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무사-376화 (374/425)

# 376

<귀환무사 376화>

귀환무사 2부

151화

제1장 평원의 대전투

[카루가!]

잠결에 들려온 목소리에 카루가는 몸을 뒤척였다.

[카루가!]

다시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카루가는 눈을 비비며 일어섰다. 주변을 돌아보니 아무것도 없었다. 꿈을 꾼 것이라 여긴 카루가는 다시 천을 머리까지 덮어쓰고는 침상에 누웠다. 그때 주변이 울렁거리며 검정색 연기가 뭉글거리며 생겨났다.

조금씩 형체를 갖추어 가던 연기는 이내 붉게 번뜩이는 눈동자로 변했다.

[일어나라! 카루가!]

“아씨! 누구야?”

카루가가 짜증을 내며 벌떡 일어났다. 순간 자신을 내려다보는 눈동자를 발견하고는 크게 놀랐다.

“아버지?”

[그래. 나다, 카루가.]

카루가가 폴짝 뛰어올라 시커먼 연기를 안으려고 했으나 손에 잡히는 것은 허공뿐이었다.

“영혼 소환을 했구나…… 쳇! 괜히 좋아했네.”

[카루가, 시간이 없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잘 들어라.]

“왜 그래?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거야?”

목소리에 초조함이 묻어나자 카루가의 얼굴은 이내 걱정스러운 빛으로 물들었다. 카루가를 바라보는 눈동자에 애틋함이 스치고 지나갔다.

[켈베로스가 어둠의 힘을 깨우려 하고 있다. 엘프의 돌과 아이아스의 심장을 가져가기 위해 놈은 곧, 자신의 수족들을 모조리 이끌고 이곳, 홀베른으로 쳐들어올 것이다. 너와 함께하는 인간들에게 이 사실을 알려라. 그리고 무슨 일이 있더라도 그것들을 지켜야 한다. 놈이 어둠의 힘을 얻으면 모든 차원은 멸망하고 말 것이란 것도 알려야 한다.]

카루가의 눈동자가 크게 떠졌다.

“그게 정말이야? 난, 칸빌만 걱정하고 있었는데…….”

[팔을 잃어버린 칸빌은 대신할 육신을 찾느라 당분간 인간 세상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당장은 켈베로스, 놈을 막아야 한다. 소환력이 얼마 남지 않았구나. 잘 들어라, 카루가! 너만이 켈베로스를 막아 낼 수 있다. 그것 때문에 너를 일부러 마계에서 추방시킨 것이다. 너는 너도 모르는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다. 켈베로스는 궁극의 힘으로 들어서기 이전에 자신의 본모습으로 변신할 것이다. 그때, 그 힘으로 켈베로스를 소멸시켜야 한다.]

“나도 모르는 힘이 내게 있다고? 그게 뭐야?”

[그건 때가 되면 저절로 드러날 것이다. 카루가! 두려워하면 절대 안 된다. 놈을 소멸시켜야만 마계도 옛날의 평화를 되찾을 수 있다. 모든 건, 오직 네게 달려 있다. 카루가…….]

목소리가 점점 옅어지기 시작했다.

머물 수 있는 시간이 다 되어 가는 것을 뜻했다.

“그렇게 말하니까 무서워. 하지만 나와 함께하는 사람들, 정말 강한 사람들이야. 그들이 켈베로스를 처치할 거야. 그리고 여차하면 아버지를 부를게.”

[난, 인간 세상으로 강림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너도 알지 않느냐? 그리고 인간들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켈베로스에겐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이다. 너만 믿어라. 오직 너만이 켈베로스를 소멸시킬 수 있다고 믿어야 한다, 카루가.]

스스스…….

연기가 흩어지기 시작했다. 카루가의 커다란 눈동자가 흔들렸다.

“아버지…….”

[사랑한다, 나의 아들아…….]

붉은 눈동자가 사라졌다. 연기도 목소리도 사라졌다.

털썩!

카루가는 힘없이 침상에 앉았다. 창을 보니 희미하게 태양이 떠오르고 있었다. 카루가가 힘없이 중얼거렸다.

“쳇! 난, 한 번 소멸되면 더 이상 환생이 불가능해. 내가 놈에게 당하면 다시는 만나지 못하는 걸 알면서 왜 내게 그걸 시키는 거야.”

해가 뜨고 아침이 시작될 때까지 카루가는 더 이상 잠을 이루지 못했다.

* * *

연무장은 케니언 크로우 기사단이 내지르는 기합 소리로 쩌렁쩌렁 울렸다.

데얀은 홀로 조금 떨어진 곳에서 특별 수련 중이었는데 갑주를 벗은 상태로 담대소천과 대련을 펼치고 있었다. 도무지 상대가 되질 않았지만 데얀은 끊임없이 파고들었다.

이미 상체 곳곳에 시퍼런 멍이 수도 없이 생겨나 있었지만 데얀은 멈추지 않았다. 그들이 수련을 하고 있는 연무장의 우측 강변엔 새로운 공사가 벌어지고 있었다.

강을 따라 길게 늘어선 울창한 숲에 상당수 사람들이 뭔가를 만들며 부지런을 떨고 있었는데 아리엘과 함께 홀베른으로 들어선 엘프의 생존자들이었다.

그들은 거목 위에다 집을 짓기 바빴다.

엘프들만의 기술로 전혀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공간에 예쁘장한 집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때론 나무와 나무 사이에도 조그마한 주거 공간을 연결했고 모든 집은 풀을 엮어 만든 다리와 사방으로 뻗은 나뭇가지로 왕래할 수 있었다.

아리엘이 모든 것을 지시했다.

슬픔을 이겨 낸 그녀는 예전의 활력엔 못 미치지만 그래도 꽤 밝아져 있었다.

카츄는 그녀의 손을 잡고 한시도 떨어지지 않았다.

가인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땀을 흘리며 열심히 뭔가를 만들고 있었는데 흐르는 강물에도 굳건히 버텨 낼 수 있을 만큼 튼튼한 기다란 의자가 형태를 갖춰가고 있었다. 간혹 아리엘을 쳐다보며 씩 웃음을 던지는 그에게서 슬픔은 전혀 느낄 수 없었다.

대부분이 아이들만 살아남았기 때문에 결코 약한 모습을 보여선 안 되었기 때문이다. 아리엘도 그런 이유로 빨리 슬픔을 털어 내고 밖으로 나온 것이다.

“비켜!”

허공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첨벙!

“으앗!”

강물이 폭포수처럼 솟아오르며 가인을 덮쳤다. 피한다고 피했지만 가인의 전신은 흠뻑 젖어 버렸다.

“흐흐! 동작하고는…….”

북궁천소였다.

가인은 놀란 눈으로 강을 쳐다봤다. 자신이 만들고자 했던 게 강물에 우뚝 박혀 있었다. 낚시를 할 장소로 이용될 그것을 북궁천소가 그냥 힘으로 욱여 박은 것이다.

“홍수가 나도 끄떡없을 거다.”

북궁천소는 자신이 박아 놓은 걸 발로 툭툭 건들며 히죽 웃었다. 가인은 한숨을 쉬며 그를 묘한 눈빛으로 응시했다.

“너무 높잖아요.”

“높아? 알았다.”

북궁천소의 육신이 그대로 허공으로 솟아오르더니 곧장 밑으로 떨어져 내렸다. 가인이 두 눈을 휘둥그레 치켜떴다.

콱!

제법 기다란 구조물이 그냥 쑥 내려갔다.

“이제 됐냐?”

가장 무식하면서도 확실한 방법으로 너무나도 간단히 해결되자 가인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아리엘이 다가왔다.

“역시 최고예요!”

“흐흐!”

그녀가 엄지를 치켜세우자 북궁천소는 겸연쩍게 웃었다. 아리엘이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북궁천소를 아주 가까이서 쳐다봤다.

“기왕이면 저것도 좀 옮겨 주세요.”

그녀는 산더미처럼 쌓인 돌들을 가리켰다.

강변에 널려 있던 돌들을 모아 놓은 것인데 엘프들이 산책할 길에다 놓을 용도로 쓰일 돌들이다. 그 양이 실로 어마어마했는데 북궁천소는 주저 없이 씩 웃는 것으로 대답했다.

“대신 엘프들만이 마시는 명주로 하죠. 됐죠?”

“흐흐흐…….”

술이라면 껌뻑하는 북궁천소다.

아마 산 전체를 옮기라고 해도 그럴 위인이다. 술이라면 왕전도 결코 못지않았다. 유령처럼 그들의 옆에 왕전이 나타났다.

“술을 준다고? 엘프들이 마시는 명주를 말이지?”

그 많던 돌은 눈 깜짝할 사이에 깨끗하게 옮겨졌다.

* * *

거대한 독수리들이 오늘따라 유난히 홀베른 왕궁의 상공을 수시로 날아다녔다.

첨탑에서 홀베른 국왕이 독수리들을 일일이 살피고 날려 보내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제법 굳은 얼굴을 한 그는 마지막 독수리를 날려 보내고는 첨탑을 내려갔다.

그는 곧장 혁련천후가 머무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역시 놈들이 수상한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홀베른 국왕의 말에 혁련천후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이미 예상하고 있었던 터였다.

“병력은?”

“선발이 이십만이고 뒤이어 십오만 정도가 따라붙을 것이라 알려왔습니다. 역시 막스, 놈이 직접 이끈다고 합니다.”

“켈베로스, 놈은 고룡의 심장을 지키고 있겠군?”

홀베른 국왕이 고개를 저었다.

“그곳에서 활동하는 아이들의 보고에 의하면 고룡의 심장이 사라졌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곧 켈베로스, 놈이 심장을 지닌 채, 이곳으로 오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당연히 어떤 형태로든 주력 부대와 함께 이동할 것으로 여겨집니다. 어찌하시겠습니까? 이렇게 되면 요란으로의 난입은 불가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전쟁에서 모든 것이 가려지게 되었으니 선전 포고를 기다리시겠습니까? 아니면…….”

“선전 포고를 할 놈들이 아니다. 우리 역시 할 필요는 없지.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전쟁이라면 선공으로 기를 죽여 놓는 것이 유리하다.”

“선공이라시면…….”

“놈들의 이동 동선에 놓인 평원 지역을 미리 살펴 놓도록. 수적 우세를 바탕으로 밀고 들어오는 놈들은 똑같이 수로 쓸어버리는 것이 좋다!”

홀베른 국왕이 다소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요란은 싸울 수 있는 병력이 여전히 오십만에 이른다고 들었습니다. 저흰 십오만의 정규군이 전붑니다. 수로 상대하시겠다는 건 좀…….”

“오십만이든 백만이든 한꺼번에 전장에 투입하지는 못한다. 단, 전쟁이 길어지면 수적인 우세를 보이는 쪽이 유리한 건 맞지만 단기전, 특히 기습전에서는 기동력이 우선이다. 우린 최소한의 병력으로 놈들의 선봉 부대를 최단시간에 괴멸시킬 것이다.”

승리를 확신하고 있기라도 하듯, 혁련천후에게선 단호함이 느껴졌다. 그가 말을 이었다.

“우리에겐 저들이 없는 확실한 장점이 있다.”

홀베른 국왕은 그를 뚫어져라 응시했다. 혁련천후가 창 쪽으로 걸어가 연무장을 바라보았다.

“소천은 중원에선 역사에 손꼽히는 명장이었다. 오만으로 북원의 기병 십오만을 괴멸시킨 적도 있었지. 난, 요란의 선봉이라는 기마 병단이 북원의 기병보다 강하다고 보지는 않는다. 그들은 기병만으로 대제국을 건설했던 자들이었으니까…….”

홀베른 국왕은 북원을 모른다. 다만 혁련천후의 말을 들어 보니 엄청난 강병들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담대소천에 대한 그의 신뢰가 무한함 역시 느꼈다.

“이번 전쟁의 시작은 소천이 한다. 적의 선봉을 무너뜨리면 그다음에 내가 나서겠다. 물론 그대와 룻거의 능력도 기대하겠다.”

홀베른 국왕을 바라보는 혁련천후의 눈동자에 신뢰라는 빛이 담겼다. 아직 세상에 진면목을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홀베른 국왕과 룻거 후작은 이 세상에서 초인이라 부르는 자들보다 월등하게 강하다고 그는 확신하고 있었다.

“전쟁이 끝나면 저도 제 이름으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관옥명, 그게 그의 이름이다. 언제고 하고 싶었던 말이다. 홀베른 국왕은 열망이 어린 시선으로 혁련천후를 올려다보았다.

혁련천후도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산악은 우리와 함께 중원으로 돌아갈 것이다.”

“저희들도 함께 가겠습니다.”

“홀베른은 어찌할 테냐? 이곳의 백성들은? 그들은 왕실을 철석같이 믿고 있지 않느냐?”

“……!”

차마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

잠시 둘 사이에 정적이 흘렀다. 홀베른 국왕은 어깨에 따뜻한 감촉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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