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1
<귀환무사 361화>
귀환무사 2부
136화
* * *
전장은 대량 살상이 가능한 마법 공격이 난무했다.
피아간에 화염 공격에 의해 죽어 가는 전사자들이 속출했다. 당장은 케이론의 우세로 전황이 돌아갔다. 양분된 요란과는 달리 그들은 삼십만에 달하는 대군을 막스 황제에게 집중시켰다. 마법 병단의 공격은 오직 막스 황제의 주변으로만 날아갔다.
그러나 쉽게 성공하기란 무척 어려웠다. 막스 황제의 주변을 철통처럼 호위하는 마법사들의 전력은 케이론을 압도했다. 그들에 의해 케이론의 마법 공격은 모조리 튕겨 나갔다. 다만 기병에서 우위를 보인 케이론은 전장을 폭넓게 활용하며 요란 제국의 기병들을 조금씩 밀어내고 있었다.
그때 질풍처럼 전장으로 뛰어든 요란의 오만 기병이 케이론의 기마 병단을 휩쓸기 시작했다. 그들은 다른 기마병들과 달라도 너무 달랐다. 가벼운 경갑을 두른 그들은 월등한 기동력으로 케이론의 중장기병들을 헤집기 시작했는데 속도에서 워낙 차이가 나 버리자 전황은 삽시간에 요란 제국으로 유리하게 돌아갔다.
동료 하나가 죽으면 그들은 적, 셋을 죽였다. 연방 핏빛 안개를 만들어 내는 그들의 무기는 이 세상의 것과는 확연히 다른 것이었다. 창에 날이 선 칼을 꽂은 그들의 무기는 거리에서 케이론 기사들을 압도했다.
찌르기 위주의 장창을 든 케이론의 기사들은 속수무책으로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그러나 워낙 수적으로 우세했던 까닭에 단시간에 밀리지는 않았지만 이대로 조금만 더 지나면 결과는 불을 보듯 훤했다.
테세우드 공작은 전황에 아랑곳 않고 곧장 직선으로 돌진했다. 그를 따르는 수만의 기병들은 케이론 최고의 정예들로 구성된 테세우드 공작가의 사병들이었다.
“막스! 이놈! 목을 내놓아라!”
막스 황제와 테세우드 공작 간의 거리가 이십 미르로 좁혀졌다. 그제야 막스 황제의 얼굴에 긴장감이 떠올랐다. 설마 테세우드 공작이 이 정도로 집요하게 자신만을 노릴 줄은 미처 계산에 넣지 못했던 그였다.
“간악한 놈이구나! 수하들을 방패막이로 사용하다니…….”
그와 테세우드 공작의 차이는 그것에 있었다. 전쟁광 막스 황제는 소문과는 달리 누구보다 수하들을 아꼈다. 반면에 테세우드 공작은 오직 승리만을 최종 결과로 보는 성격이었다. 승리를 쟁취하기 이전의 모든 것들은 승리만 한다면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인물이 테세우드 공작이었다.
그래서 막스 황제는 국민들의 환호를 받는 반면, 테세우드 공작은 그렇지 못했던 것이다. 대륙의 대부분의 국가들이 막스 황제를 욕하더라도 최소한 요란 제국의 국민들만큼은 그를 지지하고 따랐다. 그게 국력이고 제국으로 올라선 원동력이었다.
“폐하! 뒤로 물러나십시오! 놈은 저희들이 맡겠습니다.”
막스 황제의 주변을 호위하던 시커먼 로브를 걸친 자들이 앞으로 나섰다. 그들은 모두 스무 명. 하나같이 섬뜩한 죽음의 냄새를 풍기는 자들이었다.
“부탁하겠소.”
막스 황제가 뒤로 물러났다.
놀랍게도 황제인 그가 그들에게 하대를 하지 않았다. 뒤쪽으로 물러나 그들을 바라보는 막스 황제의 눈동자가 묘한 빛으로 물들었다. 그건 결코 동료를 바라보는 빛이 아니었다. 눈빛, 깊숙한 곳에서 번뜩이는 그건 분명 증오였다.
왜일까?
참혹한 전장의 한가운데서 자신을 구해 주겠다고 나선 그들에게 증오를 내비치다니…….
제4장 킹 데스나이트로 변신한 카르스
크로우 기사단의 단장, 레인은 불신으로 역력한 눈빛으로 카르스를 응시했다. 연이은 격돌로 그는 카르스가 결코 자신보다 아래가 아님을 깨달았다.
그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
‘놈은 카르스가 아니다. 저 진득한 마기는 결코 인간이 지닐 수 없는 것, 그렇다면……!’
레인은 다시 검을 들었다.
“카르스! 너의 아버지가 저곳에 있다.”
“아버지? 그런 건 너희 같은 미개한 족속들에게나 있는 것, 어둠의 왕인 내게 아버지란 없다!”
레인은 내심 놀랐다.
‘킹 데스나이트! 그랬군. 놈은 죽은 몸이었어. 어쩐지 강하다 했더니, 마계의 졸자가 되었구나. 불쌍한 놈! 제국의 황태자에서 이젠 그저 마계의 마졸일 뿐이구나.’
조금은 마음에 걸렸던 황태자 카르스에 대한 감정은 사라졌다.
그가 진정 죽은 기사들의 왕이라면 반드시 죽여야 할 대상일 뿐이다. 마계의 족속들은 인간과는 공존할 수 없는 존재들, 그것은 인간이라면 그 누구나 마찬가지였다.
“이젠 미련 없이 너를 죽여 주마, 카르스!”
“후후! 그럴 실력이 될까? 지금까지 네놈의 기운을 살피려고 슬슬 싸웠다만 이제부턴 다를 거다. 모든 걸 파악했거든…….”
“죽은 놈이 생각에다 만용까지 부리는군.”
“이제 그만 네놈은 죽어 줘야겠어. 저곳에 인간들의 왕이 있으니 네놈, 다음은 그자가 될 것이다, 후후후!”
“불쌍한 놈! 그는 네놈이 인간이었을 적에 네놈의 아버지다. 물론 그에게 다가갈 기회조차 넌, 얻지 못할 것이야.”
참혹한 전장의 한가운데에서도 둘은 서로를 노려보며 움직이지 않았다. 카르스 때문에 몬스터들이 접근을 하지 못한 까닭이었다.
레인은 슬쩍 전장을 살폈다.
여전히 치열했지만 조금씩 몬스터들이 뒤로 물러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블랙 오우거와 블러드 와이번이 없었다면 처음부터 몬스터는 정규 훈련을 받은 기마 병단의 상대가 되질 못한다.
레인의 입가에 섬뜩함이 걸렸다.
“이젠 끝을 보자꾸나.”
그때였다.
레인의 좌측에서 섬뜩한 기운이 몰아쳤다.
“으악!”
레인의 고개가 황급히 좌측으로 돌아갔다. 피를 뿌리며 쓰러지는 크로우 기사 단원이 그의 눈에 잡혔다. 순간 그의 두 눈이 찢어질 듯 부릅떠졌다.
“허억! 저, 저…….”
지척에 카르스가 검을 겨누고 있었음에도 레인은 지금까지의 냉철함을 잃어버리고 혼비배산, 말까지 더듬었다. 그의 두 눈에 불신의 빛이 번져 갔다.
“나를 알고 있었던 놈이군.”
흑발을 휘날리며 선 사내, 레인은 눈을 깜빡여가며 그를 다시 살폈다. 그러나 아무리 봐도 분명 그였다.
결코 이 세상에 있어선 안 될 사내, 자신이 살아왔던 고향에서 무적의 존재로 군림했던 그가 왜 이곳에 있단 말인가?
“신, 신마성주……!”
자신도 모르게 말이 흘러나왔다.
“역시, 나를 알고 있었어. 누구지? 신교에서 온 놈인가?”
혁련천후는 레인과 카르스의 중간 지점으로 걸었다. 귀신을 본 것처럼 부들부들 떠는 레인과는 달리 카르스는 입맛을 다시며 탐욕스러운 눈빛을 발하고 있었다.
눈앞의 레인과는 비교불가의 엄청난 힘이 혁련천후에게서 느껴졌다.
‘오호! 이거 굉장한 인간이 나타났군.’
그에겐 혁련천후도 자신에게 힘을 보태 줄 한낱 미끼로 보일 뿐이었다. 혁련천후는 카르스를 쳐다보지도 않고 레인을 차갑게 응시했다.
그 와중에도 크로우 기사단은 누군가에 의해 피를 뿌리며 쓰러지고 있었다. 엉겁결에 그곳을 돌아본 레인은 다시 경기를 일으켰다.
“오, 오왕……!”
혁련천후를 안다면 당연히 그들도 안다.
무적의 수신호위 팔왕, 그중에서도 죽음과 가장 친숙하다는 살왕과 창왕이 눈앞에 떡하니 나타나 있었다.
“당신들이 왜, 이곳에…….”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이야.”
* * *
쩌저정!
마법 병단 간의 힘겨루기가 벌어졌다.
양 제국의 마법 병단의 마법 공격이 허공에서 정통으로 부딪치자 공간이 균열을 일으키는 듯한 착각마저 불러 왔다.
“으아아…….”
근접거리에 있던 기사들이 가루로 흩날려 사라졌다. 피아를 구분 못한 파생된 기운들은 반경 삼십 미르 안에 있던 모든 생명체를 거두어 가는 참혹한 결과로 이어졌다.
그러나 그들보다 더 참혹한 광경은 기마 병단 간의 격돌로 벌어지고 있었다. 케이론 제국의 기마 병단의 가운데를 돌파해 들어갔던 요란 제국의 기병들은 그야말로 파괴자, 그 자체였다.
수적으로 곱절 이상이었던 케이론 제국의 기마 병단은 벌써 반 수 가까이 줄어 있었다. 그에 반해 요란 제국의 오만 기병은 수천에 불과한 사상자를 내고서 전장을 광포하게 휘젓고 다녔다. 마법사들도 그들을 공격하지 못했다.
아군과 섞여 있었던 까닭이다. 그들로 인해 전황은 요란 제국으로 서서히 기울고 있었다. 기병으로 대표되던 케이론 제국이 기병에 의해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반면 기병전이 벌어지고 있는 전장의 외곽은 양 제국의 정예들이 격돌을 벌이고 있었다. 그야말로 그곳에서의 승부가 전투의 결과로 이어질 만큼 주요 인물들이 몰려 있었는데 초인이라 불리던 테세우드 공작이 단연 발군의 움직임을 보여 주고 있었다.
이미 그의 검에 의해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기사들이 쓰러져 갔다. 적장의 목을 베는 것은 모든 기사들의 꿈이다. 당연히 적의 수장인 테세우드 공작에게 대부분이 몰려들었던 까닭에 그가 선 주변은 죽은 자들의 육신으로 넘쳐 났다.
서걱!
또 하나의 목숨이 피를 뿌리려 쓰러졌다.
테세우드 공작은 얼굴에 묻은 핏물을 닦아 낼 생각조차 못하고서 다시 검을 휘두른다. 그는 오직 막스 황제만을 노리고 돌진했다.
그러나 앞을 막아서는 자들이 너무 많았다. 베어도 베어도 그들은 목숨을 던져 가며 테세우드 공작의 진로를 막아섰다.
그러기를 얼마나 지났을까? 테세우드 공작은 순간 시야가 시커멓게 변하는 것을 느꼈다. 전신을 시커먼 천으로 두른 자들이 기병을 손에 들고서 그를 막아서고 있었다.
본능적으로 그들이 지금까지의 기사들과는 다름을 깨달은 테세우드 공작은 주변을 살폈다. 순간, 그는 아차 했다.
‘너무 떨어졌다.’
그랬다.
자신 홀로 너무 먼 곳으로 와 있었다. 자신을 호위하던 기사들과 자신과의 거리는 대략 이십 미르, 평소라면 한걸음에 이동할 거리지만 지금은 다르다.
적과 아군으로 뒤섞인 전장이 아닌가?
“비열한 놈! 그러고도 네놈이 제국의 황제라 할 수 있느냐?”
그제야 그는 막스 황제가 자꾸만 뒤로 물러났던 이유를 깨달았다.
“네놈의 방식을 배웠을 뿐이다, 테세우드!”
“닥쳐라!”
“후후! 비열함이란 너와 어울리는 단어지. 주인을 문 사나운 사냥개의 말로가 어떤지 보고 싶구나, 테세우드!”
“이놈! 막스!”
테세우드 공작이 검이 불을 뿜었다. 초인의 분노가 담긴 검은 무한한 오러를 발출하며 주변을 광포하게 몰아쳤다. 그러나 앞을 막아섰던 자들이 그의 전진을 용납하지 않았다.
꽈앙!
허공에서 불꽃이 몰아쳤다.
막아섰던 자의 육신이 휘청하며 뒤로 주르륵 밀려났다. 반면, 테세우드 공작은 잠깐 멈칫했을 뿐이었지만 그의 얼굴은 사납게 구겨져 있었다.
‘고작 한 놈이 나를 막아 내다니…….’
자신은 제국에 셋뿐인 초인이다.
그런 자신의 분노가 담긴 맹공을 고작 한 명이 막아 낸 것이다. 더욱이 죽지 않는 멀쩡한 모습으로 자신을 노려보고 있질 않은가?
그런 자가 스물이나 자신을 에워싸고 있었다. 분노는 이내 긴장감으로 변해 가며 질끈 입술을 깨물게 만들었다.
‘위험하다! 어쩔 수 없이 그것을 사용할 수밖에 없겠구나.’
우우웅!
테세우드 공작의 육신이 기묘한 소리를 울리며 뿌연 연기 같은 것으로 둘러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를 막아섰던 자들이 흠칫거리며 몇 걸음 뒤로 물러났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막스 황제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그러다가 점점 그의 눈이 커졌다. 동시에 그의 입에서 고함이 터져 나왔다.
“지금 놈을 치시오! 어서!”
* * *
쾅! 쾅!
시뻘건 불꽃이 사방으로 뻗치며 주변 모든 것이 산산조각으로 부서져 날아갔다. 기사들은 그저 멍하니 혁련소와 칸빌의 가공할 결투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둘이 격돌하면 파생된 기운이 오십 미르까지 뻗쳤다. 이미 반경 오십 미르 안쪽은 조그마한 바위조차 없었다.
오직 그들이 밟고 선 대지와 둘의 육신만이 그곳에 존재할 뿐이었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혁련소는 칸빌을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