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무사-383화 (381/425)

# 383

<귀환무사 383화>

귀환무사 2부

158화

“케이론의 기병이 나타났단 말이냐?”

“그렇습니다.”

기사의 보고에 레인은 놀람을 금치 못했다. 테세우드 공작의 죽음으로 내란 직전까지 몰린 그들이 설마 군사를 움직일 줄은 몰랐다. 그는 말 머리를 돌려 마차로 다가갔다.

막스 황제가 먼저 물었다.

“무슨 일이지?”

“케이론이 군사를 움직였다는 척후병들의 보고가 있었습니다. 기병 십만이 동북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놈들이 기병을 움직였단 말이냐? 케이론이?”

“그렇습니다, 폐하!”

“미친놈들이 아니냐? 함부로 군사를 움직이면 테세우드파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거늘…….”

막스 황제는 뜻밖의 보고에 눈살을 찌푸렸다. 홀베른을 치는 과정에서 케이론은 완벽하게 배제하고 있었던 터라 조금은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기병뿐이라고 하더냐?”

“아직은 기병의 움직임만 포착되었다고 합니다. 일단 진군하시면서 차후 상황에 따라 작전을 변경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래, 그렇게 하지. 레인! 마법사 몇을 척후로 보내어 자세한 상황을 살펴보도록 하라!”

“알겠습니다!”

레인이 돌아가자 마법 병단 쪽에서 둘이 바람처럼 전방으로 사라졌다. 턱을 쓰다듬으며 미간을 찌푸린 막스 황제의 귓속으로 감정이 실리지 않은 목소리가 흘러들었다.

[케이론이 군사를 움직였단 말이지?]

[그렇습니다! 스승님!]

[그곳에도 인물이 있었던 모양이군. 그저 반란이 두려워 웅크리고 있을 것으로 여겼거늘…… 홀베른의 움직임에 관한 새로운 보고는 없었느냐?]

[여전히 특별한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만, 심어 놓은 아이들의 말에 의하면 제법 강해 보이는 자들이 자주 모습을 보인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수가 열을 넘어가지 않는다고 하니 심려 놓으셔도 될 듯합니다.]

[제법 강해 보이는 자들이…… 특별한 징후 같은 것을 보이지는 않았다더냐?]

[그냥 마스터보다 조금 강해 보이는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걱정할 건 없겠군. 이번 전쟁으로 너를 시험할 것이다. 나를 실망시키지 않기를 바란다, 막스!]

[믿어 주십시오, 스승님.]

대화는 거기에서 끝났다.

켈베로스는 다시 침묵에 들어갔다. 막스 황제는 시녀가 건넨 술잔을 입으로 가져가며 껄껄 웃었다.

“모든 세상이 곧 우리의 것이 되겠군. 기쁘지 않느냐? 엘리샤!”

그는 시녀의 풍만한 가슴에 손을 집어넣으며 연방 흡족한 웃음을 터뜨렸다.

케이론 제국과의 전투에서 십만이 넘어가는 병사들을 잃어버린 군주의 모습이 아니었다. 현명하고 바르기만 했던 요란의 백성들과는 전혀 동떨어진, 극도의 이질감마저 느끼게 하는 태도였다.

* * *

레이나 공주는 다시 케이론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홀베른의 강성함에 상당히 놀란 상태였다. 소문 이상으로 그들은 강력했다. 게다가 혁련천후 등이 합세한 탓에 어쩌면 이번 전쟁에서 요란이 패할 거란 생각마저 들었다.

반가우면서도 마음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씁쓸하기도 했다.

그녀는 자신의 거처로 들어가 모든 것을 잊고 잠을 청했다. 연이은 술자리로 심신이 지칠 대로 지친 그녀는 금방 잠이 들었다.

탁!

누군가 창을 두들기는 소리에 그녀는 막 끊기던 의식이 돌아왔다.

“어머!”

창을 쳐다본 그녀가 깜짝 놀라 비명을 질렀다.

창밖에 루안이 있었는데 전신이 피투성이가 된 그가 자신을 보며 웃고 있자 잠옷 바람 그대로 창문을 열었다.

“루안! 이게 어떻게 된 일이에요?”

“크크! 제대로 한 방 먹었어. 늙은 마법사 놈한테 말이야.”

“어서, 어서 치료부터 해야 해요!”

그녀는 루안을 잡아끌어 자신의 침상에 눕혔다. 웃음기 머금은 표정과는 달리 그는 꽤 중상을 입고 있었다.

호흡이 상당히 거칠었는데 입가엔 선혈이 끊이지 않고 흘렀다.

“도대체! 도대체 왜 루안이…….”

“호들갑 떨지 말라고. 누가 보면 죽는 줄 알겠네. 으윽!”

“움직이지 말고 그냥 누워 있어요. 마법사를 불러 올게요.”

“마법사는 무슨…… 그냥 잠 한잠 자고 일어나면 괜찮을 거야. 쿨럭!”

시커멓게 죽은피가 쏟아지자 레이나 공주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그녀는 포션으로 일단 응급조치를 취한 다음 옷을 갈아입고 마법사들이 머무는 건물로 몸을 날렸다.

“크크! 정말 골로 갈 뻔했어. 으윽! 전신의 뼈마디가 다 부러진 것 같군. 젠장!”

어지간한 강자라도 몇 번은 죽었을 중상임에도 루안은 여유로웠다.

“크크! 그래도 소득이 없는 건 아니었어. 테세우드, 놈은 죽은 게 아니었어. 빌어먹을 놈! 나만큼이나 목숨이 질긴 놈이야. 쿨럭!”

테세우드 공작이 죽지 않았다니?

루안이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그는 자신의 흉갑 안으로 손을 밀어 넣더니 작은 알약 같은 것을 꺼냈다. 그것을 먹기 위함인 듯 루안은 입을 벌렸다. 벌려진 입안은 선혈이 엉켜 붙어 엉망이었다.

“이건 레이나를 주려고 했는데, 어쩔 수 없지. 내가 살아야 그녀를 보호할 수 있으니까…….”

우드득!

루안은 그대로 알약을 씹었다.

그러고는 간신히 몸을 일으키고는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놀라운 광경이었다. 지금 루안이 하는 것은 분명 중원의 고수들이 하는 운기조식이었다. 그가 어떻게 운기조식을 안단 말인가?

이 세상의 강자라는 자들은 운기조식이 뭔지도 모른다.

“후우욱!”

거친 숨결이 입을 통해 들락거렸다.

그러자 놀랍게도 루안의 상세가 엄청난 속도로 회복되기 시작했다. 흐르던 피가 멈추고 창백했던 안색은 대번에 핏기가 돌았다.

그러기를 얼마가 지났을까, 마법사를 데려오겠다며 나선 레이나 공주가 돌아오기도 전에 루안은 본연의 모습으로 회복되었다.

“휴우! 이제야 좀 살맛이 나는군.”

으드득!

팔을 돌리자 뼈마디 부딪치는 소리가 울렸다. 그때, 레이나 공주가 허겁지겁 들어왔다. 뒤에는 황실기사단에 소속된 마법사 둘이 보였다.

“후후! 필요 없다니까.”

“이게 어떻게 된 거죠?”

“놀라긴, 나 루안은 원래 이런 사람이잖아. 멀쩡하니까 그냥 돌아들 가셔.”

마법사들은 두 눈을 멀뚱거리며 레이나 공주를 쳐다봤다.

그녀는 마법사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는 돌려보냈다. 그러고는 루안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마법이라도 부린 건가요? 당신은 분명 죽기 직전의 상태였어요.”

“별다른 건 없어. 그냥 가문에서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비법을 사용했을 뿐이야.”

“말해 줘요! 당신의 가문이 어떤 곳인지를, 지금까지는 묻지 않았지만 이젠 정말 알고 싶어요.”

루안이 피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직은 아니야. 옷이나 한 벌 갖다 줘. 이런 꼴로 돌아다닐 수는 없잖아?”

레이나 공주는 한숨을 내쉬었다.

루안은 한번 안 된다고 하면 하늘이 무너져도 안 되는 인물이다. 그녀는 하는 수 없이 다시 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 루안은 새로운 갑주를 걸치고 시녀들이 가져온 술과 음식을 들었다.

“쉐인이 그렇게 강했던가요? 당신이 그 지경을 당할 만큼…….”

대화 도중 레이나 공주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라워했다.

“늙은이가 강한 것이 아니고 그 건물이 지랄 같았지. 긴박한 순간에 마나가 제대로 운용되지 않더군. 덕분에 꼼짝없이 죽는 줄 알았지.”

“뭔가 다른 것을 알아낸 건 없나요?”

“별로…… 다만 그곳에 상당한 놈들이 몰려 있더군. 우리가 알고 있었던 그 이상이었어.”

루안은 음식은 조금만 먹고 술을 많이 마셨다.

레이나 공주는 술잔이 비는 족족 잔을 채워 주었다. 그녀는 루안에게 무척 미안했다. 자신의 부탁이라면 뭐든 다 들어주려는 루안의 마음을 자신이 이용한 것 같아서였다.

그래서 오늘은 그가 달라는 대로 술을 내었다.

“홀베른을 도와야지?”

“그것 때문에 그곳엘 다녀왔었어요. 돕는 거야 당연히 돕겠지만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아요.”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모양이군?”

“부러워서 그래요. 홀베른이…….”

“부러워?”

루안이 묘한 눈빛을 보였다.

레이나 공주는 잘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한 잔 털어 넣었다.

“그곳에 상왕이라는 분이 계시더군요. 놀랍게도 그분은 제가 알고 있던 분이셨어요. 물론 그땐 평범한 변방 영지의 기사 정도라만 여겼었지만…….”

“전 왕이 살아 있단 말인가? 지금의 국왕이 왕위에 오른 지가 삼십 년이 지난 것으로 아는데?”

“자세한 건 나도 몰라요. 다만 그분에 대한 왕실의 충성이 정말 부러울 정도더군요. 게다가 루안과 싸웠던 그분들, 제가 숙부라고 부르던 그분들이 상왕 전하의 충실한 동료이자 기사들이더군요.”

루안이 놀란 눈으로 되물었다.

“그자들이 전부 그곳에 있었단 말이야?”

“그래요. 아리안도, 다크 영지의 영주도 모두 그곳에 있더군요. 영지민들까지…….”

레이나 공주는 말하면서 씁쓸함을 금치 못했다.

모두가 한때는 케이론의 백성들이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들을 직접 눈으로 보니 마치 자신이 잘 못해서 타국으로 망명을 간 것처럼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었다. 그때의 기분이 다시 되살아나자 그녀는 자꾸만 술잔에 손이 갔다.

“수십 배나 큰 영토를 자랑하는 대제국과의 전쟁이 임박했음에도 홀베른의 백성들은 전혀 동요하지 않더군요. 왜 그럴까요? 우리 케이론의 백성들은 고작 변방인 케논 산맥에서의 전쟁만으로도 불안에 떨며 동요를 일으키는 데, 그들은 왜 그렇게 태연할 수 있을까요?”

레이나 공주의 목청이 조금씩 격앙되었다.

루안은 그답지 않게 심각한 얼굴로 그녀의 말을 들었다.

“그건 바로 왕실과 백성들이 하나로 뭉쳐 있다는 걸 뜻하는 거죠. 우리 케이론이 가지지 못한 걸 그들은 가지고 있어요. 물론 황실이 무능해서 백성들의 지지를 끌어내지 못한 점은 인정하지만, 황실의 일족으로서 그 부분에 대한 잘못은 통감하지만…… 그래도 우리 백성들에 대한 섭섭함을 지울 수가 없어요.”

“자책하지 마. 지금부터라도 잘하면 되는 거지.”

루안은 그녀의 빈잔을 채워 주며 위로했다.

그러면서도 안타까운 눈으로 그녀를 흘긋거렸다. 만약 테세우드가 죽지 않은 것을 안다면 얼마나 큰 실망을 할까.

레이나 공주가 루안을 지그시 바라보며 불렀다.

“루안…….”

“그 눈빛은 또 뭐야? 부담스럽게…….”

덥썩!

갑자기 레이나 공주가 그의 손을 잡았다. 깜짝 놀란 루안이 손을 빼려 했으나 레이나 공주는 잡은 손에 힘을 꽉 주고는 말했다.

“다시는 다치지 마요. 나를 위해서, 아니, 케이론을 위해서라도 다시는 당신을 위험한 곳에 보내지 않을 거예요.”

“후후! 내가 간 거지, 레이나가 가래서 간 건 아니잖아?”

와락!

레이나 공주의 가녀린 육신이 루안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와장창!

쨍그랑!

술병과 잔이 바닥으로 떨어지며 산산조각이 났다.

“다시는 내 곁에서 떠나지 마세요.”

* * *

드래곤의 뼈로 만든 검의 강력함은 모두의 상상을 초월했다.

흑야는 자신이 만들어 놓은 광경에 스스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는 지금 평원에 서 있었다. 그런 그의 앞에는 삼십 미르에 이르는 좁은 구덩이가 있었는데 방금 스스로 검을 휘둘러서 나타난 결과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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