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6
<귀환무사 386화>
귀환무사 2부
161화
그에게선 절대 패배하지 않을 것만 같은 자신감이 느껴졌다. 어지간한 사람은 만용으로 느껴질 법도 하건만 그는 확신이라는 느낌을 가져다주고 있었다.
그만큼 룻거 후작이 혁련천후를 믿는 것이다. 물론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지만…….
혁련천후가 물었다.
“임시 거주 지역은 어떻게 되었나?”
“십만 명을 수용할 만한 규모로 완성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틀 후쯤이면 최전선의 영지민들을 대피시킬 계획입니다.”
“하루 앞당기도록 해. 벌써 어제의 전투가 소문이 돌았다면 많은 이들이 두려움에 몸을 떨고 있을 것이다. 밤을 새워서라도 내일까지 완공을 하라고 지시해!”
“예! 전하!”
둘은 왕궁의 정원에 이르러서 걸음을 멈추었다.
사공진무와 진천이 막 왕궁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혁련천후를 발견한 둘이 환하게 웃으며 뛰어왔다.
“작업은 마쳤느냐?”
“하하! 완벽하게 마치고 돌아오는 길입니다. 나는 새 한 마리도 절대 빠져나갈 수 없게끔 해 놓았으니 술 좀 주십시오!”
혁련천후가 피식 웃었다.
“오늘은 모처럼 함께 마셔 볼까?”
“야후! 좋습니다! 그럼 저희들은 좀 씻고 오겠습니다! 땀을 엄청 흘려 놔서…….”
둘이 바람처럼 거처로 날아가자 룻거 후작이 소리 내어 웃었다.
“언제 봐도 대단하신 분들입니다. 나뭇가지 몇 개로 사람을 가두고 수백 개로 수천 병력을 가둘 마술을 부리시다니…….”
혁련천후도 옅은 미소를 머금고는 거처로 가려던 발길을 식당으로 돌렸다.
“제가 주방장에게 음식을 준비하라 시키겠습니다.”
룻거 후작이 먼저 식당으로 몸을 날렸다.
혁련천후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아내들이 잠들어 있는 곳으로 시선을 던졌다. 이제 함께 돌아가느냐, 아니면 영원히 돌아가지 못하고 다른 차원을 떠도느냐의 결판 시점이 코앞에 닥쳤다.
짙은 눈썹이 꿈틀거리며 눈동자에 섬광이 돌았다.
‘무조건 그녀들을 깨워서 중원으로 돌아간다.’
* * *
요란 제국의 제7강습여단장인 루턴 후작은 잔뜩 인상을 찌푸리고서 상황실을 서성거렸다.
정찰 겸, 적의 최전선에 혼란을 조성할 목적으로 출전한 선봉부대가 돌아올 시간이 지났음에도 아무런 소식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그의 앞에 앉은 레인 역시 무거운 기색이다.
“설마 놈들에게 기습을 당한 것은 아니겠지?”
레인의 물음에 루턴 후작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들이 비록 최정예는 아니라지만 상당한 전투 경험을 지닌 베테랑들입니다. 기습 따위에 당할 리 없습니다. 설사 기습을 당해서 피해를 입었다고 쳐도 최소한의 병력은 벌써 돌아왔어야 정상인…….”
“이동식 통신구를 지닌 통신병이 함께 출전하지 않은 것인가?”
“홀베른은 워낙 마법 병단이 강력한 곳이라 통신이 불가능합니다. 그들이 그물처럼 쳐 놓은 마나 때문에 오히려 적에게 역정보를 흘려 줄 가능성이 높아 아예 통신병들은 전투 부대에서 뺐습니다.”
언제나 섬뜩한 표정만을 지었던 레인이 심각하게 굳어졌다.
그가 조금은 이상했다.
오천 명의 기사들을 걱정해서 얼굴을 굳힐 레인은 결코 아니다. 케논 산맥에서 십만에 달하는 대군을 잃고도 눈 하나 깜박하지 않았던 그가 아닌가?
그렇다면 지금은 왜 고작 오천 명에 이토록 심각하게 굳어지는 것일까. 이유는 바로 켈베로스를 장막처럼 감싸고 호위하는 가디안, 어둠의 마법사들 때문이다.
그들은 제국의 실력자인 케이시 공작도 실각시킨 자들이다. 모두는 케이시 공작이 황태자 카르스에 밀렸다고 하지만 레인은 그들이 막후에서 황태자 카르스를 이용해 만들어 낸 것임을 진즉에 알고 있었다.
케이시 공작이 실각한 다음 목표는 바로 자신이었다.
‘놈들이 수작을 부릴 구실을 조금이라도 주어선 곤란하다. 내가 실각하면 놈들은 무조건 황제를 처치하고 자신들이 제국을 통치하려 들 것이다.’
레인이 생각하는 그들의 최종 목적은 바로 그것이었다.
영혼이 봉인된 존재들이 통치하는 제국은 더 이상 산 자들의 세상이 아니다. 레인이 비록 사악하고 악독한 존재라지만 그도 엄연한 인간이다. 그래서 그것만큼은 막아야 한다고 굳게 다짐하고 있던 터였다.
“단장님! 단장님!”
“……응?”
루턴 후작이 연거푸 부르고서야 레인은 상념에서 깨어났다.
“안되겠습니다. 마법사들을 몇 보내어 상황을 파악해 봐야겠습니다.”
“그게 좋겠군. 그렇게 하게!”
루턴 후작이 상황실을 빠져나가려는 때였다. 시커먼 로브를 걸친 자가 소리 없이 그들의 가운데에 나타났다. 레인이 가장 싫어하는 존재, 바로 어둠의 마법사였다.
레인의 눈동자에 일순 섬광이 돈다. 자신도 모르게 검집에 손을 가져갈 정도로 그는 지독히도 그들을 증오했다.
둘을 죽어 버린 눈동자로 쓸어 본 어둠의 마법사가 입을 열었다.
“켈베로스 님께서 어떻게 되었는지 보고를 하라고 하셨다, 루턴!”
묵직하면서도 ‘웅웅’ 울리는 목소리는 언제 들어도 섬뜩했지만 레인에겐 화를 돋우는 것에 불과했다.
“작전이 조금 길어지는 모양입니다.”
“거짓은 너를 소멸시킬 수도 있다, 루턴…….”
레인과 루턴 후작의 미간에 힘줄이 꿈틀거렸다.
둘을 바라보는 마법사의 눈동자가 새파란 광망을 뿜었다.
“후후후! 감히 내게 그런 태도를 보이다니, 영혼을 봉인당하고 데스나이트가 되고 싶은 모양이군, 레인!”
“그전에 네놈이 영원한 소멸을 당할 수도 있지, 껍데기!”
“너의 그 태도, 기억해 두겠다, 레인…….”
어둠의 마법사가 연기처럼 사라지자 루턴 후작이 분통을 터뜨린다.
“빌어먹을! 언제까지 저 재수 없는 작자들과 함께해야 하는 건지. 폐하께서도 왜 저런 자들을 끌어들였는지 모르겠습니다!”
“조금만 참고 기다리게. 홀베른과의 전쟁만 무사히 끝나면 무슨 수를 내겠네.”
“차라리 아이아스의 심장을 얻기 전에 수를 내는 것이 좋겠단 생각도 듭니다. 말이야 제국과 모두를 위해 심장이 필요하다지만 솔직히 전 그 말을 믿지 않습니다. 어쩌면 아이아스의 심장은 켈베로스, 그분의 개인적인 욕심으로 필요한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곤 합니다.”
“속단하지 말게. 일단은 아이아스의 심장을 얻는 것이 급선무네. 켈베로스, 그분은 둘째치고 폐하께서도 그것을 무척 원하고 계시지 않은가? 그러니 당장은 홀베른을 쓸어버리는 것에만 집중을 하세나. 어차피, 그곳은 아이아스의 심장이 아니더라도 한 번쯤은 붙어 보고 싶었던 곳이야. 무인으로서 홀베른이 얼마나 강한 자들이 있는지 궁금했거든…….”
레인이 눈빛을 가라앉히며 목청까지 낮게 깔았다.
그에게도 무인의 본질이라는 게 있었을까? 섬뜩하게 가라앉은 눈동자 깊숙한 곳에서 투기라는 게 아른거렸다.
“일단은 마법사들을 최전선으로 보내고 오겠습니다.”
“혹시 모르니 마스터, 한 명을 붙여서 보내도록 하게. 놈들도 정찰을 차단할 목적으로 곳곳에 저격수들을 배치하고 있을 테니까.”
“알겠습니다.”
루턴 후작이 빠르게 상황실을 벗어나자 레인은 의자에 깊숙이 몸을 묻으며 가볍게 숨을 내쉬었다. 루턴 후작의 기운이 완전히 감각에서 사라지자 레인의 눈빛이 지금까지와는 확연히 다르게 빛났다.
“아이아스의 심장과 홀베른 따윈 필요 없다. 그자! 그자의 존재를 다시 확인해야 한다. 그가 진정 중원에서 넘어온 신마, 그자가 맞으면 이번 전쟁은 장담할 수 없게 된다. 아니 이곳에서 이루려던 본교의 염원이 막힐 수도 있게 된다. 모든 힘을 기울여서라도 그자만큼은 이번 기회에 죽여야 한다. 반드시!”
놀라운 말이 흘러나왔다.
그가 혁련천후를 정확하게 예측하고 있었다. 그리고 스스로 거론한 본교는 또 어디를 가리키는 것일까?
으드득!
갑자기 레인이 이를 갈았다.
“신마, 혁련천후! 이곳은 중원이 아니다! 신마성이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는 본교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우리가 부딪치기 이전에 넌 켈베로스, 그 괴물에 의해 최후를 맞게 되겠지.”
우르릉…….
후두두둑!
갑자기 천둥소리와 함께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점검 거세져 가던 빗소리가 어느 순간에 이르러서는 돌멩이가 떨어지는 듯 심하게 울리자 레인은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하늘이 하얗게 변해 가고 있었다.
비가 눈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눈 속에는 큼지막한 우박이 섞여 있었다.
“이건……!”
레인의 눈동자에 의혹이 어린다.
“그때와 비슷한 기후다. 설마 그것들이 또……?”
무엇을 염려하는 걸까?
레인은 한동안 하늘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 * *
참혹한 살육전이 벌어졌던 숲은 언제 그랬냐는 듯 고요한 적막만이 흘렀다.
죽은 자들의 육신과 그들이 흘렸던 핏물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대신 그곳엔 어둠 속에서 간혹 반짝이는 눈동자들이 곳곳에서 보였다.
요란 제국의 첩보, 정찰 활동을 사전에 차단할 목적으로 숨어 있는 저격수들이었는데, 그중엔 스스로 자원한 혁련소와 연소민도 함께하고 있었다.
둘은 다른 이들의 부러움을 한껏 받으며 같은 장소에서 작전이 아닌 사랑을 나누는 중이다.
“이젠 이곳의 밤하늘도 무척 정이 들었어요.”
연소민은 혁련소의 품에 몸을 묻고는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갑자기 별이 사라지는 걸 보니 한바탕 비라도 쏟아질 건가?”
“눈이 내리면 좋을 텐데…….”
연소민은 더욱 깊숙하게 안기며 뒤에서 자신을 안고 있는 혁련소의 팔을 가슴에 안았다. 혁련소가 그녀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그렇게 좋아?”
“그럼요. 단둘이서만 살고 싶을 만큼…….”
“전쟁이 끝나고 중원으로 돌아가면 둘이 따로 나가서 살까?”
“싫어요.”
혁련소가 눈을 동그랗게 했다.
“둘이서 살고 싶다며?”
“말이 그렇다는 거죠. 그분들과 떨어져서 산다는 게 지금은 솔직히 상상이 안 가요. 그리고…….”
“그리고 뭐?”
“어머님들하고도 함께 살고 싶어요. 제 소원이 그거였잖아요.”
순간, 혁련소는 그녀를 꼭 안아 주었다.
그녀가 왜 그런 말을 하는지 그는 알고 있었다. 그녀는 아주 어렸을 적 어머니를 여의었다.
“성이 넓으니까, 부모님이랑 숙부들과 함께 살면서 은밀한 곳에 우리가 살 집을 지어 달라고 하면 되겠네.”
“만약 중원으로 돌아가서 아버님이랑 오빠를 찾으면…….”
그녀가 갑자기 말을 흐렸다. 그녀를 안은 혁련소의 팔에 힘이 들어갔다.
“걱정 마. 아버지는 분명 교주님과 무진을 받아 주실 거야. 원래 그런 쪽에선 화끈하시거든.”
“정말 그래 주실까요?”
“당연하지.”
우르릉…….
후드득!
“내가 이럴 줄 알았지.”
천둥소리가 울리자 혁련소와 연소민은 투덜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투두두둑!
“우박까지! 골고루 하는군. 이렇게 되면 적의 정찰병들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
“난, 저곳으로 가야 할까 봐요. 조심해요!”
“소민도 조심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