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무사-375화 (373/425)

# 375

<귀환무사 375화>

귀환무사 2부

150화

* * *

대마법사 쉐인은 자신의 거처에서 보고를 받았다.

“맥마흔 자작이라고?”

“그렇습니다. 제1군단 경기병대 소속이라고 했습니다. 책임자를 만나 뵙고 싶다고…….”

“경기병대의 기사들만 이만이 넘어간다. 신분은 확인했느냐?”

“부대 마크가 새겨진 갑주를 걸치고 있었습니다.”

쉐인은 잔뜩 미간을 찌푸렸다.

“지금은 바쁘니까 그냥 방을 하나 내주고 기다리라고 전하여라!”

“알겠습니다!”

기사가 돌아가자 쉐인은 다시 굵고 두꺼운 책을 넘겼다.

그는 지금 테세우드 공작의 사인에 대한 조사를 하는 중이었다. 그렇게 죽은 전례가 없었기 때문에 수많은 고서적들을 몽땅 뒤지고 있었던 것이다. 벌써 바닥에 나뒹구는 책만도 열 권은 넘어갔다.

탁!

한참을 찾았으나 비슷한 경우조차 보이지 않자 쉐인은 책을 덮고는 의자에 머리를 기대었다. 요즘 들어 그는 꽤 수척해져 있었다. 실질적으로 그는 테세우드의 가장 오랜 측근이자 스승과도 같았던 인물이다.

당연히 황제와 반대편에 선 사람들은 그를 중심으로 몰려들었는데, 정작 쉐인 자신은 그런 것이 싫었다.

자신은 초월자라 불리는 대마법사다.

결코 추악한 정치판엔 뛰어들고 싶지 않았다. 지금까지는 테세우드와의 개인적 인연 때문에 그와 함께했었지만 그가 죽은 지금은 그저 마법사로서 살아가는 게 그의 바람이었다. 다만 그 죽음이 워낙 기묘했기에 사인만큼은 밝혀내고자 했다.

‘휴…… 이렇게 갈 거면 왜 그렇게 살았는가. 부질없는 야망 때문에 죽은 이후에도 편할 날이 없지 않은가?’

문득 죽은 테세우드 공작이 불쌍하단 생각이 들었다.

추모를 받으며 안락한 곳으로 가야 하건만 시신조차 묻히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 그의 시신은 권역의 비밀스러운 곳에 보관되어 있다.

물론 쉐인의 명령으로 내려진 조치였고 이유는 사인을 밝혀 내기 위함이었다. 잠시 휴식을 취한 쉐인은 다시 책을 집어 들었다.

막 책장을 넘기려던 그가 아차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렇지! 어쩌면 그곳에 답이 있을 수도 있겠구나. 왜 진즉에 그곳을 생각하지 못했을까?”

쉐인은 재빨리 웃옷을 걸치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 * *

결계가 이중 삼중으로 쳐진 출입구를 열고 쉐인은 안으로 들어섰다.

곳곳에 기묘한 물건들이 배치된 이곳은 평소 테세우드 공작이 수련을 하거나 뭔가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면 종종 찾았던 곳이다.

이곳을 아는 사람은 오직 그와 쉐인뿐이었다. 쉐인은 망설임 없이 벽면으로 손을 가져갔다. 그러자 벽이 뒤로 밀려나며 좁은 통로가 나타났다.

뚜벅! 뚜벅!

밀폐된 공간이라 발걸음 소리가 유난히 울렸다. 통로를 통해 깊숙이 들어간 쉐인은 다시 결계를 해제하고 한 실내로 들어섰다.

우우웅…….

그가 들어서자 기묘한 소리가 울렸다. 쉐인은 재빨리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벽면에서 막 튀어나오려던 날카로운 화살들이 벽 속으로 사라졌다.

우측 벽면에 책을 꽂아 두는 곳이 있었는데, 쉐인은 모든 책을 끄집어내 책상 위에 올렸다.

“이계의 강자들…….”

책 표지엔 그렇게 쓰여 있었다.

쉐인은 상당한 속도로 책갈피를 넘기기 시작했다. 책은 자신도 처음 보는 것이다. 책을 넘기는 쉐인의 얼굴이 때때로 놀람과 탄성으로 물들었다.

처음 듣고 보는 기묘한 내용들이 책안엔 가득했다. 그러기를 얼마나 지났을까? 쉐인의 눈동자가 반짝 빛을 발했다.

“이건……!”

[그곳엔 강자들이 넘쳤다. 초인에 버금가는 자들이 수두룩했고 초인 따위는 안중에도 두지 않는 두려운 자들도 열을 넘어갔다. 나는 이곳이야말로 신들의 대지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내용은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누구지? 누가 이것을 썼단 말인가?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이계란 어디란 말인가?”

내용은 점점 황당하기까지 했다.

대마법사인 쉐인의 상식으로도 납득할 수 없는 내용이 전부였다. 쉐인은 자신도 모르게 책을 소리 내어 읽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그곳을 강호라 불렀고 강호를 지배하는 그를 신처럼 받들었다. 팔왕이라 불리는 무서운 자들의 호위를 받으며 그는 섬서라는 곳에 거대한 성을 세우고 그곳에 은거했다. 강호에서 살아가는 모든 이들은 그곳을 신전처럼 여기고 숭배했다. 어느 날, 나는 그를 볼 수 있었다. 그는…….”

읽어 가던 쉐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섬서? 익숙한 지명인데…….”

그랬다.

어디선가 들어 본 지명이었다. 그는 재빨리 기억을 살폈다. 그러나 좀처럼 떠오르질 않았다. 호흡을 고른 쉐인은 다시 책갈피를 넘기기 시작했다.

내용은 신화처럼 이어졌다. 그리고 몇 장을 남기지 않고 그림이 그려진 갈피가 나타났다. 모두가 사람들의 초상화였는데 누가 그렸는지 마치 살아 있는 사람을 새겨 놓은 것 같았다.

“허억!”

쿵!

초상화를 유심히 들여다보던 쉐인이 허파에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탐스러운 수염이 사정없이 떨렸다.

“이, 이럴 수가…….”

믿을 수 없었다.

초상화의 인물들은 그도 본 적이 있었다. 어찌 잊을 수 있으랴. 흑발에 흑안을 지니고 철검 한 자루로 자신을 곤경에 빠뜨렸던 사람들…….

쉐인은 공황 상태에 빠졌다. 육신은 오한이 든 듯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떨렸고 머리는 새하얀 백지 상태로 변해 갔다.

“그래, 셤서! 그들이 왔다는 셤서가…….”

이제야 기억이 떠올랐다.

지난날, 테세우드 공작이 자신의 사람들로 만들겠다며 찾아 나섰던 자들. 그때 레이놀드 백작이 말했었다. 그들이 온 곳이 셤서라는 곳이라고…….

“공작도 이 책을 보지 못했단 말인가?”

그랬다.

그가 이 책을 봤다면 그들을 알아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케논 산맥에서 레이나 공주와 함께 있었던 그들을 보고서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그가 놀람을 이어 가고 있을 때, 루안은 기사가 안내한 방에서 잠깐의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는 시종이 갖다 놓은 간단한 요리를 질겅질겅 씹으며 창을 통해 권역의 곳곳을 살폈다. 해가 떠오르자 수많은 기사들이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대부분이 케이론 제국의 기사들이 입는 것과 다른 갑주를 걸치고 있었다.

“반란이라도 일으키겠다는 건가?”

수가 상당했다.

드넓은 평원으로 이동하는 기사들의 수는 어림잡아 삼만은 넘어 보였다.

평원에 다다른 기사들이 누군가의 명령에 따라 곧장 훈련에 돌입하는 광경에 루안은 슬쩍 미간을 찌푸렸다.

“꽤 오래전부터 준비하고 있었던 모양이군. 후후! 억울해서 눈도 못 감겠어, 테세우드! 살아 있었을 때 저들을 이용했더라면 원하던 것을 얻을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야.”

루안은 차가운 눈으로 기사들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접시가 깨끗하게 비워지자 루안은 기지개를 펴며 일어섰다.

“첩자는 밤에만 움직이는 건 아니지, 후후!”

스슥!

루안의 육신이 방에서 꺼지듯 사라졌다.

제8장 테세우드 권역의 비밀

홀베른이 갑자기 바빠졌다.

아르소와 다크의 영지민들이 텔레포트를 통해 이주를 해 온 까닭이다. 대부분이 소중한 물건만 챙겨 온 까닭에 거주할 집에서부터 생활용품까지 모든 것을 마련해야 했다.

기사들이 웃통을 드러내 놓은 채 집을 짓는 광경에 이주해 온 사람들은 자신들의 결정이 옳았다고 생각했다.

귀족이 대부분인 기사들이 하위층을 위해 노동을 하는 광경은 그 어떤 나라에서도 보기 힘든 광경이다. 게다가 지금 홀베른의 기사들은 매우 즐거운 표정으로 일을 하고 있었다. 그것은 그들이 강제로 동원된 것이 아님을 뜻했다.

“이봐! 꼬마! 네 방은 얼마만 하게 만들어 줄까?”

엄마의 손을 꼭 잡고 구경하던 다크 영지의 루크는 기사가 자신에게 묻자 엄마를 쳐다봤다. 루크의 엄마는 여전히 잔뜩 긴장한 모습이다. 그들이 왜 그런 반응을 보이는지 충분히 알고 있는 홀베른의 기사가 웃으며 다가왔다.

“하하! 네가 원하는 대로 만들어 줄 테니 말해 보아라. 꼬마야.”

“이만하게 만들어 주세요.”

루크가 양손을 동그랗게 휘저으며 말했다. 기사가 껄껄 웃는다.

“좋았어! 이만하게 만들어 주지.”

기사는 루크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는 다시 공사장으로 돌아갔다. 그런 광경은 곳곳에서 나타났다. 무척 긴장했던 사람들은 점차 기사들의 호의로 인해 안정을 찾아갔다.

그때, 모든 기사들이 동작을 멈추고 가슴에 손을 대면서 고개를 숙였다. 공사장의 입구에 일단의 무리들이 모습을 나타냈기 때문인데, 혁련천후와 홀베른 국왕 등이 그곳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상왕께서 오셨습니다! 모두들 예를 갖추십시오!”

누군가가 이주민들에게 나지막이 소리쳤다.

사람들은 화들짝 놀라며 엎드려 절했다. 루크가 엄마의 팔을 잡고 흔들었다.

“앗! 다크 영주님이다! 엄마! 저기 봐!”

“오! 그렇구나. 그런데 머리색이…….”

“우리 영주님이시다.”

“아니야. 머리가 다르잖아. 그런데 얼굴은 똑같네?”

다크 영지민들이 술렁대기 시작했다. 혁련소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분명 자신들이 알고 있던 다크 영주였는데 머리색이 흑발이 아닌 은발로 바뀐 탓에 확신이 들지 않은 모양이다. 혁련소가 환하게 웃으며 앞으로 나섰다.

“안녕하셨습니까? 제가 다크, 맞습니다! 하하하!”

“오! 정말이셨구나. 영주님!”

“영주님! 다크 영주님!”

사람들은 진심으로 그를 반겼다. 마치 타향에서 가족을 만난 것 같은 반가움이 모두의 얼굴에서 묻어났다. 다크 영지의 사람들이 혁련소에게로 몰려들었다.

만류하려던 기사들은 혁련천후가 눈빛으로 제지했다.

“하하! 루크! 꽤 씩씩하게 컸구나!”

“영주님!”

혁련소는 루크를 번쩍 들어 올려 어깨에 올렸다. 반면 아르소의 영지민들은 부러운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영주인 아리안을 기다렸지만 그녀가 보이지 않자 실망감을 금치 못했다.

그 모습에 연소민은 아차 하는 표정을 지었다.

‘어머! 내가 지금 이 모습을 하고 있었네?’

그랬다.

아리안이 아닌 연소민의 모습을 하고 있었으니 당연히 못 알아볼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살짝 얼굴을 붉히고는 재빨리 한적한 곳으로 뛰어가 아리안의 모습으로 변신한 후, 돌아왔다. 그러자 아르소의 사람들도 얼굴에 웃음이 돌았다.

“오느라 고생들 많았어요.”

연소민이 환한 웃음으로 그들을 맞이하자 사람들은 그녀에게로 몰려들었다. 지금까지 아르소의 내정을 도왔던 써튼도 그들과 함께 있었다.

“수고 많으셨죠?”

“아닙니다! 하하!”

머리를 긁적이는 써튼에게 반가운 인물이 다가갔다. 우드였다. 둘은 서로를 껴안고 반가움을 표시했다.

서로가 서로를 원하는 광경은 무척 아름다웠다. 특히 이런 광경에 익숙하지 못했던 써튼과 우드, 그리고 마법사 요란은 저절로 마음이 따스하게 변하는 것을 느꼈다.

“보기 좋군요.”

“케이론에선 상상하기 힘든 광경이지. 이런 걸 보면 홀베른이 왜 제국들도 함부로 건들지 못하는 강국인지 알겠군.”

요란과 우드는 말을 나누다말고 서로를 돌아봤다.

“아예, 우리도 이곳에서 정착을 해 버릴까?”

“그럴까요?”

“좋아! 그러자고.”

둘의 사이로 써튼이 얼굴을 쓱 내밀었다.

“저도 끼워 주셔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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