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4
<귀환무사 364화>
귀환무사 2부
139화
“퇴각이라니…… 케이론에 무너졌단 말인가?”
그는 상황을 믿을 수 없었다.
막스 황제가 직접 나선 전투에서 패퇴라니…….
그때 그의 눈에 광포한 움직임을 보이는 테세우드 공작이 잡혔다. 전장을 휘젓는 그로 인해 수많은 기사들이 피를 뿌리며 쓰러져 가고 있었다.
어둠의 마법사들이라는 자들이 그를 막아 내고는 있었지만 광포하게 날뛰는 테세우드 공작은 거침이 없었다.
“저자가 저토록 강했단 말인가? 이게 도대체 어찌 된 일이지…….”
제아무리 초인이라도 어둠의 마법사들을 당해 내진 못한다. 그들은 초월적인 존재의 직속들. 그들 넷이 힘을 모으면 대마법사인 자신도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그들은 강력한 존재들이다.
그런 그들이 전부 달려들었음에도 테세우드 공작을 어쩌지 못하고 있었다.
쾅! 쾅!
측면에서 전해져 온 강력한 진동이 그의 옷자락을 흔들었다. 율튼의 고개가 저절로 그쪽으로 돌아갔다.
“황태자!”
그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그랬다.
실종되었던 황태자 카르스가 그곳에 있었다. 그가 지금 누군가와 싸우고 있었다. 그런데 그 상대가 율튼의 심장을 철렁하게 만들었다.
“어억!”
괴상한 신음이 터졌다.
결코 잊을 수 없는 존재들 중, 하나가 카르스를 몰아붙이고 있었다. 그 어떤 존재보다 율튼에게 두려움을 심어 주었던 흑발의 사내들 중 하나가 분명했다.
“위험합니다!”
율튼의 육신이 바람처럼 전장으로 날아갔다. 카르스의 육신이 휘청거리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 * *
카르스에게 맹공을 펼치던 흑야는 우측에서 강력한 기운이 날아들자 공격을 멈추고 뒤쪽으로 몸을 날렸다.
동시에 그의 앞에 율튼이 내려섰다.
“네놈이었군, 늙은 마법사…….”
그의 눈동자가 매섭게 빛났다. 언제나 가슴속에 품었던 증오의 대상이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율튼은 카르스를 등지고 소리쳤다.
“전하! 어서 자리를 피하십시오!”
몬스터 토벌을 끝낸 강습여단의 기마병들이 먼 곳에서 돌아오고 있었다. 율튼은 그들이 어서 오기를 기다렸다. 자신 혼자만으로는 눈앞의 흑야를 이겨 내지 못할 거라고 그는 생각하고 있었다.
흑야의 눈동자가 슬쩍 흔들렸다. 그것을 본 율튼은 순간적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흑야의 눈빛은 분명 놀랐을 때 나타나는 것이었다.
‘저자가 왜 놀라는 거지?’
그것이 율튼의 마지막 의문이었다.
퍽!
율튼의 육신이 크게 휘청거렸다. 그의 가슴을 뚫고 나온 검이 진득한 핏물을 흘려 내고 있었다. 율튼은 밑을 내려다보며 입술을 부르르 떨었다.
“왜……!”
그건 카르스의 검이었다.
“후후! 고맙게도 네가 나를 강하게 만들어 주는군, 늙은 마법사…….”
율튼은 고개를 돌리지 못했다. 순식간에 자신의 모든 마나가 카르스의 검을 통해 흡수되는 것을 느꼈다. 그게 율튼이 느낀 마지막 감각이었다.
털썩!
율튼의 노쇠한 육신이 힘없이 바닥으로 쓰러졌다. 일세를 풍미했던 대마법사 율튼의 최후는 이렇게 막을 내리고 말았다.
“크흐흐! 이토록 빨리 흡수되다니…….”
카르스가 자신의 검을 내려다보며 괴소를 흘렸다. 흑야의 눈동자에 짜증이 생겨났다. 뭔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빌어먹을 늙은이, 죽으면서까지 성질을 건들고 가는군.”
카르스가 조금 전과는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강력해졌음을 그는 직감했다. 대마법사 율튼의 힘을 모조리 흡수한 것도 깨달았다.
결국 율튼 때문에 일이 제대로 틀어져 버린 것이다.
“크하하하하!”
카르스가 고개를 젖히고 앙천광소를 터뜨렸다.
그 웃음 속에 깃든 지독한 마기에 상당한 거리 밖에 있던 기사들이 귀를 막으며 휘청거렸다. 도주하지 못하고 기사들과 난전을 벌이던 몬스터들이 갑작스럽게 흉포하게 변해 갔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기마병들에 쫓겨 사방으로 흩어졌던 몬스터들이 다시 전장으로 꾸역꾸역 몰려들기 시작했다. 능선으로 이동하던 제7강습여단의 기마병들은 졸지에 앞뒤가 차단되며 고립된 상황에 몰렸다.
“크아아…….”
몬스터들의 흉포한 괴성이 천지를 흔들었다. 가장 두려웠던 상대인 블랙 오우거와 블러드 와이번들은 이미 모두 소멸된 상태였지만 수만에 달하는 오크들과 간간이 섞인 오우거, 트롤은 여전히 위협적이었다.
“돌파하라!”
제7강습여단의 수장인 루턴 후작의 명령이 떨어지자 기마병들이 일제히 질풍처럼 내달렸다. 그들은 뒤쪽은 포기하고 오직 전방으로만 돌진했다. 전방을 막아선 몬스터들을 뚫어 내고 능선으로 가야만 했다.
급격하게 밀리는 아군을 돕기 위해서였다.
콰지지직!
철갑을 두른 전마들이 몬스터들을 정통으로 돌파하자 천지가 뒤흔들렸다. 몬스터들의 피와 살이 시야를 자욱하게 가렸다.
“능선으로 간다! 쫓아오는 몬스터들은 상대하지 말고 무조건 전진하라!”
오만에 달하는 강습여단의 기마병들은 몬스터들의 가운데를 뚫어 내면서 직선으로 달렸다. 그들은 오직 앞을 막아서는 몬스터만을 베어가면서 능선으로 향했다. 사방에서 몰려든 몬스터들이 그들을 쫓아 능선으로 향했다.
“요란의 기마병들이다!”
“몬스터다!”
케이론의 병사들은 난데없이 몬스터들이 전장으로 난입하자 허둥대기 시작했다. 게다가 요란 제국의 강습여단까지 몰아치자 전장은 이내 진흙탕처럼 변해 갔다.
“케이론의 개새끼들! 죽여라!”
“테세우드의 종자들을 모조리 죽여라!”
요란 제국의 병사들에게 마땅한 작전이란 있을 수조차 없었다. 수뇌부가 사라진 탓이었다. 퇴각도 용이하지 않았다. 케이론의 기마병들이 삼면에서 짓쳐 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뒤쪽에서 몰려든 몬스터들로 인해 그야말로 적아의 구분이 불가능한 죽음의 육박전 양상으로 변해 버린 것이다.
그들은 용맹했다. 기마전에서는 케이론의 기마병들도 상대가 되지 못했다. 몬스터와 케이론의 일차 저지선을 뚫어 낸 그들은 어렵사리 능선까지 전진할 수 있었다.
능선으로 올라선 제7강습여단은 압도적으로 밀리는 아군을 바라보고는 경악했다. 저 멀리 이어진 평원에 케이론 제국의 기마 병단에 쫓겨나는 아군의 처참한 모습은 그들이 단 한 번도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루턴 후작이 주변을 돌아보며 부르짖었다.
“모두 어디로 가 버린 거냐? 황제는 도대체 어디로 갔단 말이냐!”
“각하! 퇴각 명령이 내려진 모양입니다!”
“퇴각이라니! 황제께서 친히 출전하신 전쟁에 퇴각이라니!”
“각하! 서둘러 퇴각하셔야 합니다! 적들이 삼면에서 몰려들고 있습니다!”
“닥쳐라!”
막스 황제와 수십 년 동안 전장을 누비면서 단 한 번의 패배조차 몰랐던 루턴 후작의 얼굴이 서서히 광기로 물들었다. 그의 광기 어린 눈동자가 테세우드 공작을 발견했다.
“으드득! 케이론의 광견! 테세우드…….”
루턴 후작의 검이 테세우드 공작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테세우드를 잡아라! 놈의 목을 쳐라!”
“테세우드를 죽여라!”
오만의 기마 병단이 먼지를 일으키며 테세우드 공작만을 노리고 돌진했다. 그 와중에 측면으로 파고든 몬스터들에 의해 상당수의 기사들이 죽어 갔지만 루턴 후작의 검은 오직 테세우드 공작을 향하고만 있었다.
* * *
테세우드 공작은 점점 마나가 줄어들고 있음을 느꼈다.
‘시간이 더 흐르면 위험해진다.’
그는 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전황은 압도적으로 자신들이 유리했다. 아쉽다면 황제 막스를 베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자신도 곧 있으면 위험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가문의 비기를 펼쳐 압도적으로 전장을 누볐지만 그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그때 우측에서 천지를 울리며 돌진해 들어오는 요란의 기마 병단을 보았다.
“루턴!”
선두에서 광기에 물든 얼굴로 전마를 몰아오는 루턴 후작이 보였다. 그 와중에 어둠의 마법사들이 그에게 공격을 퍼부었다. 그러나 테세우드는 여전이 광포한 빛을 두르고 있었다.
공격은 오히려 반사되어 요란 제국의 몇 남지 않은 기사들의 목숨을 앗아 갔다.
‘내가 죽으면 아무 소용이 없지.’
그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쉐인 경!”
“예! 각하!”
어둠의 마법사들과 난전을 펼치던 대마법사 쉐인이 그에게 다가왔다.
“퇴각 명령을 내리십시오!”
“각하! 조금만 몰아치면 대승입니다! 퇴각이라니요?”
“아닙니다! 이 정도면 충분히 대승입니다! 서두르세요!”
그의 단호함을 엿본 쉐인은 어쩔 수 없이 나팔수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전장에 나팔 소리가 울려 퍼지자 당황한 것은 케이론의 기사들이었다. 대승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 퇴각이라니…….
“카티르 평원으로 물러간다!”
“카티르 평원으로 돌아간다! 전군은 회군하라!”
마법사들이 마나를 담고 소리쳤다. 기사들은 불만에 가득 찬 시선으로 능선을 바라보았지만 한번 내려진 퇴각 명령은 신도 돌릴 수 없는 것이다.
“젠장! 돌아간다! 회군한다!”
케이론의 병력이 전장에서 빠르게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도주하던 요란 제국의 기사들을 추격하던 기마 병단도 말머리를 카티르 평원으로 돌렸다.
한순간에 전장은 예상 밖의 상황으로 흘렀다. 케이론의 물러나자 전장엔 몬스터들과 요란 제국의 제7강습여단만이 남았다.
테세우드 공작이 텔레포트로 사라져 버리자 루턴 후작은 분노의 창끝을 다시 몬스터로 겨누었다. 살아남은 마법사들과 기사들이 그를 중심으로 몰려들었다.
그러자 대번에 십만을 상회하는 대군으로 불어났다.
“각하! 몬스터들이 더욱 흉성을 부립니다! 이대로 철군하심이 좋을 듯합니다!”
루턴 후작의 부관이 광란의 몸짓을 보이는 몬스터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끓어오르던 분노를 몬스터들에게 풀려고 했던 루턴 후작은 몬스터들의 몸짓이 전과는 확연히 달라 보이자 어금니를 깨물었다.
“놈들이 갑자기 저러는 이유가 무엇이지?”
“저자 때문입니다!”
누군가가 카르스를 가리켰다. 카르스가 등을 돌린 자세로 있었기 때문에 루턴 후작은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저자가 몬스터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니다. 생명의 기운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것으로 보아 데스나이트가 틀림없습니다.”
“데스나이트가 몬스터를 부린단 말이냐?”
“이유는 모르겠으나 틀림없이 저자의 명령에 따르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럼 저 둘은 무엇인가?”
루턴 후작이 흑야와 조윤을 가리켰다. 그들은 카르스와 폭스 후작, 그리고 크루즈 백작과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그들의 싸움이 어찌나 강력했던지 격돌을 일으킬 때마다 대지가 은은하게 울렸다.
“도대체 저들이 누구이기에 이토록 강력하단 말인가? 설마 숨은 초인이라도 된단 말인가?”
루턴 후작은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렸다.
그도 마스터다. 비록 초인엔 한참을 모자라는 실력이지만 그래도 요란 제국에선 소문난 강자가 그였는데, 그런 루턴 후작의 눈에도 흑야와 조윤, 그리고 그들과 어우러진 셋은 두려움을 자아내게 할 만큼 강력함을 발산하고 있었다.
그때 뒤쪽에서 마법사가 다가왔다.
“후작! 어둠의 힘이 다가오고 있소.”
그는 전신을 시커먼 천으로 두른 마법사였다. 놀랍게도 그들은 스무 명 전부가 생존해 있었다. 테세우드의 광포함에도 단 하나의 사상자도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이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루턴 후작은 자신에게 말을 건넨 마법사에게 가볍게 허리를 굽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