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0
<귀환무사 390화>
귀환무사 2부
165화
* * *
구슬이 둥실 떠올랐다.
열 개 남짓해 보이던 수가 서서히 늘어나면서 햇빛에 반사되어 빛을 뿌려 대기 시작했다. 뒤를 쫓아오는 요란의 기마병들은 미처 그것을 발견하지 못했다.
태양을 마주 보고 질주하는 데다가 다른 곳에 비해 많은 눈이 깔려 있었던 탓에 하얀빛으로 반짝이는 구슬을 발견하기란 쉽지가 않았다.
“아이스 붐!”
마법사의 양손이 앞으로 쭉 뻗어 갔다.
동시에 구슬들이 요란의 기마병들을 향해 빛처럼 빠르게 날아갔다. 동시에 자크의 파이어 볼이 허공에서 화려하게 폭발을 일으켰다.
쾅!
퍼퍼퍼퍼퍽!
하얗게 빛나던 구슬들이 시뻘건 불꽃으로 바뀌어 사정없이 전마와 기사들의 육신을 꿰뚫었다. 갑주가 있는 곳은 튕겨 나갔지만 얼굴이나 허벅지 같은 곳은 어김없이 피가 솟구쳤다.
따다다당!
검을 휘둘러 날아드는 구슬들을 막아 낸 캘로그 후작은 악에 받힌 고함을 질러 댔다.
“조금만 더 달리면 따라잡는다! 속도를 늦추지 마라!”
이십 미르!
캘로그 후작의 검이 오러를 두르기 시작했다. 그는 상당한 피해를 준 기사들을 죽일 듯 노려보았다. 그들이 기사로 변장한 마법사임을 진즉에 간파하고 있었다.
“죽여 주마! 으드득!”
수백에 가까운 기사들이 둘의 마법 공격에 당했다.
전마의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해 나간 기사들까지 합치면 이천에 가까운 기사들이 전투력을 상실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고작 둘에 의한 것이라고 보기엔 상당한 피해였다.
* * *
“후작! 산개합시다! 이대로 가면 모두 당할 수밖에 없소!”
자크의 말에 드송크 후작은 이를 악물었다.
거리가 거의 잡힐 지경까지 좁혀 든 상태였다. 둘의 마법 공격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게다가 둘은 이미 마나의 소모가 극심한 상태라 더 이상의 공격도 힘들어 보였다.
소수라도 살려면 산개해서 도주해야 한다.
“홀베른의 잡종들!”
적장의 고함이 바로 등 뒤에서 들려왔다.
드송크 후작은 어쩔 수 없이 산개하기를 결심했다. 모두를 다 죽일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었다.
그가 입을 벌려 산개를 명하려고 할 때였다.
그들의 머리 위로 강력한 파이어 볼이 요란한 굉음을 내며 지나갔다. 자크가 펼쳤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그것은 곧장 요란의 기마병들 전방에서 폭발했다.
콰앙!
“으악!”
히히힝!
전마와 기사들이 하늘로 솟구치며 날아갔다.
“아군이다! 아군이 왔다!”
“공주님이시다! 공주마마께서 오셨다!”
드송크 후작은 놀란 눈으로 전방을 바라보았다. 순간 그의 얼굴이 햇살처럼 밝아졌다. 능선을 타고 폭풍처럼 질주해 들어오는 기마병들. 선두에 사납기가 세상에서 으뜸이라는 북궁천소가 보였고 눈부신 은발을 휘날리는 혁련소도 있었다.
그리고 양손에 마나를 두르고 질풍처럼 달려오는 에이미 공주와 연소민도 보였다.
“좌우로 선회하며 적들을 맞이하라!”
드송크 후작의 입에서 다른 명령이 떨어졌다.
기사들이 두 부대로 나뉘어 좌우로 방향을 틀어가며 생긴 공간으로 북궁천소가 이끄는 이천의 기마병들이 짓쳐 들었다.
“후후! 새로 얻은 대도가 사람에겐 어느 정도로 먹히는지 궁금했었다.”
북궁천소의 대도가 태양에 반사되어 섬뜩한 빛을 뿌렸다.
* * *
“각하! 적의 구원병입니다! 엄청난 마법사도 끼어 있습니다!”
부관의 다급한 외침에 캘로그 후작은 목청껏 외쳤다.
“수는 압도적으로 우리가 우세하다! 그대로 쓸고 지나간다!”
캘로그 후작은 수를 믿었다.
적병은 두 부대를 합쳐 어림잡아도 일만이 안 되어 보였다. 그러나 자신들은 삼만, 적에게 강력한 마법사가 있다고 해도 승산은 충분했다.
“모두 우회하여 적을 에워싼다!”
홀베른의 쫓기던 기병들이 좌우로 돌아서 말 머리를 자신들에게로 돌리자 캘로그 후작은 대열을 횡렬로 바꿀 것을 지시했다.
삼만에 달하는 대병력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매우 신속하게 대열을 바꾸었다. 그러나 미처 우회하지 못한 기마병들에게로 북궁천소와 이천의 기병들이 돌진해 들었다.
콰지지직!
전마와 전마가 그대로 육탄으로 충동하며 피와 비명이 난무했다. 떨어져 나간 전마들은 모조리 요란의 것들이었다.
홀베른의 선두에는 북궁천소와 혁련소 같은 무지막지한 고수들이 포진해 있었다. 그들이 발산한 강력한 호신강기는 철갑으로 무장한 전마라도 감히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으악!”
“요란의 개들을 쓸어라!”
측면이 허무하게 돌파를 당하자 캘로그 후작의 눈이 불을 뿜었다.
“저놈들! 새롭게 나타난 저놈들을 집중 공격하라!”
방향을 튼 기마들이 질풍처럼 북궁천소 등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숙부! 저놈이 수장이네요. 놈은 제가 잡습니다!”
“쩝! 그래라.”
수만 기병이 지축을 흔들며 달려들고 있었지만 그들은 전혀 긴장조차 하지 않았다. 아리안으로 살아갈 때의 갑주를 걸친 연소민은 혁련소의 옆을 바짝 붙어서 움직였다.
지난날과는 비교 불가의 경지에 접어든 그녀는 벌써 상당수의 적을 쓰러뜨리고 있었다.
“에이미! 놈들에게 혼란을 좀 줘 봐!”
혁련소의 말에 에이미 공주는 양팔을 다시 허공으로 들어 올렸다.
어쩌면 지금 요란의 기마병들에게 가장 무서운 존재는 그녀일 수도 있었다. 대량 살상이 가능한 마법 공격이 그녀에겐 무척 많았다.
하지만 그녀는 가급적 대량 살상용 마법은 자제하고 있었다. 심성이 너무 착한 탓이다.
“봐줄 것 없다! 놈들을 죽이지 않으면 홀베른의 백성들이 죽는다.”
북궁천소의 말에 에이미 공주는 입술을 깨물었다.
치르르르…….
그녀의 양손이 뇌전 같은 움직임을 보이는 빛으로 둘러졌다.
“모두 물러서라! 접근하지 마라!”
혁련소의 외침에 적에게 달려들던 기마들이 재빨리 방향을 틀어 좌우로 빠져나갔다. 그에 맞추어 에이미 공주의 손에서 강렬한 빛의 번쩍임이 보였다.
“신이시여! 용서하소서!”
쩌저저저정!
평원이 굉음으로 인해 순간적으로 아무런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그것은 아주 짧은 순간에 불과했다. 모두는 잠시 시간이 멈춘 듯한 착각에 빠졌다.
캘로그 후작은 엄청난 빛이 자신들을 향해 날아오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세상이 백색의 빛으로 둘러지는 기묘한 광경도 보았다.
살기로 가득했던 그의 얼굴이 멍하니 변해 갔다.
“……종말인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린 그는 더 이상 아무것도 듣지도 보지도 못하게 되었다.
* * *
초원을 가득 덮은 천막들 위로 화려한 깃발들이 바람에 나부꼈다.
전마들을 풀어 놓은 곳에는 각양각색의 마갑을 두른 전마들이 당장에라도 뛰쳐나갈 듯 포효하고 있었고 초원의 한곳에서 훈련을 하는 기사들은 힘이 넘쳐 났다.
“대단하군요. 역시 제국은 그냥 제국이 아닌가 봅니다.”
“정예란 정예는 모조리 끌고 온 모양입니다.”
진천과 사공진무가 혀를 내둘렀다.
그들은 지금 초원의 우측에 자리한 낮은 산의 꼭대기에서 요란의 본진을 내려다보며 서 있었다. 혁련천후의 시선은 오직 한 곳을 향하고 있었다.
진영의 가장 중앙에 거대하게 솟아올라 있는 구조물, 그곳의 지붕엔 요란을 상징하는 깃발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는데 한눈에 봐도 그곳이 황제가 기거하는 곳임을 알 수 있었다.
‘저곳에 켈베로스라는 놈이 있겠군.’
가슴속 깊숙한 곳에서 묘한 흥분이 생겨났다.
중원에서도 겪어 보지 못했던 강적에 대한 호기심과 조금의 긴장감은 모처럼 그를 광포했던 지난날의 모습으로 돌아가게 만들고 있었다.
“놈이 과연 어떤 모습으로 등장할지 무척 궁금합니다.”
진천이 역시 같은 곳을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사실 모두에게 가장 궁금한 존재는 단연 켈베로스였다. 그를 넘어서야만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다. 승리를 확신하고는 있었지만 미지의 존재에 대한 긴장감은 어쩔 수 없었다.
“놈이 트로이안의 심장을 지니고 왔다면 우리도 아이아스의 심장을 직접 지니고 출전했다는 것을 놈들에게 흘려야 한다.”
“놈이 왕궁으로 난입하는 것을 염려하십니까?”
“백성들이 피해를 보는 경우는 없어야 한다.”
그랬다.
켈베로스는 아이아스의 심장이 있는 곳을 왕궁으로 알고 있을 것이다. 전쟁에서 여의치 않을 경우 분명 왕궁으로 난입하려고 들 게 분명했다.
그에겐 오직 그것이 목적이니까.
“놈과 나의 정면 대결로 이끌 것이다. 무조건 둘 중 하나는 세상에서 사라져야 끝나는 싸움이 되겠지.”
혁련천후의 눈이 강렬한 빛으로 이글거렸다.
우르릉…….
다시 하늘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이 세상은 눈이 내리기 전에도 뇌전이 몰아친다. 몰아친 뇌전의 여운이 미처 사라지기도 전에 하늘은 하얀 눈발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
* * *
드드드드…….
케논 산맥의 옹고르 분화구가 강력한 진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수천 년 전에 폭발했던 화산이 다시 폭발을 일으키기라도 하려는 것일까? 진동은 점점 주변으로 퍼져 나가며 더욱 강력하게 변해 갔다.
쩌저적!
암벽들이 진동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져 내렸다. 언제 모여들었을까? 사라졌던 몬스터들이 옹고르 분화구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모두가 광기에 사로잡힌 모습으로 하늘을 향해 괴성을 질러 댔다. 암벽이 무너져 깔려 죽는 몬스터들도 속출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자리를 피하는 몬스터는 없었다.
인간과의 전쟁으로 수십만이 죽었음에도 그들은 여전히 엄청난 수를 자랑했다. 대체 무엇 때문에 이들이 다시 모인 것일까?
크르르…….
끼아악…….
허공을 선회하는 와이번들이 마치 무엇인가가 다가왔음을 알리듯 쉬지 않고 울부짖었다.
쩌저저적!
다시 암벽 하나가 무너져 내리며 자욱한 먼지를 피워 냈다. 그리고 자욱한 먼지 속에서 번쩍 하는 빛이 보였다.
몬스터들이 더욱 광기를 보이기 시작했다. 모든 몬스터들이 빛이 번쩍인 곳으로 몰려들었다. 오우거에 밟혀 죽는 고블린들이 속출했고 서로 빨리 다가가려고 동족을 죽이는 참상도 벌어졌다.
번쩍!
다시 한 번 빛이 번쩍였다.
그리고 희미한 그림자가 그곳에 나타났다. 처음엔 하나였던 것이 둘, 셋, 넷까지 늘어나더니 몬스터들 앞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후후후! 오랜만에 다시 돌아왔군.”
허공을 웅웅거리는 굵직한 목소리가 옹고르 분화구 전체를 울렸다.
핏빛처럼 붉은 갑주를 걸친 그들은 자신들을 향해 광기를 드러내는 몬스터들을 보면서 사악하게 웃었다.
“암흑의 왕이시여! 저곳에서 켈베로스, 놈의 기운이 느껴집니다.”
누군가가 북쪽을 가리키며 섬뜩하게 눈을 빛냈다.
놀랍게도 그는 황태자 카르스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옆은 폭스 후작과 크루즈 백작이 더욱 사악해진 모습으로 서 있었다.
그렇다면?
“후후후! 나 칸빌이 궁극의 힘을 얻어 돌아왔도다. 켈베로스를 죽이고 그 인간 놈들마저 죽인 다음 이 세상을 너희들에게 나누어 주겠노라!”
역시 칸빌이었다.
그는 지난날과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을 하고 있었다. 체격도 보통의 사람과 비슷했고 뿔과 꼬리도 보이지 않았다.
“왕이시여! 마계의 왕자가 인간들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놈도 반드시 소멸시켜야 합니다.”
“당연하지. 하지만 놈은 아직 나의 적수가 되지 못할 터, 켈베로스와 그 인간들부터 소멸시킬 것이다. 아이들을 이끌고 북쪽으로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