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6
<귀환무사 396화>
귀환무사 2부
171화
두두두두…….
지축이 흔들렸다.
“수가 저토록 많다니…….”
지원군으로 보기엔 과할 정도로 큰 군세였다.
레이나 공주는 호흡을 가다듬고는 명령을 내렸다.
“저들과 부딪치지 말고 곧장 홀베른으로 향하세요. 마법 병단은 나와 함께 루안 공을 도우세요!”
“마마! 위험합니다!”
헤론 후작이 소리쳤다. 그러나 레이나 공주는 고개를 저었다.
“후작께선 어서 기사들을 이끌고 홀베른으로 가세요! 어서요!”
“마마…….”
“루안이 있으니 저는 걱정 마세요. 홀베른에서 뵐게요.”
그녀는 그 말을 남기고는 훌쩍 루안이 싸우고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헤론 후작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는 명령을 내렸다.
“전군! 홀베른의 대평원으로 이동한다!”
“전군, 전진하라!”
십오만에 달하는 케이론이 병력들은 빠르게 북진을 시작했다.
* * *
“각하! 케이론입니다!”
부관이 전방을 가리키며 소리치자 케이시 공작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명령을 내렸다.
“몬스터들은 그냥 돌진해서 쓸고 지나간다!”
“랜서 병단! 전방으로!”
“돌격 부대 전방으로!”
육중한 중장비를 걸친 전마들이 부대의 앞쪽으로 늘어섰다. 케이시 공작은 케이론의 병력에 쫓겨 자신들을 향해 도주해 오는 수만의 몬스터들을 바라보며 차갑게 웃었다.
“돌아온 나, 케이시의 무서움을 네놈들이 먼저 맛보는구나.”
그의 손이 하늘을 향해 올라갔다.
동시에 거대한 깃발이 앞으로 내려갔다.
“돌격하라!”
두두두두…….
중장기병들이 지축을 흔들며 뛰어나갔다. 몬스터들은 당황하여 사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요란의 기병들은 이미 좌우측을 막아서고 있었다.
콰지지지직!
“꽤애액!”
육중한 전마들이 몬스터들을 그대로 짓밟고 지나갔다. 덩치가 큰 몬스터들은 기사들이 내지른 창과 검에 의해 피를 뿌렸다.
퍽!
날아든 베틀 엑스가 오우거의 머리를 산산조각으로 부수고 지나갔다. 갑주조차 걸치지 않고 상체를 드러낸 자들로 이루어진 부대가 보였다. 모두 머리를 밀어 햇빛에 반짝일 정도인 그들은 하나같이 거대한 베틀 엑스를 지니고 있었다.
무지막지한 괴력을 뽐내며 돌진하는 그들에 의해서 오크 부대가 삽시간에 몰살을 당했다. 고블린들이 쏜 독침도 그들의 육신을 뚫지 못하고 튕겨 나갈 뿐이었다.
“우하하하!”
퍽! 퍽!
한 손에 하나씩, 한 번 휘두름에 둘씩 죽어 나갔다.
“각하! 저길 보십시오!”
케이시 공작은 부관이 가리키는 곳으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순간 그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저자들은 누군가?”
“복장으로 보아 케이론의 기사로 여겨집니다만, 상대하는 자들은…….”
“저들은 데스나이트!”
케이시 공작의 옆에 섰던 마법사 하나가 놀란 소리를 냈다. 백마법사인 그들은 대번에 크루즈와 폭스의 기운을 알아챘다.
그르르르…….
그들의 싸움은 초인이라는 케이시 공작도 놀랄 정도로 대단했다. 상당한 거리 밖임에도 불구하고 진동이 다 느껴질 정도였다.
“각하! 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부관들이 재촉하자 케이시 공작은 즉각 명령을 내렸다.
“집중포화를 저곳에 퍼붓는다. 마법사들은 궁병을 도와라!”
명령이 떨어지자 요란의 자랑거리 중 하나인 궁병들이 재빨리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곳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마법사들도 궁병들의 뒤를 따랐다.
* * *
“루안! 일단은 이곳을 피해야겠어요!”
레이나 공주는 요란의 궁병들이 접근하자 다급하게 소리쳤다. 루안도 이미 그것을 보았는지 둘에게 강력한 공격을 퍼붓고는 재빨리 뒤로 몸을 뺐다.
“하필이면 이때에…….”
무시무시한 둘을 상대로 격전을 치렀음에도 불구하고 루안은 매우 담담한 기색을 보였다.
폭스와 크루즈도 다가오는 요란의 궁병들과 마법사들을 발견하고는 주춤하는 기색을 보였다.
“크흐흐흐! 운이 좋은 인간이군. 네놈은 다음에 반드시 죽여 주마.”
“닥쳐!”
루안의 양손이 강력한 화염을 뿜어냈다.
둘이 피해 버린 공간에서 터져 버린 그것은 이내 초원을 불바다로 만들었다. 폭스와 크루즈가 빠르게 북쪽으로 내달렸다.
레이나 공주가 재촉했다.
“우리도 어서 홀베른으로 가요! 서둘러요!”
“쳇! 어쩔 수 없군.”
“홀베른으로 가세요!”
마법사들에게 명을 내린 레이나 공주는 루안의 손을 잡고는 전마에 몸을 실었다. 그녀는 다가오는 요란의 궁병들에게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 보이고는 질풍처럼 북쪽으로 내달렸다.
그들이 그대로 북쪽으로 도주하자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 되어 버린 케이시 공작은 곧장 전군을 북쪽으로 진군시켰다.
* * *
철퍼덕!
강물에 내디딘 발이 가늘게 떨렸다.
테세우드의 얼굴을 한 막스 황제의 붉은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렸다. 돌아보니 전장에서 한참을 멀어진 곳에 와 있었다.
병사들의 함성조차 들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상당히 먼 곳까지 온 것이다.
‘순수한 인간의 힘이 이토록 강할 수 있다니…….’
지금 자신에겐 대륙에서 가장 강했던 초인의 힘이 고스란히 탑재되어 있다. 거기에 자신이 지니고 있었던 본연의 힘과 스승이 심어 준 암흑마기까지…….
그런데 눈앞의 인간들은 그것이 통하지 않았다. 서로가 서로를 죽일 수 없는 상태가 벌써 몇 시간이 이어졌다.
“정말 놀라운 놈들이구나. 레인이 그토록 두려워하던 자가 있다더니 네가 바로 그놈인가 보군?”
막스 황제의 눈동자는 혁련천후에게 고정되었다.
“켈베로스를 부르지 않으면 네놈도 놈의 뒤를 따라갈 거다.”
흠칫!
“설마, 레인이 죽었단 말이냐?”
“웃으면서 갔다. 아주 먼 곳으로…….”
“이, 이놈!”
레인이 혁련천후에 의해 죽었음을 직감한 막스 황제는 분노에 몸을 떨었다.
쩌저저정!
흐르던 강물이 대번에 하얀 얼음으로 변했다.
“네놈이 진정 레인을 죽였단 말이냐?”
“내가 죽인 자는 레인이 아니라 동승이라는 신교의 인물이었다. 물론 켈베로스의 꼬임에 고향을 등지고 이곳으로 온 멍청이기도 하고.”
“이이이…….”
드드드드…….
지축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막스 황제의 육신을 두른 시커먼 연기들이 광포한 움직임을 보이며 사납게 요동치자 혁련천후의 눈동자에도 긴장감이 어렸다.
“조심해야겠어.”
“이놈도 변신을 하는 모양입니다!”
그랬다.
그가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 그때 조윤이 일성 기합을 지르며 창을 던졌다. 만근 바위라도 부술 조윤의 창이 그대로 막스 황제의 육신을 꿰뚫고 지나갈 듯 굉음을 울리며 날아갔다.
하지만 짧은 순간에 막스 황제의 변신은 전혀 뜻밖의 결과로 이어졌다.
까앙!
조윤의 창이 강력한 반탄력에 상당한 거리로 튕겨져 날아갔다.
“테세우드, 놈입니다!”
“역시 마물들은 별 요상한 짓거리들을 다 하는군.”
막스 황제는 완벽하게 테세우드 공작으로 변해 있었다.
마치 새로운 육신을 얻은 듯 그는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며 사악하게 웃었다.
“후후후! 멍청한 놈…….”
누구에게 하는 말일까? 그는 자신의 손바닥까지도 살펴보고는 시선을 혁련천후와 흑야 등에게 던졌다.
“테세우드라고 불러야 하나?”
“후후! 그동안 미련한 놈과 싸우느라 수고가 많았다. 이젠, 나 테세우드가 너희들을 상대해 주마.”
느껴지는 기운이 이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혁련천후조차도 숨이 턱턱 막힐 지경이었다. 이 세상에 와서 가장 강적을 만난 셋은 내심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이놈이 이 정도면 켈베로스는……?’
모두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아직 켈베로스는 어디 있는지조차 몰랐다. 다만 눈앞의 마물을 처치하면 그가 나올 거라는 막연한 심정일 뿐이었다.
“생전에 더 강했던 놈의 육신을 차지한 게 더 강해진 이유인 것 같습니다.”
조윤이 긴장감을 드리우며 말했다.
“그래도 죽여야지. 무조건…….”
혁련천후는 입술을 굳게 물었다.
그도 지금껏 최선을 다한 것은 아니었다. 마지막 궁극의 공격이 그에게도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것으로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을 만큼 테세우드는 강력해 보였다.
“네놈을 죽여야만 켈베로스, 놈이 나온다면 시간을 끌 아무런 이유가 없겠군. 펼쳐 봐! 네놈이 가진 모든 것을……!”
“후후후! 만용을 부리는군. 너희들 정도라면 느껴지는 기운만으로도 충분히 파악했을 텐데도 여유를 부리다니.”
혁련천후는 대답하지 않고 전음으로 조윤과 흑야를 불렀다.
[조윤! 흑야!]
둘은 그를 응시했다.
[지금부터 전력으로 공격할 것이다. 너희들은 혹시 모를 켈베로스의 등장에 대비하여 모든 힘을 드러내지 말도록!]
[알겠습니다!]
쾅!
혁련천후가 곧장 테세우드를 덮쳤다.
혁련천후는 지금껏 이 세상에서 단 한 번도 펼친 적이 없었던 자신만의 비기를 펼쳤다. 화산의 검법에 가문의 비기를 혼합해서 창안한 그것은 그 스스로도 어느 정도의 위력이 될지는 몰랐다.
쩌정!
공간이 깨지는 듯한 굉음이 마구 터져 나왔다. 파생된 음파가 얼어붙은 강을 산산조각으로 부숴 버리자 주변 공간이 하얀 얼음 가루로 채워졌다.
“엄청나군.”
“저 정도이셨나?”
조윤과 흑야가 혀를 내둘렀다.
그들도 지금 혁련천후가 펼치는 무공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그것이 아니더라도 무적으로 살아온 그가 아닌가? 둘의 얼굴이 이내 긴장감을 보인다.
그만큼 상대가 강하다는 반증이다.
둘은 날카롭게 사위를 살폈다. 어딘가에서 있을 켈베로스의 등장을 경계해야만 했다. 그가 만약 테세우드보다 강하다는 예상이 맞아떨어진다면 그야말로 상당한 위기일 수밖에 없다. 때문에 최소한 기습은 당하지 말아야 한다.
자신보다 강한 자의 기습을 막아 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 * *
두두두두…….
난전을 중단하고 전마에 몸을 실은 케니언 크로우 기사단은 도주하면서도 여전히 저항을 멈추지 않는 요란의 기병들을 노렸다. 그야말로 최강의 철벽 방어를 보여 준 그들이 돌진해 들어오자 적은 사방으로 흩어지기 바빴다.
“단장님! 저쪽을 보십시오!”
기사 하나가 평원의 우측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어딜 가시는 거지?”
데얀의 얼굴에 의구심이 떠올랐다.
평원의 우측을 질주하는 한 무리의 부대가 있었는데 그 선두에 담대소천이 보였다. 그는 이만 기 정도의 기병을 이끌고 빠르게 평원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이곳은 더 이상 위협적이지 않다! 우리도 담대 장군님을 따라간다!”
“이랴하!”
데얀의 명에 의해 케니언 크로우 기사단은 빠르게 방향을 선회하여 담대소천의 뒤를 쫓았다.
쾅! 쾅!
여전히 곳곳에서 강력한 마나의 폭발이 일어났다.
요란이 퇴각을 하고는 있지만 전장엔 여전히 수만에 달하는 적이 남아 있었다. 퇴각하는 다른 부대와는 달리 그들은 매우 용맹하게 싸웠지만 가인과 카츄를 비롯한 마법 병단의 집중포화에 점점 그 수가 줄어들고 있었다.
“으악!”
육신이 타들어 가는 참혹한 고통을 겪으며 죽어 가는 적을 바라보며 홀베른의 기사들도 몸을 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