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1
<귀환무사 391화>
귀환무사 2부
166화
* * *
요란 제국의 황제, 막스는 분노했다.
세 방향으로 움직였다는 첩보를 접하고 출전했던 십만 대군의 절반이 목숨을 잃고 고작 오만이 돌아온 것이다.
참패도 대참패였다.
게다가 주요 인사 중 하나인 루턴 후작까지 돌아오지 못했다. 전사했다는 보고는 없었으나 그가 돌아오지 않은 것만으로도 요란은 상당한 타격을 입은 것이라고 봐야 했다.
비교적 느긋하게 전쟁을 바라보았던 막스는 스스로 전 병력을 이끌고 홀베른으로 출격하기에 이르렀다.
둥! 둥! 둥!
북소리가 천지를 흔들었다.
평원을 새카맣게 물들이고 전진하는 요란 제국의 대병력은 복수의 칼을 갈며 홀베른으로 한 걸음씩 나아갔다. 분노는 했지만 여전히 승리에 자신이 넘쳤던 막스 황제는 스스로 갑주를 갖추어 입고는 마차가 아닌 전마에 몸을 싣고 선두에서 달렸다.
레인은 막스 황제의 옆을 이동했다.
막스 황제가 그에게 물었다.
“홀베른으로 보냈던 아이들에게선 소식이 없느냐?”
“아직은 없습니다만 곧 첩보를 가져올 것입니다.”
“아이아스의 심장을 보관하고 있는 곳에는 분명 가장 강한 놈들이 지키고 있을 것이다. 때가 되면 너와 크로우 기사단이 먼저 놈들에게 혼란을 주어야 할 것이다. 그다음에 어둠의 마법사들이 스승님과 함께 그곳을 칠 것이니 너희들은 전쟁에 참여하지 말고 홀베른으로 숨어 들 기회를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하겠습니다.”
“대단한 놈들임에는 분명하구나. 고작 수천 기로 아군을 그토록 쓸어버릴 수 있다니…….”
“출전했던 기사들이 수에 비해 정예는 아니었으니 너무 마음에 담지 마십시오. 전면전에서 일거에 쓸어버리면 되지 않겠습니까?”
막스 황제는 레인의 그 같은 말에 고개를 끄덕여 수긍했다.
레인이 문득 뭔가를 생각했다는 듯 물었다.
“케이시 대공을 부르시지요. 루턴이 없으면 그분이라도 계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마법사들 보내어 그를 데려오라고 지시했다. 내일쯤이면 짐과 합류할 것이다. 이럴 줄 알았다면 처음부터 데려올 것을…….”
막스 황제는 아쉬움을 드러냈다.
자신의 동생이자 제국의 이인자였던 케이시 공작은 황태자였던 카르스와의 정치적인 싸움에서 밀린 탓에 지금까지 전면에서 멀어져 있었다. 막스 황제도 그를 지금껏 내버려 두었으나 대군을 이끌어야 할 루턴이 행방불명이 되자 어쩔 수 없이 케이시 공작을 사면하고 전장으로 부른 것이다.
케이시 공작은 누가 뭐래도 제국 최고의 전략가이자 군인이었다.
“전쟁에서만 중용하십시오. 그분은 야심이 너무 큽니다.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나면 자칫 폐하께 크나큰 짐이 될 수도 있으니 신중하게 그분을 대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그 점은 짐도 생각하고 있으니 안심하여라. 어리석은, 이럴 때 짐의 옆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꼬…….”
막스 황제는 아들 카르스를 떠올렸다.
그가 이미 죽은 것을 막스 황제는 알고 있었다. 케논 산맥에서 카르스를 보았다는 기사들의 말로 추측해 보면 영혼이 봉인을 당한 데스나이트가 되었음이 분명했다.
레인이 그를 위로했다.
“폐하께서 이토록 강녕하신데 무슨 걱정이십니까? 전쟁이 끝나면 새로운 황자를 생산하시어 그분께 제국을 맡기십시오. 신이 옆에서 충성으로 보필하겠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안정이 되면 너를 대공의 위에 올릴 것이다! 그러니 끝까지 짐에게 충성토록 하여라!”
레인의 어깨를 두들겨 준 막스 황제는 시선을 다시 전방으로 던졌다.
홀베른이 본진을 차렸다고 전해진 곳까지는 아직 하루를 더 이동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는 벌써 승리를 거머쥔 듯 득의만만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아이아스의 심장을 얻고 케이론만 쓸어내면 짐은 명실상부한 대륙의 일인자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천년만년을 이어 갈 위대한 제국을 나, 막스가 세울 것이다. 영원히 쓰러지지 않는 최고 최강의 제국을 말이다.”
막스 황제의 포부가 바람을 타고 홀베른으로 날아갔다.
내리던 눈발이 점점 거세게 변해 갔다.
그럼에도 요란의 대병력은 걸음을 멈추지 않고 홀베른으로의 동진을 계속했다.
* * *
레이나 공주는 친히 갑주를 걸치고 대군을 이끌었다.
홀베른에서 날아온 통신에 의하면 오늘 아침 요란의 주력군이 홀베른으로 대대적인 출진을 했다고 했다. 그래서 그녀는 그들의 배후를 치고자 십오만의 정예를 이끌고 홀베른의 대평원으로 빠르게 달려가고 있었다.
그녀의 옆에는 루안이 함께하고 있었다.
지금껏 홀로 움직였던 그가 함께하리라곤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레이나 공주는 내심 무척 기뻤다. 그가 있고 없고의 차이는 엄청나다.
특히 그녀가 얻는 심적인 안정감은 상당했다. 가끔 루안을 돌아보다가 눈이 마주치면 미소로 화답해 준 그녀는 전마에 박차를 가해 속도를 높였다.
그렇게 반나절을 이동했을 때였다.
척후를 나갔던 기사들이 돌아와 뜻밖의 상황을 알렸다.
“상당한 수의 몬스터들이 이동하고 있습니다! 수가 십만에 육박하는 엄청난 대군입니다!”
레이나 공주는 깜짝 놀라서 블랙 오우거의 존재를 물었으나 다행히 블랙 오우거는 없다고 하자 다소 마음을 놓았다.
루안이 중얼거렸다.
“몬스터가 그 정도로 움직인다면 지난번처럼 마계의 누군가가 또 넘어왔다는 것인데…….”
“어떡하죠? 그들이 이동하는 방향이 우리와 겹쳐요.”
“어쩌긴, 없애고 가야지.”
“수가 너무 많아요.”
“그깟 몬스터 따위는 백만이라도 별것 아니야. 블랙 오우거가 있다면 몰라도…….”
루안은 자신감을 내비쳤다.
레이나 공주도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는 명령을 내렸다.
“좋아요! 몬스터를 먼저 치기로 해요! 각 부대장들에게 전달하세요!”
케이론의 대군들이 속도를 높였다.
그리고 조금이 지나서 몬스터 대군과 맞닥뜨렸다.
* * *
혁련천후는 적이 총공격을 감행해 온다는 보고를 받고는 모든 부대에 평원에 진을 치라는 명령을 내렸다.
모든 부대들이 훈련 때처럼 각자 정해진 위치에 진을 치기 시작했다.
여전히 전차 부대는 숲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들은 적이 평원에 들어섰을 때, 선봉으로 나서 적의 가운데를 휩쓸 예정이었다. 마법 병단을 이끄는 진천과 사공진무는 가장 먼저 능선에 자리 잡고 적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가능한 장거리 공격으로 적의 대열을 최소한이라도 어지럽힐 목적이었다. 물론 가능하면 적의 마법사들을 요격할 생각도 품고 있었다.
그래서 사공진무는 드래곤의 뼈로 만든 암기들을 잔뜩 몸에 지닌 상태였다.
“조금은 긴장되는데…….”
“나도 그렇다. 이건 정말 중원에서도 보기 힘든 대규모 전쟁이잖아.”
“기병의 수로만 놓고 보면 중원도 이 정도는 아니다. 처절한 경험이 될 거다.”
둘은 조금은 긴장한 기색으로 평원의 끝을 바라보았다.
에이미 공주도 그들의 옆에서 바람에 몸을 맡기고 서 있었다. 요란 제국의 기마 병단을 상대로 가공할 살상 능력을 보여 준 그녀를 모든 마법사들은 경외하고 있었다.
홀베른의 마법사들도 그녀가 그 정도로 강력한 줄은 미처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이미 그들은 에이미 공주가 대마법사를 능가하는 존재로 여기고 있었다.
“에이미! 이번에도 제대로 한번 쓸어 봐.”
“쉽지 않을 테죠? 전군이 온다면 분명 그들도 상위 마법사들이 있을 테니까…….”
“후후! 몇 놈은 내가 골로 보내 줄 거다.”
사공진무가 손에 날카롭게 생긴 표창을 들어 보이며 웃었다.
마법사들은 사실 그것을 믿지 못했다. 팔왕 중에서 가장 약해 보이는 이가 바로 사공진무였다. 그리고 지금껏 진법 외에는 별다른 실력을 드러내지 않았던 탓도 있었다.
물론 데얀과 케니언 크로우 기사단은 예외다.
특히 사공진무와 가장 먼저 겨루었던 데얀은 은근히 그를 두려워하기까지 했다.
“온다!”
진천이 나지막이 소리쳤다.
모두의 얼굴이 긴장감으로 물들어갔다. 평원의 끝에서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하는 까만 점들, 그것은 점점 커지고 많아지더니 이내 지평선을 까맣게 물들이고 있었다.
드드드드…….
그들이 서 있는 곳까지 진동이 느껴졌다.
사공진무가 뒤를 돌아보며 적이 왔음을 알렸다. 그러자 숲에서 전차 부대가 위용을 드러내며 나타났다.
크르르르…….
북궁천소와 혁련소가 선두의 전차에 올라타고 있었는데, 평소와는 다르게 갑주를 걸친 모습이다. 그들을 막아선 능선 때문에 적은 능선 위에 있는 마법 병단만을 볼 뿐이다.
혁련천후가 눈빛을 보내자 모든 부대들이 능선을 가운데로 하여 좌우로 포진했다.
측면을 공격할 돌격 부대는 이미 이동지로 떠나고 보이지 않았다. 혁련천후의 옆에 바짝 붙어 있는 카루가의 눈동자가 가늘게 흔들렸다.
뭔가를 다짐하기라도 하듯 앙증맞은 입술을 꼭 깨물었다.
‘난 죽지 않아. 살아서 꼭 중원이라는 곳에 갈 거야.’
카루가는 혁련천후의 팔을 꼭 잡았다.
“두려우냐?”
“응! 조금…….”
“후후! 우린 승리한다. 무조건…….”
능선에 진을 쳤던 마법 병단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에이미의 양손이 하늘로 올라갔고 진천의 육신은 이미 극강의 환술을 품고 있었다.
그리고 사공진무의 낭랑한 외침이 모두의 귓속을 울리며 전쟁은 시작되었다.
“하하! 신마성의 팔왕, 사공진무가 여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