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7
<귀환무사 387화>
귀환무사 2부
162화
연소민은 빠르게 좌측으로 몸을 날렸다.
아쉬움에 입맛을 다신 혁련소는 하얗게 변해 가는 평원으로 날카로운 시선을 던졌다. 마침 바람까지 불어 대자 시야는 훨씬 흐려졌다.
“분명 다른 놈들을 보낼 텐데…….”
연소민이 간 곳을 슬쩍 쳐다본 혁련소는 다른 곳을 살폈다.
숲의 총 너비는 오백 미르에 달한다. 좌우측 가장 끝 부분엔 마법사 요란과 우드가 은신하고 있다. 그리고 이십 미르 간격으로 기존, 홀베른의 마법사들과 에이미 공주 등이 철통같은 경계망을 형성하고 있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진천이 이곳저곳을 오가며 모든 상황을 살피는 중이다.
숲 말고는 홀베른으로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은 하늘을 날아가는 것뿐이다. 따라서 이곳 숲은 양측에 있어 가장 중요한 지점일 수밖에 없었다.
다만 요란 측이 그것을 아직 모르고 있을 뿐이다.
휘이잉!
후두두둑!
우박이 떨어지는 소리는 기척을 감지하는 걸 방해했다. 덕분에 시력에 의존해야만 하는 모두는 눈에 잔뜩 힘을 주고서 요란의 병력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렸다.
누군가 혁련소의 어깨를 툭 쳤다.
“어째 떨어졌냐?”
진천이었다.
“공무 중 아닙니까.”
“공무? 공무를 아는 놈이 지금껏 착 달라붙어 있었냐?”
“부럽습니까?”
“쩝! 그래. 부럽다.”
둘의 농담은 잠시 후 중단되었다. 진천이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번쩍 빛을 발했다.
“후후! 역시 이번엔 정찰 병력만 왔군.”
“어딥니까?”
혁련소의 눈에는 아직 잡히지 않았다. 진천이 손을 들어 전방을 가리켰다. 혁련소는 눈에 내공을 끌어올려 진천이 가리킨 곳으로 시선을 던졌다.
눈발과 어우러져 뭔가 희끗한 것이 보였다. 그리고 조금 더 지나자 확연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달랑 다섯뿐이군요.”
“기마 병단의 소식이 궁금했겠지. 이거, 의외로 막스라는 놈이 차분한 모양이군. 곧장 대군을 몰아쳐서 올 줄 알았는데.”
“잡아야죠.”
“신중하게 움직여야 한다. 한 놈이라도 놓치면 낭패니까.”
진천의 눈동자에 살짝 금광이 어렸다.
환술이 펼쳐진 것이다. 그것을 펼치면 평소의 수배에 달하는 시력과 맞먹는 시야를 얻는다. 진천의 입가가 슬쩍 올라갔다.
“마스터급 기사 한 놈에 마법사가 넷이군. 소! 네가 저 마스터를 맡아라. 마법사는 나와 에이미, 소민이 맡겠다.”
“사로잡을까요?”
“가능하다면……!”
둘은 적이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이미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은밀한 방법으로 모두에게 소식을 전해 놓은 상태였다.
요란의 마법사들은 상당한 속도로 숲을 향해 질주해 오고 있었다. 내리는 눈 때문에 경계망이 흐려졌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그들이 숲 가까이 다가왔을 때, 진천과 혁련소가 벼락같이 그들을 덮쳤다.
“환영한다! 하하하!”
파츠츠츠!
진천의 양손이 괴상한 기류를 뿜어냈다.
마치 얼음이 얇게 펼쳐진 모습과도 같은 그것은 상당한 속도로 마법사들을 향해 날아갔다. 동시에 마법사들의 뒤쪽으로 상당수의 인물들이 퇴로를 차단하며 떨어져 내렸다.
깡!
혁련소와 기사의 검이 허공에서 정통으로 부딪혔다. 묵직한 신음성과 함께 기사의 육신이 주르륵 뒤쪽으로 밀려났다.
“대항하면 죽는다!”
혁련소는 차갑게 일갈하고는 다시 기사를 덮쳤다. 그는 일부러 기사가 막을 수 있을 정도의 속도로 공격했다. 검과 검끼리 부딪혀 내상만을 입힌 다음에 사로잡기 위함이었다.
반면에 마법사들은 생각보다 강한 자들이 온 것 같았다.
주변이 대낮처럼 환하게 밝아지며 마법 공격이 난무했다.
“후퇴하라!”
“누구 마음대로!”
펑! 펑!
“어딜 가느냐!”
에이미 공주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울리며 마법사들의 퇴로 방향에 그녀가 나타났다. 이미 전신을 빛으로 두른 그녀는 양손에 유선형 빛 덩어리를 쥐고는 당장에라도 발출할 자세를 취했다.
그녀를 본 마법사들이 두 눈을 부릅떴다.
마법사는 마법사를 알아본다. 눈으로 보이는 마나의 움직임만으로도 서로의 우열을 감지할 수 있다. 그들의 눈에 비친 에이미 공주의 강력함은 대마법사에 못지않을 정도였다. 엄청난 거리까지 뻗친 마나의 반사광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순순히 무릎을 꿇어라! 그러면 소중한 목숨은 건질 수 있을 것이다!”
에이미 공주의 서릿발처럼 매서운 호통에 요란의 마법사들은 전의를 상실했다.
그들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고는 스스로 무릎을 꿇었다. 요란이 재빨리 달려들어 그들을 마나로 묶었다.
진천이 히죽 웃는다.
“이것들이 나보다 쟤를 더 무서워하네? 어디, 내가 얼마나 무서운지 보여 줘?”
“호호! 설마요.”
깡! 깡! 깡!
혁련소를 맞은 기사는 여전히 대항했다.
주변이 모두 적이었지만 기사는 용맹했다. 그게 기사와 마법사들의 차이점이었다. 마법사들은 개인을 무척 소중하게 여긴다. 전쟁에서 패하고 항복을 하더라도 죽지 않고 오히려 중용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워낙 마법사를 귀하게 여기는 대륙의 풍토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수세에 몰리면 항복을 주저하지 않는다.
하지만 기사들은 다르다. 특히 마스터급에 이른 강자들은 더더욱 그렇다. 평생을 무인으로 살아온 그들은 항복은 죽음보다 더한 수치라고 여긴다.
그것은 차원을 떠나 모든 무인들의 공통점이기도 했다.
“힘들면 그냥 죽여!”
진천이 소리쳤다.
“하하! 꽤 질긴 친굽니다!”
혁련소는 여유가 넘쳤다. 여전히 그는 적당한 속도와 힘을 실어 기사를 몰아쳤다. 아니었다면 벌써 싸늘하게 식었을 기사다.
아무리 여유가 넘쳐도 지켜보는 연소민은 불안했다. 그녀는 혹시나 사랑하는 사람이 실수라도 하지 않을까 싶어서 마음이 불안했다.
혁련소의 낭랑한 목청이 주변을 울렸다.
“미련하게 목숨을 버릴 테냐? 홀베른은 요란과 다르다! 케이론과도 다르다! 항복하는 것이 명예를 더럽히는 것만은 아니다! 그러니 검을 버려라!”
“닥쳐라!”
기사는 여전했다.
검을 두른 오러가 더욱 사납게 요동쳤다.
“스스로 목숨을 끊어라! 마법사들이여!”
기사는 무릎을 꿇은 마법사들에게 소리쳤다. 그러나 마법사들은 시선을 돌려 그를 외면했다. 기사의 눈이 사납게 흔들렸다.
대항하지 않고 항복을 해 버린 그들에 대한 분노 때문이다.
그러나 평정심을 잃은 대가는 가혹했다. 혁련천후의 검 끝이 기사의 어깨 밑을 때리고 지나갔다. 그곳은 오른쪽 육신을 마비시키는 혈도가 있는 곳이다.
“욱!”
털썩!
갑작스럽게 육신의 반쪽이 마비되자 기사는 균형을 잃고 쓰러졌다.
“오호! 근성 하나는 알아 줄 만했어.”
혁련소는 검을 거두며 낭랑하게 말했다.
이번에 우드가 재빨리 뛰어와 기사의 육신을 마나로 묶었다. 검을 쥔 오른쪽이 마비된 기사는 재빨리 왼손으로 검을 옮겨 잡아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했지만 진천이 발로 검을 걷어차 버렸다.
“야수 같은 놈이군.”
“죽여라! 이놈들!”
“싫다! 이놈아!”
장난스럽게 대답한 진천이 모두에게 왕궁으로 돌아갈 것을 지시했다.
“이 쓰레기 같은 마법사 놈들!”
기사는 마법사들을 향해 고래고래 악을 썼다.
그나마 성한 왼발로 마법사들을 걷어차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을 보고는 혁련소는 반대편 혈도마저 짚었다.
“하하! 꽤 마음에 드는 친구야!”
* * *
사로잡힌 마법사들과 기사는 기마병들과는 다른 곳에 격리되었다.
그렇다고 특별한 대접을 해 준 것은 아니었다.
장소만 다를 뿐, 처우는 기마병들과 동등했다. 기사는 기사대로, 마법사들은 마법사대로 각각의 방에 감금시킨 진천은 묘한 눈으로 기사의 방을 응시하다가 등을 돌렸다.
‘후후! 성격을 보니 저놈이 어쩌면 큰일을 해 주겠군.’
그는 알 수 없는 말을 속으로 중얼거리고는 혁련천후의 거처로 걸음을 놓았다.
혁련천후는 자신의 거처에서 지도를 펼쳐 놓고 고심에 빠진 모습을 하고 있었다. 진천이 들어왔음에도 그는 여전히 깊은 생각에 빠졌다.
진천은 조심스럽게 의자에 앉아서는 자신도 지도를 살폈다.
홀베른 주변의 모든 지형이 세밀하게 그려진 지도는 곳곳에 붉거나 푸른색의 점들이 찍혀져 있었다.
가볍게 숨을 고른 혁련천후가 그제야 진천에게 시선을 주었다.
“마법사들을 잡았다고?”
“그렇습니다. 사나운 기사도 한 놈 잡았습니다.”
“기사?”
“마법사들을 호위하기 위해 따라나선 놈인 것 같습니다. 꽤 사나우면서도 충성심이 대단한 놈이더군요. 그래서 놈을 좀 이용해 볼까 합니다.”
혁련천후가 눈빛을 발하며 진천을 응시했다.
눈동자는 그게 무슨 뜻이냐를 묻고 있었다.
“요란에게 거짓 정보를 흘려 볼까 합니다.”
“포로로 잡힌 기사를 이용해서 말이냐?”
“그렇습니다. 다만 탈출을 아주 멋지게 시켜야만 할 텐데…… 그건 아직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만 곧 방법이 찾아지면 말씀드리겠습니다.”
진천이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혁련천후는 자리에서 일어나 벽에 걸린 커다란 술통을 들고는 그것을 술잔에 채워 진천에게 건넸다.
“이번에 온 놈들마저 돌아가지 않는다면 놈들은 본진을 버리고 모조리 이곳으로 쳐들어올 것이 분명하다. 하여 내일 아침쯤, 최소한의 병력을 왕궁에 남겨 두고 놈들을 요격하러 떠날 생각이다.”
“놈들이 뭉쳐서 온다면 요격이 힘들지 않겠습니까?”
“흩어 놓아야지.”
진천이 조금은 굳은 표정으로 말을 받았다.
“놈들이 당장은 이십오만이나 차후 상당한 병력이 더 오질 않겠습니까? 그러면 꽤 힘들어질 것 같습니다만…….”
혁련천후는 진천과는 달리 자신감을 비쳤다.
“우리에겐 케이론이 있다. 테세우드의 죽음으로 혼란에 빠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그들은 제국이다. 그들이 있는 한, 요란도 함부로 본토에서 병력을 빼지는 못할 것이다. 여차하면 그들보고 요란의 본토를 노리라고 하면 그뿐이다.”
“레이나 공주가 과연 그 큰일들을 해낼 능력이 되겠습니까?”
혁련천후는 술로 입술을 적시고는 눈빛을 발하며 말했다.
“생각해 놓은 게 있으니 당장은 내일 출진에 집중해. 그리고 우린 수많은 생명을 앗아 가는 살인귀가 될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 수가 수십만이 넘어갈 수도 있겠지. 모두들 악마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중원으로 돌아갈 수가 있다.”
“그 점은 이미 모두가 각오하고 있습니다. 개인이 아닌 국가 간의 전쟁이니 어쩔 수 없지요. 뭐, 수십만이 죽더라고 이후에 사람들이 행복한 삶을 살아갈 터전을 마련해 준다고 여기니까 별로 두렵지도 않습니다, 하하!”
진천이 해맑게 웃었다.
혁련천후의 마음을 가볍게 해 주기 위한 억지웃음이었다. 혁련천후도 진천의 속내를 알고 있었다.
“푹 자 둬. 어쩌면 내일부터는 핏물 속에서 살게 될 테니까…….”
* * *
맥퀸 후작은 마스터에 소문난 다혈질이다.
마법사들을 보호하는 임무를 맡고 홀베른의 최전선으로 들어섰다가 포로가 된 맥퀸은 분을 이기지 못하고 잠을 설쳤다.
“괘씸한 놈들!”
그는 자신을 잡은 은발 청년보다 너무나 손쉽게 포기해 버린 자국의 마법사들이 더욱 괘씸했다. 싸우다 죽는 것을 최고의 영광이라 여기는 그에게 마법사들의 그와 같은 행위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