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무사-380화 (378/425)

# 380

<귀환무사 380화>

귀환무사 2부

155화

“괜찮으니 그냥 시작하시게!”

데얀을 향한 말에 불쾌함이 그대로 드러났다. 데얀이 한술 더 뜬다.

“정말 괜찮겠습니까?”

“어허! 그렇다니까!”

“알겠습니다! 그럼…….”

데얀이 그제야 몸을 돌렸다. 헤론 후작이 불쾌한 기색으로 데얀을 가리키며 물었다.

“저 친구는 누구요?”

“기사단장입니다.”

“뭐요? 저렇게 젊은 친구가 단장이란 말이오?”

“하하! 꽤 강한 친굽니다. 저도 장담할 수 없을 정도로 말이지요.”

그 말에 헤론 후작은 꽤 놀랐다.

홀베른의 왕실 기사단장인 룻거 후작은 대륙의 기사들 사이에서는 신비에 가려진 인물이다. 지금껏 공식적으로 무력을 선보인 적이 없기 때문에 정확한 수준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강자들의 고향이라는 홀베른의 왕실 기사단장이면 상당한 강자일 거라는 예측이 지배적인 위인이다.

그런 그가 장담할 수 없을 정도의 강자라면…….

‘겸손이 지나친 양반이군.’

헤론 후작은 그가 겸손을 부린다고 생각했다.

그때, 데얀의 쩌렁쩌렁한 고함을 신호로 대련이 시작되었다.

“전력으로 대련한다! 실전처럼 싸워라! 양보하는 놈은 내가 직접 상대해 줄 것이다!”

* * *

헤론 후작의 두 눈은 찢어질듯 부릅떠져 있고 불끈 쥔 주먹은 굵은 힘줄이 돋아났다. 단정하게 빗어 넘겼던 머리는 헝클어져 엉망이었고 부릅떠진 두 눈은 폭풍을 맞은 물레방아처럼 사정없이 흔들렸다.

“믿을 수가 없구나…….”

그는 강력한 마나가 작렬하는 연무장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이미 그는 뒤쪽으로 십 미르 정도 물러난 상태였다. 대련과정에서 파생된 기운을 피해서다. 룻거 후작이 그런 헤론 후작을 응시하며 여전히 묘한 웃음을 머금었다.

“허어…… 저 정도면 단일 기사단으로는 대륙 최강이 아니겠소? 대단하오. 정말 대단하오.”

놀람은 감탄으로 번져 갔다.

“모두가 상왕 전하의 은총이십니다.”

“도대체 그분께선 어떤 분이시오? 어떤 분이시기에 저런 무지막지한 기사들을 만들어 낸단 말씀이오?”

“하하! 저게 다가 아닙니다. 저기 저, 데얀이라는 친구는 기사들 서넛이 달려들어도 이겨 내지 못할 정도의 강자랍니다. 홀베른의 자랑이지요, 하하!”

룻거 후작은 크게 소리 내어 웃었다.

평소의 그와는 전혀 다른 행동을 보인다. 마치 일부러 자랑을 하듯 말이다. 헤론 후작은 기사들에게 연방 쩌렁쩌렁 고함을 질러 대는 데얀의 뒷모습을 응시하며 놀람과 부러움을 나타냈다. 저런 기사들이 황제의 측근에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그런 헤론 후작을 지켜보는 눈들이 있었다.

“하하! 꽤 놀라고 있습니다, 전하!”

“조금 더 놀라게 만들어.”

“저 정도만 보여 줘도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주도권을 쥐려면 저 정도론 곤란하다. 생각만 해도 오금이 저릴 정도의 강력함을 보여 줘야겠지. 그대가 직접 나서 보는 게 어때?”

혁련천후와 홀베른 국왕이었다.

홀베른 국왕이 묘한 미소를 머금고는 허리를 숙였다.

“부끄럽습니다만 제가 한번 나서보겠습니다.”

“저 친구는 레이나 공주의 눈과 귀 역할을 하는 친구야. 보여 줄 거면 확실히 보여 줘.”

“전하께서 하사하신 검을 사용해 보겠습니다.”

홀베른 국왕은 벽으로 다가가 한눈에도 예사롭지 않은 기운을 발산하는 검을 들었다. 손잡이에서 끝까지 하나의 예술 작품을 보듯 화려하기 그지없는 그것은 바로 드래곤의 뼈로 만든 검이었다.

드워프족 장인이 만든 그것은 이미 모두에게 지급이 된 상태였다.

“그럼!”

혁련천후에게 허리를 굽힌 홀베른 국왕은 창을 통해 그대로 몸을 날렸다. 혁련천후는 헤론 후작의 뒷모습을 응시하며 옅은 미소를 머금었다.

‘후후! 제국을 호령하는 왕국이라…….’

그는 속으로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그가 연무장으로 시선을 돌렸을 때 엄청난 거리를 도약해서 날아간 홀베른 국왕이 막 연무장으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 * *

쿠웅!

강력한 진동이 연무장을 휩쓸었다. 자욱한 먼지구름이 대련을 하던 기사들의 모습을 가려 버렸다. 먼지구름 속에서 우렁찬 함성이 들렸다.

“전하를 뵙습니다!”

지켜보던 헤론 후작의 눈동자가 번쩍 빛을 발했다. 그는 반사적으로 옆의 룻거 후작을 돌아봤다.

“전하라면……?”

“일이 빨리 끝나셨나 봅니다. 곧장 오셨다면 기사들과 수련 때문인 것 같은데…….”

“방금 허공에서 떨어진 것이, 아! 실례했소이다. 허공에서 내려오신 분이 국왕 전하란 말씀이오? 그리고 왕께서 직접 기사들과 수련을 하신단 말이오?”

“그렇습니다. 그리고 홀베른의 왕들께서는 언제나 그래 왔습니다. 가시죠. 왕께 예를 올리셔야지요.”

룻거 후작이 앞서 연무장으로 걸음을 놓았다.

서둘러 뒤를 따라가는 헤론 후작은 여전히 놀람 그 자체였다.

‘엄청난 높이에서 내려왔다. 초인들도 감히 장담 못할 높이였는데…….’

그는 걷히기 시작한 먼지 사이로 새로운 인물이 서 있는 것을 보았다. 그도 처음 보는 홀베른의 국왕이 분명할 것이다.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킨 헤론 후작은 헝클어진 머리를 손으로 가다듬으며 걸음을 빨리했다.

“전하! 케이론의 헤론 후작께서 오셨습니다.”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는 홀베른 국왕. 헤론 후작은 연무장에 한쪽 무릎을 꿇고 오른손을 가슴에 대었다.

“케이론의 헤론이 홀베른의 왕을 뵙습니다!”

“어서 오시오. 후작!”

홀베른 국왕은 매우 차가운 분위기를 풍겼다. 그에게서 감히 범접하지 못할 기도가 느껴지자 헤론 후작은 다시 침을 삼켰다.

“무슨 일 때문인지는 모르나 잠시 기다려 주시겠소?”

“그리하겠습니다.”

“오늘은 그냥 넘어가시는 것이…….”

룻거 후작이 짐짓 걱정스러운 투로 말을 건네자 홀베른 국왕은 검을 뽑아 들며 담담히 말했다.

“하루를 거를 수 없는 게 수련이 아닌가? 위험하니 잠시 물러나 있게.”

“알겠습니다. 가시지요.”

둘은 다시 멀찌감치 떨어졌다.

헤론 후작은 마른침을 삼켰다. 신비에 가려진 홀베른 국왕의 무력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다는 것에 그는 묘한 흥분마저 생겨났다.

그에 대한 소문은 무성했다. 대륙의 초인보다 더 강하다는 말도 있고, 그가 마법까지 가능한 마검사란 말도 나돌았다. 룻거 후작은 연무장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헤론 후작을 보고는 내심 웃었다.

작전이 착착 들어맞아 갔다. 이제 홀베른 국왕이 깜짝 놀랄 만한 실력만 보여 주면 되는 것이다.

“시작하는군요.”

꿀꺽!

헤론 후작의 침을 삼키는 소리를 신호로 대련이 시작되었다.

혁련천후의 입가에 웃음이 걸렸다.

언제 왔는지 그 옆에는 담대소천이 서 있었다.

“저 정도면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제가 다 놀랄 정도로 대단합니다. 설마 저 정도였을 줄은 몰랐습니다.”

“헤론을 통해 케이론이 홀베른을 보고 있다. 확실하게 기를 눌러놔야 요란과의 전쟁에서 지휘권을 우리가 쥘 수 있다. 아직은 모자란다.”

“저러다가 심장 마비로 죽어 버릴까 걱정입니다, 하하!”

“레이나는 만만치 않은 여자야. 비록 너희들의 강함을 탐내면서도 부러워하지만 어디까지나 제국의 공주다. 당연히 몸에 박힌 권위를 쉽게 털어 내진 못한다. 그녀에게서 지휘권을 양보받으려면 저 헤론의 정신을 압도해야 한다. 너도 뛰어들어!”

“저도 말입니까?”

혁련천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시각적인 효과를 좀 부려 가면서 해 봐.”

“흠! 알겠습니다.”

헤론 후작은 놀라움으로 몸까지 떨었다.

기사들을 상대로 펼치는 홀베른 국왕의 무력은 소문 이상이었다. 비록 대련이라 직접 평가를 할 순 없었지만 느껴지는 마나만으로도 그가 엄청난 강자임에는 분명했다.

드드드…….

검과 검이, 마나와 마나가 부딪치자 그들이 선 곳까지 은은한 진동이 느껴졌다. 그때 룻거 후작이 속삭이듯 말했다.

“장군께서 오시는군요.”

“장군? 장군이 뭐요?”

“아! 하하! 새로 창설된 부대의 수장을 일컫는 말입니다.”

룻거 후작이 중원어로 장군을 지칭했기 때문에 그는 알아듣지 못했다. 룻거 후작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던 헤론 후작은 담대소천을 발견하고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역시 이곳에 있었구나. 그럼 다른 이들도 모두 이곳에…….’

레이나 공주가 절실히 원하는 자들이 그들이다.

그런데 그들이 이곳에 있다면 자신들의 편으로 만들기란 물 건너가는 것이다. 헤론 후작은 씁쓸함을 금치 못했다.

“저자가 장군이란 말이오?”

“말씀을 조심하십시오. 이곳에선 국왕 전하보다 높으신 분입니다.”

“뭣이! 그게 무슨……!”

헤론 후작의 눈이 튀어나올 듯 부릅떠졌다.

이건 또 무슨 말인가? 왕보다 높다니…….

룻거 후작은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차차 알게 되실 겁니다. 오! 두 분께서 대련을 하실 모양입니다.”

놀람을 넘어 황당함까지 품은 헤론 후작은 다시 연무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기사들이 물러나고 담대소천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그가 홀베른 국왕을 보며 옅은 미소를 보였다.

“전력으로 한번 싸워 볼까?”

“제가 감히……!”

“지나친 겸손은 나를 모욕하는 것이야.”

담대소천이 청룡언월도를 비껴들며 자세를 취했다. 드래곤의 뼈로 새롭게 제작된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파괴력 넘치는 무기로 탈바꿈한 상태였다.

홀베른 국왕이 검을 잡은 손에 힘을 주면서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그럼, 한 수 배우겠습니다! 먼저 가겠습니다!”

“좋지! 와라!”

둘의 격돌이 화려한 섬광과 함께 시작되었다.

그날 밤, 헤론 후작은 레이나 공주에게 자신이 본, 모든 것을 보고했다. 그가 놀란 것 이상으로 레이나 공주도 놀랐다.

또한 담대소천 등이 이곳에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상당한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레이나 공주는 헤론 후작에게 또 다른 명을 내렸다. 그게 무엇인지는 오직 둘만이 알 뿐이다.

* * *

야심한 밤, 혁련천후는 뜻밖의 방문자를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표정이 왜 그래요?”

아리엘이었다.

갑주가 아닌 엘프의 복장을 한 그녀는 고고한 달빛과 어우러져 무척 아름다웠다. 창문에 어깨를 기대고 선 그녀는 짐짓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창문에 세워 둘 건가요?”

“무슨 일이지? 이 시간에…….”

아리엘은 창문에서 뛰어내리며 대뜸 얼굴을 내밀며 입을 놀렸다.

“그냥 잠이 오질 않아서…… 안 되나요?”

“당연히!”

“왜요?”

“난 밤 고양이를 무척 싫어한다. 특히 인간의 말을 할 줄 아는 밤 고양이는 더더욱 싫어하지.”

“야옹!”

아리엘이 고양이를 흉내 내자 혁련천후는 어이가 없어 웃었다. 그러자 아리엘은 환하게 웃으며 더욱 가까이 다가왔다. 혁련천후는 그녀가 다가온 만큼 뒤로 물러나며 다시 미간을 찌푸렸다.

“난, 당신이 좋아요. 무척!”

“쓸데없는 소리. 난 아내와 아들이 있는 사람이다.”

“하나 더 생긴다고 다를 게 있나요? 밥숟가락 하나 더 놓는 것뿐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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