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7
<귀환무사 367화>
귀환무사 2부
142화
* * *
새롭게 만들어진 연무장엔 케니언 크로우 기사 단원들이 기합성을 지르며 비지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그들의 앞에는 담대소천이 허리에 손을 얹고는 호랑이 같은 눈길을 보내고 있었는데, 한쪽 구석에 땅에 머리를 박고 엉덩이에 손을 올린 데얀이 보였다.
“찌를 때 허리를 이용해야지!”
“으합!”
담대소천의 말 한마디에 기합성은 두 배로 커졌다. 연무장 옆에 세워진 큼지막한 나무 아래에서 북궁천소와 흑야가 케니언 크로우 기사 단원들의 수련을 지켜보고 있었다.
한 손엔 술병을, 한 손엔 큼지막한 닭다리를 든 북궁천소는 연방 혀를 내둘렀다.
“애들 잡네, 애들 잡아. 저놈 저거, 이제 보니 완전 악질 교관이었잖아?”
“화산 애들은 저거보다 몇 배는 더 지독한 수련을 거쳤다. 저 정돈 약과지.”
“그놈들하고 저놈들하고 같으냐? 자질 자체가 다르잖아. 인마!”
“최소한 비슷해지려면 저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 그래봤자 발끝에나 따라갈까 걱정이지만…….”
북궁천소의 말처럼 담대소천은 혹독한 수련을 시키고 있었다.
하루에 한 번 오르던 산을 요즘은 아침, 점심, 저녁을 나누어 세 번을 오르게 하는 것도 모자라 해가 떨어질 때까지 연무장에서 그림자도 사라지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데얀은 식사를 하고 조금 늦게 집합했다는 이유만으로 벌써 두 시간째, 땅에 머리를 박고 있었으니 그들의 수련 정도가 얼마나 혹독한지는 말하지 않아도 훤했다.
“헉! 헉!”
“으……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기사단원들은 입에 거품을 물 지경이었다.
그들은 애원이 담긴 눈으로 담대소천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완고한 표정으로 그들의 시선을 외면했다.
“너희들의 선조는 이것보다 수배는 더 지독한 수련을 거쳤다. 고작 이 정도에 지칠 거라면 너흰 강해질 자격이 없다!”
담대소천의 목소리가 연무장을 쩌렁쩌렁 울렸다.
“데얀! 일어서라!”
데얀이 재빨리 몸을 일으키고는 부동자세를 취했다. 군기가 제대로 든 그의 모습에 북궁천소와 흑야가 실소를 머금었다.
“오늘 수련은 여기까지다! 야간 수련은 상왕 전하께서 직접 주관하실 것이다! 식사들 하고 오후 일곱 시까지 이곳에 다시 집합한다! 해산!”
오후 수련이 끝났다.
모두가 연병장에 그대로 누워 버렸다. 지독한 수련 탓에 일어나서 식당으로 뛰어갈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던 것이다.
“적당히 좀 해라. 고수가 되기 전에 수련받다가 죽겠네.”
북궁천소가 다가오는 담대소천에게 술병을 건네며 히죽 웃었다. 흑야가 자리에 앉는 담대소천을 보며 툭 내뱉듯 물었다.
“어지간하면 대련으로 들어가지?”
“아직 멀었다. 엉뚱한 마나의 운용법으로 인해 화산의 날카로움이 완전히 사라졌어. 저 데얀이라는 놈은 화산의 검법이 아니라 하북 팽가의 도법에 가까운 움직임을 보이니…….”
“그러니까 대련을 통해 수정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내기를 강화하는 훈련만으로 놈들의 잃어버린 날카로움이 돌아오겠냔 말이다.”
“그건 네놈들이 도와줘야지.”
흑야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우리가 왜?”
“주공께서 그러라고 하셨다. 불만 있으면 주공께 따져! 가자! 배고프다!”
* * *
“후! 죽을 맛이군.”
데얀은 맨바닥에 누운 채 하늘을 바라보며 일어날 생각을 안 했다. 머리에 잔뜩 묻은 흙조차 털어 내지 않은 그는 최대한 편안한 자세로 양팔을 쭉 늘리고는 금쪽같은 휴식시간을 즐겼다.
“단장님! 식사하셔야죠!”
“입맛도 없다.”
“하하! 그래도 좀 드셔야죠. 야간 수련 땐 밥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냥 날 죽여라.”
“하하하!”
기사들이 모두 웃었다.
지친 기색이 역력한 그들은 의외로 눈빛만큼은 활력에 넘쳤다. 혹독한 수련으로 인해 불만을 지녔을 거란 보통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모습들이었다. 데얀이 고개만 옆을 돌려 말했다.
“늦으면 밥도 없어! 얼른 식사들 하고 와라!”
“단장님은 안 가십니까?”
“입맛이 없다니까. 그냥 너희들끼리 먹고 와.”
“에이! 그럼 저희들도 굶을랍니다. 잠이나 자죠.”
데얀이 벌떡 일어섰다.
“미친놈들! 알았다! 알았으니까 얼른 일어나!”
기사들이 그제야 몸을 일으켰다. 몰골들이 가관이었다. 땀으로 범벅이던 몸을 곧장 맨땅에 눕혔으니 전신이 흙으로 엉망이었다. 그래 가지곤 식당 안으로 발조차 들여 놓을 수 없을 것이다.
“좀 씻고 가야겠습니다. 이래가지곤 쫓겨나기 십상이겠는걸요.”
“흠! 그럴까? 좋지! 모처럼 냉수 목욕을 해 보도록 하지!”
데얀이 느닷없이 연무장의 우측을 흐르는 좁은 강으로 몸을 날리자 기사들도 모조리 그곳으로 뛰어들었다.
첨벙! 풍덩!
“으아! 차갑다!”
“으흐흐…….”
한겨울의 강물은 뼈조차 얼릴 듯, 무척 차가웠다.
그러나 수련으로 뜨겁게 달아오른 육신을 식혀 주기엔 더없이 좋았다.
“역시 냉수 목욕이 최곱니다!”
“으…… 좋긴 좋다만 그곳이 번데기가 되겠는걸.”
“원래 번데기가 아니었습니까?”
“뭐야?”
데얀은 스스럼없이 기사들과 어울렸다.
지나치게 꼬였던 지난날과는 확연하게 달라진 모습이었다. 밤이었으면 홀라당 옷을 벗었겠지만 보는 눈들 때문에 옷을 입은 그대로 모두는 어린아이처럼 잠시 물장구를 치며 법석을 떨었다.
“어? 단장님! 저기 누가 옵니다.”
“오! 상왕 전하와 무지 닮았는데요?”
그들이 물놀이를 하는 건너편에 은발을 늘어뜨린 청년이 느린 걸음으로 걸어오고 있었는데, 바로 혁련소였다.
비록 은발이었지만 얼굴은 혁련천후와 무척 닮아 있음을 깨달은 기사들은 재빨리 행동을 조심스럽게 가져갔다. 며칠 전, 상왕이 잃어버렸던 아들을 되찾아 돌아왔다는 소린 이미 궁 안에 파다하게 소문이 돌고 있었다.
물론 누구보다 그 소문을 빨리 들었던 그들은 혁련소의 얼굴을 조심스럽게 쳐다봤다. 데얀도 마찬가지였다.
마침 혁련소도 그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수련은 할 만합니까?”
혁련소가 밝게 웃으며 먼저 말을 건넸다. 그는 이미 데얀과 케니언 크로우 기사단의 모든 것들을 들어서 알고 있었다. 물론 그들이 담대소천에게 지옥의 수련을 받고 있는 것까지도 말이다. 데얀을 비롯한 기사들이 즉답을 못했다.
가까이서 보니 혁련천후와 정말 흡사하게 닮았던 까닭에 그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를 망설였다.
“험! 나날이 발전하는 게 무척 좋습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임하고 있습니다!”
데얀이 헛기침을 하고는 대답했다.
아카데미 수련생이나 할 법한 대답을 데얀이 하자 뒤에서 킥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데얀의 얼굴이 슬쩍 붉어졌다. 혁련소가 분명 혁련천후와 관계가 있다고 확신하고 한 대답은 자신이 생각해 봐도 좀 아니었다.
“하하! 데얀 단장이군요. 나중에 대련이나 한번 뜨시죠?”
“대련요? 어어, 그게…….”
확실히 데얀은 조금은 얼어 있었다. 모두가 혁련천후 때문이다. 그의 아들이면 자신들에겐 하늘이다. 괜히 잘못 보였다간 초상을 치를 수도 있다.
“왕자님이십니까?”
누군가가 용기를 내어 큰 소리로 물었다.
“왕자?”
“며칠 전에 상왕 전하와 함께 오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분이십니까?”
“아하! 그건 맞지만 왕자는 아닌데요?”
순간, 데얀의 눈초리가 매섭게 올라갔다.
“아니야? 왕자가 아니라고? 그게 정말이냐?”
데얀의 분위기가 돌변하자 혁련소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뛰쳐나가려던 데얀을 기사들이 양쪽에서 잡아 말렸다.
“왕자가 아니라면서 내가 존댓말을 하는데도 가만히 있었다니, 너 이리 와! 자식아!”
“단장님! 참으십시오!”
혁련소는 그제야 상황이 이해가 되었다.
그는 미소를 머금은 얼굴로 데얀과 기사들을 느릿하게 쓸어 보았다. 시뻘게진 얼굴로 으르렁거리는 데얀이 꽤 우습게 비쳤는지 큰 소리로 웃었다.
“하하하! 나중에 대련으로 만납시다! 그럼!”
“이봐! 흰머리! 거기 안 서!”
혁련소가 손까지 흔들고 지나가자 데얀은 먹이를 빼앗긴 곰처럼 으르렁거렸다. 그러나 기사들이 필사적으로 말렸던 까닭에 혁련소는 무사히(?) 식당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뜨거운 김이 넓은 식당 안을 가득 채웠다.
식당의 한쪽 구석엔 숙수들이 엄청난 양의 식사를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었고 우드와 요란이 그들을 돕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에이미 공주도 머리에 천을 두르고는 식탁에 음식을 놓느라 꽤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쾅!
거칠게 문이 열리며 왕전과 진천, 사공진무가 들어섰다. 그리고 먼지를 홀딱 뒤집어쓴 카루가도 뒤를 따랐다.
“에이미! 밥 다됐냐?”
“조금만 기다리세요. 거의 다 됐어요.”
“술부터 좀 가져와! 목이 말라 돌아가시겠다!”
왕전이 들어서자 숙수들이 표정부터가 달라졌다. 여유롭던 동작들은 이내 군인을 연상시키는 절도 있는 동작들로 대번에 바뀌었다.
왕전과 북궁천소는 어느 세상, 어느 곳을 가더라도 제대로 먹히는 인상들이다. 하물며 평범한 숙수들의 눈에는 마계의 발록처럼 여겨졌다.
에이미 공주가 술과 간단한 요리를 먼저 내어 왔다.
“드시고 계시면 곧 식사를 올릴게요. 진천 님도 많이 드세요!”
“예, 아! 그래…….”
진천의 허둥대는 반응에 사공진무는 심드렁한 얼굴로 술병을 낚아챘다. 에이미 공주의 입가에 묘한 웃음이 걸렸다.
“진무 님도 많이 드세요.”
“많이 주고 그런 소릴 하던가…… 벌컥! 벌컥!”
에이미 공주가 손으로 입을 가리고는 주방으로 돌아가자 왕전이 음흉한 표정으로 사공진무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으흐흐! 이 자식! 질투하는구나. 그렇지?”
“됐거든요. 전 저렇게 생긴 여잔 별롭니다!”
“헤헤! 저 누나를 좋아하는구나?”
딱!
“콩알만 한 놈이 뭘 안다고!”
괜히 끼어든 카루가의 머리에 불꽃이 튀었다. 머리를 만지작거리며 울상이 된 카루가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앞으로 뛰쳐나갔다.
“형!”
막 식당으로 혁련소가 들어서고 있었다.
“하하! 카루가! 표정이 왜 그러냐?”
“헤헤! 그냥 한 대 맞았어. 누나는?”
“조금 있다가 올 거다. 안녕하십니까? 숙부님들!”
“너, 살이 조금 빠진 것 같다?”
“하하! 빠지긴요, 그대론데…….”
머쓱해하는 혁련소를 셋은 묘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그때, 뒤쪽 문을 통해 데얀을 비롯한 케니언 크로우 기사단이 우르르 들어섰다. 마침 혁련소와 눈이 정통으로 부딪혔다. 대번에 이를 드러내고 으르렁거리는 데얀을 혁련소는 웃음으로 대했다.
“저게 미쳤나? 곰 새끼처럼 으르렁대기는…….”
사공진무가 데얀의 반응을 보고 불퉁거렸다. 그는 여전히 에이미 공주 건으로 심드렁한 상태였다.
“저보고 왕자라고 묻기에 아니라고 했더니 저러네요?”
“내가 손 좀 봐 주랴?”
“아닙니다. 활력이 넘치고 보기 좋은데요. 중원에 계셨을 때의 숙부님들을 보는 것 같습니다, 하하!”
그들이 술잔을 주고받으며 대화를 나눌 때 데얀은 혁련소를 쳐다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뭐야? 저분들과 저렇게 허물없이 지낸다면 왕자가 아니라도 보통 인물은 아닐 텐데…….’
그랬다.
왕전 등과 어울리는 모습이 꽤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데얀은 슬쩍 불안감이 생겨났다. 그는 옆자리에 앉은 기사의 옆구리를 찔렀다.
“상왕 전하께서 아드님 말고 다른 사람도 데리고 오셨냐?”
“한 분만 함께 오셨다고 들었습니다. 다른 분들은 단장님께서도 모두 아는 분이지 않습니까?”
“……!”
“그런데 그건 왜 물으십니까?”
“크흠! 아니다. 밥이나 먹자!”
“아직 밥이 안 나왔는데요?”
“쿨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