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무사-394화 (392/425)

# 394

<귀환무사 394화>

귀환무사 2부

169화

* * *

“끼아아아…….”

창공을 가로지르며 북상하는 와이번의 울음은 언제 들어도 섬뜩함을 안겨 주는 것이다.

블러드 와이번 네 마리는 눈발을 뚫고 참혹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홀베른의 대평원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왕이시여! 인간들이 몬스터 군대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가장 뒤쪽에서 날아가던 크루즈가 칸빌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칸빌의 붉게 타오르는 눈동자가 카르스를 향해 돌아갔다.

“그대만 나를 따르라!”

그의 명령이 떨어지자 크루즈와 폭스를 태운 블러드 와이번이 좌우로 떨어져 나가더니 엄청난 속도로 몬스터와 케이론의 기사들이 싸우고 있는 전장으로 날아갔다.

대번에 까만 점으로 변해 사라져 버린 칸빌과 카르스를 뒤돌아본 폭스와 크루즈의 눈동자가 사악한 빛을 번뜩였다.

“후후후! 모처럼 인간의 피 맛을 보겠군.”

“크흐흐흐! 더욱 강력해진 나의 힘을 보여 주마!”

끼아아아…….

상당히 빠른 시간에 전장까지 도달한 둘은 지상으로 빠르게 내려갔다. 블러드 와이번의 화염이 몬스터와 한데 어우러진 기사들을 향해 쏘아졌다.

콰아아앙!

“으악!”

“꾸어어억!”

난데없는 강력한 화염의 폭발에 인간과 몬스터가 동시에 휩쓸려 날아갔다. 사태를 낙관하고 북쪽으로 달리려고 준비하던 루안과 레이나 공주의 고개가 빠르게 폭발이 일어난 곳으로 돌아갔다.

레이나 공주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저, 저것은……!”

“데스나이트로군.”

루안의 눈동자가 살짝 적색으로 물들었다.

동시에 그의 육신이 블러드 와이번을 향해 날아갔다. 레이나 공주와 헤론 후작도 기사들을 이끌고 다시 전장으로 돌진했다.

루안의 육신이 허공으로 솟구치며 크루즈를 태운 블러드 와이번을 노리고 떨어졌다. 위험을 느꼈을까? 블러드 와이번의 거대한 동체가 요동치며 왼쪽으로 비행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그러나 루안이 워낙 빨랐다.

“감히! 마계의 마물 주제에!”

루안의 분노가 실린 검이 블러드 와이번의 날개를 자르고 지나갔다.

크루즈가 막아 낼 시간조차 없을 정도로 루안의 속도는 상상을 초월한 것이었다. 날개를 잃어버린 블러드 와이번은 구슬픈 비명을 질러 대며 지상으로 추락했다.

쿠웅!

미처 피하지 못한 기사들이 거대한 동체에 깔려 죽어 나갔다.

“강한 인간이 여기 또 있었구나!”

허공에 몸을 둥실 띄운 크루즈의 붉은 눈동자가 가늘게 흔들렸다. 루안도 마찬가지로 허공에 몸을 띄운 상태로 크루즈를 노려보았다.

한편, 폭스를 태운 블러드 와이번은 짧은 시간에 상당한 피해를 케이론에게 안겨 주며 여전히 참혹한 죽음을 생산해 내고 있었다.

퍼퍼퍼펑!

허공에 수많은 불꽃들이 작렬했다.

되돌아온 마법사들이 한꺼번에 집중포화를 퍼부었지만 워낙 빠른 블러드 와이번을 명중시키기란 결코 쉽지 않았다. 오히려 반격에 소중한 자원인 마법사들 몇이 목숨을 잃고 말았다. 레이나 공주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그녀는 루안이 있는 곳을 응시했다.

허공에서 엄청난 격돌이 벌어지고 있었다. 발생되는 빛들로 인해 둘의 육신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마법사들은 궁병들이 발사하는 화살에 마나를 두를 준비를 하세요!”

그녀는 요란 제국의 특기를 이용하기로 마음먹고는 곧장 궁병들에게 빠르게 허공을 선회하는 블러드 와이번의 궤적을 쫓았다.

“놈이 이동하는 앞쪽에 집중포화를 퍼부으세요!”

수천의 궁병들이 화살을 먹이자 마법사들이 양손에 마나를 끌어올리고는 화살이 쏘아지기를 기다렸다.

“지금이에요!”

레이나 공주가 소리치자 수천 발의 마나를 품은 화살들이 허공으로 쏘아졌다.

그녀의 생각은 멋지게 들어맞았다. 어지간한 화살은 와이번의 가죽을 뚫지 못한다. 하지만 마나를 먹은 화살은 차원이 달랐다.

꾸에엑!

온몸에 수천 발의 화살을 고스란히 맞아 버린 블러드 와이번이 지상으로 추락하며 비명을 질러 댔다. 궁병들이 환호성을 질러 댔다. 레이나 공주와 헤론 후작이 마법사들을 이끌고 폭스를 향해 달려갔다.

“저자만 죽이면 홀베른을 도우러 갈 수 있어요! 모두들 힘을 내세요!”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기사들을 내려다보는 폭스의 입가에 섬뜩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붉게 타오르는 눈동자가 가늘게 옆으로 쭉 찢어지며 그의 입에서 악마의 속삭임과도 같은 말이 흘러나왔다.

“크흐흐흐! 오너라! 허약한 인간들이여!”

* * *

대부분의 전쟁은 치고 빠지고 때로는 물러섰다가 다시 공격하며 장기전으로 흐른다. 거의 모든 전력을 한꺼번에 투입해 단판 승부를 벌이는 경우는 결코 국가 간의 전쟁에는 없었다. 그러나 홀베른의 대평원에서 격돌한 홀베른과 요란은 그런 상식을 벗어나고 있었다.

콰아아아…….

측면에서 움직이던 요란의 기마 병단에게 드래곤의 브레스를 연상시키는 엄청난 규모의 화염 공격이 떨어졌다. 밀집대형으로 움직이던 터라 그 피해는 실로 참혹함을 넘어 저주스러울 정도였다.

“크아아…….”

전신이 화염에 휩싸인 수백의 기사들이 고통에 찬 비명을 부르짖었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서 죽어 나간 기사들은 더욱 많았다. 절규하는 그들을 바라보며 거친 숨을 토해 내며 연방 공격을 퍼붓는 가인과 카츄는 요란의 기사들에겐 악마보다 더한 존재로 비쳤다.

“죽엇! 원수들아!”

속성이 화염 계열인 가인의 마법은 살상력이 대단했다.

둘은 오직 밀집 대형으로 움직이는 요란의 부대만을 노렸다. 그래야 한 번 공격에 더욱 효과적인 결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요란의 마법사들은 제대로 공격조차 할 수 없었다. 공격을 하면 그다음은 어김없이 보이지 않는 칼에 의해 목숨을 잃어 가는 걸 수도 없이 보았기 때문이다.

어떤 자들은 죽은 자의 갑주를 벗겨 마법사가 아닌 것처럼 위장을 하기도 했다.

서걱!

핏물이 튀며 또 하나의 마법사가 죽어 갔다.

죽은 자가 섰던 곳에 흑발을 늘어뜨린 흑야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옆에 데얀도 나타났다.

“아직 많이 남았군. 기사로 위장한 놈들이 제법 많으니 마나가 지나치게 강하다고 느껴지면 그냥 죽여라!”

“이미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럼 저는 또 사냥을 하러 갑니다! 하하!”

참혹한 전장에서도 데얀은 여유를 보였다.

흑야는 빠르게 전장을 살폈다. 전황은 마법 공격의 우위를 바탕으로 홀베른이 조금씩 유리하게 이끄는 국면이었다.

“마차로 간다!”

뒤쪽에서 혁련천후의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린 흑야의 눈에 혁련천후와 조윤이 능선으로 몸을 날리는 광경이 잡혔다. 다른 이들은 어둠의 마법사를 상대하느라 전장에서 몸을 뺄 수가 없었다.

흑야도 주저 없이 몸을 날렸다.

따다다당!

그들을 노리고 날아든 화살들은 모조리 호신강기에 부딪혀 튕겨 날아갔다.

혁련천후의 검이 허공에서 그대로 천살강기를 발출했다. 마치 화살처럼 날아간 강기가 마차의 가운데에 솟아 있던 깃발을 그대로 잘라 내며 지나갔다.

우지끈!

잘려진 깃대가 마차의 지붕을 그대로 강타했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들이 올 것이라 예상을 못했던 호휘병들이 마차로 뛰어왔다.

조윤이 그들을 막아섰다. 동시에 흑야의 검이 마차의 측면을 후려쳤다.

꽝!

지이잉…….

엄청난 반탄력에 흑야는 하마터면 대도를 놓칠 뻔했다. 검이 작렬한 곳을 보니 살짝 우그러져 있을 뿐 별다른 흔적은 없었다.

천살강기를 두른 혁련천후의 검이 다시 작렬했다.

콰아앙!

이번엔 달랐다.

마차의 측면에 금이 가며 시커먼 연기 같은 것이 흘러나왔다.

“호흡을 멈춰!”

혁련천후의 짤막한 말에 흑야와 조윤은 호흡을 멈추었다. 그들을 막고자 달려오던 자들이 목을 움켜쥐며 쓰러졌다.

끄으윽!

괴상한 신음을 흘리던 그들은 이내 한 줌 핏물로 화해 사라졌다. 실로 보고도 믿기지 않는 가공할 독성이었다.

“흐흐흐! 정녕 대단한 인간들이구나.”

마차 안에서 사악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마차로 다가온 조윤이 창으로 후려치려는 것을 말린 혁련천후는 눈빛으로 뒤로 물러날 것을 지시하고는 자신도 몇 발 뒤로 물러섰다.

연기는 단순한 독이 아니었다. 점점 많은 양으로 흘러나온 연기들은 마차 주변을 감싸며 돌기 시작하더니 이내 거대한 방어막을 형성했다.

스슥!

누군가가 마차 위에 모습을 드러냈다.

복장은 분명 막스 황제의 그것이었는데 얼굴은 전혀 달랐다. 시커멓게 죽은 피부 탓에 정확한 용모가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모두는 그 얼굴이 눈에 익었다.

“중원이라는 곳에서 넘어온 흑안의 마검사라는 놈들이 네놈들이었군.”

“네가 켈베로슨가?”

“후후! 그분을 미개한 족속들이 감히 입에 담다니…….”

“네놈의 주인을 불러내라!”

“나를 넘어선다면 그분께서 친히 네놈들 앞에 나서실 것이다. 물론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미개한 족속들! 후후후!”

혁련천후의 눈매가 매섭게 돌아갔다.

더 볼 것이 없었다. 무조건 죽이면 그뿐이 아닌가.

치르륵!

천살강기가 더욱 강렬하게 요동쳤다.

“이놈이든, 저놈이든 죽을 놈이 헛소리가 많은 건 다 똑같군!”

혁련천후의 육신이 번쩍 빛을 발하더니 막스 황제의 코앞에 다가가 있었다. 동시에 그의 검이 사납게 돌아갔다.

꽝!

막스 황제가 팔을 들어 혁련천후의 검을 막아 내자 굉음이 터지며 혁련천후의 육신이 뒤로 튕겨 나갔다. 조윤과 흑야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세상에 혁련천후를 튕겨 낼 존재가 있었다니…….

“대단한 놈이었군…….”

혁련천후는 어깨까지 찌르르 울리는 걸 느꼈다.

이런 경우는 그야말로 처음이었다. 더구나 드래곤의 뼈로 만든 검으로도 상대의 옷자락 하나를 베지 못했다.

“후후후! 이 세상에 나를 능가할 자 과연 있을까?”

막스 황제는 조소를 흘렸다.

그러나 그는 결코 막스 황제가 아니었다. 그는 이 정도로 강한 자가 아니다. 그때 조윤이 놀라 소리를 냈다.

“테세우드라는 놈과 닮았습니다! 주공!”

“뭣이?”

흠칫한 혁련천후가 유심히 상대를 살폈다. 과연 그는 테세우드 공작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시커멓게 죽어 버린 피부 탓에 자세히 살피지 않으면 몰라 볼 정도였지만 분명 테세우드 공작이 틀림없었다.

“사술을 부린 모양이군.”

혁련천후는 다시 검에 천살강기를 품고는 다가섰다.

상대가 막스 황제든 테세우드 공작이든 간에 죽여야 하는 것엔 변함이 없는 것이다. 조윤과 흑야도 강기를 품고는 좌우로 느릿하게 돌아갔다.

[놈에게 시간을 끌어선 곤란하다! 켈베로스, 놈을 끌어내야 한다.]

[동시에 달려들겠습니다!]

셋은 눈빛을 주고받았다.

천하를 관조했던 절대자들과 테세우드 공작의 영혼이 합쳐진 막스 황제, 그들 간의 본격적인 대결은 혁련천후의 선공으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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