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5
<귀환무사 395화>
귀환무사 2부
170화
제6장 켈베로스의 정체
“으합!”
혁련소의 전신은 시커먼 마기로 둘러져 그 어떤 것의 접근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천살강기는 잃었지만 그에 못지않은 마계의 기운을 얻은 그는 지난날보다 더욱 파괴적인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
연소민도 제국 최초의 여마스터라는 소문에 걸맞은 활약을 펼쳤다.
혁련천후에게서 전수받은 천살강기까지 펼쳐 내자 제국의 초인이라는 자들에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 강자로 변신해 있었다.
전차를 버리고 전마에 올라탄 둘은 기사들을 이끌며 적진을 유린하고 다녔다. 그러나 상대도 결코 호락호락하지는 않았다.
간간이 기사들 틈에 섞여 있던 마법사들의 저격은 꽤 위험했다. 그들이 공격을 가하기 전에는 결코 마법사임을 눈치챌 수 없었던 까닭에 상위 귀족들, 상당수가 그들의 저격에 쓰러졌다.
혁련소는 능선에서 빛을 번쩍이며 싸우고 있는 아버지와 숙부들을 응시하고는 호흡을 골랐다.
“숙부가 저곳에 있으니 놈들이 활개를 치는구나! 소민! 아무래도 우리가 적의 마법사들을 요격하는 것이 좋겠어!”
“알았어요! 조심해요!”
둘은 곧장 전마를 버리고 땅으로 뛰어내렸다. 그러고는 피와 살이 난무하는 육탄전이 벌어지고 있는 전장으로 스며들었다. 그들이 사라져 간 곳에 어둠의 마법사들이 나타났다. 동시에 왕전과 북궁천소, 사공진무가 그들을 쫓아 내려섰다.
죽지 않는 불사의 존재로만 여겨졌던 어둠의 마법사들은 의외로 드래곤의 뼈로 만든 검에는 속수무책이었다. 상성의 기운이 존재했을까? 이미 상당수가 왕전 등에 의해 환생이 불가능한 소멸을 당한 상태였다.
“이놈들만 해치우고 주공을 돕는다!”
“좋다!”
쾅!
그들이 섰던 곳에 화염 계열의 마법이 작렬했다.
전장에 몸을 숨겼던 마법사들이 기습을 가한 것이다. 그러나 그 정도에 당할 그들이 아니다.
이미 신형을 뽑은 왕전은 어둠의 마법사를 덮쳤고 북궁천소와 사공진무는 기습을 가한 마법사의 목을 잘라 냈다. 허공에서 괴상한 소리가 울리며 어둠의 마법사 하나가 연기처럼 소멸되는 광경이 보였다.
왕전의 고함이 전장을 쩌렁쩌렁 울렸다.
“나머지는 진천에게 맡기고 우린 주공을 도우러 가자!”
셋의 육신이 능선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걸려드는 요란의 기사들은 참혹한 죽음을 당해야만 했다. 그들이 지나가는 곳이 좌우로 갈라졌다. 이성적인 판단이 불가능한 전장에서도 그들의 광포함은 적으로 하여금 두려움을 갖게 하기에 충분했다.
모두가 두려움에 길을 터 주자 셋은 빠른 시간에 능선까지 다다를 수 있었다.
* * *
콰과과광!
화염이 연속적으로 한곳에 집중되어 떨어졌다.
피아를 가리지 않는 무차별적인 마법사들의 공격에 진천은 빠르게 몸을 움직이며 그들을 저격해 나갔다.
“나쁜 놈들! 그냥 막 퍼붓는구나!”
진천의 감각에 마나의 순간적으로 강하게 움직인 기사가 걸려 들었다.
“그곳에 숨었더냐?”
진천의 손이 쫙 펼쳐졌다.
그러자 다섯 줄기 지풍이 화살처럼 날아가더니 요란의 기사들, 다섯이 목에 구멍이 뚫리며 쓰러졌다. 그중 하나가 마법사였다.
깡!
진천의 어깨에 검이 작렬했다.
워낙 난전이라 뒤쪽에서 날아든 것을 미처 피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진천은 멀쩡했다. 어지간한 공격으로는 그의 갑주를 뚫지 못한다. 더욱이 호신강기까지 두르고 있었으니 마스터급이 아니면 그의 육신에 상처를 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시원했어! 고마워!”
퍽!
기습을 가한 자의 가슴에 구멍이 뚫리며 피분수를 쏟아 냈다.
전장에 어울리지 않는 웃음을 보인 진천이 빠르게 전장을 살폈다. 여전히 팽팽했지만 확실히 홀베른이 유리한 고지를 점해 가고 있는 게 확연히 느껴졌다.
그때 진천의 눈이 살짝 이채를 발했다.
“무식한 놈들이군!”
전장의 가장 외곽에 요란의 기마병 오천 정도가 상당히 길고 육중한 랜서를 무기로 홀베른의 기병들을 몰아치고 있는 광경이 보였다.
워낙 중병에 사정거리가 길었던 탓에 홀베른의 기사들이 다가가지 못하고 상당한 피해를 입고 있었다. 진천의 육신이 바닥을 차고 올랐다.
따다다당!
마법사들이 펼친 저격은 모조리 그의 호신강기에 튕겨 나갔다.
“수고해!”
진천에게 저격을 가했던 마법사들은 케니언 크로우 기사 단원들에 의해 목이 잘렸다. 마나를 발출하면 어김없이 그들은 죽어 나갔다.
기사들에게 소리쳐 준 진천은 곧장 기사들의 머리를 도약판으로 삼아 외곽으로 날아갔다.
진천이 그곳에 미처 다다르기도 전이었다.
번쩍!
콰앙!
요란의 기마 병단에 거대한 빛이 떨어져 폭발했다.
사람과 전마가 한꺼번에 사방으로 날아갔다. 한가운데에 정통으로 떨어진 탓에 화염이 몸에 옮아서 쓰러진 자들까지 합하면 일백 명 이상이 단 한 번의 폭발에 날아간 것이다.
놀라운 위력을 보인 공격은 바로 에이미 공주가 펼친 것이었다.
“하하! 역시 대단하구나!”
“조심하세요!”
에이미 공주의 손이 다시 거대한 빛줄기를 뿜어 댔다.
기겁을 한 요란의 기사들이 황급히 산개하며 집중포화를 피하려고 했지만 그들보다는 에이미 공주의 공격이 더 빨랐다.
다시 한 번 엄청난 수의 기사들이 화염에 휩쓸려 날아갔다.
“저는 잠시 쉬어야 해요! 마나가 거의 소진되어서…….”
에이미 공주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진천에게 말했다.
“흠! 혼자서는 위험한데…….”
“괜찮아요! 잠시 마나를 보충하고 다시 올게요.”
진천은 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에이미 공주를 보호할 사람을 찾아야만 했다. 마나가 소모된 상태라면 어지간한 기사들의 검에도 목숨을 잃을 수 있다.
하지만 마땅한 사람이 없었다. 모두가 백병전을 벌이느라 몸을 뺄 겨를이 없어 보였다. 그때 요란의 기병들이 용감하게 둘을 향해 돌진했다.
“죽어라!”
수백 발의 오러가 둘이 섰던 곳에 떨어졌다.
그러나 진천은 이미 에이미 공주의 육신을 안고 먼 곳으로 몸을 피한 상태였다. 진천은 어쩔 수 없었다. 그녀가 마나를 회복할 때까지 보호할 사람은 자신밖에 없었다.
“내가 보호해 주마!”
그는 빠르게 전장으로부터 벗어났다.
평원의 좌측에 솟아 있는 산으로 질주한 그는 전장이 내려다보이는 위치에 내려섰다. 여전히 숨을 가쁘게 몰아쉬던 에이미 공주가 그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고마워요!”
“어서 회복하기나 해.”
“진천 님께서 빠지면 상당한 차질이 생길 텐데…….”
“나보단 네가 더 필요하니 어서 마나나 회복해.”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니 전장이 한눈에 들어왔다. 당초 양측을 통틀어 사십만에 달하는 엄청난 군세였지만 하루가 지나가는 시점에서 반 이상이 줄어든 상태였다.
그렇다고 이십만에 달하는 사망자가 나온 것은 아니었다. 평원의 곳곳으로 흩어진 부대도 있었고 개중엔 두려움을 집어먹고 도주한 자들도 상당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쳐도 엄청나게 많은 기사들이 전사한 것은 분명했다. 특히 대규모 살상 마법 공격을 엄청나게 맞아 버린 요란 제국의 피해는 홀베른의 수배에 달했다.
“마법사들의 능력에서 결판이 나 버렸군.”
진천은 새삼 마법의 힘에 감탄했다.
지금 그의 눈에 보이는 전장은 푸른색 깃발이 붉은색 깃발을 서서히 몰아내고 있었다. 이미 능선에 포진한 황제의 마차를 넘어서서 전투를 벌이는 부대들도 있었다.
그만큼 요란 제국이 뒤쪽으로 상당히 밀려났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비슷한 기사들 간의 무력을 감안하면 에이미과 가인, 카츄 등과 같은 대마법사에 준하는 마법사들의 공로라고 봐야 했다.
물론 가장 큰 공은 혁련천후를 비롯한 팔왕에게 있었다.
그들 때문에 요란의 마법 병단은 제대로 된 공격조차 펼쳐 보지 못하고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개전 초기에 입고 말았다.
그것이 승패를 가른 것이다.
“하하! 이거 왕국이 제국을 이길 거 같은데?”
“모두가 상왕 전하께서 저희를 보호해 주신 덕분이죠.”
“응? 너 아직 뭐 해?”
“뭘요?”
“아!”
진천이 자기 머리를 툭 쳤다.
그는 에이미 공주가 운기조식을 하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운기조식을 어찌 알랴? 진천은 당혹한 표정으로 에이미 공주를 내려다보았다.
“마나를 빨리 회복할 방법은 없나?”
“시간이 지나기를 바라는 것밖에는…….”
“이런!”
진천은 난감했다.
그저 자신들처럼 운기조식 한 번이면 기운이 회복되는 것으로 그만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되면 자신이 한동안 전장에 뛰어들지 못한다.
그것은 곧 대마법사보다 강력한 존재가 전력에서 이탈하는 것을 뜻한다. 홀베른으로서는 엄청난 전력의 손실인 것이다.
“그냥 저를 두고 전장으로 가세요. 전장에서 먼 곳이라 괜찮을 거예요.”
“그럴 순 없지. 흠! 방법을 찾아보지.”
진천은 손으로 턱을 괴고는 머리를 굴렸다. 그러다가 갑자기 에이미 공주를 묘한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나, 믿지?”
“……?”
“시간이 없으니 무조건 날 믿어라! 그 방법밖에 없다!”
“무슨……?”
진천이 느닷없이 그녀를 안고는 등을 돌리게 했다. 그러고는 갑주를 벗기고 속옷까지 벗겼다. 깜짝 놀란 에이미 공주가 뭐라 말을 할 사이도 없이 그녀의 상체는 고스란히 알몸이 되었다.
“이게 지금 뭐 하시는…… 흡!”
“말하지 말고 기운을 받아들여. 아플 수도 있으니 참아야 한다.”
그녀는 자신의 내부로 엄청난 기운이 흘러들어 오는 것을 느끼고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부끄러움을 느낄 사이도 없이 그것은 뜨거운 고통을 동반했다.
“조금만 참으면 된다! 절대 입을 벌려선 안 되니 무조건 참아!”
에이미 공주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를 꼭 깨물었다.
그들이 묘한 그림을 연출하고 있을 즈음 레이나 공주가 이끄는 케이론의 기병들은 또 다른 적을 맞이하고 있었다.
* * *
화아아악!
크루즈와 폭스의 공격은 상상을 초월했다.
그들은 지난날보다 더욱 강력해진 상태였고 루안은 그런 그들을 홀로 맞아 싸우고 있었다. 둘을 제외하면 다른 몬스터들은 두려운 대상이 아니었다.
이미 절반 이상의 몬스터들이 기마병들에 의해 도륙을 당한 상태였고 나머지도 본능적으로 케논 산맥이 있는 곳으로 도주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몬스터들이 도주하는 방향에서 요란의 대군이 몰려들고 있음을 레이나 공주는 보았다. 홀베른으로 가는 지원 병력으로 보이는 그들은 이십만에 육박하는 엄청난 군세였다.
“적이다! 요란 제국이다!”
뿌우웅!
고함과 나팔 소리가 전장을 울렸다.
몬스터들을 물리치고 한숨 놓으려던 케이론의 기사들은 다시 검을 뽑아 들고 밀려오는 적을 긴장한 얼굴로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