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2
<귀환무사 392화>
귀환무사 2부
167화
* * *
한 줄기 섬광이 허공을 가르고 요란의 대군을 향해 날아갔다.
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붉은 핏물이 튀었다.
동시에 선두에서 질주해 들어오던 마법사의 육신이 허공으로 붕 뜨더니 사정없이 바닥으로 떨어져 전마들의 말발굽에 짓밟혔다.
퍽! 퍽!
섬광은 이어졌다. 그리고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죽어 가는 마법사들이 여섯에 이르러서야 누군가가 소리쳤다.
“저격수다!”
“마법사들을 보호해라!”
소란이 일며 대열이 흐트러졌다. 흐트러진 대열은 곧장 수습하기 힘든 혼란으로 이어졌다. 주춤한 전마들이 뒤쪽에서 달려드는 동료들에 의해 처참하게 쓰러졌다.
“앞쪽에 적이 있습니다!”
그제야 그들은 평원을 도톰하게 솟아 있는 능선에 진을 치고 있는 진천 등을 발견했다. 죽은 율튼을 대신하여 요란의 마법 병단을 이끄는 케시미르 공작의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졌다. 마법사로서는 최초로 공작의 직위를 받은 그는 검술에도 뛰어난 전형적인 마검사였다.
그가 검을 뽑으며 소리쳤다.
“놈들을 참살하라!”
마법사들이 허공으로 떠오르며 거대한 마나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이 오히려 사공진무에게 좋은 사냥감을 선사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퍽! 퍽!
또다시 두 명의 마법사가 목을 관통당하고 쓰러졌다.
“도대체 어떤 무기란 말이냐? 저 먼 곳에서 이토록 정확하게 목표물을 명중시키다니…….”
“각하! 폐하의 호위대가 돌진을 하고 있습니다!”
케시미르 공작의 고개가 우측으로 돌아갔다.
대군의 가장자리에서 일단의 기마병들이 바람처럼 앞으로 쏘아져 가는 광경이 그의 눈에 잡혔다. 막스 황제가 친히 수련시킨 돌격 부대가 그들이었다.
그는 눈앞의 저격수들이 분했지만 어쩔 수 없이 명령을 내렸다.
“좋다! 우린 저들과 보조를 맞춘다! 이동하라!”
마법사들이 재빨리 돌격해 들어가는 자들을 따라붙었다.
* * *
“흠! 이쯤에서 물러나야겠지?”
진천은 적이 상당히 가까운 거리까지 접근해 오자 마법 병단을 뒤로 물렸다. 동시에 사공진무가 허공으로 뭔가를 던졌다.
펑!
허공에서 폭죽이 터졌다.
그것을 신호로 전차 부대가 섬뜩한 굉음을 울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흐흐흐! 나, 도왕 북궁천소의 무서움을 이 세상 놈들에게 보여 주마!”
선두의 대형 전차에 몸을 실은 북궁천소가 대도를 뽑아 들고 용맹하게 외쳤다.
“돌진한다!”
우아아아!
두두두두두!
그 어떤 전마들보다 육중한 덩치를 자랑하는 전차 부대의 전마들이 폭풍처럼 질주를 시작했다. 동시에 좌우에서 담대소천, 조윤이 이끄는 돌격 부대가 앞으로 튀어 나갔다.
서로 이십만에 육박하는 대군들이 평원의 한가운데서 서로를 향해 달려드는 광경은 참으로 장엄하기까지 했다.
흑야와 케니언 크로우 기사 단원들은 전마를 버리고 경공으로 적을 향해 날아갔다.
그들의 주요임무는 적진으로 뛰어들어 적 수뇌부를 요격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전마보다는 맨몸이 훨씬 편했다.
양측의 거리가 백 미르 정도로 좁혀졌을 때 요란 제국의 앞쪽에 강력한 화염이 연이어 폭발했다. 에이미 공주와 마법 병단의 화염 공격이 한곳에 집중되자 그 위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폭발이 일어난 곳에 떼죽음이 발생했다.
불길에 휩싸인 자들이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쓰러져 갔고 그 위를 전마들이 짓밟고 지나갔다.
화염은 홀베른 왕국의 병력 앞에도 폭발했다.
죽어 나가기는 홀베른도 마찬가지였다. 수에서 압도적으로 많은 요란의 마법 병단은 무차별 공격을 감행했다.
콰과과과광!
연쇄적으로 폭발을 일으키는 화염들은 선두에서 질주해 들어가던 기사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조윤이 어깨에서 창을 내리며 날카롭게 소리쳤다.
“직선으로 돌파한다!”
그 어떤 화염으로도 팔왕을 저지할 순 없었다.
그들을 이미 적진으로 난입을 시작하고 있었다.
콰지지직!
그들이 탄 전마와 부딪힌 적의 기병들이 피를 뿌리며 허공으로 솟구쳤다.
“내가 창왕 조윤이다!”
조윤의 창이 사방을 휩쓸기 시작했다.
걸려드는 모든 것들이 잘려 나가며 흩어졌다. 기사도 전마도 어김없이 두 조각으로 썰어지며 피를 뿌렸다.
담대소천의 청룡언월도는 삽시간에 수백의 사망자를 생산했다. 그 누구보다 파괴적인 그의 도법은 아군조차도 두려움에 떨 정도로 극강의 위력을 발휘했다.
진천과 사공진무도 전마에 몸을 싣고는 이미 적진을 파고들고 있었는데, 사공진무는 그 와중에도 마법사로 보이는 자들만 노려서 죽였다.
그를 노리고 다가들던 적들은 진천이 용서하지 않았다.
각자가 초인을 능가하는 무력에다 드래곤의 뼈로 만들어진 무기를 장착하자 그들은 살아 움직이는 살상 병기, 그 자체였다.
그 어떤 것으로도 그들의 공격을 막아 낼 수가 없었다.
* * *
“저놈들이 진정 인간인가?”
막스 황제는 전장이 내려다보이는 둔덕에서 용맹무쌍하게 자신의 병사들을 쓸어 내는 팔왕을 지켜보며 혀를 내둘렀다.
그들은 거침이 없었다.
한 번 휘두름에 그토록 용맹하게만 보였던 자신의 기사들이 몇 명씩 죽어 나갔다. 특히 이 세상에선 처음 보는 거대한 칼을 든 담대소천은 은은한 두려움이 생겨날 정도였다.
막스 황제가 고함을 질렀다.
“어떻게 저런 놈들이 정보에서 누락된 것이냐?”
“저놈들이 바로 율튼 대마법사와 케논 산맥에서 부딪혔던 놈들입니다! 그때보다 더 강해진 것 같습니다!”
레인이 전장에서 시선을 돌리지 않은 자세로 대답했다. 그는 팔왕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꽉 쥐어진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깨문 입술이 붉은 핏물마저 내비쳤다.
‘팔왕! 이 세상에서까지 우리를 방해하는구나!’
으드득!
막스 황제가 지척에 있었건만 그는 소리 내어 이를 갈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팔왕은 중원에선 적수가 없었던 존재들. 그래서 그들 때문에 자신의 조직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켈베로스의 도움을 받아 이 세상으로 온 것도 자신들만의 세상을 건설하려는 뜻을 이룰 수가 있다는 희망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곳에도 그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 때문에 지금 모든 것이 틀어지려 하고 있었다.
으드득!
‘신마성!’
레인의 부릅떠진 두 눈이 핏빛으로 붉어졌다.
그러나 놀람은 지금부터가 시작이었다.
갑자기 굉음이 능선 너머에서부터 들려왔다. 어찌나 소리가 컸던지 아비규환의 전장이 조용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막스 황제의 옆에 섰던 자가 전장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폐하! 적들이 빠져나갑니다!”
“도주하는 것이냐?”
“그건…….”
전투가 벌어진 지 불과 얼마 되지 않아 홀베른의 기마병들이 전장을 헤집으며 바깥으로 물러가기 시작했다.
“이 굉음은 또 무엇이냐?”
“소신도 모르겠습니다!”
콰르르르르…….
굉음은 점점 더 커져 갔다. 그리고 능선에 깃발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지켜보던 모두의 눈이 부릅떠졌다. 거대한 전차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보는 것만으로도 기가 질려 버릴 정도로 무지막지한 기세가 전차에게서 뿜어졌다.
막스 황제가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
“마주치지 마라! 어서 마주치지 말라고 전하여라! 어서!”
마법사들이 일제히 확성 마법을 통해 소리쳤다.
“적과 마주치지 마라! 뒤쪽으로 물러서라!”
그러나 이미 전차 부대는 요란 제국의 대군을 향해 짓쳐 들고 있었다.
* * *
콰지지직!
“으아아…….”
히히힝!
피와 살이 난무했다.
걸려드는 모든 것들이 갈기갈기 찢기며 날아갔다. 전차의 바퀴에 장착된 거대한 칼날은 전마들의 다리를 썰어 내며 바닥으로 떨어진 기사들의 육신을 무참히도 잘라 냈다.
전차 위에서 북궁천소의 대도가 번뜩였다.
전차로 뛰어들던 적들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죽어 갔다. 혁련소의 검은 지독한 마기를 발산하며 대량 살상을 목적으로 한 공격을 뿜어냈다.
따다당!
요란의 마법사들이 펼친 공격이 혁련소의 갑주를 때렸다. 불꽃이 튀며 머리카락 몇 올이 잘려 바람에 날아갔다.
“감히!”
혁련소의 눈이 매섭게 돌아가며 전차를 그곳으로 틀었다.
그러나 그가 그곳에 이르기 전에 마법사들이 피를 뿌리며 날아갔다. 혁련천후가 그곳에 나타났다.
“조심해야지.”
“옙!”
죽은 자들의 육신에 한 번 더 검강을 퍼부은 그는 이내 전장으로 뛰어들었다.
천살강기는 무적의 최종 병기다.
금강불괴의 육신을 지닌 고수도 걸리면 그대로 두부처럼 잘라진다. 하물며 기사들의 육신을 보호하는 갑주 따위가 천살강기를 막아 낼 순 없었다.
제법 강하다는 천인장 이상 급의 고위 기사들이 낙엽처럼 떨어져 날아갔다. 그는 막을 수 없는 폭풍과도 같이 전장을 휩쓸기 시작했다. 마치 이야기 속에서나 가능할 법한 광경이 전장에서 펼쳐졌다.
능선에서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십만 병력을 이끌고 전장을 지켜보던 룻거 후작은 전신을 차고 오르는 전율을 만끽했다.
“도대체 저분들의 능력은 어디가 끝인가…….”
저런 싸움은 본 적이 없었다.
붉은색 갑주를 걸친 적의 기사들은 고위 기사들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그들이 걸친 갑주에는 최상급 실드가 쳐져 있다.
그런 기사들이 갑주째로 두 조각으로 잘려 날아가고 있었다.
“우와아아!”
능선의 십만 병사들이 우레와 같은 함성을 지른다.
소문으로만 들었던 자신들의 상왕이 가공할 무위를 선보이며 적을 쓸어가자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 치솟았다.
“단장님! 적들이 갈라지고 있습니다! 진정 놀랍습니다!”
부관이 룻거 후작에게 소리쳤다.
과연 요란의 병진이 양쪽으로 갈라지고 있었다. 그 가운데를 무적의 전사들이 광풍처럼 몰아쳤다. 이열종대로 적진을 휩쓰는 전차 부대의 위력은 아군조차도 두려움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전차 부대다!”
“으하하하! 완전히 가지고 노는구나!”
기사들이 환호성이 능선을 진동했다.
“요란이여! 그대들의 종말이 보이는구나! 허허허!”
룻거 후작은 기어코 웃음을 터뜨렸다.
막스 황제는 썰물처럼 좌우로 주르륵 갈라지는 광경을 보고는 분통을 터뜨렸다.
“저런 어리석은 놈들! 레인! 어둠의 마법사들을 이끌고 놈들을 제거하라!”
어쩔 수 없이 그는 켈베로스의 가디언인 어둠의 마법사들과 레인을 전장에 투입시키기로 마음먹었다. 레인이 크로우 기사단을 소집하고는 전마를 전장으로 틀었다. 어둠의 마법사들도 허공을 날아 전장으로 몸을 날렸다.
[막스…….]
[예! 스승님!]
켈베로스의 사악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막스 황제는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저놈들이다! 저놈들이 레인이 온 세상에서 넘어온 놈들이다. 놈들은 이 세상의 강자들과는 차원이 다르니 총력을 기울여 놈들부터 제거해야 한다.]
[레인과 어둠의 마법사들을 보냈습니다! 그들이라면 충분히 놈들을 죽여 없앨 것입니다.]
[어리석은! 그들만 가지고는 어림도 없다! 너도 준비하고 있어라. 기회를 엿보고 틈이 보이면 네 스스로 모든 것을 버리고 그들을 처치해야만 한다.]
막스 황제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왜 그러는 것일까?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것이냐? 막스!]
[아닙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너의 충성은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아이아스의 심장만 얻어 낸다면 네게도 불사의 몸을 선물하겠다.]
그 말을 끝으로 켈베로스의 말은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허리를 편 막스 황제의 얼굴이 돌처럼 굳어져 있었다. 흔들리는 눈동자는 그가 상당한 갈등을 보이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 주었다.
이유가 무엇인지는 오직 그만이 알 뿐이다.
* * *
“으악!”
전차를 몰아가던 기사의 목이 피를 뿌리며 허공으로 날아갔다.
균형을 잃은 전차가 곤두박질치며 주변에 있던 기사들을 쓸고 지나갔다. 북궁천소의 눈이 빠르게 돌아갔다.
전마를 버리고 육탄으로 전장에 뛰어든 적들이 보였다. 그들은 빨랐다. 그리고 강했다. 전장에 들어선다 싶더니 벌써 열기 이상의 전차가 쓰러졌다.
기사들이 검을 휘둘러 막아 보려고 했지만 도저히 상대가 되질 않았다. 북궁천소의 미간에 힘줄이 돋아났다.
“이런 개새끼들!”
북궁천소가 전차를 버리고 전장으로 난입했다.
“숙부!”
그것을 본 혁련소도 전차에서 뛰어내려 전마의 엉덩이를 쳐주고는 북궁천소를 따랐다. 전차 부대의 사나움이 조금씩 수그러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