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무사-397화 (395/425)

# 397

<귀환무사 397화>

귀환무사 2부

172화

“항복해라! 목숨을 살려 줄 것이다! 항복해라!”

마법사들은 연방 확성 마법을 통해 항복을 권고했다.

이미 승패는 기울었다. 도주하던 적을 쫓았던 기마병들이 전부 되돌아와 남아서 저항하던 요란의 기사들을 완벽하게 포위했다.

“요란 만세!”

“황제 폐하 만세!”

남은 요란의 기사들은 끝까지 항전을 고수했다.

그때 그들의 머리 위로 어둠의 마법사들이 날아들었다.

“망할 새끼들!”

걸쭉한 욕설과 함께 허공에서 왕전이 떨어져 내렸다. 어둠의 마법사들이 떨어져 내린 공간에 왕전의 대도가 작렬했다.

콰앙!

“끄으으…….”

유일하게 살아남았던 어둠의 마법사 셋이 바람에 날려 연기로 화해 사라졌다.

한낱 인간이 휘두른 칼이 어찌 이런 위력을 보일 수 있을까?

요란 만세를 외치며 항전의 뜻을 드러내던 요란의 기사들이 절망 어린 표정으로 변해 갔다. 그들의 눈에 왕전은 제국의 초인보다 훨씬 강력한 존재로 여겨졌다.

“이런 미친 새끼들! 네놈들의 황제는 도망쳤다! 그런데도 싸울 거야? 좋아! 원한다면 내 손으로 모조리 죽여 주지!”

왕전이 사자처럼 으르렁거렸다.

그 옆에 사공진무가 유령처럼 모습을 나타냈다.

“너희들을 도와줄 마법사는 모두 죽었어. 그러니 어서 항복하는 게 좋을 거야. 그리고 잘난 너희들의 황제도 곧 죽을 거다.”

“닥쳐라! 곧 케이시 대공께서 대군을 몰고 오실 것이다!”

누군가가 소리쳤다.

“그래! 케이시 대공께서 반드시 오실 것이다. 끝까지 항전하라!”

“항복은 요란의 수치다! 끝까지 싸우자!”

그러자 동요하던 기사들이 다시 적개심을 드러냈다.

“쩝! 어쩔 수 없군요.”

사공진무가 왕전을 돌아보며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왕전과 사공진무가 슬쩍 뒤로 물러나자 룻거 후작이 손을 하늘로 치켜 올렸다가 앞으로 내렸다.

“공격하라!”

평원의 가운데에 완벽하게 포위를 당한 요란의 기사들을 향해 사방에서 마법 공격과 화살들이 쏟아졌다.

요란의 기사들은 죽을 각오를 하고서 사방으로 뻗쳐 나오며 마구잡이식 공격을 감행했지만 이미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죽이는 자의 마음이 오히려 슬플 정도의 무자비한 살육전은 전쟁의 참혹함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며 서서히 그 막을 내려갔다.

“우와아아…….”

평원이 떠나갈 듯 함성이 진동했다.

대륙의 누구라도 생각하지 못했던 결과가 벌어졌다. 환호성을 지르는 홀베른의 기사들은 서로를 부둥켜 앉고 믿기지 않는 승리에 열광했다.

룻거 후작이 칼을 들어 소리쳤다.

“홀베른 만세!”

“상왕 전하 만세!”

“국왕 전하 만세!”

기사들도 목청껏 소리쳤다.

요란의 황제가 타고 왔던 거대한 마차가 불길에 휩싸였다.

두려움에 몸을 떨고 있던 막스 황제의 시녀들은 목숨을 건졌다. 그리고 항복한 몇 되지 않는 기사들은 바닥에 머리를 박고 오열을 터뜨렸다.

홀베른과 요란 간의 첫 전면전은 이렇게 홀베른의 완벽한 승리로 막을 내렸다.

* * *

쾅!

허공이 무수한 불꽃으로 난무했다.

경천지경의 수준에 올라선 초월자들 간의 격돌은 주변 풍경을 초토화시켜 가며 끝을 모르고 이어졌다.

혁련천후가 검을 그으면 테세우드는 괴상한 술법으로 막아 냈다. 테세우드의 검이 화염을 뿜으며 날아들면 혁련천후는 피하지 않고 검으로 맞받아쳐서 방어했다.

폭발의 여파로 파생된 기운들은 마스터들도 감당하기 힘들 만큼의 위력을 내포하고 사방으로 날아갔다.

퍼퍼퍽!

굵직한 나무들이 삭둑 잘라지며 강물로 떨어졌다.

“믿을 수 없을 만큼 강한 놈이군. 두 힘이 합쳐졌다고는 하지만 설마 저 정도일 줄이야.”

흑야와 조윤은 불신으로 가득한 눈으로 둘의 대격돌을 지켜보았다.

천하를 떨어 울리는 그들조차도 둘의 격돌은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둘은 혁련천후를 돕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건 혁련천후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때였다. 둘의 옆에 한 줌 미풍이 불더니 아리엘과 카루가가 유령처럼 모습을 나타냈다. 조윤과 흑야가 놀란 눈으로 둘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되어 가나요?”

“보다시피…….”

“영혼이 봉인되어 버린, 이미 죽은 자로군요.”

아리엘이 테세우드를 유심히 살펴보다가 중얼거렸다. 아리엘의 손을 잡고 선 카루가의 얼굴이 평소와는 다르게 매우 굳어 있었다. 테세우드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 무척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조윤이 카루가의 어깨를 어루만져 주며 말했다.

“표정이 왜 그래?”

“응? 아, 아니야.”

“걱정 마라. 세상에 주공을 이길 놈은 없으니까.”

“그래, 여차하면 여기 있는 우리가 몽땅 달려들면 되잖아.”

아리엘도 카루가를 다독거렸다.

그들은 카루가가 혁련천후를 걱정하는 것이라 여겼다. 물론 그것도 옳았지만 그에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카루가는 테세우드에게서 켈베로스의 기운을 감지하고 있었다.

아직 확실하지 않았기 때문에 유심히 살펴보는 것이었다.

‘이상해. 왜 저자에게서 그놈의 기운이 느껴지는 거지? 설마 영혼을 잠식하는 수준까지 높아진 걸까?’

카루가의 눈동자는 뭔가를 찾아내기 위해서 연방 반짝거렸다.

그러나 좀처럼 확신이 들 만큼의 확실한 무엇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때 조윤이 나지막이 소리쳤다.

“됐다! 잡았어!”

“후후후! 역시 대단하신 분이군.”

흑야의 입가에도 미소가 걸렸다.

* * *

혁련천후의 눈동자에 섬광이 돌았다.

그는 자신의 심장을 향해 날아드는 테세우드의 검을 수도로 후려치고는 탄력을 이용해 검을 세워 테세우드의 겨드랑이에 박아 넣었다.

푹!

묵직한 느낌과 함께 테세우드의 육신이 크게 휘청거리는 것이 온몸으로 전달되었다. 그러나 테세우드도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육신을 파고든 검을 빼기는커녕 손으로 움켜쥐고는 육탄으로 혁련천후를 공격했다.

쾅!

둘의 육신이 반대 방향으로 튕겨 날아갔다.

찰나의 순간에 혁련천후는 자신의 검을 빼낼 수 있었지만 속이 울렁거릴 정도로 큰 충격을 받았다.

“크으으으…….”

영혼이 봉인된 죽은 자도 고통을 느끼는 것일까? 테세우드의 입에서 고통에 찬 신음이 흘러나왔다. 칼이 관통했던 곳에서는 시커먼 연기가 무럭무럭 솟아나고 있었는데, 그에 반해 테세우드의 전신을 둘렀던 시커먼 연기가 점점 흩어지고 있었다.

“네놈의 한계가 이곳까진가 보군.”

“크으으…… 어림없다.”

테세우드의 두 눈이 광기로 물들었다.

불신과 경악, 분노가 어우러진 그의 얼굴이 사정없이 뒤틀렸다. 전생에 그토록 권력에 집착했던 그였기에 영혼까지도 자신의 패배를 용납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이…….”

무슨 말을 하려던 테세우드의 얼굴이 갑자기 일그러지기 시작하더니 다른 형태로 바뀌어 가기 시작했다.

“……!”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혁련천후는 내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벼락같이 테세우드를 덮쳤다. 그의 검이 번쩍하는 빛을 작렬시키며 테세우드의 육신을 자르고 지나갔다.

“크아아아아!”

테세우드의 육신이 두 조각이 나며 한 줌 연기로 흩어졌다. 허공이 시커먼 연기로 가득 채워지며 시야가 완벽하게 흐려지자 혁련천후의 육신이 그것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모두가 초조한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았다.

툭!

그들의 뒤쪽에서 혁련천후가 바닥으로 내려섰다.

한순간에 내공을 응집시킨 후유증일까? 혁련천후의 얼굴이 상당히 창백하게 변해 가며 입가로 가는 핏줄기가 비쳤다.

“어머!”

아리엘이 깜짝 놀라 비명을 지르며 달려갔다.

조윤과 흑야도 재빨리 그에게 다가가서 그의 등에다 손을 대고는 기운을 불어넣었다. 카루가가 눈물이 글썽한 눈으로 혁련천후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괜찮아요?”

아리엘의 뺨을 타고 눈물이 흘렀다.

그녀는 혁련천후의 손을 부여잡고 자신의 가슴에 대었다. 그때 조윤이 짤막하게 외쳤다.

“다른 힘은 안 돼!”

아리엘이 놀라 그를 올려다보았다.

“지금 흑야가 힘을 넣어 주고 있다. 자칫 섞이면 낭패를 볼 수가 있으니 그냥 있어라.”

“아, 알았어요.”

그토록 쾌활하고 사내들보다 더 강인하게 여겨졌던 아리엘이 지금은 그저 사랑하는 사람을 걱정하는 여인에 불과했다. 그녀가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본 조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는 그녀와 혁련천후를 번갈아 응시하더니 가볍게 고개를 젓고는 주변을 살폈다.

테세우드의 흔적은 아무것도 없었다.

허공을 가득 메웠던 연기도 깨끗이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켈베로스가 왜 나타나지 않았을까 하는 의구심이 생겨났다.

“주공! 운기를 하셔야 합니다.”

흑야가 손을 떼며 말했다.

혁련천후는 여전히 창백한 안색에 선혈이 그치지 않았다.

“아직 놈이 나타나지 않았다. 주변을 잘 지켜봐.”

“주변에서 걸려드는 기운은 전혀 없습니다.”

이미 조윤이 기감을 열어 주변을 샅샅이 감지했었다. 그러나 짐승들의 것으로 여겨지는 것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포착되지 않았다.

혁련천후는 카루가를 응시했다.

카루가도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없어. 분명 조금 전까진 느껴졌었는데…….”

“혹시 놈이 순간 이동을 하는 마법……!”

중얼거리던 혁련천후가 갑작스럽게 몸을 벌떡 일으켰다. 심하게 흔들리는 눈동자가 왕궁이 있는 동쪽으로 향해 던져졌다.

꽉!

‘설마…….’

불안감이 가슴을 채우고 올라왔다.

“왕궁으로 간다!”

쾅!

* * *

담대소천은 평원의 끝부분에 우뚝 솟아오른 돌로 이루어진 산의 정상에서 세상을 내려다보았다. 데얀이 그의 옆을 함께하고 있었다.

담대소천은 초원을 달려오는 대군을 응시했다.

“케이론의 병력들입니다. 조금 늦는군요.”

데얀이 다소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다.

그러나 담대소천은 케이론의 병력, 뒤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거의 이십만에 달하는 대군이군. 역시 제국이란 말인가?”

데얀이 그제야 케이론의 병력 뒤쪽을 질주해 오는 요란의 구원군을 발견했다. 산에서 내려다보는 초원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양측을 합해 삼십만에 달하는 대군이 세상을 새카맣게 채우고 밀려오는 광경은 장엄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둘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졌다.

“빌어먹을 놈들이 쪽수로 밀어붙일 모양입니다. 서둘러 돌아가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전열을 재정비하고 하려면 시간이 촉박합니다, 장군님!”

홀베른의 모든 이들은 담대소천을 중원의 언어로 장군이라 칭했다.

담대소천은 데얀의 재촉에 고개를 저었다.

“기사들을 이끌고 돌아가라! 가서 모든 병력들을 재정비하고 내가 명령을 전달할 때까지 평원에서 움직이지 말고 기다려라!”

“예?”

“난, 케이론의 병력들과 조우해서 할 일이 있다. 서둘러!”

담대소천의 곧장 산 아래로 몸을 날렸다.

데얀을 한 번 쳐다본 그는 이내 기마 병단을 이끌고 케이론의 병력이 이동하는 곳으로 질주했다.

“단장님! 저희들도 도와야지 않겠습니까?”

“아니다! 장군님의 명령을 어길 수는 없지. 돌아간다! 서둘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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