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무사-379화 (377/425)

# 379

<귀환무사 379화>

귀환무사 2부

154화

그의 움직임은 저공비행을 하는 제비처럼 유연하고 빨랐다.

하지만 첨탑엔 루안도 미처 모르고 있는 것이 있었다.

등불을 대신해 천장에 박힌 구슬들. 그것은 단순한 용도로 설치해 놓은 것이 아니었다. 구슬들은 루안의 모든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쉐인에게 전달해 주고 있었던 것이다.

쉐인은 무심결에 쳐다본 구슬에 누군가가 움직이는 것을 발견하고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감히 어떤 놈이…….”

그는 구슬 가까이로 다가가 유심히 쳐다보았다. 그의 주름진 두 눈이 부릅떠졌다.

“루안! 저놈이 왜…….”

맥마흔으로 변신한 것도 소용없었다. 그는 대번에 구슬 안의 인물이 루안임을 알아보았다. 쉐인의 수염이 부르르 떨림을 보였다.

그는 자신도 장담할 수 없는 강자다. 마스터를 초월한 검술에다 마법 능력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러 있음을 알고 있었다. 생전의 테세우드 공작도 그러한 루안의 능력 때문에 그를 꽤 꺼렸다.

루안은 자신이 보던 모든 것들을 서둘러 모종의 장소에 넣고는 마법 열쇠로 채우고는 지팡이를 들고는 구슬 앞에 섰다. 구슬 옆에는 수십 개의 손잡이가 달린 길쭉한 통이 세워져 있었는데 그중 가장 윗부분의 손잡이를 잡아 내렸다.

그러자 구슬 안에서 번쩍이는 빛들이 난무했다.

“차라리 잘되었다. 오늘 네놈을 이곳에서 죽여 주겠다, 루안.”

* * *

“이크!”

루안은 갑작스럽게 사방에서 날아든 빛의 덩어리들을 피해 뒤쪽으로 몸을 날렸다. 이미 그의 전신은 은은한 마나의 방탄막이 떠올라 있었는데 빛의 덩어리들이 스치고 지나간 곳은 구멍이 나 있었다.

간발의 차이로 위기를 모면한 그는 어깨를 으쓱하며 호흡을 골랐다.

“이거 만만치 않은걸?”

루안은 움직임을 잠시 멈추고 다시 곳곳을 세밀하게 살폈다.

하지만 이번 통로에서는 그 어떤 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구조물이라고는 천장에 박힌 구슬들이 전부였다.

잠시 구슬을 유심히 쳐다본 루안은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직선 통로를 벗어나 우측으로 구부러진 곡선 통로에 들어서자 뭔가 음습한 기운이 오감을 자극하고 들었다.

치르르…….

루안의 손에 마나로 이루어진 검이 나타났다.

“좋아! 이까짓 함정으로 나를 어쩌진 못하지. 늙은 마법사 나리.”

루안은 허공에 뜬 채로 빠르게 통로 중앙으로 날아갔다. 그가 구부러진 통로의 끝 부분에 이르렀을 때였다.

팍!

뭔가 터지는 소리가 울리며 통로가 순식간에 뿌연 연기로 가득 채워졌다. 루안은 황급히 호흡을 중단하고 더욱 빠른 속도로 끝부분으로 몸을 날렸다.

그가 바닥에 발을 내리려는 순간, 누군가가 벽에서 튀어나왔다. 번쩍하는 무엇인가가 루안을 노리고 날아들었는데 엄청나게 큰 칼이 무지막지한 속도로 날아오자 루안의 몸이 빠르게 회전하며 옆쪽으로 튕겨 나갔다.

콰직!

그가 내려섰던 곳의 벽면이 무너졌다.

“휴! 제법인걸. 자칫했으면 당할 뻔했잖아.”

루안은 여전히 여유로워 보였다.

하지만 눈빛은 절대 그렇지 못했다. 나타난 상대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가늘게 흔들렸다.

쿵! 쿵!

상대는 거대한 체구를 지닌 기사였다. 칙칙한 회색의 갑주를 걸친 그는 루안의 키만 한 거대한 칼을 붕붕 휘두르며 루안을 덮쳐 왔다.

“후후! 이따위 속임수로 나를 잡으려고 했나? 어림도 없다! 쉐인!”

루안이 곧장 기사를 향해 육탄으로 달려들었다. 동시에 거대한 칼이 그의 육신을 동강 낼 듯 떨어졌다. 루안과 기사의 육신이 정통으로 부딪치기 직전에 루안의 몸에서 번쩍하더니 눈부신 빛이 뿜어졌다.

“꺼져 버려!”

파츠츠…….

거대한 기사의 육신이 흐릿하게 변하기 시작하더니 빛의 가루로 변하며 흩어졌다. 살아 있는 생명체가 아니었단 말인가? 그가 사라진 자리엔 그 어떤 흔적조차 없었다. 루안의 입가에 찬웃음이 걸렸다.

그는 주변을 둘러보더니 갑자기 소리쳤다.

“쉐인! 숨어서 쥐새끼 같은 수작질일랑 말고 떳떳이 나서보시지!”

마나를 실은 탓에 밀폐된 공간이 쩌렁쩌렁 울렸다.

* * *

쨍그랑!

벽에 걸렸던 액자들이 바닥으로 떨어지며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쉐인은 루안의 고함에 든 마나를 감지하고는 새삼 루나의 능력을 실감했다. 첨탑 전체가 은은한 진동까지 보였다.

탐스러운 수염이 파르르 떨림을 보인다. 함정이나 환상으로는 그를 어쩔 수 없음을 깨달은 그는 잠시 갈등했다. 일대일로는 자신이 없었다.

그렇다고 이대로 물러나기엔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다. 더욱이 이곳엔 타인이 보아선 안 되는 중요한 것들이 수두룩했으니…….

잠시 갈등했던 쉐인인 눈동자를 번득이며 입술을 곱씹었다.

“내가 죽는 일이 있어선 절대 안 된다. 각하께서 부활하실 때까지 난 무조건 살아 있어야 한다. 그래야 그분의 부활이 가능해진다.”

이건 무슨 소린가?

테세우드는 분명 죽었지 않은가? 그런데 그가 부활을 한다니…… 이해되지 않는 말들을 중얼거린 쉐인은 고대의 서적들을 자신의 이동식 인벤에 주워 담기 시작했다.

“쉐인!”

드드드…….

루안의 고함이 또 들려오자 더 강력한 진동이 발생했다. 서적을 다 쓸어 담은 쉐인은 창을 열고 밖으로 몸을 날렸다. 허공에 몸을 띄운 그가 지팡이를 앞으로 뻗으며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기묘한 주문이 끝나자 힘차게 지팡이를 휘둘렀다.

“수만 톤의 무게를 이겨 낼 수는 없을 것이다! 죽어라! 루안!”

쾅!

첨탑의 하단 부위에 강력한 폭발이 일어났다. 폭발의 여파가 사방으로 퍼져 나가자 성 전체가 지진을 만난 듯 세차게 흔들렸다.

콰르르르…….

거대한 첨탑이 붕괴되며 엄청난 굉음과 자욱한 먼지가 하늘을 덮었다. 난데없는 괴변에 성 곳곳에서 아우성이 일어나며 수많은 기사들이 튀어나왔다.

쉐인은 허공에 몸을 띄운 채, 첨탑이 완전하게 가라앉을 때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혹시나 루안이 탈출을 할까, 그는 지팡이 끝에 강력한 마나를 담고서 주변을 경계했지만 첨탑이 완전하게 무너질 때까지도 루안은 나타나지 않았다.

“진즉, 우리에게 섰다면 출세일로를 걸었을 것인데…… 어리석은 놈.”

쉐인의 얼굴이 다소 착잡함을 보였다.

비록 가는 길이 달랐지만 루안은 무척이나 아까운 인재였던 까닭이다. 먼지로 가득한 하늘을 슬쩍 쳐다본 쉐인은 어디론가 몸을 날려 사라져 갔다.

* * *

텔레포트로 홀베른에 도착한 헤론 후작은 곧장 왕궁으로 입궁했다.

룻거 후작이 그를 맞았다. 국왕과의 접견을 요구하는 헤론 후작의 태도에서 조급함이 묻어났다.

“지금 왕께선 접견을 하실 수 없으십니다. 내일 오후쯤에나 가능할 것 같습니다만…….”

“급한 일이니 기별을 넣어 주시오!”

“곤란합니다. 그러니 오늘은 이만 돌아가셔야겠습니다.”

룻거 후작은 정중하게 거절했다.

헤론 후작은 난감했다. 당연히 오면 되겠거니 여기고 왔건만 접견이 불가하다니…….

그는 다시 한 번 말을 꺼냈다.

“진정 오늘은 뵙지 못하겠소?”

“죄송합니다.”

“허어, 나 참!”

헤론 후작은 난감함을 지우지 못해 헛웃음을 지었다. 룻거 후작이 담담한 기색으로 말을 건넸다.

“돌아가시기가 뭣하면 오늘은 이곳에서 묵으시고 내일 전하를 뵈옵는 게 어떻겠습니까?”

“좋소! 그렇게 하겠소.”

“모시겠습니다.”

같은 후작의 위에 올라 있었음에도 둘의 태도는 다소 차이가 있었다. 제국과 왕국의 귀족에서 발생하는 무게감의 차이라고 봐야 했다.

헤론 후작은 룻거 후작의 뒤를 따르며 넌지시 물었다.

“이곳에 계시지 않는 것이오?”

홀베른 국왕을 물음이다.

“이곳에 계십니다만, 상왕께서 부름을 하시는 바람에 급히 궁을 비우셨지요.”

“뭐요? 상왕?”

헤론 후작이 깜짝 놀랐다. 홀베른에 상왕이 있음은 처음 듣는 얘기였다. 그는 다소 무례하다고 비칠 수도 있었지만 룻거 후작의 어깨를 손으로 잡으며 물었다.

“아니, 상왕이 계셨소?”

“그렇습니다. 내일 어쩌면 상왕 전하도 뵈올 수 있으실 겁니다.”

“허어! 그렇다면 전대의 국왕께서 지금껏 생존해 계신단 말입니까?”

룻거 후작은 대답 없이 미소만 지어 보이고는 다시 걸음을 놓았다. 헤론 후작은 다시 그를 따라붙으며 물었다.

“하나만 더 물읍시다. 혹시 이곳에 흑발에 흑안을 지닌 기사들이 들어오지 않았소?”

“홀베른은 예로부터 그런 기사들이 많았습니다만…….”

“최근에 들어온 자들을 묻는 것이오. 매우 사납게 생긴 자들이오만…….”

룻거 후작이 모를 리가 없다.

하지만 그는 역시 대답을 않고 빙그레 미소 짓고는 다소 걸음을 빨리했다. 그가 대답을 않고 웃기만 하자 헤론 후작은 더욱 궁금해졌다.

하지만 여기서 더 물으면 실례가 되기 때문에 그는 궁금증을 억누르고 그의 뒤를 따랐다.

이번엔 앞서 걷던 룻거 후작이 물었다.

“그분들은 왜 찾으십니까?”

“그게…… 아니오. 케논 산맥에서 잠시 인연을 맺었던 자들이라 물어봤소.”

헤론 후작은 그냥 그렇게 대답하고는 궁의 곳곳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궁 밖으로 나서자 연무장에서 수련 중인 케니언 크로우 기사 단원들을 보고는 눈빛을 발했다.

“상당히 독특한 의상이군. 이곳의 전통 복장이오?”

“하하! 그런 셈입니다.”

그는 기사들이 걸친 화산의 무복을 꽤 특이하다고 여겼다. 넓은 소맷자락에 다소 헐렁한 바지는 케이론에선 일반 평민들이 주로 입는 평상복에 가까웠다.

궁 안에서 수련한다면 무조건 기사들이다. 그것도 꽤 지위가 높거나 왕의 총애를 받는 기사들일 가능성이 크다고 봐야 했다. 그런 기사들이 평민들이나 입는 옷을 걸쳤다는 것의 꽤 의아했다.

“저들은 누구요?”

“상왕께서 직접 조련 중이신 기사들입니다. 장차 홀베른을 이끌 아이들입지요.”

“흐음…….”

헤론 후작은 걷는 내내 연무장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룻거 후작의 입가에 묘한 웃음이 걸렸다. 마침 연무장의 데얀이 그를 바라보았다. 룻거 후작이 살짝 고개를 끄덕이자 데얀이 갑자기 소리쳤다.

“십 분 동안 전력으로 대련한다! 평소 대련하던 상대끼리 정렬하라!”

기사들이 빠르게 두 줄로 늘어섰다.

“대련을 하는 것이오?”

헤론 후작이 호기심을 드러내며 물었다.

“그런가 봅니다.”

“흠! 잠시 구경해도 되겠소?”

“그러시지요. 기왕이면 잘 보이는 곳으로 가시지요.”

룻거 후작은 그를 연무장의 가운데 연단으로 안내했다. 제법 가까운 곳이라 기사들의 호흡 소리까지 들렸다.

“그곳은 위험합니다! 조금 뒤쪽으로 물러나십시오!”

데얀이 그렇게 말하자 헤론 후작이 룻거 후작을 쳐다봤다. 룻거 후작은 여전이 웃음을 입에 걸고 있었다.

“아마, 대련시에 파생되는 기운 때문에 후작께서 다치실 것을 염려하는 모양입니다. 조금 뒤쪽으로 물러나시는 것이…….”

그 말에 헤론 후작은 불쾌함을 드러냈다.

자신은 대륙에 소문이 자자한 마스터다. 물론 홀베른의 기사들도 그걸 모를 리 없다.

그런데 고작 파생된 기운에 다칠 것을 염려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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