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무사-377화 (375/425)

# 377

<귀환무사 377화>

귀환무사 2부

152화

“그 문제는 차후 다시 논의토록 하지. 우선은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것이 너와 나의 지상 과제다.”

“반드시 적을 몰아내고 트로이안의 심장을 바치겠습니다!”

둘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혔다.

뜨거운 기운이 주변을 몰아쳤다. 모든 것이 걸린 전쟁이 곧 시작된다. 반드시 이겨야만 아내들을 살려 내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

두 눈이 섬광을 발했다.

“아내들을 살리고 중원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나는 악마가 될 것이다. 막아서는 놈들이 오십만이 아니라 백만이라도, 내가 가고자 하는 길에 걸림돌이 된다면 모두 베어 버릴 것이다.”

* * *

케이론 제국의 황궁이 심야에도 불구하고 드나드는 사람들로 무척 소란스러웠다.

거의 대부분의 행정을 주관했던 테세우드 공작파의 인물들이 태업에 들어간 지금, 레이나 공주가 거의 모든 황실 업무를 맡고 있었는데, 그녀의 거처에는 상당수의 인물들이 뭔가에 대해 심각하게 논의하고 있었다.

다소 강퍅한 인상의 중년인이 무거운 어조로 좌중을 둘러보며 말을 늘어놓고 있었다.

“그들이 홀베른으로 가려면 본 제국의 북부 지역을 관통해야만 가능합니다. 그 시간이 불과 한 달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대응할지에 대해 서둘러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늦으면 그들을 막아 낼 시간이 사라지게 됩니다.”

“그들과 맞선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하오. 지금도 테세우드를 따르던 지휘관들은 여전히 황실에 고개를 꼿꼿이 쳐든 상태가 아닙니까? 그 전력이 무려 제국의 육십 퍼센트에 해당합니다. 그들이 명령에 불응한다는 건 불을 보듯 훤한 것, 고작 사십 퍼센트의 전력으로 요란과 맞설 수는 없습니다!”

장대한 체구를 지닌 인물이 분명하게 반대를 표하고 나서자 헤론 후작이 끼어들었다.

“홀베른이 비록 독립된 왕국이라고는 하지만 엄연히 본, 제국의 위성 국가가 아닙니까? 그들이 요란의 말발굽에 무참히 무너져 내리는 것을 보고만 있겠다니요. 그건 도의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어차피 요란은 홀베른을 무너뜨리면 다음은 반드시 우리를 노리고 들 것입니다. 당연히 우리도 지원 병력을 홀베른과의 접점 지역으로 급파해야 합니다!”

“헤론! 그럼 수도의 방위는 어떡할 셈인가? 우리가 주력군을 내보낸 사이, 테세우드를 따르던 자들이 반란이라도 일으킨다면 그건 어떻게 막아 낼 셈인가?”

“맞소! 그자들이 그런 호기를 놓칠 리 없소! 지원 병력의 급파는 불가하오!”

헤론의 의견에 반대하는 자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틀린 말이 아니었기에 헤론 후작도 레이나 공주도 딱히 다른 말을 꺼내지 못했다. 어쩌면 당장은 요란보다 테세우드를 따랐던 자들이 더 위험한 적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지금도 공공연히 반란에 대한 말들이 난무하고 있었다.

“마마께서는 어찌 생각하십니까?”

누군가가 레이나 공주를 바라보며 물었다.

레이나 공주는 잠시 침묵을 지켰다. 모두가 그녀를 바라보며 소란을 가라앉혔다. 실내는 이내 무거운 정적이 흘렀다.

잠시, 모든 이들을 둘러본 레이나 공주가 입을 열었다.

“여기 있는 모두는 케이론의 소중한 분들이기 이전에 제국을 지켜야 할 귀족이자 국민입니다. 케이론의 모든 국민들은 명예 서약이란 것을 합니다. 신께 맹세하고 스스로에 각인을 찍는 서약식에서 우리는 말합니다. 명예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칠 것이라고…….”

그녀는 말끝을 흐리고는 다시 좌중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다시 말을 이어 갔다.

“지금이 그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홀베른을 도와야 합니다. 그들은 케이론의 위성 국가이기 이전에 우방국입니다. 친구의 위기를 외면하고서 어떻게 명예롭다 할 수 있겠습니까? 또한 그들은 전쟁의 참화에 짓밟힐 위기에 처했던 아르소와 다크의 영지민들의 이주를 받아들여 그들을 보호해 주었습니다! 대국으로서의 그 명예가 홀베른보다 못하다면 대륙의 모든 사람들이 우리를 비웃고 손가락질할 것은 당연합니다.”

그녀는 황제와도 같은 위엄을 떨쳐 내고 있었다.

단호한 의지가 담긴 눈동자와 지그시 깨문 입술은 그녀의 의지를 대변했고 좁고 가녀리지만 결코 굽혀지지 않은 어깨는 그녀가 거론한 명예의 무게가 산처럼 크고 중한 것임을 모두에게 알리고 있었다.

“좋습니다! 하지만 저들의 준동을 대비할 방법은 세워 놓아야지 않겠습니까?”

가장 강력하게 출전을 반대했던 인물이 다소 흥분한 어조로 말했다. 호흡을 고른 레이나 공주가 본연의 말투로 대답했다.

“그건 제가 책임지고 해 보겠어요. 그동안 여기 계신 분들께는 요란의 이동 동선과 전반적인 전력에 대한 분석을 부탁드리겠어요. 내일 아침, 제국에 공식적으로 홀베른을 돕겠다고 공표하겠어요. 그래야 요란도 섣불리 전 병력을 투입하지는 못할 거예요.”

“알겠습니다! 까짓것 언젠가 붙어야 할 놈들이라면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붙는 것도 좋겠지요, 크흠!”

“옳거니! 그래야 한 놈이라도 더 벨 수 있지 않겠나? 하하하!”

모두가 한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레이나 공주는 살짝 눈시울을 붉혔다. 이들이야말로 진정한 황실의 충신들. 그들이 자신의 말에 따라 승산 없는 전쟁에 기꺼이 목숨을 걸겠다고 나선다. 헤론 후작이 따뜻한 미소로 그녀를 위로했다.

“마마! 저는 홀베른에 다녀오겠습니다. 그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함께 방법을 찾는 것이 좋겠습니다.”

“부탁드려요, 후작님!”

“통신석을 가지고 가니 자주 연락드리겠습니다.”

헤론 후작은 곧장 포탈로 이동했다. 떠나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레이나 공주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또 보길 기대할게요, 숙부들…….”

* * *

수천에 이르던 아르소와 다크의 영지민들은 완공된 집으로 모두 이주를 마쳤다.

모두는 훨씬 넓고 깨끗한 집을 얻은 것에 웃음이 떠날 줄 몰랐다. 대부분이 간단한 귀중품과 옷가지만을 챙겼던 탓에 거의 모든 생활 도구는 나라에서 무상으로 지원했다. 여인들은 깨끗하고 고급스러운 생활 자재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고 사내들은 아내들과 아이들이 좋아하는 모습만으로도 미소 지었다.

또한 그들이 거주하는 강 건너편엔 전설의 종족, 엘프들의 부락이 이미 완성되어 입주를 마친 상태였는데 그들과 같은 공간에서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이주를 한 것을 후회하지 않았다.

곳곳에 구수한 냄새가 퍼졌다.

이주 이후에 첫 식사를 짓는 여인들의 얼굴은 무척이나 행복해 보였다.

“이봐요! 여기 이것 좀 가져가서 드세요!”

여인들이 강 건너편을 향해 소리쳤다. 그녀들의 손에는 갓 구운 빵과 과일즙을 짜서 만든 음료가 들려 있었다. 건너편에서 뛰어놀던 엘프족의 아이들이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머뭇거렸다.

“카츄! 우리 보고 저거 먹으라는데?”

아이들은 카츄를 보며 침을 삼켰다. 카츄는 가인을 돌아봤으나 가인은 아리엘을 쳐다봤다. 아리엘이 고개를 끄덕이자 카츄가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스슥!

“어머나!”

카츄가 갑자기 눈앞에 나타나자 여인들이 깜짝 놀라며 뒤로 물러났다.

“죄송해요. 아직 다리나 배가 없어서…….”

“아하! 괜찮아. 방금 구운 거니까 식기 전에 나눠먹어. 모자라면 말하고.”

빵과 음료를 잔뜩 받은 카츄는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는 다시 강 건너편으로 돌아갔다. 빵을 본 아이들이 무척 좋아하자 여인들은 흐뭇한 미소를 머금고 각자의 집으로 들어갔다.

아리엘은 빵을 하나씩 쥔 아이들을 보며 웃었다.

“천천히 꼭꼭 씹어서 먹어.”

“누난 안 먹어?”

“누난 나중에 궁으로 들어가면 술 마셔야 해.”

가인이 놀란 눈으로 그녀를 돌아봤다.

“술도 마셔?”

“배웠어. 괜찮던데?”

“쯧쯧! 세상 구경하고 오겠다더니 안 좋은 건 다 배웠군.”

“너도 배워 봐. 기분이 꽤 좋아지는 게 마실 만해.”

“됐거든!”

가인은 인상을 쓰며 고개를 돌렸다. 맛있게 빵을 먹던 카츄가 먼 곳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엄청난 마나가 움직여.”

아리엘과 가인이 정색을 하고서 기운을 집중했다. 과연 상당한 마나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새삼 카츄의 능력에 놀란 아리엘은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렇게 안정된 움직임이라면 포털을 통해 누군가가 왔다는 것이야. 난, 궁전으로 가 볼게. 나중에 봐!”

스슥!

아리엘이 사라지자 가인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뒤로 벌렁 누웠다.

“난 잘 테니 무슨 일이 있으면 깨워.”

* * *

모처럼 궁전으로 들어가는 아리엘은 주변을 흘긋거리며 표정을 밝게 했다. 슬픔은 이미 가슴에 새겨 놓은 지 오래다. 살아남은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스스로 강인해져야겠다는 결심을 매일 밤 해 오고 있었다.

그녀는 궁전으로 들어서기가 무섭게 떠오르는 얼굴 때문에 쓴웃음을 지었다. 언제나 차갑게 굳은 얼굴이 한번쯤은 자신을 위해 웃어 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걸음을 가볍게 했다.

“흠…… 전쟁 때문에 정신들이 없네.”

곳곳이 분주했다.

상당수의 기사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전차를 옮기기에 여념이 없었고 전령으로 오가는 독수리들이 분주하게 첨탑으로 날아들었다.

“연무장에 있나 보네.”

눈에 익은 사람들이 보이지 않자 그녀는 연무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연무장이 가까워지자 조금씩 기합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반가운 마음에 그녀는 마법으로 이동하려고 하다가 멈칫했다.

홀베른 왕궁은 마나를 통제하는 곳이다.

자칫 마나의 배열이 뒤틀어지기라도 한다면 꽤 고생을 해야만 한다. 모두가 강력한 마나 통제용 결계가 쳐진 까닭인데 그만큼 홀베른은 강력한 마법사들이 넘쳐 나는 곳이다. 다만 그것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다.

연무장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담대소천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주변에 북궁천소와 왕전 등의 모습도 보였다. 모두가 웃통을 벗은 채, 실전에 가까운 대련을 펼치고 있었다.

그러나 혁련천후는 그곳에 없었다.

아쉬운 마음이 생겨나자 스스로 머쓱한 표정을 지은 아리엘은 연무장의 중앙에 자리한 연단으로 올라가 그 위에 앉았다. 그녀를 발견한 데얀이 손을 흔들며 아는 척을 하다가 왕전의 주먹에 저만치로 날아갔다.

“자식이 대련 중에 한눈을 팔다니…… 죽고 싶냐?”

“으…… 그게, 저기 아리엘이…….”

“아리엘? 어디? 오호! 정말이네?”

왕전이 아리엘을 발견하고는 손을 흔들었다.

“왔냐?”

퍽!

왕전의 복부에 데얀의 주먹이 작렬했다.

“한눈을 파시다니요? 흐흐!”

“이런, 개…… 오냐! 오늘 넌 뒈졌어!”

둘의 어린아이 같은 모습에 아리엘의 입가에 모처럼 환한 미소가 걸렸다. 그들의 옆에는 역시 웃통을 벗은 담대소천이 열 명에 달하는 기사들에게 둘러싸여 울퉁불퉁한 근육을 뽐내며 맨손으로 검을 든 기사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섬뜩한 날카로움이 주변을 난무했지만 담대소천의 육신은 이곳저곳에 번뜩이며 한 방에 한 명씩을 날려 보냈다.

“놀라워. 순수한 체력만으로 저토록 강력함을 발휘하다니…….”

그랬다.

지금 담대소천은 마나를 사용하지 않고 있었다. 그에 반해 기사들에게선 일정량의 마나가 느껴졌다. 결코 만만치 않은 실력을 보유한 케니언 크로우 기사들을 주먹으로, 그것도 마나를 사용하지 않고서 밀어붙인다는 것은 체술로 그랜드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강자가 아니면 불가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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