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무사-378화 (376/425)

# 378

<귀환무사 378화>

귀환무사 2부

153화

“저들이 숭배하는 그는 어떨까?”

문득 혁련천후는 얼마나 강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강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진정한 위력은 아직까지 드러낸 적이 없었기에 함께 넘어온 존재들을 제외하면 아무도 그의 진정한 위력을 모르는 상태다.

데얀을 주먹으로 제압할 때도 모든 힘을 다하지 않은 건 이미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아리엘은 무심결에 주변을 살폈다. 혁련천후를 찾기 위함이었다.

‘내가 왜 이러는 거야…….’

생각만 해도 보고 싶어지고 가슴이 떨렸다.

심호흡을 한 그녀는 살짝 붉어진 뺨을 손으로 쓰다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뒤쪽에서 묵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괜찮아진 모양이군.”

아리엘의 몸이 빙그르르 돌아갔다. 놀란 얼굴은 돌아가는 순간 환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오셨어요?”

혁련천후였다. 그는 입가에 옅은 미소를 머금고 아리엘을 바라보았다.

“아이들은 좋아하는지 모르겠군.”

“좋아해요. 무척…… 모두가 감사히 여기고 있어요.”

“그래…… 들어가지.”

“술 마시나요?”

아리엘은 혁련천후의 곁으로 바짝 달라붙었다. 가슴이 닿은 팔에서 물렁대는 느낌이 느껴지자 혁련천후는 슬쩍 몸을 뺐다. 그때, 뒤쪽에서 말이 들려왔다.

“어! 너무 가까운데…….”

아리엘은 그제야 뒤를 따라오는 혁련소의 존재를 눈치챘다. 깜짝 놀라서 돌아본 그녀가 다시 놀랐다. 그와 혁련천후가 판에 박은 듯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아버지! 애인 생기셨습니까? 하하!”

“쓸데없는 소리!”

‘아! 저 사람이 잃어버렸다는 그 아들이었구나.’

그제야 아리엘은 혁련소가 누군지 알았다. 혁련소와 아리엘의 시선이 허공에서 얽혔다. 혁련소가 씩 웃으며 말했다.

“어머니들이 깨어나시면 조심하세요. 엄청 무서운 분이 계시거든요, 하하! 저 먼저 가겠습니다!”

손까지 흔들며 사라지는 혁련소를 혁련천후는 슬쩍 인상을 찌푸린 채 바라보았다. 여전히 팔을 통해 뭉클한 느낌이 전해져 오자 다시 몸을 뺐지만 아리엘은 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묘한 웃음을 머금고 입을 놀렸다.

“흠! 아들까지 있는 유부남한테 저처럼 예쁜 여잔 너무 과한 상대가 아닌가요?”

“과하니까 좀 떨어지시지.”

“훗! 요즘 제가 슬프잖아요. 그러니 좀 참으세요.”

“전혀……!”

그러는 와중에 둘은 정문을 넘어서 혁련천후가 머무는 중앙 건물로 들어섰다. 그때 건물 위쪽에서 휘파람 소리가 울렸다.

휘이익!

“그림 좋습니다!”

혁련소였다. 옆엔 우드와 요란, 그리고 써튼 등이 나와 있었는데 모두가 크게 놀란 표정들을 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혁련천후와 여자라는 그림은 도무지 어울리지 않았던 까닭이다.

“그림 좋다는데요?”

“강제로 떨어뜨릴까?”

“흠! 알았어요.”

아리엘이 그제야 살짝 떨어졌다. 휘파람을 불어 대던 혁련소는 혁련천후의 싸늘한 눈초리를 받고서야 멈추었다. 에이미 공주가 그를 맞이하기 위해 총총걸음으로 나왔다. 앞치마를 두른 그녀의 전신에서 구수한 요리 냄새가 진동했다.

아리엘이 반색을 하며 입술을 놀린다.

“어머! 맛있는 거 하나 봐요?”

“어서 오세요, 아리엘. 전하! 식사 준비가 되었습니다. 이쪽으로…….”

에이미 공주의 안내를 받으며 걷던 혁련천후가 우뚝 걸음을 멈추고 아리엘을 내려다보았다. 그가 갑자기 자신을 내려다보자 아리엘은 피하지 않고 눈을 반짝이며 마주보았다. 그녀의 도발적인 반응에 에이미 공주가 오히려 눈을 동그랗게 했다.

아리엘의 도발적인 모습에 실소를 흘린 혁련천후가 눈가에 주름을 잡으며 말했다.

“그 아이들을 불러오지. 가인과 카츄라고 했던가?”

“그들은 왜요?”

“둘의 능력이 필요할 것 같아서…….”

“그러죠.”

아리엘은 대답을 해 놓고도 그냥 에이미 공주가 가리킨 식당 쪽으로 걸음을 놓았다. 혁련천후의 눈가에 잡힌 주름이 슬쩍 깊어졌다. 에이미 공주가 아리엘의 팔을 잡으며 눈빛으로 사람들을 부르지 않고 어딜 가냐고 물었다.

아리엘이 양손을 으쓱해 보이며 에이미 공주를 마주 보았다. 혁련천후의 눈치를 슬쩍 살핀 에이미 공주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이들을 불러오라고 하셨잖아요.”

“불렀어요.”

“예?”

무슨 소리냐며 눈을 동그랗게 치켜뜨는 에이미 공주. 그녀에게 눈웃음을 지어 준 아리엘이 혁련천후를 돌아보며 꽤 요염하게 웃었다.

“우리만의 통신 수단이 있거든요. 불렀으니까 그만 인상 펴시고 들어가시죠.”

* * *

식당으로 들어서던 혁련천후는 우측 담장 너머에서 요란한 기합 소리가 들려오자 방향을 바꾸어 그곳으로 걸었다.

쿵! 쿵!

담장이 흔들릴 정도의 충격파가 연이어 전해졌다. 뒤이어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으합!”

“캐스팅이 너무 늦어!”

혁련천후는 목소리만으로 누군지 알 수 있었다. 담장 앞에 이른 그의 육신이 바람처럼 사라졌다. 담장을 넘어선 혁련천후의 눈에 요란과 우드가 비쳤다. 그리고 그들의 한참 뒤편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수련 중인 써튼도 보였다.

“헉! 헉! 죽겠습니다. 쉬었다 하죠.”

우드는 이미 전신이 땀으로 흠뻑 젖은 상태였는데 두 손으로 무릎을 짚고서 연방 가쁜 숨을 토해 내고 있었다. 그 앞에선 요란은 허리에 손을 얹고는 좌우로 고개를 흔들며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정도 의지로 어떻게 강해질 거야. 마법사는 타고나는 것도 있지만 노력과 의지가 더 중요한 법인데…….”

“헉! 헉! 먹은 게 모조리 올라올 것만 같습니다. 조금만, 아주 조금만 쉬었다가 하시죠.”

우드는 결국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요란이 어이없다는 투로 그를 다그쳤다.

“쯧쯧! 그래가지고 원수는 고사하고 너도 죽을 거다. 완전 저질 체력을 지녔잖아, 이거!”

“헉! 헉! 헉!”

우드는 아예 뒤로 벌렁 누우며 요란의 도발을 무시했다.

“아예 눈을 감고 자라, 자! 이런…….”

“고맙습니다. 좀 자고 일어나겠습니다!”

“뭐라고?”

요란은 어이가 없다는 빛으로 우드를 내려다보았다. 그러다가 자신도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으며 품속에서 물병을 꺼내 입으로 가져갔다.

물을 마시던 요란이 물병을 입에 문 채로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혁련천후가 오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반사적으로 튕기듯 일어난 그는 허리를 숙였다.

“오셨습니까?”

그러면서 발로 우드의 옆구리를 툭툭 걷어찼다. 그러나 우드는 그가 장난을 치는 것으로 알고는 눈조차 뜨지 않았다.

“수련 중인가?”

“그렇습니다만, 보시다시피…….”

요란은 뻗어 버린 우드를 가리키며 헛웃음을 지었다. 혁련천후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늘어졌던 우드가 빛의 속도로 일어섰다.

“오, 오셨습니까?”

“힘든 모양이군.”

“아닙니다! 견딜 만합니다!”

언제 지쳤냐는 듯, 씩씩하게 대답하는 우드의 어깨를 툭 두드려 준 혁련천후는 요란에게 시선을 돌렸다.

“요란도 수련을 받아야 하지 않나?”

“그러고 싶습니다만…….”

그러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6서클에 근접하는 자신을 지도해 줄 사람이 어디 흔한가. 대마법사 정도라면 모를까. 요란의 얼굴에 떠오른 씁쓸함을 놓치지 않은 혁련천후는 가볍게 웃는 얼굴로 말했다.

“너에게 도움이 될 만한 아이들이 있다. 너희들이 구분 짓는 서클이라는 것에서 어느 정돈지는 모르겠다만 적어도 대마법사에 준하는 능력을 지녔다는 건 확실하지. 그 아이들에게 도움을 받아 봐.”

요란의 안색이 급변했다. 두 눈이 금방이라도 쏟아질듯 부릅떠졌다.

“꽤 어린 친구들을 스승으로 모시는 게 쉽지는 않을 텐데?”

“그, 그런 건 상관없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우드도 덩달아 좋아한다. 그때 써튼이 뛰어와 넙죽 허리를 숙였다. 물에 빠졌다가 나온 사람처럼 전신을 땀으로 목욕을 한 그는 표정만큼은 무척 밝았다.

“실력이 제법 늘었다고 들리더군.”

“아직 멀었습니다!”

부동자세로 대답하는 써튼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 준 혁련천후는 셋을 느릿하게 쓸어 보며 말했다.

“강해져야 한다. 그래야 너희들이 지키고자 하는 소중한 것들을 지켜 낼 수 있다. 의지만 있다면 길은 열려 있으니 모든 건 너희들에게 달렸음을 잊지 말도록.”

“알겠습니다!”

셋의 대답 소리가 주변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제2장 루안, 쉐인과 싸우다

맥마흔으로 변신한 루안은 정탐을 하러 온 사람으로는 보기 힘들 정도로 여유롭게 성의 곳곳을 누비고 다녔다.

오히려 그런 모습 때문에 성내의 기사들은 그를 외부인으로 보지 않았다. 웃으며 손까지 흔들어 주니 누가 의심할 수 있으랴. 비교적 사람들의 통행이 잦은 곳을 벗어나 다소 한적한 곳으로 들어선 루안의 눈빛이 달라졌다.

그는 고개를 들어 성곽의 가장 높은 곳을 응시했다. 두 개의 첨탑이 이어지는 교각의 중앙에 창이 만들어져 있었는데, 그 안에 누군가 있었다.

‘쉐인!’

루안은 그가 대마법사 쉐인임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루안은 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워낙 외진 곳이라 오가는 사람들은 없었다. 루안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걸리는 것과 동시에 그의 육신이 바람을 타고 첨탑으로 날아올랐다.

스슥!

가볍게 내려선 루안은 사방을 둘러봤다. 권역 전체가 한눈에 들어왔다. 저 멀리 초원을 가로 흐르는 강까지 보였다.

‘멋진 곳에 자리를 잡았군. 하지만 주인을 잡아먹은 땅이니 명당은 아니군, 후후후!’

미소를 흘린 루안은 빠르게 첨탑으로 스며들었다.

붉은 벽돌로 이루어진 좁은 통로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루안은 사방에서 느껴지는 살벌한 기운에 걸음을 멈추었다.

‘뭐가 있기에 이토록 지저분한 함정들을 잔뜩 해 놓은 거지?’

루안은 통로의 좌우, 벽면을 날카롭게 살폈다.

암기들이 쏟아져 나올 장치들이 곳곳에 있었다. 아주 세밀하게 보지 않으면 찾아내기 힘들 정도로 교묘한 장치였지만 루안의 눈을 속일 순 없었다. 루안의 입가에 다시 묘한 웃음이 걸린다.

‘형편없군. 바닥을 밟지만 않으면 된다 이거지?’

둥실!

루안의 육신이 허공으로 둥실 떠올랐다. 통로의 중간 정도로 떠오르자 머리가 천장에 닿을락 말락 했다. 머리가 닿아도 함정은 발동된다. 때문에 루안은 몸을 앞으로 엎드리는 자세를 취하고는 훌쩍 통로의 건너편으로 내려섰다.

루안은 기감을 최대한 열었다. 대마법사 쉐인의 기운을 느끼고자 했지만 걸려 드는 기운은 전혀 없었다.

‘호흡이 감지되지 않는다면 특별하게 만들어진 방이라는 건데…… 쉐인! 그곳에 뭐가 있는 거지?’

루안은 빠르게 움직이며 곳곳에 설치된 함정들을 어렵지 않게 통과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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