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무사-373화 (371/425)

# 373

<귀환무사 373화>

귀환무사 2부

148화

“알겠습니다. 그럼 전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막스 황제가 뒷걸음으로 자리를 빠져나갔다. 그가 물러가자 켈베로스는 자신의 품 안에서 커다란 구슬을 꺼냈다. 그가 간단한 주문을 외우자 영상이 나타났다.

“도대체 한곳에 모여 뭣들 하고 있는 거지?”

구슬 안에는 엘프의 마을로 갔던 자들이 서성거리는 영상이 떠올라 있었다. 모두가 한곳에 모여 뭔가에 대해 열심히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 보였다.

눈빛만 드러나 있어서 표정을 볼 순 없었지만 뭔가 허둥대는 것도 같았다. 섬뜩한 켈베로스의 눈동자가 슬쩍 가늘어졌다.

“어리석은 놈들! 또 엘프의 정기를 취하려고 늦는 모양이군.”

켈베로스는 못마땅한 기색을 드러내며 구슬을 다시 품속에 갈무리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첨탑의 창으로 걸음을 옮겼다.

“모든 게 나의 뜻대로 돌아가고 있다. 이제, 아이아스의 심장만 얻는다면 나는 최초로 모든 차원을 지배하는 위대한 관조자가 될 것이다, 후후후!”

그는 우측으로 시선을 돌렸다.

오십 미르 거리에 또 다른 첨탑이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위용을 과시하며 우뚝 솟아 있었다. 켈베로스의 눈동자에 탐욕이 어린다. 그곳에 자신의 꿈을 이루어 줄 고룡, 트로이안의 심장이 소중하게 보관되어 있다.

“나의 분신이 돌아올 때가 되었다. 이계의 힘을 가지고 말이야. 후후후…….”

묘한 말이 흘러나왔다.

분신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 * *

홀베른의 밤은 아름답고 고요했다.

모두가 홀베른의 평화를 축복하고 감사히 여기며 꿈속으로 빠져들 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아리엘은 두 눈은 여전히 눈물이 그치지 않았다. 홀베른으로 돌아온 그녀는 며칠 동안 혁련천후가 특별히 마련해 준 거처에서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그녀는 자신이 마을을 떠난 것을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 가인을 처음 만났을 때, 돌아갔어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지는 않았을 거란 자책이 그녀를 괴롭혔다.

‘미안해요, 할아버지…….’

죽은 족장은 그녀의 할아버지였다.

어려서 마계와의 전쟁이 일어나 부모님을 모두 여읜 그녀는 줄곧 할아버지 품에서 자라 왔다. 그녀에겐 부모이자 친구이기도 했다. 세상을 구경하고 오겠다면 몰래 떠난 그것이 마지막이 될 줄이야.

‘나 때문이야. 엘프의 영광을 책임져야 할 내가 모든 걸 망쳐 버렸어.’

그녀는 자꾸만 스스로를 자책했다.

엘프들은 원래 늙지 않는 종족이다. 그러나 수백 년 전 마계와의 전쟁 이후, 인간 세상으로 터전을 옮기면서부터 그들은 인간보다 조금 더 오래 사는 종족으로 변했다. 다시 자신들의 공간으로 돌아가려면 엘프의 돌이 전능의 힘을 얻을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그날이 불과 십 년이 채 남지 않았었다.

그런데 그 돌 때문에 참극이 빚어졌다. 카츄와 가인의 말로는 그들이 엘프의 돌을 원했다고 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자신이 혁련천후 등과 제때 도착했기에 그것을 빼앗기지는 않았다.

하지만 함께할 소중한 사람들을 잃었다.

“용서하지 못해!”

그녀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원독에 찬 눈동자는 여전히 투명한 액체를 흘려 냈지만 하얀 이가 파고든 입술은 선연하게 진한 핏물을 흘려냈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는 이가 있었다. 창 밖에 솟아 있는 나무, 그곳에 혁련천후가 나뭇가지를 밟고 서 있었다. 잠이 오지 않아 산책을 나왔다가 불이 켜진 아리엘의 거처에서 지독한 한기가 느끼고는 나무로 올라선 그였다.

아리엘의 뺨을 가득 적신 눈물을 보고는 슬쩍 눈매가 가늘어졌다. 그때, 아리엘이 고개를 들었다.

둘의 시선이 창을 가운데 두고서 마주쳤다.

나뭇가지가 흔들렸다. 중심을 잃은 혁련천후의 육신이 밑으로 쑥 떨어졌다. 몸을 회전하며 바닥으로 내려선 혁련천후는 스스로를 욕했다.

‘내가 미쳤군.’

그는 슬쩍 고개를 들어 아리엘의 거처를 올려다보았다. 그러고는 등을 돌렸다. 아리엘은 그가 사라지는 모습을 한동안 서서 바라보았다.

그녀의 입술이 다시 질끈 깨물어졌다.

‘당신께 도움을 청하겠어요. 원한다면 내 모든 것을 주고서라도 도움을 청하겠어요. 내 종족의 미래를 위해서라면…….’

휘이잉!

전혀 불지 않던 바람이 창을 두른 커튼을 쓸고 지나갔다. 커튼이 사라지는 혁련천후의 뒷모습을 가렸다.

손을 뻗어 커튼을 치워 냈으나 그는 보이지 않았다.

* * *

연소민과 에이미 공주는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녀들은 엘프의 아이들을 돌보라는 특명을 혁련천후에게서 받았다. 슬픔과 충격으로 활력을 잃어버린 아이들은 좀처럼 먹지도, 말하지도 않았다.

그나마 아리엘이 함께해 주면 그때 조금 먹고 말을 할 뿐이었다.

하지만 아리엘은 아이들과 오래 있지 못했다.

수련.

그랬다. 그녀는 수련에 몰두하고 있었다. 지금도 그녀는 충분히 강하다. 자신이 지닌 힘에다 마법까지 펼친다면 팔왕 중에서 진천과 사공진무 정도는 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더 강해지기를 원했다. 마을을 참혹하게 파괴시킨 자들의 주인인 켈베로스를 자신의 손으로 죽이고자 결심했던 까닭이다.

스승은 혁련천후였다.

그는 담대소천에게 맡기고자 했지만 그녀 스스로가 그가 아니면 안 된다고 우겼던 결과였다. 스승과 제자의 분위기는 꽤 어색했다.

그러나 대련에 들어가면 완전히 달라졌다. 한을 품은 아리엘의 열정이 지독했기 때문이다. 데얀과 케니언 크로우는 여전히 담대소천 등의 집중 조련을 받았다.

시간은 그렇게 흘러갔다.

최종 목적은 어쩌면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준비하는 과정만큼은 평화롭고 즐겁기까지 했다.

한편 케이론 제국은 건국 이래 가장 큰 사건이 터졌다. 승승장구하던 테세우드 공작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케이론 제국을 송두리째 흔들었다.

자신의 거처에서 뼈와 가죽만 남은, 참혹한 모습으로 발견된 그의 시신은 또 다른 논란을 야기시켰고 둘로 나뉘었던 기존의 세력들은 전보다 더한 갈등으로 치달았다.

승전의 분위기를 타고 요란의 본토를 치려던 모든 계획이 전면 백지화되었고 테세우드 공작과 황제를 추종하는 주변 공국들과 위성 국가들은 각각의 입장을 공식적으로 표면화하며 대립하기에 이르렀다.

제국 간의 전쟁이 내전으로 치닫자 황제와 레이나 공주는 그것을 막고자 혼신의 힘을 쏟아붓고 있었는데…….

케이론의 소식은 홀베른에도 들어갔다.

혁련천후는 수뇌부들을 모아 간단한 술자리를 가지며 그 부분에 대한 말들을 주고받았다. 그들끼리 할 때는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홀베른 국왕이 조심스럽게 의견을 내놓았다.

“국지전이든 전면전이든 어차피 요란과 한 번은 부딪혀야 한다고 보면 케이론의 분열은 우리에게 큰 손실입니다. 안타까울 뿐입니다. 그가 그렇게 죽을 줄이야…….”

“사인을 아직 밝혀 내지 못했다고 들었는데……?”

“남아 있는 피는 한 방울도 없었고 피부와 장기는 햇빛에 말린 생선 같았다고 합니다. 그런 식의 죽음은 저희들도 들어 본 적이 없는 지라…….”

듣고 있던 담대소천이 말했다.

“채음술을 익힌 자들에 의해 죽은 시신과 비슷하군요. 아마 이곳에도 상대의 모든 기운을 흡수하는 수법을 익힌 자가 있나 봅니다.”

모두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채음술이 극에 이르면 피해자는 피부와 뼈, 장기만을 남기고 모든 힘과 수분을 빼앗기게 된다. 테세우드 공작의 시신과 같은 형태로 남게 되는 것이다.

혁련천후는 묵묵히 술잔만 기울였다. 요란으로 향할 날이 머지않은 상태에서 갑작스럽게 터져 버린 테세우드의 죽음이 그는 난감하기만 했다.

요란 제국이 케이론 제국의 군사적인 움직임에 신경을 곤두세울 때, 자신들은 소수 정예로 요란의 황궁을 들이칠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가 죽는 바람에 요란 제국은 케이론의 침공을 걱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곧 분산되어야 할 그들의 전력이 고스란히 보전된다는 것을 뜻한다.

“하필이면 이때 뒈질 게 뭐람.”

북궁천소가 불퉁거렸다.

“요란 제국과의 전투에서 그자의 능력은 소문 이상이었습니다. 그 정도의 강자가 강제로 모든 힘을 빼앗길 정도의 능력을 지닌 자라면…….”

조윤의 말에 혁련천후가 담담한 투로 말했다.

“초인이라는 자들보다 더 강력한 자들이 있다는 것이겠지. 중원도 그렇다만 어느 세상이든 드러나지 않은 자들이 더 무서운 법이다. 초인이란 그저 드러난 일부분일 뿐이다. 우리가 가야 하는 요란에도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자들이 있을 가능성이 놓겠지. 특히 그 켈베로스라는 놈은 더더욱 그럴 것이다.”

말을 끝낸 혁련천후가 과일을 먹느라 정신이 없는 카루가를 응시했다.

“어쩌면 저 아이가 놈을 잡는 열쇠를 쥐고 있을 수도 있겠지.”

모두가 카루가에게 시선을 모았다.

따가운 시선을 느낀 카루가가 눈을 동그랗게 하고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어린아이의 순진함만이 느껴지는 그를 본 모두는 혁련천후의 말을 의아해했다.

“놈은 마계의 황족이라고 들었다. 분명 어떤 식으로든 저 아이와 이어질 거란 생각이 드는군. 물론 그랬으면 좋겠다는 희망일 수도 있고…….”

아리송한 말에 모두는 머리가 복잡해졌다.

당최 무슨 말인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은 왕전은 머리를 긁적이고는 술만 마셨다. 북궁천소도 마찬가지였다.

“수련의 정도는……?”

“느는 속도가 상당합니다. 생각 이상으로 잘해 주고 있습니다.”

“데얀은?”

“갑주를 입으면 거의 저희들과 엇비슷한 수준으로 올라섰습니다.”

놀라운 말이 담대소천의 입을 통해 흘러나왔다.

그들과 비슷하다면 초인보다 강하다는 소리다. 물론 모두가 드래곤의 비늘로 만들어진 갑주 덕분이지만 그래도 놀라웠다.

혁련천후는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시선이 홀베른 국왕에게로 향해졌다.

“장인에게 부탁해 놓은 것이 있다. 내일, 그것을 궁으로 가져오도록 해.”

“드래곤의 뼈로 만든 검 말입니까?”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물질이라고 들었다. 꽤 도움이 되겠지. 그걸 한 자루씩 나누도록 해.”

그 말에 담대소천과 조윤만 머쓱한 표정이 되었다. 그들은 검이 주병이 아니다. 혁련천후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너희들은 무기에 구애받지 않을 수준이 아닌가?”

“좋은 무기는 무사들의 꿈이지 않습니까?”

“너희들 것도 만들었으니 인상들 펴!”

“정말입니까? 하하! 고맙습니다, 주공!”

지금껏 말없이 과일만 깎던 연소민이 입을 가리고 웃었다. 그녀의 눈에는 맨주먹으로도 세상을 뒤집고 남을 존재들이 무기를 받는다고 좋아하는 모습이 어색할 뿐이었다.

혁련천후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케이론의 분열은 당분간 잊는다! 우린 우리가 할 준비만 철저히 하도록 해.”

“주무시겠습니까?”

“적당히 마셔.”

혁련소는 문득 아버지의 뒷모습이 쓸쓸하다고 느꼈다. 연소민이 그런 그의 속내를 짐작했는지 탁자 밑으로 몰래 손을 잡아 주었다. 아리엘도 혁련천후의 뒷모습을 응시하며 반짝 눈을 빛냈다. 사람들을 한 번 돌아본 그녀는 가볍게 한숨지으며 살짝 들었던 엉덩이를 도로 앉혔다.

“주모님들께 가시는 모양이다.”

“요즘은 수련 시간을 빼놓고는 대부분을 그곳에서 지내시던 모양인데…….”

진천과 사공진무가 수군거리는 말들은 모조리 아리엘의 귓속으로 흘러들었다. 그녀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게 어떤 감정인지는 그녀도 아직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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