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3
<귀환무사 363화>
귀환무사 2부
138화
‘놀라운 능력을 지녔군. 이 세상에 저런 존재가 있었나?’
엄청난 광경에 혁련천후도 가볍게 놀랐다.
그때를 이용해 레인이 몸을 날렸다. 결코 녹록치 않은 레인이기에 혁련천후는 그가 사정권에서 벗어나는 것을 막지 못했다.
‘이런……!’
방심했던 스스로를 자책하며 그는 검을 뽑아 들었다. 그러고는 성큼성큼 앞으로 걸었다.
하지만 누군가가 막아서는 것을 보고는 걸음을 멈추었다.
카르스였다.
혁련천후는 그제야 카르스를 자세히 살폈다.
“묘한 놈이군, 호흡이 느껴지지 않다니. 네놈이 저들을 이끌고 온 그놈인가?”
그는 전장의 몬스터들을 가리키며 차갑게 물었다.
“후후! 대단한 인간이군. 이 세상에 어째서 너희 같은 놈들이 이토록 많이 설치는 거지?”
혁련천후가 뭐라 대답을 하기도 전에 시커먼 그림자가 카르스를 덮쳤다.
흑야였다.
쾅! 쾅! 쾅!
흑야의 검과 카르스의 검이 불꽃을 만들어 내며 치열하게 얽혔다. 느닷없는 흑야의 공격에 카르스는 순식간에 수세에 놓였다. 자신과 치열하게 싸웠던 레인과는 또 다른 강력함이 흑야에게서 느껴지자 카르스는 다시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 주둥이 때문에 죽는 것이라 여겨라!”
“이놈 저놈 할 것 없이 놀라운 놈들뿐이군.”
카르스는 진정으로 놀랐다.
오히려 레인보다 강력한 기운이 난도질 할 듯 몰아치자 지금까지의 여유로움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저쪽은 내가 맡겠다. 너희들은 저놈들을 처치하고 에이미에게 가 있도록 해.”
혁련천후는 조윤에게 그렇게 명령을 내리고는 빛이 난무하는 능선으로 걸었다. 그를 호위하려던 조윤은 어쩔 수 없이 흑야와 카르스를 향해 다가오는 폭스 후작과 크루즈 백작에게로 걸음을 놓았다.
“너희들은 내가 상대해 주마.”
조윤의 창이 강기를 품었다.
* * *
테세우드 공작의 가문은 오래전부터 대륙에 소문난 검술의 명가이자 마스터의 산실로 유명했다. 한 세대에 반드시 마스터 하나는 배출해 온 테세우드 가문은 그 막강한 무력을 바탕으로 언제부턴가 케이론 제국을 장막 뒤에서 조종하기 시작했는데 당대에 이르러서는 노골적으로 황권을 노리기에 이르렀다.
당대 가문의 수장인 테세우드 공작은 원대한 야망만큼이나 강력한 무력을 지닌 초인이며 뛰어난 정치가이기도 했다. 케이론 제국의 실질적인 지배자인 그는 세상이 모르는 비밀을 지니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이 세상의 것과는 확연히 다른 무공에 있었다. 목숨이 위기에 놓인 상황이 아니면 절대 사용하지 않는 그것은 그의 선조가 우연하게 인연을 맺은 이계에서 온 인물에게서 얻은 것이었는데, 그 무공이 지금 테세우드 공작에 의해 발현되고 있었다.
콰지직!
테세우드 공작의 검은 막아서는 모든 것들을 베어 넘겼다. 마스터에 준하는 강자들의 검도, 최상위 마법 방어막을 두른 갑주도 소용없었다.
오로지 전신을 검은 천으로 두른 자들만이 그의 검을 막아 낼 뿐이었다. 전체적인 전황은 요란 제국이 유리했지만 가장 중요한 수뇌부 간의 전투는 테세우드 공작으로 인해 케이론 제국이 압도해 나가고 있었다.
막스 황제는 돌연한 상황에 처음으로 불안감을 드러냈다.
“도대체 놈이 무슨 수작을 부린 거냐? 레인! 레인을 불러오너라!”
그는 주변을 호위하는 기사들에게 소리쳤다.
그때 레인이 그의 곁으로 내려섰다. 막스 황제는 곧장 전장을 휘젓고 있는 테세우드 공작을 가리키며 그에게 명령을 내렸다.
“놈을 막아라! 레인!”
그러나 레인의 입에선 뜻밖의 말이 튀어나왔다.
“폐하! 후퇴하셔야 합니다!”
“지금 그게 무슨 소리냐! 후퇴라니!”
“자세한 것은 본영에서 말씀드리겠으니 서둘러 퇴각 명령을……!”
말을 하던 레인이 흠칫거리며 뒷걸음질을 쳤다. 그의 시선을 따라 막스 황제도 시선을 돌렸다. 흑발을 늘어뜨린 혁련천후가 느릿하게 걸어오는 것을 본 막스 황제는 이맛살을 심하게 찌푸렸다.
“적인가? 저잔 도대체 누구지? 이런 전장에서 저런 태도를 보이다니…….”
혁련천후는 도저히 전장과는 어울리지 않는 분위기를 발산하고 있었다.
느릿하게 걸어오는 모습은 마치 참혹한 주변 경관과는 전혀 무관한 사람처럼 보였다. 두려움에 떠는 레인의 모습에 막스 황제는 위급한 상황도 잊고서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근위병들이 혁련천후의 앞을 막아섰다.
검은 천을 두른 자들은 테세우드 공작을 막느라 이곳을 돌아볼 겨를조차 없었다. 절망감을 드러내는 레인에게 차가운 미소를 보여 준 혁련천후의 눈동자가 매서운 빛을 발했다.
“그대가 요란 제국의 황제인가 보군?”
‘피해야 한다!’
막스 황제는 순간적으로 그를 상대해선 안 된다는 판단을 내렸다.
“적이다! 막아라!”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근위병들이 달려들었다.
막스 황제는 때를 이용해 레인과 뒤쪽으로 몸을 날렸다. 동시에 전장에 뿔 나팔 소리가 울렸다.
퇴각을 알리는 소리였다.
혁련천후는 달려드는 근위병들을 무시하고 신형을 허공으로 뽑아 막스 황제를 쫓았다. 사방에서 허공에 뜬 그를 향해 강전이 날아들었다.
뒤늦게 그를 발견한 검은 옷의 마법사들 몇이 강력한 마법 공격을 퍼부었다.
따다다당!
날아든 강전들은 모조리 사방으로 튕겨 날아갔다. 그리고 자욱하게 피어나는 피안개…….
근위병들이 아닌 마법사들이 뿌린 피였다. 언제나 마법사에겐 용서를 모르는 혁련천후였다. 공격을 퍼부었던 자들의 육신이 두 조각으로 썰어지며 바닥을 굴렀다. 운이 없게도 죽은 자들의 육신이 테세우드 공작이 뿌려 대는 기운에 휩쓸려 산산조각으로 찢어졌다.
그야말로 처참한 죽음이었다.
순간, 혁련천후와 테세우드 공작의 시선이 부딪혔다. 그러나 이내 혁련천후는 막스 황제가 도주한 방향으로 신형을 날렸다.
“퇴각하라! 퇴각하라!”
“으아…….”
“추격하라! 적의 황제가 저곳으로 갔다. 황제의 목을 베어라!”
전장은 더욱 참혹하게 변해 갔다. 끝까지 죽이려는 자와 도주하려는 자 간의 피 튀기는 전투는 전장을 한 폭의 지옥도로 변모시켜 나갔다.
제5장 두 번째 해후
막스 황제와 레인의 속도는 혁련천후도 쉽사리 따라잡기 힘들 만큼 매우 빨랐다. 레인이야 그렇다고 해도 막스 황제의 그러한 점은 매우 놀라웠다.
그는 테세우드 공작처럼 무력이 강한 군주가 아니라 전략, 전술에 뛰어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대륙에 막스 황제는 익스퍼트급의 검술을 지녔다고 소문나 있었다.
하지만 뛰는 속도만큼은 초인을 능가했다.
그에겐 대마법사의 마법보다 더욱 강력한 존재의 마법이 걸려 있는 까닭이었다.
참혹한 전장이 조금씩 멀어졌다.
조금을 더 질주하자 죽어 가는 자들이 질러 대는 비명조차 들리지 않았다.
휙! 휙!
주변 사물이 엄청난 속도로 스쳐 지나갔다. 혁련천후는 둘의 속도가 상상 이상으로 빠르자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오늘 넌 죽는다.’
그는 요란의 황제를 죽이고자 결심했다.
개인적인 원한이야 없었지만 어차피 고룡, 트로이안의 심장을 얻으려면 그와 부딪혀야 한다. 그 전에 죽일 수만 있다면 그 자체로 상당한 이득인 것이다. 물론 그전에 사로잡아 물어볼 게 많았다.
고룡, 트로이안의 심장에 관한 것인데, 황제라면 분명 모든 것을 알고 있을 테니까…….
그는 질주하면서도 주변을 살폈다. 좌우는 울창한 숲이었고 전방은 탁 트인 넓은 평원이었다.
막스 황제가 숨을 곳은 없었다. 만약 숲으로 숨으려 든다면 방향을 트는 순간 자신에게 따라잡힐 것이다.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그런 행동을 할 리는 없었다. 그렇다면 오직 전방으로 도주하는 것뿐인데 자신의 무한한 내공이라면 그들을 놓칠 까닭이 없었다.
쾅!
바닥을 차고 오른 그의 육신이 쏘아진 강전처럼 전방으로 질주해 들어갔다. 순식간에 거리는 좁혀졌다. 사위는 이미 어둠이 내려앉고 있었다.
바닥을 찰 때마다 선연한 불꽃이 피어나며 속도는 점점 빨라졌다. 무적의 살인 강기, 천살강기의 위력이었다.
그때였다. 혁력천후의 눈매가 슬쩍 가늘어졌다.
“뭐지?”
전방에 희미한 불꽃이 보이기 시작했다. 막스 황제와 레인의 도주하고 있는 방향의 정 가운데였는데, 불꽃이 점점 밝아지는 것으로 보아 이쪽으로 뭔가가 다가오고 있음이 분명했다. 워낙 빠른 속도로 달리는 터라 불꽃의 정체는 금방 드러났다.
분명 사람이었다. 매우 뚱뚱해 보이는 사람이 엄청난 속도로 달려오고 있는 것이 혁련천후의 눈에 잡혔다.
‘하나가 아닌 둘이다!’
그랬다.
뚱뚱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 둘이었다. 한 명이 한 명을 품에 앉은 모습이었다. 그때 정체불명의 인물 뒤쪽에 또 다른 인영이 엄청난 속도로 질주해 들어오는 것도 보였다.
쾅!
막스 황제와 레인의 앞쪽에 화염이 떨어지며 폭발을 일으켰다. 둘의 육신이 휘청하며 좌우로 갈라졌다. 그 사이로 누군가를 품에 앉은 인물이 섬전처럼 쏘아져 왔다.
혁련천후와 괴인영의 시선이 부딪혔다.
“비켜!”
“고약한 놈이군!”
섬뜩한 음성이 울리며 화염이 뿜어졌다. 혁련천후는 피하지 않고 그대로 화염을 향해 돌진했다. 여기서 속도를 멈추면 막스 황제와 레인을 놓칠 수도 있었다. 그래서 상대가 누군지는 모르나 그대로 베고 돌파할 것을 작정한 것이다.
천살강기를 품은 그의 검이 광포한 불꽃을 피워 내며 괴인영의 목을 향해 뻗어 갔다. 괴인영의 눈에 경악의 빛이 어리는 것을 본 혁련천후는 입가에 차가운 미소를 머금으려다 눈을 부릅떴다.
‘소민!’
그랬다.
괴인영의 품 안에 안긴 사람은 연소민이었다. 혁련천후는 전력을 다해 발출했던 검을 회수했다. 그러나 워낙 빠른 데다가 강력한 힘을 담고 있어서 방향을 틀어서 공격을 멈출 수가 있었다.
쾅!
우지끈!
혁련천후의 육신이 좌측 숲으로 떨어지며 나무들이 차례로 부러져 내렸다. 다시 ‘쾅’ 하는 소리와 함께 혁련천후의 육신이 허공으로 솟아올랐다. 볼 것도 생각할 것도 없이 그는 방향을 틀어 칸빌을 쫓으려고 했다. 연소민 때문이다.
그때 뒤쪽에서 차가운 음성이 울렸다.
“비켜!”
휘이잉!
혁련천후의 고개가 그쪽으로 돌아갔다. 은발을 휘날리며 공간을 갈라오는 청년. 순간 시간이 멈추었다. 사위가 순백의 공간으로 변화되며 오직 청년의 얼굴만이 혁련천후의 시야에 들어왔다.
육신이 떨려 온다. 심장은 금방이라도 터질 듯, 급격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호흡은 청년의 얼굴을 보는 순간 이미 거칠어져 있었다. 분노로 일그러진 아들의 얼굴이 눈앞을 지나 저 멀리로 사라져 갔다. 그제야 세상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의 육신은 혁련소를 쫓아 사라졌다.
* * *
대마법사 율튼은 전장을 돌아봤다.
몬스터들은 거의 전멸 직전에 이르러 있었다. 제7강습여단의 기마병들이 사방으로 도주하는 몬스터들을 쫓아 학살하고 있는 광경에 안도의 숨을 내쉰 그는 막스 황제가 주둔한 능선으로 고개를 돌렸다.
순간 그의 얼굴이 돌처럼 굳어졌다.
막스 황제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퇴각하는 요란 제국의 기사들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