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4
<귀환무사 384화>
귀환무사 2부
159화
“기절초풍을 하겠군.”
그는 손에 쥐어진 검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조윤 역시 그와 다를 바 없었다. 그 역시 자신이 만들어 놓은 결과물에 어안이 벙벙한 듯 보였다. 검이 아닌 창이었기에 구덩이의 길이는 흑야보다 길었다.
“이 정도 위력이면 호신강기도 그냥 잘라 낼 것 같은데?”
“호신강기도 그렇다만 이 세상의 기사들이 입는 마법갑주도 대번에 썰어 내겠어. 좋기는 하다만 섬뜩하기도 하군.”
“강호에 한 자루만 풀어 놓으면 난리가 나겠군. 이건 명검의 개념을 넘어선 거니까.”
“그렇겠지.”
둘은 한동안 감탄을 하고는 등을 돌렸다.
평원은 여전히 전술 훈련에 한창인 기사들로 가득했다. 전차가 울리는 굉음은 한참을 떨어진 그들이 선 곳까지 은은하게 울렸다.
“엄청난 살육전이 되겠지?”
“그래, 이런 종류의 싸움은 처음인데…….”
“후후! 어쩌면 저승에서 받아 주지 않을 정도로 많은 생명을 거두게 될 거다.”
“난, 놈이 솔직히 궁금하다. 켈베로스라는 그놈 말이야. 상당히 강하겠지?”
“그렇겠지. 설마 주공께서 밀리기야 하겠냐? 괜한 걱정은 집어치우고 우리 부대는 훈련이 끝났으니 술이나 한잔하러 가자.”
둘은 평원의 끝 부분에 보이는 왕궁으로 걸음을 놓았다.
둘이 조금을 걸었을 때였다. 하늘에서 뭔가 번쩍하더니 누군가가 둘의 앞에 나타났다.
“헤헤! 여기 있었구나.”
카루가였다.
“너도 수련 중이냐?”
“응! 힘들어 죽겠어. 술 마시러 가는 거지?”
“왜? 너도 마시고 싶냐?”
“줘도 안 먹어. 그런 건…… 나 부탁 하나만 들어 줄 수 있어?”
조윤이 갸웃거리며 물었다.
“부탁? 그게 뭔데?”
카루가는 주변을 조심스럽게 살피고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변신을 한, 나와 한 번만 싸워 줘. 다른 사람들이 보면 놀라니까 저쪽으로 가서 하면 되겠다.”
조윤과 흑야가 서로의 얼굴을 쳐다봤다. 흑야가 다시 카루가에게 물었다.
“새로운 힘이라도 얻은 거냐? 갑자기 대련은 왜?”
“사실, 지금까지의 나는 완벽한 힘이 아니었어. 제약이 있었거든. 그런데 그 제약이 어제 풀렸어. 그래서 시험해 보고 싶어. 얼마나 강한지 말이야. 해 줄 수 있지?”
“그거야 어렵지 않지만, 다쳐도 난 모른다.”
“헤헤! 난, 다치면 저절로 회복되는 몸이잖아. 고마워, 헤헤!”
카루가는 머리를 긁적이며 해맑게 웃었다.
셋은 방향을 바꿔 조금 더 한적한 곳으로 걸었다.
숲이 살짝 우거진 곳에 이르러 조윤이 창을 비껴들며 웃었다.
“내가 상대해 주마, 꼬맹이.”
“헤헤! 조심해. 나도 내가 어느 정도로 강한지 모른단 말이야.”
“후후! 제발 강했으면 좋겠다.”
“알았어. 잠시만 기다려!”
잠시 후, 카루가가 섬뜩한 모습으로 변했다.
화염을 두른 육신은 전에 비해 그다지 커진 것은 없었다. 그러나 느껴지는 강력함은 장난이 아니었다.
흑야가 가볍게 놀랐다.
“확실히 강해졌군. 그런데 정신은 멀쩡한 거냐?”
“응! 정신은 말짱해. 전엔 이러지 않았는데, 훨씬 기분도 상쾌하고 그래.”
섬뜩한 모습에서 천진난만한 목소리가 흘러나오자 다소 이상했다.
흑야가 조금 뒤쪽으로 물러섰다.
조윤이 기대감 어린 눈빛으로 재촉했다.
“어서 덤벼 봐, 꼬맹이!”
“알았어! 간다!”
화르륵!
카루가의 채찍이 허공을 한 바퀴 돌았다. 시뻘건 화염이 사방으로 줄기줄기 뻗쳤는데 주변 나무들에 불꽃이 붙을 정도로 극양의 기운을 자랑했다.
우우웅!
조윤도 감히 가볍게 보지 못하고 창에 강기를 둘렀다. 선공은 카루가가 했다. 허공에 뜬 상태임에도 카루가는 엄청난 속도로 달려들었다.
쾅! 쾅!
창과 채찍이 격돌하며 요란스러운 굉음과 불꽃을 폭발시키자 어둠이 막 내리던 평원이 뇌전이 치는 것처럼 번쩍거렸다.
흑야의 입가가 슬쩍 올라갔다.
‘몰래 하기는 글렀군.’
이 정도라면 왕궁에서도 보일 정도다. 조만간 구경꾼들이 우르르 몰려들 것이 뻔했다. 흑야의 예상은 그대로 적중했다.
사방에서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그 선두엔 역시 왕전 등이 있었다.
근처에 내려선 왕전 등은 놀람을 금치 못했다.
“저게 카루가 맞느냐?”
“더 강해졌다고 대련을 해 달라고 하더군.”
북궁천소가 둘의 싸움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중얼거렸다.
“저 정도면 중원의 어지간한 고수들은 쉽게 감당하기 힘들 정도겠어. 놀라운걸? 짧은 시간에 저 정도로 강해질 수 있다니…….”
“발전한 게 아니다. 제약이 있었는데 그게 풀어진 모양이야. 그래서 봉인되었던 힘이 드러나는 거겠지.”
쾅!
강력한 폭발이 일어나며 사방으로 화염과 강기가 튕겨 나갔다.
뒤늦게 현장으로 들어선 케니언 크로우 기사들이 황급히 사방으로 비상하며 파생된 기운들을 피했다.
따다다다당!
흑야 등은 호신강기로 화염을 막아 냈다. 순간 공간이 일렁거리며 그들의 신형이 조금 일그러지는 광경이 나타났다. 파생된 기운만으로 엄청난 고수들이 펼친 호신강기를 자극한 것이다.
“괴물 탄생이군.”
흑야가 중얼거리자 모두는 고개를 끄덕여 수긍했다.
휙!
바람이 불며 아리엘이 내려섰다. 가인과 카츄도 그녀의 옆에 함께하고 있었다.
“대련이네?”
“가까이 가지 마라. 다친다.”
왕전이 가인과 카츄에게 뒤로 물러날 것을 말하자 둘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마치 ‘그 정도쯤이야.’ 라는 표정이다.
조윤의 창은 무지막지한 힘을 뿜어 댔다. 카루가의 채찍도 결코 그에 못지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점점 흐르면서 카루가의 움직임이 둔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채찍이 뿜어 대는 위력만큼은 변함이 없었다.
흑야의 눈가에 주름이 살짝 잡혔다.
“저놈도 꽤 강해졌군. 몰래 수련이라도 한 건가?”
그의 시선은 조윤을 향해 있었다. 왕전과 북궁천소가 씩 웃었다.
“흐흐! 뭘 저 정도를 가지고…….”
흑야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너희들도 수련을 했냐?”
“당연하지. 솔직히 드래곤인가 뭔가가 있으면 한판 붙어 보려고 했는데, 쩝! 아쉽지만 나중에 켈베로스, 놈한테 한번 써먹어 볼 생각이다. 그런데 넌 수련을 안 한 모양이지?”
왕전의 말에 흑야는 고개를 돌리며 차갑게 웃었다.
“나도 했다.”
“아닌 것 같은데?”
“당장 붙어 볼까?”
“아니다. 됐다.”
* * *
혁련천후는 양 볼이 시퍼렇게 멍든 카루가를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누구에게 맞은 건가?”
“응! 저기 저…….”
카루가는 손으로 다른 탁자에서 식사 중인 조윤을 가리켰다. 혁련천후의 눈길이 매섭게 조윤을 향했다.
“조윤!”
“예! 주공!”
“왜 이랬지?”
혁련천후가 카루가의 볼을 가리키며 매섭게 물어 오자 조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카루가는 일부러 조윤의 시선을 피했다.
“그게, 저…… 대련을 하자고 해서…….”
“네가 카루가와 대련을 했단 말이냐?”
“지가 더 강해졌다고 하면서 한판 싸워 달라고 했습니다.”
혁련천후의 눈매가 꽤 매서워 보이자 조윤은 억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왕전 등에게 도와 달라고 눈빛을 보냈으나 모두가 슬쩍 외면하자 조윤은 속에서 시뻘건 불길이 솟구쳤다.
“쯧쯧! 팔왕이 언제부터 어린아이와 대련을 했지?”
“주공, 그게 아니고요…….”
조윤은 미치고 팔딱 뛸 지경이었다.
그때 카루가가 몰래 혓바닥을 쏙 내밀어 보이자 조윤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야! 꼬맹이! 너 죽고 싶냐?”
자신도 모르게 거친 말이 쏟아졌다.
아차 했지만 말을 주워 담을 재주가 조윤에겐 없었다.
“저것 봐. 죽인다잖아.”
카루가의 치명타가 작렬했다.
“야! 니들 정말 이럴 거야?”
조윤이 왕전 등을 노려보며 황당하다는 몸짓을 했지만 서로 짜기라도 한 듯이 모두는 조윤을 외면했다. 혁련천후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조윤에게 말했다.
“수련 상대가 없었는데 네가 해 줘야겠다.”
쨍그랑!
조윤이 잡았던 젓가락이 땅으로 떨어졌다.
그날 밤, 조윤을 제외한 모두가 은밀한 장소에서 카루가를 만났다.
“약속을 지켰으니 너도 약속을 지켜야지.”
왕전이 뭔가를 잔뜩 기대하는 표정으로 카루가를 쳐다봤다. 다른 이들도 같은 표정이다. 볼을 만지작거리던 카루가가 입을 열었다.
그의 말을 듣던 모두의 표정이 점점 놀람으로 변하더니 희열의 빛마저 보인다.
카루가의 말이 모두 끝나자 왕전이 크게 웃었다.
“크하하하! 이제 조윤, 놈의 조문을 잡았구나! 앞으로 까불면 죽었어, 이 자식!”
카루가에게 새로운 능력이 생겼다.
한 번 싸운 상대의 약점을 찾아내는 것이 그것이었다. 그것은 카루가도 미처 모르고 있었던 부분이었다. 카루가가 손가락을 입술에 대며 낮게 속삭였다.
“절대 비밀이야. 말하면 정말 나를 죽일지도 몰라.”
음모(?)의 끝은 어둠 속에서 이루어졌다.
* * *
요란 제국의 대군은 거침없이 홀베른으로 질주를 거듭했다.
케이론 제국의 국경을 꽤 가깝게 이동했던 탓에 간간이 케이론 제국의 지역 수비군이 그들과 부딪치긴 했지만 전투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초라한 정도의 규모였다.
제국을 떠난 지 스물일곱째 되던 날, 홀베른과의 접점 지역에 그들은 본진을 차렸다. 자신감에 넘쳤던 막스 황제는 사방이 탁 트인 평원에 군사들을 주둔시키고는 일차적으로 홀베른을 흔들 심산으로 산발적인 공격 명령을 몇몇 부대에 내렸다.
두두두…….
최전방의 정찰을 겸한 오천 기의 기마병들이 본진을 빠져나와 홀베른으로 질주했다. 마법사들도 상당수 포함된 그들은 하루를 더 달려서 홀베른의 최전선에 이르렀다.
드윈 자작은 최전선을 늘어진 숲을 바라보며 매서운 눈빛을 발했다.
“제대로 된 경계 병력조차 없다니, 뭘 하자는 거지?”
최전선이라면 당연히 있어야 할 경계병들이 없었다. 초소조차 보이지 않았다. 부관이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숲 뒤쪽에 매복을 하고 있지 않겠습니까? 마법사를 먼저 보내어 정찰을 해 보심이 좋겠습니다.”
“좋다! 서둘러라!”
부관이 돌아가자 곧 마법사 둘이 빠르게 전방에 펼쳐진 숲으로 날아갔다.
“정찰과 혼란을 조성할 목적으로 왔다만 놈들의 병력이 있다면 쓸어버리고 갈 것이다. 초전에 기를 확실히 죽여 놓는 게 좋겠지.”
대부분의 군인들은 전공에 목을 맨다.
지금 드윈 자작처럼 말이다. 그것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 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 * *
“놈들이 움직임을 멈추었습니다.”
기사 한 명이 데얀에게 낮은 소리로 말했다.
“마법사들이다. 정찰을 하려는 모양인데, 모두 몸을 숨기고 아무도 없는 것처럼 보여야 한다.”
데얀의 명령에 케니언 크로우 기사 단원들이 일제히 기를 감추고 은밀하게 숨었다. 정찰을 목적으로 최전선을 나왔다가 요란 제국의 기마 병단을 발견하고는 이곳에 몸을 은신한 그들이다. 데얀의 눈매가 사납게 빛을 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