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1
<귀환무사 371화>
귀환무사 2부
146화
* * *
자신의 거처로 들어선 아리엘은 어깨를 움켜쥐며 인상을 찌푸렸다.
“무식한 인간! 힘만 세 가지고는…….”
내색은 안 했지만 그녀도 꽤 힘든 승부였다.
어깨에 부상까지 입었다. 자신의 종족들이 살아가는 세계에선 적수가 없는 강자가 아니었던가.
“더럽게 아프잖아! 씨…….”
아무래도 뼈가 잘못된 듯싶었다.
그녀는 오른손을 들어 어깨에 살포시 얹었다. 그러자 푸르스름한 기운이 손바닥에서 흘러나와 어깨를 둘렀다. 통증으로 미간을 찌푸렸던 그녀의 얼굴이 차츰 밝아졌다.
“훗! 그래도 꽤 성과가 있었어. 뭘 해 달라고 할까?”
그녀는 얼음덩어리처럼 생긴 혁련천후를 떠올리자 슬쩍 얼굴이 붉어졌다. 이미 스스로 돌아서기엔 너무 깊게 빠져 버린 자신을 발견하고도 그녀는 오히려 더욱 환하게 웃었다.
땀으로 범벅이 된 옷을 벗어 버린 그녀는 욕실로 들어섰다.
육감적인 몸매가 걸을 때마다 환상적으로 출렁거렸다.
나무를 이어 만든 욕조에 물을 받고는 안으로 들어섰다. 마법으로 뜨겁게 물을 데우고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졸려…….’
눈꺼풀이 무거워지며 스르르 감기려고 할 즈음, 그녀의 귓속으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나!]
‘응?’
아리엘은 눈을 떴다.
목소리의 임자는 카츄였다. 단 한마디만을 들었을 뿐인데 아리엘은 가슴을 차고 오르는 불안감을 느꼈다. 카츄의 목소리가 심하게 떨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카츄! 지금 어디야? 그리고 목소린 왜 그래?]
[마을로 돌아가야 해! 마을에, 마을에…….]
카츄는 울고 있었다.
[아리엘! 마을이 공격을 당했어! 어서 마을로 돌아가야 해! 서둘러!]
[가인, 그게 무슨 소리야? 공격을 당했다니, 누가 마을을 공격했단 말이야?]
[그건 나도 몰라! 아무튼 빨리 마을로 돌아가! 나와 카츄가 먼저 간다!]
그것으로 가인의 목소리는 끊겼다.
촤아악!
아리엘은 황급히 육조에서 나왔다. 지금 가인이 자신에게 전한 마법은 위급할 때만 사용하는 자신들 종족의 신비스러운 술법이다. 한번 사용하면 수개월은 지나야 사용할 수 있을 만큼 상당한 마나의 소모가 발생하는 것이 그것인데…….
그녀는 황급히 갑주를 찾아 걸쳤다.
그리고 갑주 안에 감추어 놓았던 구슬을 꺼내어 주문을 외웠다. 구슬에 빛이 감돌며 영상이 나타났다.
아리엘의 아름다운 눈동자가 부릅떠졌다. 불바다가 된 마을의 참혹한 전경, 그리고 죽어 가는 사람들…… 모두가 자신이 생명처럼 아끼는 소중한 사람들이었다.
“이, 이럴 수가…….”
죽어 가는 사람들은 모두 공포에 질린 표정들을 하고 있었다.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울부짖는 그들의 비명이 아리엘의 가슴을 사정없이 파고들었다.
주르륵!
뺨을 타고 눈물이 흘렀다. 한없이 흔들리는 그녀의 눈동자에 괴상한 생명체가 비쳤다. 전신을 검은 천으로 두르고 손엔 시뻘건 혈광을 두른 검으로 종족들을 무참히 살해하는 존재들. 아리엘은 잠시 호흡을 멈추었다.
‘켈베로스의 가디안!’
그랬다.
자신들과는 천적인 존재들이 구슬 안을 날아다니고 있었다.
* * *
“도와줘요!”
혁련천후는 자신을 올려다보는 아리엘을 의혹에 어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환하게 웃고 들어갔던 그녀가 눈물범벅으로 돌아와 느닷없이 도와 달란다. 그는 미처 대답을 못했다.
“약속했잖아요, 내가 원하는 걸 들어주겠다고…….”
‘이런……!’
“제 고향이 죽어 가고 있어요. 그들을 구해 주세요. 그게 제가 원하는 거예요.”
“넌, 충분히 강하지 않은가?”
“저 혼자로는 힘든 놈들이 왔어요. 그러니 어서…….”
아리엘은 말을 잇지 못하고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죽어 가든 종족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져 터질 것만 같았다.
혁련천후는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음을 직감했다. 그는 뒤를 돌아보았다. 모두가 수련을 중단하고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실전이다!”
그의 말에 모두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혁련천후는 아리엘에게 물었다.
“네 고향이 어디지?”
“멀지만 텔레포트로 가면 돼요.”
“그게 가능하단 말인가?”
아리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혁련천후는 조금은 놀란 눈으로 아리엘을 쳐다봤다. 그녀가 범상치 않음은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해서 데얀과 대련까지 시켰지 않은가.
하지만 텔레포트가 가능하리라곤 생각조차 못했었다.
“꽤 강적이 나타난 모양이군…….”
데얀을 꺾을 정도의 고수에다 텔레포트를 시전할 수 있을 정도의 아리엘이 스스로 감당하기 힘들다고 말할 정도면 보나마나 강적이다.
슬쩍 미간을 찌푸린 그는 담대소천을 응시했다.
“서둘러야겠다.”
* * *
그림에서나 볼 법한 아름다운 숲은 시커먼 연기를 뿜어내며 화염에 휩싸여 있었다.
아리엘의 텔레포트로 케논 산맥의 끝부분으로 이동한 모두는 주변을 살폈다. 아리엘은 가장 먼저 화염으로 휩싸인 작은 마을로 뛰어갔다.
“상당한 마기가 느껴집니다!”
담대소천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이들 중, 마기와는 가장 상극의 무공을 익힌 그는 대번에 숲 전체를 두르고 있는 음습함을 간파했다.
“이건, 마계의 황족들만이 지닌다는 암흑마기가 분명합니다! 놀랍군요. 인간이 사는 세상에 어찌 암흑마기가…… 혹시?”
“뭔가 집히는 것이 있느냐?”
“켈베로스! 어쩌면 놈일 수도 있습니다.”
혁련천후가 눈매를 가늘게 하고서 다시 물었다.
“요란 제국을 배후에서 조종한다는 그놈을 말하는 것이냐?”
에이미 공주를 통해 켈베로스의 존재를 알고 있었던 그는 의혹이 일어났다. 혁련소가 빠른 어조로 대답했다.
“마계에서 강제로 쫓겨난 황족이 그놈입니다! 아직 마계의 문이 열리지 않았으니 저곳을 두른 마기가 암흑마기가 틀림없다면 놈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혁련천후의 눈매가 매서운 기운으로 채워졌다.
“잘됐군.”
어차피 한 번은 부딪혀야 할 대상이 켈베로스다.
혁련소가 돌아온 지금, 그에게 남은 과제는 단 하나, 고룡 트로이안의 심장을 얻어 아내들을 깨우는 것뿐이다. 그런 다음 중원으로 돌아가면 되는 것이다.
돌아가는 방법은 켈베로스, 그에게 있다고 그는 확신했다. 이계에서 수많은 존재들을 끌어온 게 그였으니 당연히 돌아갈 방법을 알고 있을 것이다.
모두가 허공을 가르며 마을로 진입했다.
* * *
처참했다.
곳곳이 죽은 자들이 흘린 피로 질펀했다. 죽은 자들의 얼굴이 공포로 얼룩져 있었다. 손으로 입을 가리고 안타까움을 나타내던 에이미 공주가 짤막한 비명을 질렀다.
“엘프!”
전설의 종족이라는 엘프가 그녀의 입을 통해 흘러나왔다.
“이들이 엘프란 말이냐?”
“틀림없어요. 아! 어떻게 이런 일이…….”
그들은 숲을 수호하는 정령과도 같은 존재들이다. 드워프와 더불어 고대에 사라졌다는 신비의 종족인 그들이 처참한 주검으로 눈앞에 나타난 것에 모두는 놀라워했다.
“아리엘을 찾아라!”
그녀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잠시 후, 아리엘이 나타났다. 그녀의 품엔 그녀와 무척 닮은 사람이 안겨 있었다. 바로 가인에게 아리엘을 찾아오라고 시켰던 족장이었다.
아리엘은 슬픔으로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족장의 시신을 바닥에 내려놓은 그녀는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 냈다. 잠시 모두는 그녀를 바라만 보았다.
바람이 불어 그녀의 머리카락을 쓸고 지나갔다. 뾰족한 귀가 그녀가 엘프임을 말하고 있었다. 잠시 후, 혁련천후가 낮은 목소리고 말했다.
“아직 놈들이 이곳에 있다. 일어나라!”
아리엘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조차 못했다.
“정신 차려라! 놈들이 떠나지 않았다면 네 동족들이 살아 있음이 아니겠느냐? 그들을 죽게 내버려 둘 셈인가?”
혁련천후의 나지막한 호통에 그제야 아리엘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연소민이 다가가 그녀를 가볍게 앉아주었다.
“어서 다른 사람들을 구해요, 아리엘 님!”
그때였다.
혁련소가 울창한 숲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쪽입니다! 방금 암흑마기가 흔들렸습니다. 생존자들이 저쪽으로 간 듯합니다!”
“데얀과 너희들은 가급적 전면에 나서지 말도록!”
주의를 준 혁련천후가 먼저 몸을 날리자 모두는 그의 뒤를 쫓았다.
* * *
“죽어 버려!”
가인은 혼신을 힘을 다해 손을 뻗었다. 새파란 빛줄기가 한곳으로 쏘아졌다. 빛줄기가 향하는 곳에 검은 천으로 전신을 두른 존재들이 서 있었다.
콰앙!
강력한 폭발은 주변 나무들을 산산조각으로 부수며 회오리를 일으켰다. 피와 살로 이루어진 생명체라면 도저히 살아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소용돌이의 현장에 남은 것은 초토화된 수풀의 흔적뿐이었다.
그 짧은 순간에 그들은 가인의 공격권을 벗어나 있었다.
가인은 분노하고 있었다. 그가 도착했을 땐, 이미 모두 죽어 가고 있었다. 족장도, 촌장도 모두 눈앞의 존재들에 의해 영원히 환생할 수 없는 소멸의 길로 접어든 것이다.
“모두 죽일 거야! 이 나쁜 놈들아!”
붉어진 가인의 얼굴은 핏줄이 돋아났다.
가인의 옆에는 카츄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불끈 쥔 주먹을 바르르 떨고 있었는데 얼굴은 말라붙은 눈물 자국으로 가득했다.
“후후후! 대답하면 저들은 살려 주겠다.”
유달리 붉은 눈동자를 지닌 자가 앞으로 나섰다.
그가 가리키는 곳엔 스무 명가량의 어린아이들이 두려움에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가인의 얼굴이 처참하게 구겨진다.
“어차피 네놈들에겐 있으나 마나 한 물건이다. 온전히 내주면 목숨을 건질 수 있다, 꼬마야.”
“닥쳐!”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
그가 손을 슬쩍 움직이자 아이 하나가 허공으로 둥실 떠올랐다.
“악! 가인! 살려 줘!”
아이는 몸부림을 치며 울부짖었다. 가인의 눈동자에 핏물이 고였다. 남은 아이들이 살려 달라고 아우성을 치는 모습에 그는 눈을 질끈 감았다.
“악! 가인!”
떠오른 아이의 주변 공간이 사납게 움직였다. 조금만 힘을 가하면 아이는 한 줌 핏물로 화해 버릴 것이다.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으니까, 그 아일 내려 줘!”
“후후! 그 말을 지금 믿으라는 것이냐?”
“정말이다! 그건 족장의 딸이 지니는 것, 정말 내겐 없어!”
“그 계집은 지금 어디 있지?”
“홀베른! 홀베른에 있다! 원한다면 내가 그녀에게 데려다 주겠다. 그러니 아이를 그만 살려 주란 말이다!”
가인의 말은 진심이었다.
가인은 속으로 피눈물을 흘리며 아리엘에게 용서를 빌었다. 아이들을 살리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미안해! 아리엘……!’
“누나!”
갑자기 카츄가 소리쳤다. 가인이 목이 부러져라 고개를 치켜들었다. 아리엘이 숲에서 걸어 나오고 있었다.
“아, 아리엘……!”
아이들의 목숨을 협박하던 자들은 장내로 들어서는 혁련천후 등을 보면서 시뻘건 안광을 번뜩거렸다.
“크어어!”
뒤쪽에서 괴상한 비명이 터졌다. 아이들을 주변에 서 있던 자의 목이 허공으로 솟구치는 광경이 모두의 눈에 비쳤다. 그곳에 흑야가 나타나 있었다.
퍽!
목이 잘린 자의 육신이 시뻘건 연기를 뿜어내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동시에 아이들이 그 자리에서 꺼지듯 사라졌다. 에이미의 마법으로 아이들은 아리엘의 옆으로 옮겨졌다. 순간적으로 벌어진 일이었다.
“이쪽으로 와! 가인! 카츄!”
가인과 카츄가 재빨리 아리엘의 옆으로 이동했다. 가인은 반가우면서도 아리엘을 쳐다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