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2
<귀환무사 372화>
귀환무사 2부
147화
“괜찮아. 나라도 그랬을 거야.”
“미안해…….”
가인은 기어코 눈물을 보였다. 그의 어깨를 다독거려 준 아리엘은 시선을 전방으로 던졌다. 그녀는 분노하고 있었다.
주변이 울렁거리며 난폭한 기운이 요동을 쳤다.
“용서 못해…….”
“위험한 놈들이다. 넌, 아이들을 지켜라. 놈들은 우리가 상대하지.”
혁련천후가 아리엘의 어깨를 짚었다. 흑야에 의해 목이 잘렸던 자의 육신이 어느 사이에 정상으로 돌아와 있었다.
조윤과 흑야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카르스와 폭스 후작 등과의 싸움에서 이미 이런 경험을 해 본 그들이었다.
“골치 아픈 새끼들이군.”
우드득!
북궁천소가 어깨에서 대도를 잡아 내리며 고개를 좌우로 꺾었다. 왕전은 이미 대도를 틀어쥐고 당장에 달려들 기세였다.
“너희들은 아이들을 데리고 멀찌감치 떨어져.”
연소민과 에이미 공주, 그리고 케니언 크로우 기사 단원들이 재빨리 아이들을 안전한 거리 밖으로 옮겼다. 함께 싸우겠다는 가인과 카츄는 진천이 혈도를 짚어 주었다.
아리엘은 여전히 그들의 옆에 섰다. 그녀의 눈빛을 본 혁련천후는 더 만류하지 못했다. 혁련천후는 시뻘건 혈광이 이글거리는 눈을 번뜩이며 자신들을 바라보는 자들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켈베로스의 종자들이군?”
흠칫!
확연히 흠칫거리는 게 보였다. 혁련천후의 눈에 섬광이 돌았다. 넘겨짚어 물어본 것인데 상대의 반응을 보니 분명했다.
치르륵!
그의 검이 천살강기를 품었다.
“후후! 왜 아무 말이 없는 거지? 두려운가?”
“누군가? 그대는…….”
“너희 같은 악마의 종자들을 잡아먹는 사람!”
“인간 주제에 암흑마기를 지녔다니, 마계에서 온 존재인가?”
가장 큰 덩치를 지닌 자가 허공을 ‘웅웅’ 울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는 혁련천후가 아닌 혁련소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깨를 으쓱거린 혁련소가 앞으로 나섰다.
“흐음! 아버지를 무시했으니 곱게 죽진 못할 거야.”
제7장 엘프의 멸망
그들은 엄청나게 긴 손톱을 무기로 사용했다.
붉은빛으로 번들거리는 그들의 손톱이 꽤 길었기에 자칫 검으로 착각할 수도 있었다. 손톱은 어지간한 명검보다 강했다.
중원에선 적수가 없다는 팔왕의 검과 도, 그리고 창과 부딪혔음에도 멀쩡했다. 육신을 잘라 내면 금방 되살아나 붙었다.
싸움은 당연히 장기전으로 이어졌다.
‘난감하군. 이대로 시간을 끌면 우리만 손해다.’
혁련천후는 난감해했다. 그들의 공격은 상당한 위력을 지니고 있었지만 자신들에겐 위협적인 수준은 아니었다. 그러나 죽질 않으니 그게 문제였다.
이대로 싸운다면 결국 지쳐서 쓰러지는 쪽은 자신들이 될 것이다. 이 세상에서 살아온 에이미 공주와 마계를 다녀온 혁련소에게 막연하게 방법을 기대했지만 그들도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젠장! 돌아 버리겠군!”
성질이 급한 왕전과 북궁천소는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상태였다. 죽어도 수십 번은 더 죽었을 그들이 여전히 주변을 맴돌며 자신들에게 사악한 기운을 뿌려 대고 있었으니…….
“잠시 물러나라!”
혁련천후의 명령에 모두는 뒤쪽으로 물러났다. 그러자 상대도 뒤쪽으로 물러났다. 그들도 어쩌면 혁련천후와 같은 심정일 수도 있었다. 싸움은 서로가 서로를 죽일 수 없는 묘한 상황으로 이어졌다.
흑야가 검으로 머리를 툭툭 치며 중얼거렸다.
“이런 황당한 싸움은 처음이군.”
상대적으로 내공이 약한 진천과 사공진무는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진천이 혀를 내둘렀다.
“환술이 먹히질 않는 놈들입니다.”
“제가 진으로 한번 가둬 볼까요?”
사공진무가 답답한 마음에 그렇게 말했다.
딱히 방법이 없으니 그거라도 해 볼 심산이었다. 혁련천후가 무심결에 고개를 끄덕이자 나뭇가지 몇 개를 주워든 사공진무가 무리들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조윤과 담대소천이 그의 좌우를 호위했다.
“제발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힘이 빠져 다리가 다 후들거립니다.”
사공진무는 정말 지쳐 있었다.
그들이 다가오자 적들이 다시 달려들 기세를 보였다. 사공진무가 씩 웃으며 소리쳤다.
“징그러운 자식들! 제발 갇혀라!”
사공진무의 손에 쥐어진 나뭇가지들이 둥실둥실 허공으로 떠오르더니 사방으로 흩어지며 떨어져 내렸다.
파파팍!
천금만쇄진.
반경 오 장 이내의 모든 것들을 가두어 버린다는 진법이 펼쳐졌다. 공격용이 아니라 부상을 당했거나 추격을 당할 때,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진법이 그것이다. 성공하면 진 안의 사람을 외부에선 누구도 볼 수 없게 된다.
나뭇가지가 방위를 점하며 바닥에 꽂히자 놀랍게도 적들이 사라졌다.
“어! 사라졌네?”
“뭐야? 성공한 거야?”
모두가 놀란 소리를 냈다.
당사자인 사공진무가 가장 크게 놀랐다.
“어라! 이게 뭐야? 정말 갇힌 거야?”
진법을 처음 경험하는 에이미 공주와 데얀, 그리고 크로우 기사단의 단원들은 눈을 부릅뜨고서 입을 벌렸다.
“하하하!”
혁련소가 갑자기 큰 소리로 웃었다. 모두가 그를 돌아봤다. 혁련소가 사공진무에게 엄지를 세워 보이며 말했다.
“숙부! 최곱니다! 암흑마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습니다!”
“젠장! 진즉에 할 것이지, 망할 놈!”
“그러게.”
정말 황당한 결과였다.
혹시나 해서 펼친 것이 뜻밖의 결과로 이어졌다. 혁련천후가 사공진무에게 물었다.
“효력이 얼마간 지속되는 것이지?”
“누가 나무를 뽑지만 않으면 평생 저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
그 말에 일제히 탄성이 쏟아졌다. 데얀과 기사들이 지른 소리였다. 혁련천후가 이번엔 진천을 돌아봤다.
“환술로 저 나무들을 암벽처럼 만들 수 있겠지?”
“하하! 그거야 식은 죽 먹깁니다.”
진천이 손을 탁탁 털며 나섰다. 사공진무와 손바닥을 마주친 그가 환술을 펼치려 두 팔을 들었다. 그러나 모두는 머리를 긁적거리는 사공진무에게 뜨거운 눈길을 주느라 진천이 펼친 환술을 보지 못했다.
갇힌 자들의 소멸은 가인과 카츄의 몫이 되었다. 혁련천후는 그들을 소멸시킬 방법을 찾아낸다면 그때, 그들의 손으로 직접 죽이라고 명했다.
데얀과 케니언 크로우 기사 단원들은 멋쩍은 표정이 되었다. 실전이라고 은근히 기대를 하고 왔는데 한 게 아무것도 없었던 까닭이다. 그나마 소득이라면 사공진무의 놀라운 능력을 눈으로 목격한 것이 전부였다.
지난날 사공진무와 대격전을 벌였던 데얀은 조금은 어색한 표정으로 사공진무를 흘긋거리기 바빴다. 평생을 좁은 공간에서 지내면 어떨까를 생각한 데얀은 치를 떨며 사공진무에게서 은근슬쩍 떨어졌다.
죽은 자들을 모아 한곳에 묻어 준 일행은 생존한 엘프들을 데리고 홀베른으로 떠났다.
* * *
요란 제국의 황궁.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른 고루거각들은 언제나 화려함을 뽐내며 서 있다. 대륙 최강의 국력을 보유한 것을 자랑하기라도 하듯 도시 전체를 철벽처럼 두른 성곽은 그 어느 국가의 성보다 높고 견고했다.
창검을 든 병사들의 눈매는 사나운 표범을 연상시켰고 그들을 바라보는 백성들의 얼굴엔 믿음이 가득했다. 대륙은 케이론에 패배한 요란을 걱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았지만 정작 이곳의 백성들은 그러지 않았다.
모두가 황제를 믿기 때문이었다.
전쟁광이라 모두가 손가락질하는 황제, 막스를 요란의 백성들은 무척 신임하고 따랐다. 언젠가 혁련천후도 의아하게 여겼던 그 부분이 어쩌면 요란이 강대국으로 올라선 가장 큰 이유일 수도 있었다. 그 부분이 요란과 케이론의 가장 큰 차이점이었다.
각설하고…….
성 전체가 내려다보이는 드높은 첨탑에 황제 막스가 누군가와 앉아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놀랍게도 황제가 앉아야 할 상석엔 로브를 걸친 인물이 차지하고 있었다.
“엘프의 돌을 가지러 간 아이들이 늦는구나…….”
“혹시 무슨 일이라도…….”
“그건 아니다. 엘프들이 비록 강하다곤 하지만 그 아이들을 감당할 만큼은 아니지. 혹, 변수가 있다고 해도 그 아이들과 나는 영혼으로 연결되어 있는 관계가 아니더냐. 소멸을 당할 만큼의 위기가 닥쳤다면 내게 전해졌겠지.”
“엘프들의 저항이 조금 심하다고 여기십시오. 곧 돌을 가지고 돌아올 것입니다.”
“당연히 그래야지. 그것만 손에 넣으면 남은 것은 아이아스의 심장뿐, 곧 불사의 길이 열리는 것이 아니겠느냐?”
막스 황제가 허리를 숙였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스승님께 아이아스의 심장을 바치겠나이다.”
스승이라면 이자가 바로 켈베로스란 말인가? 그는 분명 테세우드 공작의 권역에 모습을 드러냈지 않은가? 그렇다면 테세우드 공작은 어떻게 되었단 말인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막스 황제의 공경을 받는 그는 로브를 깊숙하게 눌러쓴 탓에 용모는 알아볼 수 없었지만 간간이 번뜩이는 눈빛은 보는 것만으로 혼이 얼어 버릴 것 같은 착각마저 일으켰다.
그 눈빛이 막스를 향해 고정되었다.
“레인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느냐?”
“함께 온 자들과 어디론가 떠났습니다. 곧 돌아온다고 했으니 염려 마십시오.”
“놀라운 일이군. 레인이 두려워하는 자가 이 세상에 있었다니…….”
막스 황제가 다시 허리를 굽히며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레인은 분명 그자에 대하여 알고 있는 눈치였습니다. 하지만 결코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돌아오면 스승님께서 직접 하문하시지요.”
“어쩌면 그자들도 레인과 같은 곳에서 온 자들일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그곳은 강자들이 넘쳐 나는 세상이었으니까…….”
“스승님이 아니면 누구도 문을 열 수 없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런데 어떻게 그자들이 스스로 이곳에 올 수 있었겠습니까?”
스승, 켈베로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기억을 되짚었다. 핏빛 호수에서 그곳을 지키던 가문의 혈족을 데리고 넘어올 때를 떠올렸다.
‘문제는 없었다. 다만 쫓아오던 그 흑발 사내가 걸리긴 하지만…… 혹시, 그자가 연못으로 뛰어들면서 차원의 문이 뒤틀린 것이란 말인가?’
그럴 가능성이 높았다.
간발의 차이로 흑발 사내의 공격을 피해 이곳으로 넘어왔던 자신이 아닌가? 달려오던 기세를 생각하면 곧장 연못으로 뛰어들었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섬뜩한 놈이었어. 물론 지금은 오크만도 못한 놈이겠지만…….’
스스스…….
주변에 섬뜩한 기운으로 깔리기 시작했다.
“스승님!”
“……!”
켈베로스는 상념을 떨쳤다. 그러자 주변을 요동치던 섬뜩한 기운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막스.”
“예, 스승님!”
“엘프의 돌을 가져오면 홀베른을 도발할 것이다. 아이아스의 심장을 지키는 놈들을 밖으로 끌어내야만 한다. 모든 것을 미리 준비를 해 놓아야 할 것이야.”
“케이론은……?”
막스 황제가 의구심 어린 눈빛을 보였다.
“그들은 절대 전쟁을 일으키지 못한다. 테세우드, 놈이 사라지면 케이론은 당장의 정치적인 혼란을 수습하기에 급급할 것이다. 최소한의 방어 병력만을 남겨 두고 홀베른에 집중할 것이다.”
막스 황제가 다시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놈들이 홀베른을 도울 수도 있습니다. 그럼 양면에서 적을 맞는 형국이 되지 않습니까?”
“후후! 당연히 돕겠지. 하지만 테세우드를 따르던 기사들은 분명 참전하지 않을 것이다. 반으로 쪼개진 케이론은 홀베른만 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