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9
<귀환무사 389화>
귀환무사 2부
164화
그들이 출발한 뒤, 반나절 간격을 두고 룻거 후작이 전 병력을 몰고 평원의 끝부분에 본진을 차리기로 이미 약조되어 있었다.
두두두두…….
그들이 일으킨 눈가루가 폭설이 내리듯 하늘을 덮었다.
성곽 위에서는 수많은 백성들이 그들에게 열렬히 손을 흔들며 배웅했다. 백성들의 동요를 막기 위해 본토에 남기로 한 홀베른 국왕도 첨탑에서 경건하게 허리를 숙여 혁련천후를 배웅했다.
“홀베른 만세!”
“제국의 콧대를 밟아 주십시오!”
“무사히 돌아오세요!”
백성들은 저마다 목청을 높였다.
모든 이들의 배웅을 받으며 일만의 전사들은 빠르게 평원의 저편으로 사라져 갔다.
한편, 요란 제국의 본진에서도 십만에 달하는 대군이 각각 세 방향으로 나뉘어 출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황제 막스는 본진에 앉아 출전하는 자들에게 손을 들어 화답했다.
“일단은 세 방향에서 몰려오는 놈들을 먼저 쓸어버리고 곧장 왕궁으로 향할 것이다! 가서 제국의 위대함을 놈들에게 보여 주고 오너라!”
우와!
십만 대군이 함성을 지르자 천지가 진동했다.
출전을 하지 않는 레인은 막스 황제의 뒤에 시립한 채, 중앙군 삼만을 이끌고 나서는 루턴 후작을 바라보았다.
[무조건 살아서 돌아오게!]
[적장의 목을 들고 오겠습니다!]
루턴의 눈빛이 매섭게 빛났다.
막스 황제의 황제검이 하늘로 올라가자 대군은 눈가루를 일으키며 삼면으로 질주를 시작했다.
* * *
평원의 우측을 가로질러 적, 본진의 좌측으로 출전한 홀베른의 마스터 드송크 후작은 오천 기병과 함께 속도를 줄여가며 북진했다.
“우리는 적의 시야를 흐릴 목적으로 출전을 한 것이니 적의 기병과 마주치면 곧장 후방으로 후퇴해라! 어리석은 만용으로 작전을 방해하는 자는 엄히 다스릴 것이다!”
“예!”
그랬다.
그들은 일종의 미끼였다. 적에게 흘린 정보를 사실로 믿게 만들려고 출전한 그들은 서두를 필요가 없었다. 기사들로 변장하여 섞여 있는 마법사들이 적의 출현을 발견하기만 하면 곧장 말 머리를 돌려 왕궁으로 돌아가면 그뿐이다.
물론 적이 자신들을 발견했을 때, 후퇴해야 한다. 그래야 믿으니까.
드송크 후작은 다시 명령을 이어 갔다.
“적이 계속 추격하면 왕궁이 아닌 상왕 전하가 계신 곳으로 유인할 것이다. 모두들 머리에 작전을 새겨 넣고 유사시에 추호의 당황함도 보여선 안 될 것이다!”
예!
기사들의 대답 소리는 꽤 우렁찼다.
“대형을 횡렬로 바꾸어 이동한다!”
“대형을 횡렬로 바꾼다!”
기사들이 익숙하게 진형을 종렬에서 횡렬로 바꾸었다.
넓은 평원이라 유사시 더 높은 속도를 낼 수 있기 위함이었다. 쏟아지던 눈과 우박은 이미 아침나절에 멈추었다.
다만 쌓인 눈 때문에 그들이 이동한 흔적은 고스란히 평원에 남았다.
“자작님! 왜 적에게 발견되면 싸우지 않고 후퇴해야 합니까?”
기사 하나가 물었다.
“작전이니 그리 알아라!”
기사들은 작전을 모르고 있었다.
만약의 상황을 감안하여 평기사들에겐 비밀로 한 것이다. 만약의 상황이란 추격전을 펼치는 와중에 낙마나 불의의 사고로 인해 포로가 되는 경우인데 그로 인해 작전이 누설될 것을 꺼린 것이다.
드송크 자작의 좌우에는 다소 갑주가 어색해 보이는 기사들이 있었는데 드송크 자작도 그들에겐 공경한 자세를 취했다.
바로 기사로 분장한 마법사들이었다.
그들은 장거리 탐지 능력이 뛰어난 마법사들이다. 그들이 적을 빨리 발견하고 못하고의 차이에서 위험의 정도가 결정된다. 적보다 먼저 발견하면 적당히 모습을 비쳐주고 곧장 도주하면 별다른 위험은 없다.
“전마에게 건 라이트 마법에 이상이 없는지를 세밀히 살펴야 한다!”
마법사는 기사들에게 주의를 주고는 앞서 전마를 몰아갔다.
빠르게 둔덕으로 올라 선 마법사들은 캐스팅을 하고는 시계를 넓혔다.
“아직 보이지 않는군. 설마 놈들이 눈치를 챈 것은 아니겠지?”
“그분들이 보통 분들인가. 분명 놈들도 세 방향으로 나뉘어 출전을 했을 것이네. 다만 병력이 어느 정도인가가 문제겠지.”
그때, 마법사 하나가 고개를 갸웃했다.
지평선 너머에서 눈가루가 일어나는 것이 희미하게 보였다.
“놈들이군. 저 정도 최소 수만 명은 되겠어. 작정을 하고 나선 모양이네.”
“놈들이 우리를 발견하기 쉽게끔 둔덕을 넘어서 적당히 움직여 주는 게 좋겠군. 가세나!”
둘은 재빨리 기사들에게로 돌아와 적의 출현을 알렸다.
“둔덕을 넘어간다!”
드송크 후작의 명령에 모두는 빠르게 둔덕을 넘어 평지대로 들어섰다.
일부러 전마들을 좌우로 움직여 눈가루를 자욱하게 날게끔 만들었다. 병력의 수를 많아 보이게 하고는 재빨리 돌아갈 심산이었다.
“적의 척후병입니다!”
누군가가 소리쳤다.
과연 전방에 몇 기의 기마병이 달려오고 있었다. 그들도 이쪽을 발견한 듯 전마를 세우고는 한동안 유심히 쳐다보았다.
“눈가루를 더욱 많이 일으켜라!”
전마들이 더욱 바삐 움직였다.
하지만 마침 바람이 뚝 멈추는 바람에 눈가루가 좀처럼 날리지 않았다. 적의 척후병들이 말 머리를 돌려 돌아가는 것이 보였다.
기사들이 긴장한 얼굴로 드송크 후작을 응시했다.
“눈으로 볼 수 있는 거리에 들어오면 그때 후퇴한다! 모두들 단단히 준비하고 있어라!”
마법사들은 다시 조금 앞으로 나서서 적의 움직임을 관찰했다.
잠시 후, 마법사가 목청을 높였다.
“돌아간다!”
“말 머리를 돌려라! 왕궁으로 돌아간다!”
오천의 기마병들이 일제히 말 머리를 돌려 도주를 시작했다. 마법사들은 품속에서 새를 꺼내더니 어디론가 날려 보내고는 기사들의 뒤를 따랐다.
* * *
요란의 좌군을 맡은 캘로그 후작은 목청껏 소리쳤다.
“추격해라! 단 한 놈도 남기지 말고 섬멸하라!”
두두두두…….
삼만 기병이 바람처럼 달렸다.
선두에서 질주하는 상위 귀족들의 전마들이 조금씩 앞서기 시작하더니 일천 기 정도의 전마가 상당한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대부분이 엄청난 가격의 마갑을 입힌 탓이다.
최상급 마갑에는 상위 서클의 마법사들이 걸어 놓은 라이트 마법이 처져 있다. 덕분에 그들은 훨씬 빠른 속도로 홀베른의 기마병들을 추격해 들어갔다.
“쥐새끼들! 모든 작전이 드러났음을 모르고 허둥대는 꼴이라니! 모조리 쓸어 주마! 이랴하!”
캘로그 후작은 전마에 박차를 가했다.
거리가 점점 좁혀 들기 시작했다.
도주하던 드송크 후작은 생각 이상으로 요란 제국의 기마병들이 빠른 속도로 따라붙자 내심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힐끗 뒤를 돌아보니 벌써 오백 미르 거리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이대로 가면 곧 따라잡히고 말 것이다.’
그때 마법사들이 말위에서 거꾸로 돌아앉았다.
대단한 기마술을 그들이 보여 주었다.
“어서 쫓아와 보아라! 이놈들!”
치르륵!
둘의 양손이 마나를 품었다.
사정거리에 들면 그대로 화염 계열의 장거리 공격을 펼칠 심산이었다. 다행히 추격해 오는 적군에는 마법사들이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적들은 갑주를 믿거나 뛰어난 고수들이 오러를 뿜어서 막아야만 한다. 달리는 와중에 그러기란 결코 쉽지 않은 것이다.
“속도를 높여라!”
드송크 후작은 목청껏 소리쳤다.
그는 일부러 가장 뒤쪽에서 마법사들과 함께 속도를 맞추었다.
“제크! 놈들의 앞쪽에 한 방 먹이게!”
“알았네!”
제크라 불린 마법사의 손이 허공으로 올라가더니 곧장 매섭게 앞으로 뻗어 갔다. 그의 손에서 발출된 화염은 점점 더 크게 확산되더니 십오 미르에 달하는 넓이를 막아서며 바닥에 화염을 일으켰다.
콰과광!
놀란 일부 전마들이 휘청거리는 바람에 기사들 몇이 중심을 잃고 땅으로 곤두박질쳤다. 뒤이어 달려온 전마들에 의해 참혹한 죽음은 당연한 것이었다.
캘로그 후작이 이를 갈며 소리쳤다.
“속도를 줄이려는 심산이다! 속도를 늦추지 마라! 떨어지는 자들을 피하지 말고 곧장 직선으로 달려라!”
참으로 악독한 명령이 떨어졌다.
화염은 계속해서 그들의 진로를 방해하며 떨어졌다. 죽어 가는 자들이 속출했다. 그러나 결코 속도를 늦추지는 않았다.
“악독한 놈들!”
드송크 후작은 적의 악독함에 치를 떨었다.
덕분에 속도를 줄여 보겠다는 작전이 소용이 없어졌다. 오히려 독기에 받힌 그들은 더욱 빠르게 쫓아오는 듯 보였다.
마법사들의 얼굴에 초조함이 어린다.
“후작! 아무래도 상왕 전하께서 이동하시는 곳으로 가야겠소!”
“동쪽으로 선회하라! 동쪽으로 선회하라!”
드송크 후작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명령을 내렸다.
“파이어!”
자크의 손이 또다시 화염을 쏟아 냈다.
쾅!
“우악!”
이번엔 제법 많은 자들이 떨어져 나갔다.
갑작스럽게 방향을 트는 와중에 제대로 공격이 들어간 탓이다. 지금껏 공격을 하지 않던 다른 마법사가 품속에서 뭔가를 꺼냈다.
아주 작은 유리알을 듬뿍 쥔 그는 적의 기마병들이 가까이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거리는 오십 미르 정도로 무척 가깝게 좁혀진 상태였다. 이 정도면 전마가 조금이라도 삐끗하면 그대로 공격 사정권에 접어드는 거리였다.
“자크! 내가 공격하면 넌, 놈들의 머리 위에 파이어 볼을 터뜨려라!”
“알겠소!”
현재로서는 드송크 후작의 부대를 보호할 존재들은 둘뿐이었다.
* * *
일만의 최정예를 이끌고 이동 중이던 혁련천후의 부대에서 각기 세 방향으로 떨어져 나가는 기사들이 보였다.
조윤과 흑야가 이천을 이끌고 북쪽으로, 담대소천과 왕전이 2천을 이끌고 서쪽으로, 북궁천소와 혁련소가 역시 이천을 이끌고 둘을 가운데 방향으로 바람처럼 질주하며 사라져 갔다.
적을 교란하려고 출전했던 세 부대가 동시에 전령을 보내온 것이다.
진천이 혁련천후를 보며 말했다.
“하루 거리에 놈들의 본진이 있습니다. 이쯤에서 돌아가시는 게 좋겠습니다. 지금쯤이면 룻거가 전 병력을 이끌고 평원에 본진을 꾸려 놓았을 겁니다!”
혁련천후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은 시간이 있다. 주변 지형을 세밀히 살펴보도록 해.”
“지형이라야 평지뿐입니다. 전차 부대를 활용하기에 딱 좋은 곳이긴 합니다만 본진과 너무 먼 곳이라…….”
“기동력이 느린 전차 부대는 본진과 가까운 곳에서만 활용해야 한다. 이곳은 기병으로 유격 전술만 펼치는 게 좋겠지. 진천! 진무!”
둘이 빠르게 다가왔다.
“나와 놈들의 본진이 꾸려진 곳을 가 봐야겠다.”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그냥 슬쩍 살펴보고 돌아오는 거니 괜찮아.”
“저들은 본진으로 돌려보냅니까?”
사공진무가 데얀을 비롯한 사천 기병을 가리켰다. 혁련천후가 갑자기 말을 몰아 그들 앞으로 달려갔다.
잠시 후, 혁련천후가 다시 돌아왔다.
그런데 혼자가 아니라 아리엘이 함께하고 있었다.
“출발하지!”
진천과 사공진무가 멀뚱한 표정으로 아리엘을 쳐다보았다.
“제가 지켜 줄게요!”
싱긋 웃는 그녀를 둘은 황당한 표정으로 응시했다. 먼저 앞으로 치고 나가는 아리엘을 가리키며 사공진무가 말했다.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돌려보낼 재주가 있으면 제발 그렇게 해 봐.”
“……없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