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0
<귀환무사 370화>
귀환무사 2부
145화
실내의 어딘가에서 섬뜩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러나 테세우드 공작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숨어들었단 말이냐! 어서 모습을 드러내지 못할까?”
“초인이 호들갑은…… 후후후!”
스슥!
놀랍게도 테세우드 공작의 전면에 전신을 검은색 천으로 두른 인물이 모습을 나타냈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두른 천으로 인해 섬뜩하게 번뜩이는 눈동자만을 볼 수 있었다. 실내는 이내 칙칙한 마기가 자욱하게 번져 갔다.
“요란에서 온 놈이더냐?”
“그럴 수도 있겠지. 아닐 수도 있고…….”
“감히 나를 암습하려고 들다니, 어리석은 놈이로다!”
“후후! 전보다 강해졌다고 우쭐대는 꼬락서니하고는…….”
흑포인의 눈동자는 지옥의 불꽃처럼 이글거리고 있었다. 테세우드 공작은 그 눈빛 속으로 자꾸만 자신이 빨려 들 것 같다는 착각을 일으켰다. 전신에 힘이 제대로 모여들지도 않았다. 그가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부터 마나로 이루어진 검의 형태가 점점 흩어지고 있었다.
‘도대체 어디서 이런 놈이…….’
불과 조금 전까지 강해졌다고 좋아했던 자신이 아닌가? 그 누구와 붙어도 지지 않을 자신까지 충만했었다.
그러나 지금, 그는 태어나서 가장 큰 위험에 처했다. 본능은 눈앞의 존재가 자신을 죽일 거라 경고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를 공격할 수 없었다.
“아이들이 그러더군, 네가 이상한 힘을 지녔다고 말이지. 그 힘이 어디서, 어떻게 얻어진 것인지 내게 말해야 할 것이다, 테세우드.”
“누구냐? 정체를 밝혀라!”
“후후! 켈베로스, 내 이름이다.”
테세우드 공작의 눈동자가 심하게 요동쳤다.
“그럼, 다, 당신이…….”
“그렇다. 영원히 죽지 않는 불사의 존재, 어둠의 신이 나 켈베로스다, 후후후!”
* * *
아리엘은 왕궁으로 들어서다가 연무장에서 수련 중인 케이언 크로우 기사단을 발견하고는 환하게 미소 지었다. 그들 때문이 아니다.
그들의 앞에 서 있는 혁련천후 때문이다.
“수련 중인가요?”
그냥 지나가는 법이 없다.
혁련천후가 무심한 눈으로 자신을 돌아보자 그녀는 손까지 흔들며 환한 미소를 보냈다. 그녀의 폭발적인 아름다움에 데얀을 비롯한 기사들의 눈동자가 뜨겁게 요동쳤다.
그것을 본 혁련천후의 미간에 슬쩍 주름이 잡혔다.
“저기 연무장의 끝에 세워진 기둥이 보이냐?”
그의 뜬금없는 말에 모두는 고개를 돌려 기둥을 응시했다.
“한쪽 다리로 저곳을 돌아오도록! 선착순 두 명만 뽑겠다. 나머진 오늘 저녁을 굶어야 할 것이다.”
그저 예쁜 여자한테 눈길 한 번 준 것이 비참한(?) 결과로 이어졌다.
모두는 필사적으로 달렸다.
“가급적이면 이곳엔 오지 않는 게 좋겠어.”
“왜요?”
“방해가 되잖아!”
“흠…… 오히려 도움이 될 것 같은데요? 세상에 나보다 더 예쁜 여자가 없으란 법도 없고, 만약 적들 중에 그런 여자가 있다면 사전에 단련을 시켜 놓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혁련천후는 어이가 없어 할 말을 잃었다.
“훗! 그냥 여기서 구경만 할게요. 대신 수련 중에 다치는 사람이 생기면 제가 고쳐 주죠. 그거면 됐죠?”
“……!”
“화이팅!”
두 주먹을 불끈 쥐어 준 아리엘은 천연덕스럽게 연무장의 우측에 솟아 있는 나무 위로 훌쩍 몸을 날렸다.
“화이팅!”
그녀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연무장을 돌아오는 기사들에게 크게 소리쳤다. 혁련천후는 기사들이 순간적으로 더 빨라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는 자신을 보며 생긋거리는 아리엘에게 말했다.
“도우려면 제대로 돕던가.”
스슥!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아리엘은 그의 코앞에 나타났다. 놀라운 이동력이다. 후각을 자극하는 향기에 혁련천후는 자신도 모르게 슬쩍 물러났다.
“어떻게 도울까요?”
떨어진 만큼 아리엘이 다가오며 눈을 반짝거렸다. 슬쩍 인상이 구겨진 혁련천후는 데얀을 불렀다. 일등으로 도착한 데얀이 바람처럼 달려왔다.
“부르셨습니까?”
“대련이다!”
“예? 누구하고…….”
“이 아가씨가 너를 상대할 것이다.”
아리엘의 고운 미간이 심하게 구겨졌다. 그제야 혁련천후의 속내를 깨달은 그녀는 매서운 눈으로 데얀을 노려봤다.
“얼른 붙어요! 흥!”
* * *
아리엘이 데얀과 대련을 시작할 즈음, 연무장엔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담대소천 등과 혁련소와 연소민, 에이미 공주는 가장 구경하기 좋은 곳에 이미 자리 잡고 앉아 있었고 뒤늦게 온 홀베른 국왕까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주시하자 아리엘은 어깨를 으쓱했다.
“쳇! 지면 개창핀데?”
그녀는 허리춤에서 뭔가를 꺼내 들었다. 짧은 단검처럼 보였는데 오색찬란한 보석이 검신의 가운데에 박혀 있었다.
데얀이 들고 있는 검에 비하면 삼분지 일 정도의 길이었다.
“그냥 싸워요?”
그녀는 묘한 표정으로 서 있던 혁련천후에게 쏘아붙이듯 물었다.
“돕는데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가?”
“흥! 미쳤어요? 아무런 보상도 없이 땀을 흘리게?”
“뭘 원하지?”
“내가 원하는 것 하나만 들어줘요. 물론 제가 지면 없던 일로 하죠.”
“좋다. 그렇게 하지.”
“진짜죠? 아싸!”
그가 허락하자 아리엘의 얼굴이 대번에 환하게 밝아진다. 변화무쌍한 그녀의 성격에 혁련천후는 머리가 혼란스러워졌다.
* * *
“하하! 작은어머니와 무척 닮았지 않습니까?”
“끙! 그러고 보니 그렇구나.”
혁련소는 아리엘을 보며 크게 웃었다.
왕전이 묘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혁련소의 말대로 아리엘은 자신들의 두 번째 주모인 영호수란과 무척 비슷한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왕전과 북궁천소의 얼굴이 슬쩍 굳어지는 것을 본 혁련소가 조금은 미안한 듯 말했다.
“제가 괜한 말을 했군요.”
“크흠! 아니다! 조만간 깨어나서 우리를 괴롭힐 생각을 하니 걱정이 되어서 그런 거다! 크허허! 그렇지 않냐? 무식한 자식아!”
“맞다! 벌써부터 걱정이다.”
“어머! 시작했어요.”
연소민의 말에 모두는 연무장으로 시선을 던졌다. 갑주를 차려입은 데얀과 아리엘의 대련이 막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놈이 갑주까지 걸쳤다면 저 아이가 당해 낼 수 있을까?”
“싸우는 걸 보지는 못했지만 저 아인 뭔가 신비한 구석이 있어. 주공께서도 그걸 아시고 대련시키지 않았을까? 승부는 장담하기 어렵다.”
담대소천이 정색을 하고서 대답했다. 연소민과 에이미 공주는 누구보다 눈을 반짝이며 아리엘을 응시했다. 같은 여자로서 아리엘은 너무 아름다웠다.
여인 특유의 질투심이라도 발동한 걸까? 둘은 한마디 말조차 없이 아리엘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집중했다.
데얀의 선공으로 대련이 시작되었다.
깡!
데얀의 묵직한 검과 아리엘의 단검이 부딪치며 불똥을 튕겼다. 갑주를 걸친 데얀의 파괴적인 공세에도 아리엘은 전혀 밀리지 않았다.
오히려 움직임은 아리엘이 더욱 빨랐다.
“으합!”
“느려요!”
스슥!
데얀의 공격은 좀처럼 아리엘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다. 수련을 받기 이전의 데얀은 갑주를 걸치면 초인을 능가하는 무력을 지녔었다. 그런 데얀이 혹독한 수련을 거쳤으니 그 정도가 어떨지는 보지 않아도 능히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런 데얀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누구보다 케니언 크로우 기사단이 가장 크게 놀라고 있었다. 사실 데얀을 제외한 다른 기사들은 그녀가 강한지를 모르고 있었다.
“아둔한 놈! 여전히 힘을 중시하는 버릇을 못 고쳤군.”
“버릇이 쉽게 고쳐지나. 기다려 봐, 조금씩 그걸 느끼고 있는 것 같으니까.”
“차라리 갑주를 벗어 버리고 싸우는 게 낫겠어. 저 속도론 평생을 싸워도 저 아이를 당하지 못한다.”
흑야는 데얀의 싸움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쾌를 중시하는 그는 파괴력은 넘치지만 속도가 느린 데얀이 미련스럽기까지 했다. 사공진무가 끼어들었다.
“놈이 더 약해진 것 같습니다! 저와 싸울 땐 저 정돈 아니었는데요?”
“그게 무슨 소리야? 더 약해지다니?”
“느낌이 그렇단 말입니다. 뭔가 꿍꿍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사공진무는 연방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실 이 자리에 있는 그 누구보다 제대로 데얀을 겪었던 그가 아닌가?
그때 담대소천이 중얼거렸다.
“재밌어지겠군.”
“저 자식, 성질이 제대로 뻗쳤는데?”
“갑주를 벗으면 무력이 뚝 떨어지는 놈이 왜 벗지?”
“전반적인 파괴력은 떨어져도 수련을 통해 화산의 정수를 제대로 배우고 있었으니 대련에선 더 나을 수도 있다. 일단, 속도부터 빨라지겠지.”
데얀이 갑주를 벗어던지고 있었다. 표정을 보니 제대로 열이 뻗친 것처럼 보였다. 아리엘이 심판을 보고 있는 혁련천후에게 따졌다.
“시합 중에 갑주를 벗다니요? 반칙!”
“반칙? 그런 거 없다.”
“쳇! 적 앞에서 이랬다면 벌써 목이 날아가도 수십 번은 더 날아갔겠다.”
갑주를 몽땅 벗어 버린 데얀이 손에 침을 뱉으며 검을 고쳐 잡았다. 울퉁불퉁한 근육질 상체가 적나라하게 드러나자 아리엘이 핀잔을 주었다.
“흥! 숙녀 앞에서 그게 무슨 짓?”
“젠장! 대련에 숙녀는 개뿔! 다시 시작합시다!”
“배고프니 얼른 끝내죠? 우리 지금부턴 전력을 다해서 싸워요.”
“그거 좋지!”
둘은 다시 대결로 돌입했다.
* * *
케니언 크로우 기사단의 모두는 숨소리조차 내지 않고 둘의 격돌을 지켜보았다.
대부분은 데얀이 밀리고 있다는 것에 무척 놀라는 눈치였으나 점점 몰입하면서부터 둘의 동작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집중했다.
그때, 그들의 귓속을 파고드는 전음이 있었다.
[아리엘의 공수 전환을 눈여겨 봐두도록 해!]
혁련천후였다. 전음은 이어졌다.
[속도는 곧 승패와 직결된다. 상대보다 빠른 속도로 더 강한 힘을 싣는다면 그게 바로 강한 것이다!]
모두는 시선은 둘에게 고정시킨 채, 고개를 끄덕였다.
둘의 대결은 무척 치열했다. 갑주를 벗어던진 데얀이 훨씬 빠른 움직임을 보였다. 그것으로 조금 비슷해진다 싶더니 이내 밀리기 시작했다.
이번엔 파워에서 밀렸기 때문이다.
“그만!”
혁련천후가 둘의 대련을 중단시켰다.
가쁜 숨을 몰아쉬는 데얀이 더 싸울 수 있다는 의지를 보였지만 혁련천후는 고개를 저었다. 아리엘이 환하게 웃으며 다가왔다.
“약속, 잊지 마요?”
“……!”
대답을 못한 혁련천후에게 눈을 찡긋거린 그녀는 데얀을 돌아보며 말했다.
“수고했어요! 당신, 무척 강해요. 인정하죠.”
그러고는 몸을 돌려 궁 안으로 들어갔다.
아리엘이 사라지자 데얀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연방 거친 숨을 몰아쉬었지만 표정은 의외로 어둡지 않았다.
“뭔가를 깨달은 눈치군?”
“헉! 헉!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조금은, 아주 조금은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제 약점을…… 헉! 헉!”
혁련천후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걸렸다.
패배하고도 그것을 인정한다는 그 자체만으로 이번의 대련은 성과가 컸다고 볼 수 있었다. 더욱이 가장 성격이 급하고 거친 데얀이 그런 반응을 보였다.
‘좋은 경험이 되었겠군. 하지만…….’
걸렸던 미소가 사라졌다.
자신을 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보였던 아리엘을 떠올렸다. 대번에 미간이 찌푸려졌다.
‘뭘 해 달라고 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