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2
<귀환무사 362화>
귀환무사 2부
137화
“정말 강해졌군, 칸빌. 도대체 뭘, 어떻게 한 거지?”
“빌어먹을 애송이놈! 네놈이야말로 도대체 뭘 어떻게 한 거지? 설마 마왕의 암흑마기라도 물려받은 것은 아니겠지?”
“미친놈! 그 양반이 미쳤냐? 그걸 내게 주게? 난, 원래부터 강했던 몸이야. 재수 없게 마법사 놈들에게 당했을 뿐이라고!”
둘 사이의 공간에 다시 마나의 요동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곧 치열한 싸움이 전개된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벌써 몇 번에 걸쳐 둘은 이런 식으로 싸워 오고 있었다.
“후후! 애송이! 다시 싸워 볼까?”
“좋지! 대신 이번엔 네놈을 깨끗하게 소멸시켜 줄 테니까 각오하라고!”
“그건 내가 할 소리다! 애송이!”
“간다! 나쁜 놈아!”
둘의 육신이 다시 허공에서 격돌했다.
쾅! 쾅! 쾅!
굉음과 번쩍이는 빛으로 인해 기사들은 더욱 멀찌감치 물러났다. 그들은 요란 제국과의 전쟁에 투입될 전력들이다. 하지만 난생처음 보는 엄청난 결투 때문에 아예 정신을 놓고 구경하고 있었다.
그때 연소민이 둘의 지척에 내려섰다.
그녀는 은발을 휘날리는 혁련소를 미처 알아보지 못했다. 내려선 위치가 그의 뒤쪽에다가 둘이 워낙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가 아니라 누구라도 용모를 분간하기란 불가능했다.
‘얘가 어딜 갔지?’
그녀는 카루가가 보이지 않자 주변을 살폈다. 그러나 카루가는 보이지 않았다. 분명 증오에 찬 소리를 지르고 이곳으로 몸을 날린 그가 보이지 않자 연소민은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쩌정!
둘의 결투는 시각적인 볼거리를 제공했다. 격돌하면 거대한 불꽃이 연방 사방으로 퍼져 나갔는데 혁련소가 파란색, 칸빌은 붉은색으로 나뉘어 먼 곳에서 보면 마치 불꽃놀이를 하는 것처럼 아름다워 보일 정도였다.
그러나 격돌에서 파생된 기운은 결코 아름답지 못했다. 더욱 강력해진 둘의 기운은 점점 반경을 넓혀 갔다. 오십 미르 밖에 섰던 기사들의 갑주가 뜨겁게 달구어질 정도가 되자 정신 줄을 놓고 구경하던 기사들은 그제야 번쩍 정신이 들었다.
“상부에 서둘러 보고하라! 초인들이 나타났다고 말이다!”
“자작님! 전투가 개시되었다고 합니다! 서둘러 평원으로 오라는 전갈입니다!”
“뭣이! 벌써 붙었단 말이냐?”
“아군이 밀린다고 합니다! 속히 전장으로 가셔야 합니다!”
“젠장, 이런 멋진 결투를 두고 떠나야 하다니…… 모두 전장으로 간다! 서둘러라!”
기사들이 분주하게 전마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빠르게 북쪽으로 먼지를 일으키며 질주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그렇게 떠나자 혁련소의 얼굴이 조금 밝아졌다.
쾅!
칸빌의 공격을 맞받아친 그는 뒤쪽으로 훌쩍 몸을 날리고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정말 엄청나게 강해졌구나, 칸빌! 정말 대단해!”
“감탄만 하고 있을 작정이냐? 애송이!”
“아니,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힘을 개방할 생각이야. 조심해야 될 거야, 칸빌!”
“……뭐?”
칸빌이 흠칫했다.
본격적으로 힘을 개방한다니, 그럼 지금까지 전력으로 싸운 게 아니란 말인가? 칸빌은 가소롭다는 듯 입가가 올라갔다.
‘저놈 표정이 이상하잖아?’
한껏 여유가 묻어나는 혁련소의 미소를 본 칸빌은 고개를 갸웃했다.
“너, 다른 자의 기운을 흡수하는 게 한계가 없는 거냐?”
“무슨 헛소리냐?”
“그러니까, 무한대로 다른 자의 기운을 흡수할 수 있냐고 묻잖아.”
“후후! 당연하지. 네놈의 힘도 곧 나의 일부로 흡수될 것이다. 그러고 난 다음엔 마계로 돌아가 네놈을 도와준 놈들을 깡그리 소멸시켜 버릴 작정이다.”
칸빌의 눈동자가 시뻘건 광망으로 번뜩였다.
“그게 가능하다고 여기는 모양이군. 바보 같은 놈……!”
“후후! 어디 감추어 놓은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볼까?”
칸빌이 먼저 움직였다.
혁련소도 움직였다. 확실히 그는 기사들이 사라진 지금, 조금 전과는 다른 분위기를 보이고 있었다. 이유는 오직 그만이 알 뿐이었다.
화아악!
칸빌의 주변 공간이 뜨거운 화염으로 이글거렸다. 격돌 이후, 처음으로 화염 계열의 마공이 발현되고 있었다. 사실 칸빌은 여유를 보이곤 있었지만 혁련소가 느닷없이 다른 분위기를 발산하자 자신도 은근히 긴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칸빌이 막 몸을 날리려고 할 때였다. 칸빌의 뒤쪽에서 빛이 일렁거리는 것을 본 혁련소의 표정이 변했다.
그를 무섭게 노려보던 칸빌이 그것을 놓칠 리 없었다.
“감히! 어떤 놈이!”
칸빌의 육신이 엄청난 속도로 뒤를 향해 돌아가며 화염을 뿜었다. 그와 동시에 혁련소가 벼락처럼 달려들었다.
콰지지직!
“멈춰!”
“아악!”
공간이 화염으로 휩싸이며 그 안에서 날카로운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칸빌의 입에서도 묵직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혁련소에게 어깨를 강타당한 칸빌은 상당한 거리까지 날아가서 겨우 내려섰다.
털썩!
아무것도 없었던 공간에서 왜소한 인영이 바닥으로 힘없이 떨어졌다. 혁련소가 재빨리 인영에게로 달려갔다.
“카루가!”
카루가였다.
전신이 시커멓게 그을린 카루가가 미약하게 꿈틀거리고 있었다. 혁련소가 재빨리 카루가를 품안에 안았다.
“카루가! 이봐! 카루가!”
“혀, 형…….”
“그래, 나야! 카루가! 정신 차려!”
“헤헤…… 성공할 수 있었는데, 형 때문에 실패했잖아. 저 나쁜 놈을 죽일 수 있었는데…….”
카루가의 호흡 소리가 급격하게 미세하게 변해 가자 혁련소의 얼굴에 다급함이 번져 갔다. 그런 그들을 칸빌은 그저 노려보고만 있었다.
‘한 팔을 움직일 수 없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저 애송이 놈이 갑자기 이렇게 강해지다니…….’
이유는 그것이었다.
뒤쪽에서 자신을 노리는 기운을 느끼고 공격함과 동시에 자신의 어깨에 떨어진 혁련소의 공격으로 인해 칸빌은 큰 타격을 입고 말았다. 피한다고 피했지만 오른쪽 어깨를 내주고 만 것이다. 그렇지만 않았다면 당장에 달려들었을 것이다.
칸빌은 재빨리 몸 상태를 살폈다.
‘이대론 놈을 이길 수 없다!’
결론은 그렇게 내려졌다. 그렇다면 무조건 자리를 피하고 보는 것이 상책이다. 혁련소를 죽일 듯 노려보던 칸빌의 눈동자가 이채로 물들었다.
‘……응?!’
좌측 숲에서 뛰어나오는 연소민이 보였다. 순간, 그의 눈이 사악한 빛으로 번쩍였다.
‘쓸 만한 계집이군. 멍청한 신이 내게 기회를 주는군, 후후후!’
콰앙!
칸빌의 육신이 섬전처럼 혁련소의 머리 위를 넘어가 연소민에게로 날아갔다. 칸빌이 자신을 공격하려는 것으로 판단한 혁련소는 카루가를 안고 우측으로 멀찌감치 몸을 피했다. 그러나 칸빌이 곧장 다른 방향으로 날아가자 순간적으로 의구심이 든 혁련소의 시선이 칸빌을 쫓았다.
“아리안!”
그도 아리안을 보았다.
지금 연소민은 아리안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때문에 혁련소는 그녀가 자신이 그토록 찾아 헤맸던 연소민임을 몰라봤다.
“위험하다…….”
칸빌이 그녀를 노림을 깨달은 혁련소는 카루가를 바닥에 내려놓고는 섬전처럼 칸빌의 뒤를 쫓았다.
* * *
카루가를 찾지 못하고 숲에서 나온 연소민은 무지막지한 기운이 자신을 향하는 것을 느끼고는 그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전신이 이글거리는 화염으로 충만한 존재가 엄청난 속도로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것을 발견한 그녀는 검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엄청나…….”
그녀는 피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이십 미르 밖을 돌진해 들어오는 존재에게서 발출된 무한한 압력이 전신을 조여들고 있었다. 피하려고 몸을 띄우는 순간 그대로 죽을 것만 같다는 공포감이 그녀의 발목을 잡아 버렸다. 입술을 지그시 깨문 그녀는 검에 자신의 모든 힘을 실었다.
우웅…….
그녀의 검이 강렬한 오러로 둘러졌다.
그녀는 칸빌의 뒤를 쫓아오는 혁련소를 보지 못했다. 앞선 칸빌에 가려서 그런 것도 있지만 당장의 위기감 때문에 시야가 좁아진 탓도 있었다.
화아악!
엄청난 열기가 그녀를 압박해 들기 시작했다. 동시에 공격 사정권 안으로 칸빌이 들어섰다.
“어둠의 여왕으로 만들어 주마. 그 힘을 내게 넘겨라!”
“합!”
연소민의 전력을 담은 검이 칸빌을 향해 날아갔다. 순간적으로 늘어난 그녀의 힘을 간파한 칸빌은 순간 흠칫했다. 그러나 피하기란 이미 늦었다.
“감히!”
칸빌의 거대한 화염의 검이 연소민의 가녀린 육신을 향해 떨어졌다.
“부딪치면 안 돼!”
혁련소의 고함은 곧 강력한 굉음에 묻혀 버렸다.
꽝!
번쩍!
“아…….”
굉음과 빛의 폭발, 그리고 가녀린 연소민의 신음이 혁련소의 눈과 귀를 일시적으로 마비시켰다.
드드드…….
지진이 온 것처럼 대지가 흔들렸다. 암흑마기를 끌어올려 시야를 되찾은 혁련소의 눈에 가랑잎처럼 날아가는 연소민이 보였다. 그리고 그녀를 쫓는 칸빌도 보였다.
그때 혁련소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연소민, 아니, 그에겐 여전히 아리안으로 각인된 그녀의 모습이 변하고 있었다.
상당한 속도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건만 혁련소에겐 잠시 세상의 모든 것이 정지되었다. 아무런 소리도, 심지어 그녀를 향해 쫓아드는 칸빌조차도 시야에서 사라졌다.
오직 그녀의 얼굴만이 보일 뿐이었다. 입술이 떨리며 그토록 부르고 싶었던 이름이 흘러나왔다.
“소민!”
그랬다.
연소민이었다. 꿈에서도 잊지 못했던 그녀가 분명했다.
순백색으로 변했던 모든 것이 현실로 돌아왔다. 칸빌의 오른손이 그녀의 가녀린 육신을 낚아채는 것을 본 혁련소의 입에서 처절한 부르짖음이 토해졌다.
“으아아아!”
* * *
“크윽!”
칸빌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연소민을 안고 어디론가 날아가는 그는 자꾸만 뒤를 돌아봤다. 혁련소가 쫓아오고 있었다.
“젠장! 순간적으로 뿜어낸 힘이 이 정도로 강할 줄이야…….”
그가 지나가는 공간에 시커먼 액체가 뿌려졌다. 놀랍게도 그의 왼팔이 잘려 나가고 없었다. 어깨 어름에서 시커먼 액체가 끊임없이 허공으로 뿌려졌는데, 인간으로 치면 핏물과도 같은 것이었다. 조금 전, 격돌 직전에 연소민의 힘이 느닷없이 커진 까닭이었다.
위험을 눈치챘으나 워낙 창졸지간에 당한 거라 피할 시간조차 없었다. 때문에 팔 하나를 잃어버린 칸빌은 생사가 걸린 도주를 감행하고 있었다.
이 상태로 뒤를 쫓아오는 혁련소에게 잡힌다면 그대로 죽을 수밖에 없다.
‘이 지독한 살기는 뭐야?’
그랬다.
뒤통수가 따끔거릴 정도의 지독한 살기를 혁련소가 발산하고 있었다. 그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가 왜 이런 살기를 자신에게 발산하는지를…….
비록 치열한 결투를 벌였지만 조금 전까지 이런 살기 따윈 전혀 없었다.
‘이 계집과 관련이 있었던 모양이군, 빌어먹을!’
쾅!
땅바닥을 차고 오른 칸빌은 북쪽으로 달렸다. 살려면 그곳으로 가야 했다. 그곳에 자신의 수족들이 모여 있다. 죽은 기사들의 왕, 카르스와 십만이 넘어가는 몬스터 대군에게로 가야만 위기를 모면할 수 있는 것이다.
* * *
콰과과광…….
연속적으로 울린 굉음은 전장에 모든 이들의 시선을 빼앗았다. 혁련천후도 무심결에 굉음이 들려온 곳으로 시선을 던졌다.
요란 제국의 황제가 진을 치고 있던 능선에서 아비규환의 참상이 벌어지고 있었다. 강렬한 빛으로 둘러싸인 누군가가 거침없이 요란 제국의 기사들과 마법사들을 향해 돌진하고 있었는데 걸려드는 모든 자들이 피를 뿌리며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