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8
<귀환무사 368화>
귀환무사 2부
143화
* * *
다소 소란스럽던 식당이 혁련천후가 들어서자 쥐 죽은 듯 조용하게 가라앉았다.
홀베른 국왕과 룻거 후작이 뒤를 따랐고, 그 뒤에 멋들어지게 금발을 늘어뜨린 청년이 함께하고 있었다.
미리 준비된 탁자에 혁련천후가 앉자 모두는 반짝이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홀베른 국왕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전하겠습니다.”
혁련천후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자 홀베른 국왕은 모두를 따뜻한 눈으로 한차례 둘러보고는 입을 열었다.
“상왕께서 내리신 하교를 전하겠소.”
한 차례 호흡을 가진 그는 말을 이어 갔다.
“본, 홀베른의 염원이 무엇인지 모두는 잘 알고 있을 것이오. 칠백 년 동안 이어져 온 선조들의 유지가 바로 그것이 아니겠소. 그 어떤 일이 있더라도 반드시 이루어야 할 그것은 우리 모두의 운명이자 숙명이었소.”
꼴깍!
누군가의 마른침을 넘기는 소리가 천둥처럼 울렸다. 홀베른 국왕의 얼굴이 경건하게 굳어 갔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데얀과 기사들의 얼굴엔 뜨거운 열망이 어렸다.
“그 숙명을 벗고자 하오!”
“요란으로 갑니까?”
데얀의 격앙된 목소리가 식당 전체를 울렸다. 무례한 태도였으나 누구 하나 그에게 눈살을 찌푸리지 않았다. 오히려 홀베른 국왕의 입가엔 잔잔한 미소마저 걸렸다.
“그렇다, 데얀! 요란으로 갈 것이다.”
“우아!”
데얀과 케니언 크로우 기사 단원 전체가 환호를 질렀다. 혁련천후와 홀베른 국왕이 있는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거침없이 소리를 지르며 환호했다.
지켜보던 에이미 공주의 뺨을 타고 투명한 액체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진천이 자신도 모르게 어깨를 다독거리려고 하다가 사공진무의 매서운(?) 눈길을 받고는 머쓱한 표정으로 시선을 돌렸다.
“단!”
혁련천후의 한마디가 다시 정적으로 몰아갔다.
모두가 열망 어린 시선으로 자신을 쳐다보자 혁련천후는 술잔을 살짝 기울이고는 데얀과 기사들에게 시선을 던졌다.
“지금 너희들의 수준으론 어림없다.”
“……!”
“강해져라! 지금보다 두 배는 강해져야 요란으로 갈 것이다. 알겠나?”
데얀과 기사들은 할 말을 잃었다.
어떻게, 언제 지금보다 두 배까지 강해질 수 있단 말인가? 열망은 암울로 바뀌어 갔다. 그 괄괄한 성격의 데얀이 고개를 푹 숙여 버린다.
“소천!”
“예! 주공!”
“지금 저 아이들의 수준이 어느 정도지?”
“전에 비하면 거의 두 배에 육박합니다.”
담대소천의 그와 같은 말에 데얀과 기사들의 고개가 부러질 듯, 그를 향해 돌아갔다. 두 배에 육박하는 수준이라니? 지금까지 받은 훈련은 고작 체력 훈련이 전부였는데…….
사정없이 흔들리는 그들의 눈동자를 뒤로하고 담대소천의 대답은 이어졌다.
“초식을 운용하는 방법만 남았으니 칠 일 정도면 가능하리라 봅니다.”
“좋다! 내일부터는 내가 직접 저들을 수련시키겠다. 너희들은 그동안 소의 수련을 도와라!”
“예! 주공!”
“오늘은 특별히 술과 음식을 허락하겠다. 많이 마시고 즐기도록…….”
혁련천후와 홀베른 국왕, 그리고 룻거 후작이 자리를 떴다. 식당은 다시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데얀과 기사들은 그러지 못했다.
반쯤 정신이 나간 표정으로 넋을 놓고 있는 그들에게 왕전이 씩 웃으며 말했다.
“자식들, 표정하고는…… 정 못 믿겠다면 나가서 한판 떠볼까?”
“정말입니까? 저희들이 강해졌다는 것이…….”
“저게, 말을 불알 구멍으로 처 듣나?”
왕전의 거친 말에 에이미 공주의 얼굴이 새빨갛게 붉어졌다. 담대소천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그들을 바라보았다.
“오늘은 술로 밤을 지새워 보지. 내일 해가 뜨면 수련의 성과가 어느 정돈지 알게 해 주겠다.”
술판은 다음 날 새벽, 동이 틀 무렵까지 이어졌다.
* * *
새우잠을 잔 모두는 이른 시각에 연병장으로 집합했다.
테얀과 기사들은 미리 나와 있는 담대소천과 왕전 등의 옆에 혁련소가 함께 서 있자 고개를 갸웃거렸다.
데얀은 혁련소가 자신을 보며 웃음을 보내자 슬쩍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했다. 확실치는 않았지만 그가 왕자임을 직감하고 있었다. 그는 혁련소에게 욕을 해 댔던 것이 자꾸만 마음에 걸렸다.
‘쩝! 죽이기야 하겠어?’
데얀은 슬쩍 혁련소를 쳐다봤다. 껄껄 웃는 왕전과 북궁천소가 눈을 가득 채우고 들어왔다. 대번에 생각이 바뀐다.
‘죽을 수도 있겠구나…….’
둘의 험악함에 데얀은 다시 근심에 휩싸였다.
“지난 밤, 내가 했던 말을 지금도 믿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그걸 증명해 주고자 한다!”
담대소천의 말에 모두는 다시 열망에 휩싸였다.
자신들이 강해졌다는 담대소천의 말을 떠올리자 숙취로 인해 흐렸던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을 발함과 동시에 궁금증도 생겨났다.
‘어떤 방식으로 증명하겠다는 걸까?’
모두의 공통된 궁금증이었다. 궁금증은 곧 풀렸다. 담대소천이 손으로 왕궁의 뒤쪽을 두르고 늘어선 산을 가리켰다.
‘설마……?’
데얀을 비롯한 모두는 불안감이 무럭무럭 솟아났다. 담대소천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걸렸다. 그는 왕전 등을 돌아보며 눈빛을 보냈다.
“시작하지.”
“흐흐! 좋다! 모두들 산의 정상에서 만난다! 가장 늦게 오르는 놈은 내가 직접 대련을 해 주겠다!”
우려는 현실로 이어졌다. 곳곳에서 한숨이 터져 나왔다. 근사하게 대련 같은 것을 통해 할 거라고 모두는 생각하고 있었다.
가장 먼저 달린 것은 데얀이었다.
* * *
데얀은 가장 먼저 산의 정상에 다다랐다.
그러나 자신이 출발할 때 웃음을 주고받았던 담대소천 등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는 것을 발견하자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으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흐흐! 성질 머리만 더러운 줄 알았는데, 제법이군.”
“마법으로 순간 이동을 하신 건…….”
“뭐야?”
“아닙니다.”
즉시 꼬리를 내린 데얀은 그대로 눈밭에 누웠다. 뒤이어 다른 기사들이 속속 도착했다. 담대소천의 입가에 묘한 웃음이 걸렸다.
“데얀!”
“예! 장군님!”
모두는 그를 장군이라 불렀다. 중원에서의 호칭을 그대로 사용하라고 혁련천후가 지시했던 까닭이었다.
“뭔가 느낀 것이 없느냐?”
“……!”
데얀은 영문을 몰라 대답을 못했다. 담대소천이 손가락 두 개를 펼쳐 보였다. 모두가 그 의미를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들을 보였다.
“산을 오르는 시간이 두 배가 빨라졌다.”
“그렇습니까?”
그랬다.
그들은 미처 그것까지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시키면 죽자고 올랐을 뿐, 별다른 의미는 두지 않았던 그들이다. 그때 데얀이 물었다.
“그것으로 저희들이 강해졌다는 말씀이십니까?”
“물론 이게 전부는 아니다. 소!”
“예! 숙부님!”
“네가 저들을 상대해 줘야겠다. 방식은 네 마음대로 해라.”
“하하! 좋죠.”
혁련소가 앞으로 나섰다.
“시작할까요?”
데얀이 다시 물었다.
“이자, 아니. 이분과 싸우는 것으로 어떻게 증명이 됩니까?”
대답은 흑야가 대신했다.
“대륙에 가장 강한 자들이 누구냐?”
“그야 초인들입니다. 그리고…….”
“그리고?”
“소문에 흑안의 마검사들이 초인들과 비슷하다는 말을 들었습니다만, 그저 소문이라…….”
그때 다른 기사가 소리쳤다.
“다크 블러드가 초인들보다 강하다는 소리도 들었습니다.”
흑야의 입가가 슬쩍 올라갔다.
다크 블러드는 자신을 두고 하는 말이다. 때론 다크 나이츠로 불리기도 한다. 모두가 이 세상에 넘어와 벌였던 자신의 행각을 두고 붙여진 별명들이다.
“그 아이가 다크 블러드다!”
“예엣!”
모두가 크게 놀랐다. 어지간한 데얀도 눈을 부릅뜰 정도로 흑야의 말은 엄청난 것이었다. 다크 블러드는 죄를 지은 자들에겐 죽음의 집행자로 불리는 신비의 인물이다. 마스터들도 속수무책으로 죽임을 당했었는데, 눈앞의 젊은 혁련소가 바로 그 다크 블러드란다.
물론 거짓말이다.
혁련소도 뜬금없는 흑야의 말에 내심 어이가 없었다.
[숙부!]
[넌 가만히 있어.]
“저, 정말입니까?”
데얀이 놀란 눈으로 물었다. 담대소천이 다시 나섰다.
“지금, 너희들은 마스터 사냥꾼이라는 다크 블러드와 대련을 하는 것이다. 물론 갑주를 벗은 맨몸으로 하게 될 것이다.”
“맨몸으로 말입니까?”
“그동안 너희들은 갑주를 믿고 지나치게 파괴적인 공격수법만 익혀 왔다. 때문에 너희들은 복잡한 수 싸움을 즐기는 강자들을 만나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주공과의 대련을 생각하면 감이 올 것이다. 그분의 오른 주먹 하나에 너희들 전체가 패배하지 않았느냐? 해서 오늘부터는 너희들에게 싸움의 묘리를 깨우치게 해 줄 것이다. 물론 그전에 너희들이 어느 정도 발전했는지 확인시켜 주겠지만…….”
잠시 말을 흐린 담대소천이 다시 말을 이어 갔다.
“갑주를 벗은 상태에서 너희들의 수준이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지?”
“……!”
모두는 대답을 못했다.
그런 건 지금껏 생각조차 안 했던 것이다. 갑주를 입지 않고 싸움을 하는 자신들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갑주 자체가 전력의 절반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갑주가 없는 너희들은 마스터들의 사냥감 정도에 불과하다.”
“그 정돈 아닙니다!”
데얀이 발끈해서 소리쳤다.
“직접 느껴 볼 테냐?”
“아, 아닙니다!”
담대소천이 데얀을 슬쩍 쳐다보고는 말을 이었다.
“너희들이 맨몸으로 이 아이와 대결을 펼쳐 십 분을 버텨 낸다면 갑주를 입었을 때, 둘이 초인 하나를 당해 낼 수 있음을 장담하지! 물론 남은 기간의 수련 정도에 따라서는 더 강해질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데얀, 너는 혼자서 맨몸으로 초인을 이겨 낼 정도는 되어야 한다.”
“정말입니까?”
“정말이다!”
다소 황당하기까지 한 담대소천의 말이었지만 데얀과 기사들의 얼굴엔 또다시 열망이 번져 갔다. 칼을 들고 살아가는 검사들에겐 강해진다는 것, 그것이 삶의 최종목표다. 하물며 가문의 숙명 때문에 세상에 웅지조차 드러내지 못했던 데얀과 케니언 크로우 기사단원들은 그 누구보다 간절했다.
“이분은 초인과 비교하면 어느 정돕니까?”
데얀이 가장 궁금했던 점을 물었다.
대답은 혁련소가 했다.
“맨손으론 비슷하죠. 하지만 내가 검을 들고 싸운다면…… 십 분 정도? 하하!”
“눈 온다! 시작해라!”
왕전의 고함을 신호로 혁련소와 그들의 대련은 시작되었다.
제6장 수련
혁련천후는 왕궁의 첨탑에 올라 산의 정상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요즘 그의 얼굴은 전보다 확연히 밝아져 있었다. 아들과의 해후는 설치던 잠까지 숙면이 가능하게 만들었다.
비록 아내들의 문제가 남아 있었지만 해결할 수 있을 거라 확신했다.
“나날이 발전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데얀과 아이들이 무척 좋아합니다.”
홀베른 국왕이 넌지시 말을 건넸다.
“더 강해져야 한다. 그래야 모든 게 더 수월해져.”
“저하까지 합세하셨으니 저희들이 없었더라도 가능할 거란 생각이 듭니다. 사실 저 일곱 분들은 너무 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