입으로 연기를 훅훅 불어 가며 누군가를 향해 저주(?)를 퍼부었다.

“나중에 돌아가면 보자고! 흥!”

한편, 아리엘은 두 여인을 바라보며 멍하니 서 있기만 했다.

지금껏 그녀가 이토록 슬픈 모습을 보인 적은 없었다. 그녀를 바라보던 혁련천후의 눈동자가 가볍게 흔들렸다.

그때였다.

“울지 마요.”

아리엘은 어깨에 느껴지는 따뜻한 온기에 고개를 돌렸다.

같은 여인이 봐도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검후가 자신을 바라보며 따뜻하게 웃고 있었다.

아리엘은 문득 마음이 포근해짐을 느꼈다.

그녀의 미소를 보고 있자니 슬픔도 사라졌고 아픔도 깨끗하게 지워지는 것 같았다.

검후가 아리엘을 향해 말했다.

“아리엘이라고 했나요? 우리 얘기 좀 할까요?”

* * *

전쟁에서 제국은 언제나 승자로 군림해 왔다.

사소한 전투에선 패배해도 전쟁에서는 언제나 승전은 제국의 몫이었다.

막강한 군사력 외에도 경제적으로 왕국들을 압도하는 까닭에 왕국이 제국을 이긴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다.

하지만 정해진 이치와도 같던 그것이 깨어졌다.

요란 제국의 패배.

홀베른을 침공했던 요란 제국이 대참패를 당했다.

황제가 전사하고 이십만이 넘어가는 대군이 목숨을 잃었다.

거기에 국방의 척도라고 할 수 있는 마법사들이 향후 오십 년은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치명타를 입은, 그야말로 국운이 휘청거릴 정도의 대패였다.

대륙이 들썩였다.

요란 제국의 눈치를 보며 살아왔던 중소국들이 홀베른에 찬사를 보냈다.

요란 제국의 위성 국가들과 공국들은 일제히 조공을 끊고 향후 정국의 변화를 기대했다.

요란의 숙적, 케이론 제국도 환호했다.

비록 전사자 칠만에 유군 이만이라는 극심한 피해를 입었지만 숙적인 요란의 패배에 그들은 기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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