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0
<귀환무사 360화>
귀환무사 2부
135화
혁련소는 그제야 상대가 누군지 짐작했다.
“칸빌! 네놈이었군. 사악한 놈! 보아하니 다른 자의 힘을 흡수한 모양이구나!”
“후후! 이제야 알아보는군. 하지만 이미 늦었어. 진즉에 알아봤다면 도망이라도 쳐 보다가 죽었을 텐데 말이야.”
칸빌은 여유가 넘쳤다.
반대로 혁련소는 내심 초조했다. 지금의 칸빌은 전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전에는 일대일로 붙어도 자신이 진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느껴지는 기세만으로도 그가 더 강해 보였다.
말처럼 다른 자의 힘을 흡수한 것이 원인이리라. 그것도 꽤 강력한 힘을 말이다. 인간의 육신으로 변신한 것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네놈을 찾아다녔는데, 스스로 이곳으로 기어 오다니…… 끝장을 내 주마!”
혁련소는 모든 힘을 끌어올렸다.
비록 천살강기는 잃었지만 대신 마계의 막강한 암흑마기가 그를 보호하고 있었다. 암흑마기에 가문의 비기로 전해져 오던 무공을 섞으면 칸빌이 아무리 강해졌다고 해도 이길 가능성은 있었다.
* * *
“엄청난 힘이 느껴져. 누구지……?”
성곽에서 싸움을 지켜보던 연소민은 새롭게 나타난 자에게서 막강한 기운이 자신에게까지 전해지자 호기심이 일었다.
그리고 기사들과 실랑이를 벌이던 사람에게서도 전과는 다른 무지막지한 기운이 느껴지자 호기심은 더욱 강렬하게 그녀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검에 손을 가져가다가 흠칫했다.
‘뭐지? 이 반응은…….’
그랬다.
묘한 기분이 들었다. 특히 청년이 뿜어내는 기운을 느끼고는 가슴 한구석에서 작은 울렁거림마저 나타나고 있었다. 그녀가 가볍게 호흡을 다스리고 시선을 던졌을 때, 둘이 격돌했다. 연소민은 순간 손을 들어 눈을 가렸다.
번쩍!
둘이 격돌하자 엄청난 빛의 폭발이 일어났다. 기사들이 떼죽음을 당하는 것을 보고 전마를 몰아 달려오던 다른 기사들이 태풍에 휩쓸린 낙엽처럼 사방으로 날아갔다.
드드드…….
대지가 울렸다.
“도대체……!”
연소민은 반쯤 넋이 나갔다. 이건 듣도 보도 못했던 엄청난 광경이었다. 고수들의 요람이라던 신교에서도 이 정도의 가공할 만한 격돌은 구경조차 못했던 그녀였다. 아니, 중원을 통틀어서도 이 정도의 위력을 보일 고수는 오직 신마성의 거인들뿐일 것이다.
쾅! 쾅!
둘의 격돌은 계속되고 있었다. 그때였다.
“칸빌!”
뾰족한 외침과 함께 누군가가 그녀의 머리를 넘어 둘이 싸우는 곳으로 쏜살처럼 날아갔다. 연소민의 커다란 눈동자가 크게 떠졌다.
“카루가! 위험해!”
카루가였다.
그러나 카루가는 벌써 둘의 격돌 현장 근처까지 다다라 있었다. 연소민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챙!
검을 뽑아 든 그녀의 육신이 카루가의 뒤를 쫓았다.
* * *
크로우 기사단의 단장, 레인은 거침이 없었다.
그의 주변으로 몰려든 몬스터들은 모조리 한 줌 핏물로 화해 쓰러졌다. 칼이 닿지 않았음에도 막강한 오러가 오우거며 고블린을 휩쓸고 지나갔다.
다른 크로우 기사 단원들도 다를 바 없었다. 그런 그들의 뒤쪽으로 기병들이 들이쳤다. 전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크어어…….”
쾅!
“캬악!”
아직 살아남았던 블랙 오우거의 거대한 주먹이 레인의 육신을 강타했다. 그러나 비명은 오히려 주변에 몰려 있던 몬스터들에게서 터져 나왔다. 파생된 기운은 칼날보다 날카로웠다. 오크의 단단한 가죽이 종이처럼 잘려 나가며 비릿한 피비린내를 주변을 진동했다.
레인의 눈이 매섭게 돌아갔다.
“이런 개 같은……!”
블랙 오우거의 주먹에 정통으로 가격당하고도 그는 입가에 가는 선혈만을 흘려 낼 뿐이었다. 피하지 못한 것에 분노한 것일까? 레인은 모든 것을 제쳐 두고 블랙 오우거에게 달려들었다. 그의 돌진 방향에 있었던 오크와 고블린들이 본능적인 두려움에 의해 좌우로 썰물이 빠지듯 물러났다.
어지간해서는 공포를 모르는 몬스터들의 특성을 감안하면 레인이 발산하는 기운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여실히 보여 주는 광경이었다.
“크아아…….”
블랙 오우거도 괴성을 지르며 레인을 향해 거대한 주먹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그때였다. 허공에서 몸을 회전하며 검을 베어 가던 레인을 향해 누군가가 빛을 번쩍이며 날아들었다.
쾅!
강력한 폭발과 함께 두 개의 신형이 양쪽으로 튕겨 날아갔다. 바닥으로 내려선 레인은 경악을 금치 못하는 표정으로 상대를 바라봤다.
순간, 레인의 두 눈이 찢어질 듯 부릅떠졌다.
“황태자!”
“후후후! 황태자? 지금 내게 하는 소리냐?”
카르스였다.
칙칙한 죽음의 기운을 두른 그는 느릿하게 레인을 향해 걸음을 놓았다. 부릅떠진 레인의 눈동자에 의문이 어렸다. 한눈에 카르스가 정상이 아님을 알아본 것이다. 특히 잿빛으로 죽어 버린 눈동자는 도저히 산 자의 그것이 아니었다.
‘뭔가 잘못되었다!’
레인은 무심결에 능선을 쳐다봤다. 막스 황제 때문이다. 그런데 그곳도 분위기가 이상했다. 몬스터를 향해 뛰어든 기마 병단을 제외한 소수의 기마병과 상당수 보병들이 우측으로 방향을 트는 것이 보였다.
의구심이 들었으나 레인은 생각을 떨쳐야 했다. 카르스가 느닷없이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네놈을 죽여 그 힘을 나의 것으로 만들겠다!”
“미친…….”
레인의 눈동자에 악독한 기운이 떠올랐다. 그는 눈앞의 카르스를 다른 존재로 여겼다. 사정이 어찌 되었든 당장은 그를 죽여야 자신이 산다.
레인의 검이 불을 뿜었다. 그것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기운이었다.
* * *
요란 제국의 마법 병단이 일제히 하늘을 향해 양팔을 뻗어 올렸다.
막스 황제의 지근거리를 호위하던 자들도 기묘하게 생긴 지팡이를 앞으로 쭉 뻗으며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교활한 놈! 당연히 올 줄 알았다.”
막스 황제는 짓쳐 들기 시작하는 케이론 제국의 대군을 바라보며 차갑게 중얼거렸다. 양면에서 적을 맞게 된 형국이건만 그에게선 조금의 동요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한광이 어린 그의 눈에 선두에서 검을 뽑아 든 채, 바람처럼 달려오는 테세우드 공작이 비쳤다.
순간 그의 입가에 찬웃음이 걸렸다.
“기회를 잘 노렸다만 네놈이 알고 있는 그 이상으로 우린 강하다. 그걸 모른 네놈은 오늘로서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이다.”
그는 여유로웠다. 그리고 자신이 넘쳤다.
그때 천지간이 사납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막스 황제의 시선이 마법 병단의 머리 위쪽으로 던져졌다.
놀랍게도 그곳에 거대한 와이번의 형상이 나타나 있었는데, 광포한 빛으로 둘러싸인 그것은 당장에라도 적을 향해 날아갈듯 포효하고 있었다.
“후후! 놈들이 조금 더 접근하기를 기다려라.”
그는 담담한 어조로 명령을 내렸다.
“대기하라!”
“대기하라!”
명령이 빠르게 사방으로 전해졌다.
두두두…….
이십만이 넘어가는 케이론 제국의 대군은 지축을 울리며 쇄도해 들고 있었다. 그 선두에 테세우드 공작과 대마법사 쉐인, 그리고 상당히 젊은 청년 기사가 함께하고 있었는데, 그들의 좌우로 생소한 인물들이 괴이한 병기를 손에 들고서 괴성을 터뜨리고 있었다.
“각하! 놈들의 병력이 얼마 되지 않습니다! 몬스터를 막느라 양쪽으로 분산된 듯합니다! 기회를 제대로 잡았습니다!”
대마법사 쉐인이 호기롭게 외쳤다.
초월의 영역에 들어선 그도 수십만이 부딪치는 전쟁을 눈앞에 두고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이대로 쓸어버립시다!”
테세우드 공작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호기를 잡은 것이다. 전멸을 시키지 못하더라도 황제만 잡으면 전쟁은 끝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그 황제가 지금 자신의 두 눈에 선연하게 들어차 있었다.
“맥마흔! 돌격 부대를 이끌고 곧장 우측으로 선회하여 황제의 친위 부대를 친다! 올란도! 너는 좌측으로 우회하여 적의 측면을 친다! 테론! 너는 적의 퇴로를 차단하라! 막스의 목을 베는 자에겐 공작의 위를 내릴 것이다!”
테세우드 공작이 포효했다.
명령을 받은 자들이 일제히 삼면으로 산개하며 떨어져 나갔다. 테세우드 공작, 스스로는 곧장 정면으로 막스 황제를 들이칠 기세였다.
그때였다.
요란 제국의 진영에서 거대한 빛 덩어리가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이 케이론 제국 병사들의 눈에 비쳤다. 상당한 높이로 날아오른 그것은 빠른 속도로 질주해 들어가는 케이론 제국의 대군을 향해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누구보다 빨리 위험을 감지한 건 대마법사 쉐인이었다.
“실드!”
그가 소리치자 마법 병단이 일제히 같은 동작으로 움직였다. 테세우드 공작을 비롯한 수뇌부의 주변 공간에 마나의 방어막이 생겨났다.
츠츠츠츠…….
괴이한 소리가 주변을 울렸다.
테세우드 공작은 고개를 들어 자신의 머리 위를 지나가는 거대한 빛의 와이번을 쳐다봤다. 방어막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화끈한 열기가 얼굴을 핥고 지나가자 그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 뒤이어서 떠오르는 불안감. 그는 재빨리 고개를 뒤로 돌렸다. 빛으로 둘러싸인 와이번은 뒤쪽을 질주해 오던 기마 병단의 가운데로 떨어졌다.
콰아아아아…….
엄청난 화염이 순간적으로 세상을 붉은색으로 변화시켰다.
테세우드 공작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저, 저게…….”
참혹한 광경이 펼쳐졌다. 전마와 기사가 통째로 화염에 휩싸이며 죽어 갔다. 놀랍게도 빛의 와이번은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기마 병단의 중심을 헤집으며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 직접 닿지 않아도 근접거리에 놓인 기사들이 화염에 싸여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죽어 갔다.
테세우드 공작의 얼굴 근육이 심하게 뒤틀렸다.
“요란! 이 죽일 놈들!”
“각하! 사정거리에 접어들었습니다!”
쉐인의 외침에 테세우드 공작은 시선을 전방으로 돌렸다. 그의 두 눈에 불꽃이 튀었다.
“방어막을 거두시오!”
“알겠습니다!”
방어막이 걷혔다. 그러자 질주하는 속도가 두 배는 빨라졌다. 테세우드 공작이 드디어 자신의 검을 뽑아 들었다.
“저곳에 요란의 황제가 있다. 돌격하라!”
“돌격하라!”
두두두두…….
뒤쪽의 참혹한 피해에도 불구하고 앞선 기마 병단은 지축을 울리며 요란의 황제, 막스가 있는 능선으로 돌진했다. 좌측에 이만, 우측에 이만, 그리고 몬스터 대군과 혈전이 벌어지고 있는 뒤쪽으로 삼만이 몰아쳤다.
이대로 시간이 지나면 고립될 상황임에도 막스 황제는 여유로웠다. 아니, 지나치게 담담했다.
처처척!
케이론 제국의 기마 병단이 근접거리로 돌진해 들어오자 막스 황제를 호위하며 늘어섰던 오만의 기마병들이 서서히 움직였다.
“저놈이 케이론의 실질적인 지배자, 테세우드다. 놈의 목을 내게 가져오라!”
막스 황제의 명령이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