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무사-400화 (398/425)

# 400

<귀환무사 400화>

귀환무사 2부

175화

핏물과 육신의 파편들이 난무하며 솟구쳤다.

“으…… 이, 인간이 아니다.”

극한의 두려움은 전의를 상실하게 만들었다.

반경 오 미르 내의 적들은 감히 다가올 엄두를 내지 못했다. 뒤를 따르던 루안이 인상을 그리며 자신도 좌우측을 가리지 않고 맹공을 퍼부었다. 그의 살상력 높은 마법 공격은 짧은 시간에 상당한 적을 쓰러뜨렸다.

그러나 수가 너무 많았다. 죽여도, 죽여도 끊임없이 달려드는 적들은 서서히 그들에게서 체력을 앗아 가기 시작했다.

그때, 그들의 뒤쪽에서 강력한 기운들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린 담대소천의 눈에 적의 수장인 케이시 공작과 한 무리의 마법 병단이 질주해 들어오는 것이 잡혔다.

“어서 공주를 능선으로!”

그가 등을 돌리자 레이나 공주 일행이 오히려 그를 방해하는 형국이 되었다. 루안이 그녀를 안고 빠르게 능선으로 날아올랐다.

“너희들은 공주를 홀베른으로 호위하라!”

그는 홀베른의 기마 병단에게 그와 같은 명령을 내리고는 바닥을 차고 올라 케이시 공작을 향해 돌진했다.

“장군!”

“담대 숙부!”

레이나 공주와 헤론 후작이 경악에 찬 소리를 질렀다.

* * *

“젠장! 완전히 거꾸로 되었잖아! 왜 장군님이 사지로 뛰어드셔야 하는지 모르겠다! 빌어먹을!”

홀베른의 기사들은 달리면서도 분통을 터뜨렸다.

그런 그들의 뒤쪽에는 레이나 공주와 케이론의 주요 인물들이 따르고 있었다. 후퇴하는 케이론의 병력은 고작 수천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죽거나 빠져나오지 못하고 난전을 벌이고 있었다.

천인장 하나가 소리쳤다.

“위험 지역을 벗어난 곳까지만 공주를 호위하고 돌아가서 장군님을 돕는다! 속도를 높여라!”

“얼른 얼른 따라오쇼!”

기사들은 전마에 박차를 가했다.

레이나 공주의 얼굴이 무척 어두웠다. 도움을 주려고 왔다가 오히려 짐이 되어 버리자 참담함과 부끄러움이 몸을 주체하기 힘들 정도로 생겨났다.

그녀는 자꾸만 뒤를 돌아봤다. 그곳에 담대소천이 남겨졌다. 그가 왜 자신을 위해 사지에 뛰어들었을까 하는 의구심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그가 무사하기만을 신께 빌고 또 빌었다.

‘이 은혜는 반드시 갚겠어요. 그러니 제발 무사하기를…….’

기어코 그녀의 뺨을 타고 눈물이 흘렀다.

전마들이 거친 호흡을 토해 내기 시작했다. 마법을 두른 전마라도 무한대의 체력을 지닐 순 없는 것이다. 이대로 조금을 더 질주하면 전마들은 그대로 죽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멈출 수가 없었다.

두두두두!

그들이 전장을 벗어나 능선을 막 넘어서려는 때였다. 전방에서 일진광풍과 함께 한 무리의 기마 병단이 엄청난 속도로 질주해 오는 것이 보였다.

붉은색 바탕에 황금색 글씨가 새겨진 깃발이 선두에서 펄럭이고 있었다.

“케니언 크로우다!”

“아군이다! 아군이 온다!”

홀베른의 기사들이 환호성을 질러 댔다.

두두두두…….

수천의 기마들은 그야말로 바람처럼 달렸다. 짧은 시간에 퇴각하던 기마 병단에 이르자 서로가 기동을 멈추었다.

데얀이 아닌 다른 인물이 바람처럼 전마를 몰아오며 물었다.

“소천이 저곳에 있나?”

“그렇습니다!”

“퇴각하는 건가?”

“장군님께서 이분들을 호위하라고 명하셨습니다!”

이 세상의 갑주가 아닌 생소한 복장의 사내는 엄청난 크기의 대도를 쥐고 흑발을 날리며 전장으로 시선을 던졌다.

모두는 의아한 눈으로 사내를 바라보았다.

그때 데얀이 다가오며 사내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서두르시지요. 장군께서 포위당하셨습니다.”

“저 정도로 죽을 놈은 아니지. 그건 그렇고 당신들은 누구야?”

사내의 시선이 레이나 공주에게 향했다.

그 오만한 말투에 루안의 눈초리가 사납게 올라갔다. 헤론 후작도 은은한 노기를 드러냈다.

“이분은 케이론의 왕녀이시다! 말을 조심하라!”

“왕녀? 왕녀라면 왜 퇴각을 하는 거지? 저기 저놈들은 너희들의 기사들인 것 같은데?”

“무엄하다!”

스슥!

호통을 치던 헤론 후작의 목에 어느새 사내의 대도가 겨누어졌다. 사내의 입가가 올라가며 차가운 미소를 머금었다.

“난, 수하를 남겨 두고 도망치는 것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헤론 후작의 목을 타고 핏물이 흘렀다.

공주를 호위하고 달려온 홀베른의 기사들이 마른침을 삼키며 상황을 주시했다. 이런 존재를 그들도 본 적이 없었다.

바람이 불어와 사내의 흑발을 쓸고 지나가자 한 마리 야수와도 같은 얼굴이 드러났다. 새카맣게 빛나는 눈동자엔 광극이 번뜩이고 있었다.

“그 칼을 치우세요!”

레이나 공주가 소리쳤다.

사내의 시선이 느릿하게 그녀에게로 돌아갔다. 그리고 웃었다.

“이놈보다는 저기 저놈들을 살릴 궁리를 했어야지.”

레이나 공주는 말문이 막혔다.

사내의 시선이 다시 전장으로 향해졌다.

“후후! 모처럼 깨어났더니 또 싸움인가? 좋지, 좋아…….”

“서두르셔야 합니다!”

데얀의 재촉에 사내는 대도를 비껴들고는 전마의 말 머리를 전장으로 틀었다. 그리고 중얼거리듯 말했다.

“허락받은 살인이라면 마다할 나, 관산악이 아니다. 가자!”

* * *

진천은 혁련소와 연소민을 데리고 수천의 기병을 이끌고 초원으로 달렸다.

케이론의 병력과 합세하여 요란의 지원 병력을 요격하려고 떠난 담대소천이 위험에 처했다는 소식을 마법사들이 전해 온 것이다.

돌처럼 굳어진 진천과 혁련소의 얼굴이 바람에 쓸려 꿈틀거렸다. 뒤쪽에서 따르던 에이미 공주 역시 초조함을 감추지 못했다. 어느 정도 마나를 회복한 그녀는 여전히 창백한 안색을 보이고 있었다.

두두두두두…….

라이트 마법을 두른 전마들은 가공할 속도로 달렸지만 좀처럼 전투가 벌어진 초원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들과 뒤를 따르는 기사들과의 거리가 점점 벌어졌다.

그리고 조금이 지나자 기사들이 보이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연소민이 혁련소에게 큰 소리로 물었다.

“아버님께선 놈을 처치하셨겠죠?”

“당연하지!”

“그럼 우리 돌아갈 수 있는 건가요?”

“아직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은 건 아니야! 하지만 방법이 있을 거니까, 걱정 말라고!”

대화를 나누는 와중에 그들은 초원의 가로지른 얕은 능선에 도달하고 있었다. 뒤를 따라오던 에이미 공주가 소리쳤다.

“저곳인가 봐요!”

“좋아! 말을 버리고 경공으로 가자!”

진천의 육신이 전마를 버리고 허공으로 솟구쳤다. 다른 이들도 이내 그의 뒤를 쫓아 몸을 솟구쳤다. 조금을 더 접근하니 요란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혁련소와 연소민이 달려가면서 검을 뽑아 들었다.

진천이 소리쳤다.

“에이미! 사정 보지 말고 무조건 퍼부어야 해!”

“알겠어요!”

능선을 넘어서자 전장이 눈에 들어왔다.

대군에 포위를 당한 채, 난전을 버리고 있는 홀베른의 깃발이 보이자 모두는 그곳으로 폭풍처럼 달려갔다.

선공은 진천의 환술로 펼쳐졌다.

“죽여야만 한다면 모조리 다 죽여 주마!”

화르르륵!

그의 손이 거대한 불꽃을 피워 내며 앞으로 뻗어졌다. 동시에 에이미 공주도 강력한 화염 계열이 마법을 소환해서 펼쳤다.

콰과과광!

병력이 밀집되었던 요란의 측면에 불꽃이 일었다. 예상치 못했던 기습공격에 상당수의 기사들이 한꺼번에 떼죽음을 당했다.

공격은 재차 이어졌고 불길에 휩싸여 몸부림치는 자들이 속출했다. 검을 뽑아 든 진천이 전장으로 난입했다.

혁련소의 분노에 찬 함성이 전장을 쩌렁쩌렁 울렸다.

“죽고 싶으면 덤비라고! 자식들아!”

퍼퍼퍼퍽!

피와 살이 난무하며 사방으로 솟구쳤다.

학살에 가까운 난폭함을 보이는 그들의 공격은 삽시간에 요란의 진영을 흔들어 놓았다. 그들을 막고자 날아들던 마법사들은 에이미 공주에 의해 공중에서 요격을 당해 죽어 나갔다.

“저기! 소천 숙부가 계십니다!”

혁련소가 담대소천을 발견하고는 소리쳤다.

정확하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엄청난 기운이 요동을 치고 있었다. 아군 중에서 저 정도의 기운을 발산할 존재는 담대소천뿐이라 여긴 그들은 거침없이 그곳으로 돌진했다.

그때, 그들의 머리 위로 거대한 불꽃이 떨어졌다.

“앗!”

뒤늦게 발견한 연소민이 비명을 질렀다. 그때였다.

펑!

강력한 기운이 날아와 불꽃을 소멸시켰다. 동시에 묵직한 목소리가 그들의 귓속을 울렸다.

“주변을 잘 살펴야지!”

“숙부!”

“소천 님!”

담대소천이었다.

그때 진천이 고개를 돌리며 눈을 동그랗게 키웠다.

“저, 저게 형님이 아니었네? 그럼 누구지?”

분명 담대소천은 여기 있다. 그렇다면 누가 저토록 광포한 기운을 발산할 수 있단 말인가? 지금도 그곳에선 피와 살들이 사방으로 난무하고 있었다. 담대소천의 입가가 슬쩍 올라갔다.

“놈이 깨어났다.”

“놈이라뇨?”

“산악!”

“예에?”

* * *

“감히! 이 홀베른을 침략했단 말이지? 감히 이 관산악이 살아 숨 쉬고 있는 홀베른을 말이다!”

쾅!

관산악의 대도는 용서를 몰랐다.

이미 그가 움직이는 주변은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시신이 피를 흘리고 쌓여 있었다. 그중엔 요란의 마스터 몇 명도 포함되어 있었다.

“주공께서 내게 명령을 내리셨다! 네놈들을 모조리 도륙을 내 버리라고 말이야! 크하하하하!”

퍽!

뒤에서 암습을 노리던 기사의 머리가 산산조각으로 부서지며 날아갔다.

어른의 등판만 한 넓이를 자랑하는 그의 대도는 죽음을 인도하는 사자와도 같았다.

그와 케니언 크로우 기사단이 휩쓰는 곳은 죽은 자들의 시신과 핏물이 산과 바다를 이루었다. 죽은 자들보다는 부상을 입은 자들의 처절한 비명이 전장의 참혹함을 한눈에 보여 주었다. 그들은 바닥을 기다가 전마의 발굽에, 동료들의 발에 짓밟혀 죽어 나갔다.

요란의 기사들이 치를 떨며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으…… 인간이 아니다! 물러서라!”

그들을 감당했던 부대의 수장이 기어코 퇴각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그의 판단은 너무 늦은 것이었다. 이미 그들의 뒤쪽으로 결코 그에 떨어지지 않는 무서운 존재들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네놈이 대가리였군.”

서걱!

관산악의 대도가 번쩍 빛을 발하자 명령을 내렸던 기사의 머리가 허공으로 날아갔다. 퇴각을 준비하던 기사들이 혼란에 휩싸였다. 갈팡질팡하는 그들에게 시뻘건 화염이 떨어졌다.

쾅!

“으아아…….”

관산악의 고개가 화염이 날아온 방향으로 돌아갔다.

순간 그의 입가가 슬그머니 올라갔다.

“후후후! 꼬맹이!”

“산악 숙부!”

“으하하하! 어서 오너라! 꼬맹이!”

혁련소의 얼굴이 관산악의 눈을 찌르고 들어왔다. 그리고 그 옆에 활짝 웃으며 달려오는 진천의 얼굴이 함께하고 있었다.

“형님!”

“후후! 노랑머리, 여전히 뺀질거리는 모습이군.”

“숙부! 어머니들도 깨어나셨습니까?”

“지금쯤 주공과 회포를 풀고 계실 거다! 우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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