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1
<귀환무사 401화>
귀환무사 2부
176화
제1장 제국의 패배
케이시 공작은 도저히 믿기지 않는 현실에 넋을 놓았다.
홀베른을 지원하려고 이동하던 케이론의 십만 대군을 물리칠 때까지는 좋았다.
그러나 도저히 인간 같지 않은 존재들이 나타나면서 전세는 급속도로 불리하게 기울어 갔다.
수는 여전히 자신들이 압도적으로 우세했지만 전장에 작렬하는 대량 살상용 화염 공격으로 인해 기사들의 사기가 급속도로 저하된 것이 역전을 허용한 주된 요인이었다.
병사들의 사가기 전쟁의 승패를 가늠한다는 것은 천고불변의 진리다.
하지만 가장 큰 원인은 마법사들의 몰살이었다.
희생을 막기 위해 마나를 감추고 기사들 틈에 은신해도 적은 신기하게도 그들을 골라 요격했다.
기사들이 혼신의 힘을 다해 막으려 했지만 적은 마치 유령처럼 기사들의 방어를 피해 가며 마법사들을 골라 죽였다.
마법사들의 수가 급격히 줄어들자 또 다른 곳에서 엄청난 피해가 따랐다.
마법 전력의 균형추가 급격히 기울면서 대량 살상이 가능한 적의 마법 공격을 고스란히 아군이 얻어맞게 되었다.
더욱이 퇴각하는 것으로 보였던 케이론의 레이나 공주가 다시 전장에 합류하자 곳곳으로 흩어졌던 케이론의 잔여 병력까지 전장으로 뛰어들고 있었다.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처지라 할 수 있었다.
“설마, 폐하께서도 패하셨단 말인가?”
새롭게 합류한 홀베른의 수천 기병은 분명 동쪽에서 난입했다.
그곳은 요란과 홀베른이 건곤일척의 승부를 벌이는 곳이다.
막스 황제가 이끄는 주력 병력과 전쟁을 치르면서도 구원 병력을 보낼 만한 여력이 홀베른엔 없다.
그렇다고 전장을 이탈해 떠도는 유군으로 보기엔 그들은 지나치게 많고 강력했다.
특히 하얀 갑주를 두른 스무 명 남짓한 기사들은 자신도 믿지 못할 만큼 초강력 파워를 뿜어내고 있지 않은가?
그는 부관에게 다급하게 물었다.
“아직 폐하의 군대에게서 전령이 오질 않았느냐?”
“그렇습니다! 보낸 전령도 아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빌어먹을! 율튼이 없으니 통신 체계가 엉망이구나!”
대마법사 율튼은 통신 쪽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던 인물이었다.
다른 마법사들이 지니지 못했던 능력이 그에겐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미 죽었다.
케이시 공작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는 부관들을 향해 명령을 내렸다.
“잠시 전장을 뒤쪽으로 물린다! 모두에게 퇴각 나팔을 불어라!”
“예. 공작 각하!”
뿌우웅!
전장에 요란의 뿔 나팔이 울렸다.
그러자 썰물이 밀려나듯 요란의 대군이 북쪽으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중심에서 난전을 벌이던 병력들은 여전히 처참한 죽음을 당하고만 있을 뿐이었다.
빠져나갈 공간이 없었던 탓이다.
담대소천이 이끌고 온 기마 병단은 여전히 일만에 가까운 군세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죽은 동료들에 대한 복수심으로 불타오르는 그들의 검은 적의 퇴각을 조금도 허락하지 않았다.
콰지직!
“요란의 개들을 모조리 도륙하라!”
“동료들의 넋이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다. 한 놈도 남김없이 모조리 죽여라!”
“크아악!”
전장에 담대소천의 쩌렁쩌렁한 외침이 울렸다.
“추격하지 말고 전열을 재정비하라!”
“모두 능선으로 이동하라!”
“밀어붙이면 모조리 섬멸할 수가 있는데 어찌 쫓지 말라고 하십니까!”
몇몇이 그렇게 외쳤지만 담대소천은 단호했다.
결국 홀베른의 기사들도 살육을 중단하고 능선 쪽으로 전마를 몰아갔다.
“엄청나군.”
담대소천은 전장을 바라보며 눈빛을 가라앉혔다.
짧은 시간에 양군은 죽은 자들이 산을 이루고 있는 전장을 가운데 놓고 양쪽에서 서로를 바라보는 대치 상태로 접어들었다.
여전히 그곳엔 목숨이 끊어지지 않은 부상병들의 절규가 가득했다.
두두두두…….
요란 진영에서 백기를 꽂은 전마가 질풍처럼 달려왔다.
데얀이 담대소천에게 다가갔다.
“부상병들의 인도를 원하는 것 같습니다! 어찌하시겠습니까?”
“아군의 부상자들도 상당수 있으니 받아들여야겠지.”
“알겠습니다.”
담대소천도 고개를 끄덕여 같은 뜻을 드러냈다. 홀베른의 기사들도 상당수 전장에 남았던 까닭이다.
적이야 언제든 다시 물리치면 그뿐이지만 당장은 아군의 부상자들을 구하는 것이 우선이라 여겼다.
데얀이 외쳤다.
“저들의 뜻을 받아들이고 속히 부상병들을 데리고 와라!”
“예! 장군!”
양측은 잠시 전투를 중단하고 각자의 부상병들을 데리고 진영으로 돌아갔다.
남은 수를 헤아려 보니 홀베른은 일만 오천, 요란은 육만 정도가 되었다.
홀베른과 케이론의 연합군의 전사자가 십일만, 요란의 전사자가 십사만에 달하는 그야말로 참혹한 결과로 이어졌다.
특히 케이론 제국의 십만 병력은 거의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고 말았다.
생존한 일만 오천은 대부분이 담대소천이 이끌고 온 이만 기마병들과 후에 도착한 관산악과 진천 등이 이끌고 온 기사들 중 살아남은 자들이 대부분이었다.
결국 살아남은 자는 일만에 수백 명에 불과했으니 사실상 적을 물리쳐도 물리친 것이 아니었다.
“어쩌다가 이런 일이…….”
레이나 공주는 눈물을 흘렸다.
너무나 참혹한 결과에 그녀는 전신을 바들바들 떨었다.
담대소천의 거친 목소리가 홀베른 진영을 흔들었다.
“적의 황제가 이끌던 병력들은 이미 상왕 전하에 의해 궤멸되었다! 적의 황제도 죽었다! 이제 남은 것은 저 앞에 진을 치고 있는 여우, 케이시 공작뿐이다! 본국에서의 지원은 기대하지 마라! 전투는 오직 우리들의 손으로 끝을 낼 것이다! 너희들이 흘린 피가 홀베른을 영원불멸의 강국으로 만들 것이니 모두들 검을 들어라!”
“우와아아아!”
천지가 진동했다.
내공을 담고 소리쳤던 담대소천의 목소리는 건너편에 진을 친 케이시 공작의 병력에도 들렸다.
막스 황제의 죽음과 패전 소식을 듣자 요란의 기사들이 작은 소요를 보이기 시작했다.
“황제께서 서거하셨다고!”
“분명 그렇게 들렸다. 아! 이럴 수가…….”
동요는 전군으로 급속도로 번져 갔다.
지켜보고 섰던 케이시 공작이 다급히 소리쳤다.
“적의 간교한 술책이다! 흔들리지 마라!”
“폐하께서는 무사하시다! 지금쯤이면 홀베른의 왕궁을 불바다로 만들고 계실 것이니, 동요하지 마라!”
수뇌부들이 기사들의 동요를 막기 위해 연방 고함을 질러 댔다.
그러자 동요는 금방 수그러들었다.
그만큼 황제에 대한 믿음이 견고했던 까닭이었다.
케이시 공작은 적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정말 폐하께서 패했다면 더 이상의 전투는 무의미하다. 돌아가서 전열을 재정비하고 시간을 기다리는 것만이 내가 할 최선의 방법이다.’
동요를 막을 요량으로 거짓이라 외쳤지만 그는 막스 황제가 죽었을 수도 있다고 여겼다.
아니라면 저 많은 병력이 이곳으로 난입을 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문제는 진정 막스 황제가 패했다면 적의 지원 병력이 곧 올 수도 있다는 점이었다.
당장, 눈앞의 일만 오천조차도 감당할 자신이 그에겐 솔직히 없었다. 몇몇 강자들이 강해도 너무 강했다. 자칫 그들이 난전을 틈타 자신을 노리고 들어오면 상당히 위험해진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턱대고 본국으로 퇴각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무조건 막스 황제와 선발군의 상황을 알아야만 했다.
그는 부관을 불러 은밀하게 명령을 내렸다.
“마법사 몇을 데리고 측면을 돌아 폐하와 선발군의 정보를 알아내어 오너라. 어서 서둘러라!”
“예! 각하!”
명령을 받은 부관이 재빨리 마법 병단에게로 뛰어갔다.
케이시 공작의 눈빛이 눈에 띄게 흔들렸다.
‘설마, 설마 패한 것은 아니겠지? 홀베른에 제아무리 강자들이 많다고 해도 폐하의 선발군을 당해 내지는 못한다. 결코!’
죽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과 제발 그런 일이 벌어졌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내면에서 충돌하고 있었다.
꽉!
‘어떻게 세운 제국인데. 절대 패배는 있을 수 없다.’
케이시 공작은 주먹을 말아 쥐고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 * *
“정찰병으로 보이는 놈들이 동쪽으로 빠져나갔습니다.”
데얀이 담대소천에게 보고했다.
이미 그러한 부분을 염두에 두었던 담대소천은 미리 기사들에게 빠져나가는 적을 면밀히 살피라는 지시를 내려 놓았던 것이다.
역시 적은 그의 예상을 벗어나지 못했다.
관산악이 적진을 쳐다보며 으르렁거린다.
“그냥 지금 쳐 버리자!”
“그놈의 불같은 성질은 여전하군.”
“잠깐 자고 일어났더니 몸이 근질근질해서 미치겠다.”
그 잠깐이 칠백 년이다.
모두의 입가에 웃음이 걸렸다.
담대소천이 찬 공기를 한껏 들이마시고는 모두를 돌아보며 말문을 열었다.
“케이시라는 놈만 사로잡으면 전쟁은 끝난다. 하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다. 모두 주공께 돌아간다! 주모님들께도 예를 올려야 하지 않겠나! 전군! 회군한다!”
느닷없는 철군 명령에 관산악이 무슨 소릴 하냐는 듯 되물었다.
“승전이 코앞인데 이대로 돌아간단 말이냐?”
“저들을 다 죽인다고 해서 요란이 망하는 건 아니다. 어차피 저들은 황제를 잃었다. 지금 저 케이시라는 자를 죽이면 요란은 혼란에 휩싸이게 되고 그것은 곧 다른 전쟁으로 이어질 것이다. 주공께서도 그건 바라지 않으실 거다.”
담대소천의 말을 관산악은 당최 이해되지 않았다.
데얀을 비롯한 기사들도 은근히 불만을 비쳤다. 그들로서는 케이시라는 거물을 눈앞에 두고 돌아간다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
데얀이 참지 못하고 나섰다.
“케이시 공작, 저놈만 잡으면 확실히 요란을 작살낼 수 있습니다. 재고해 주십시오!”
“그렇습니다!”
다른 기사들도 이구동성으로 말하자 담대소천의 눈에 한기가 어린다.
갑작스러운 표정 변화에 데얀은 내심 뜨끔했다.
“명령을 거부하는 것이냐?”
“아, 아닙니다!”
“그럼 회군을 준비해라, 데얀.”
“……알겠습니다.”
가슴을 쓸어내린 데얀은 재빨리 기마 병단의 선두로 전마를 몰아갔다.
진천이 웃으며 등을 돌렸다. 그러고는 내공을 담고는 소리쳤다.
“전군! 왕궁으로 귀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