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6
<귀환무사 356화>
귀환무사 2부
131화
* * *
둥그런 탁자를 가운데 놓고 모두는 찻잔을 기울였다.
아르소와 다크 영지민들의 이주 문제는 각각 연소민과 써튼이 담당하기로 했다. 원하는 주민에 한해서 텔레포트로 이동시킨다는 원론엔 변함이 없었다.
그것에 대한 의논을 끝나자 조윤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케논 산맥으로 가시겠습니까?”
“그래야지…….”
혁련소 때문이다.
물론 그곳에 있다고 확신할 순 없었지만 칸빌이 나타난 지역이 그곳이라 무작정 가고 보는 것이다. 그곳에서 천살강기의 흔적을 찾아다니기로 생각을 굳힌 혁련천후는 내심 초조했다.
‘고룡의 심장에다, 돌아갈 방법까지…….’
해야 할 일이 하나가 늘었다.
어쩌면 중원으로 돌아갈 방법을 찾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고룡, 트로이안의 심장을 얻는 일이다.
하지만 아내들은 삼 년의 시간이 있었기에 그전에 혁련소를 빨리 찾아야 했다. 돌아온 건 확신하지만 눈으로 직접 봐야만 했다. 그 전엔 마음이 불안하고 심란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조윤이 상념에 잠긴 그에게 다시 말을 건넸다.
“소가 돌아왔다면 이곳으로 오지 않겠습니까? 잠시 이곳에서 기다려 보시는 게…….”
“그게 좋겠습니다, 주공!”
흑야도 거들었다.
“느긋하게 기다릴 수 없다. 이곳으로 올 거였다면 벌써 왔겠지…….”
혁련천후는 고개를 저었다.
조윤과 흑야는 서로의 얼굴을 흘긋 쳐다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요즘의 혁련천후는 그 어느 때보다 차가웠다. 물론 왜 그런 건지를 알기 때문에 둘은 최대한 그의 심기를 자극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저도 함께 가고 싶어요…….”
연소민이 말끝을 흐렸다.
혁련천후가 시선을 주자 그녀는 고개를 숙였다. 속내를 이해하는 모두는 잠시 애틋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르소는 네가 맡아야지 않겠느냐?”
“……!”
연소민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는 입을 열지 못했다. 흑야가 그녀를 달랬다.
“그들은 너를 믿고 있다. 너는 그들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의무가 있는 몸, 걱정 말고 에이미와 함께 아르소로 가 보도록 해.”
“예……!”
그때 혁련천후가 일어섰다. 조윤이 조금은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지금 가시렵니까?”
“그래야지.”
조윤과 흑야도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혁련천후가 연소민을 보며 눈가에 살짝 주름을 잡았다.
“찾으면 아르소로 가마.”
* * *
연소민과 에이미 공주는 성곽에 서서 석양이 걸린 산을 바라보았다.
밭을 일구던 사람들이 모두 돌아간 들녘은 아늑한 정적만이 맴돌았다. 사람들에게 알리겠다며 빠르게 뛰어가는 우드와 써튼의 뒷모습을 보며 에이미 공주가 물었다.
“그분은 어떤 분이세요?”
“……?”
“기다리시는 분요.”
바람에 날리는 머리카락을 손으로 쓸어 낸 연소민의 얼굴이 애틋함으로 물들었다.
“아주 잠깐이었어. 그 사람과 함께한 날은…….”
에이미 공주의 얼굴에 호기심이 번져 갔다.
“처음엔 몰랐어. 내가 그 사람을 사랑하고 있었다는 걸…… 하지만 기억을 되찾고 가장 먼저 그 사람 얼굴이 떠올랐을 때, 가슴이 아파서 죽는 줄 알았어. 그때 알았지. 내가 그 사람을 많이, 아주 많이 사랑하고 있다는 걸…….”
“멋진 분이겠죠?”
“좋은 사람이야.”
“저도 무척 보고 싶어요. 언니의 마음을 이렇게 잡은 분이 어떻게 생기셨는지 궁금하기도 하구요.”
가볍게 숨을 내쉰 연소민이 에이미 공주의 팔을 잡았다.
“들어가서 술 마시자. 오늘은 그냥 취하고 싶어…….”
“좋아요! 오늘은 술로 밤을 지새우고 내일, 아르소로 떠나요.”
성으로 몸을 돌리는 그녀들의 뒤로 붉은 석양이 수명을 다하고 산 너머로 떨어져 내렸다.
* * *
케이론 제국 오십만, 요란 제국 오십육만, 도합 백만이 넘어가는 대군이 케논 산맥을 가운데 두고서 적의 심장을 향해 창검을 들었다.
최초, 케이시 공작과 테세우드 공작 간의 전투에서 요란 제국이 승리하면서부터 드리웠던 제국 전쟁의 암운은 몬스터 준동이라는 의외의 변수로 다른 양상을 맞았으나 요란 제국의 황태자, 카르스에 의해 케이론 제국의 사신단이 죽음을 당한 것을 기폭제로 일촉즉발의 양상으로 접어들었다.
바야흐로, 전 대륙을 전쟁의 공포로 몰아갈 양 제국 간의 전쟁 발발이 코앞으로 다가오자 대륙은 초긴장 상태로 접어들었다.
양 제국은 위성 국가들에게 연합을 요구하는 공문을 보내어 최대한 군세를 늘리려는 데 총력을 기울였고 오늘도 곳곳에서 작게는 수천, 많게는 수만에 이르는 왕국과 공국의 병력들이 속속들이 케논 산맥으로 집결하기에 이르렀다.
* * *
콰르르…….
아직 겨울이 끝나지 않았음에도 하늘은 굵은 장대비를 쏟아 냈다.
요란 제국의 본영이 있는 케논 산맥의 북부 지역은 주둔지와 케논 산맥의 가운데를 흐르는 강물이 불어나자 수십만의 병사들이 교량을 건설하느라 빗속에서도 땀을 흘리고 있었다.
굵은 통나무를 교각으로 세우고 그 위에 널찍하게 자른 통나무를 얹는 방식으로 만들고 있는 교량은 번번이 거친 물살에 쓸려 갔다.
“나무를 더 깊숙이 박아야지! 그래야 버틸 것 아니냐?”
“너, 넘어간다!”
곳곳에서 아우성이었다.
물과 함께 흐르는 커다란 바위 때문에 교량 작업의 진도는 무척이나 더뎠다. 그러나 워낙 많은 인원이 달려들었던 까닭에 곳곳에서 교량들이 완성되기 시작했다.
기사, 셋 정도가 동시에 이동할 수 있을 정도의 너비로 완성된 교량은 굵은 밧줄로 좌우를 묶어 물살이 더욱 거세질 것을 대비했다.
그런 요란 진영의 모든 상황을 내려다보는 인물이 있었다.
강줄기에서 조금 떨어진 높은 절벽 위에 케이론의 대마법사 쉐인이 은밀하게 몸을 숨기고 요란 제국의 진영을 차갑게 응시하고 있었다. 그 옆엔 레이놀드 백작이 함께하고 있었는데, 그는 마법경을 통해 요란 제국 진영을 샅샅이 살폈다.
“이 빗속에 교량 건설이라니…… 비가 그치고 물이 빠지기를 기다리지 않겠다는 뜻인가? 그렇다면 내일 아침을 즈음하여 넘어온단 말인데…….”
쉐인은 그렇게 판단했다.
그렇지 않다면 굳이 이 빗속에 교량을 세울 이유가 없었다. 불어난 물살이야 비가 그치고 이틀 정도면 평소의 수위로 돌아온다. 그때 넘어와도 충분한 것인데 지금 저들은 전 병력이 달라붙어 교량을 세우고 있었다.
레이놀드가 마법경에서 눈을 떼고는 쉐인을 쳐다봤다.
“놈들의 이동이 예상되는 길목에 함정과 매복을 준비해야겠습니다.”
“그건 쉽지가 않소. 분명 막스는 여러 부대로 나뉘어 넘어올 것이오. 게다가 아군과 저들의 중앙 지점에 케이시 공작이 이끌던 1군단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소. 자칫 앞뒤에서 적을 맞이하는 불상사를 초래할 수도 있소.”
“흠! 좋은 복안이라도 있습니까?”
“아직까지는…….”
쉐인은 적진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스무 개에 달하는 교량이 완성직전에 있었다. 레이놀드 백작도 다시 마법경으로 적진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억!”
레이놀드 백작이 탁한 신음성을 토해 냈다.
“무슨 일이오?”
“발각되었습니다! 서둘러 돌아가야겠습니다.”
“발각이라니? 우리를 말이오?”
“저기를 보십시오.”
레이놀드 백작이 손으로 요란 진영의 우측을 가리켰다. 순간 쉐인의 얼굴이 놀람으로 물들었다. 시커먼 흑색갑주를 걸친 자들이 엄청난 속도로 자신들이 숨어 있는 곳으로 날아오는 것이 보였다.
“어서, 마법진으로!”
쉐인은 황급히 뒤쪽으로 몸을 날렸다. 레이놀드 백작도 검을 뽑아 들고는 재빨리 쉐인의 뒤를 따랐다. 둘이 이동마법진이 있는 곳으로 몸을 날릴 즈음, 흑색 갑주를 걸친 자들은 이미 강을 건너 지척까지 다가들고 있었다.
놀라울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쉐인과 레이놀드는 등을 통해 가공할 기운을 느꼈다. 둘은 마법진에 몸을 날리며 뒤를 돌아봤다.
“쥐새끼들!”
빛이 번쩍하며 시퍼런 불꽃이 둘을 향해 짓쳐 들었다.
쉐인의 육신이 눈부신 빛으로 둘러짐과 동시에 불꽃이 떨어졌다.
콰과과광…….
요란한 폭발과 함께 마법진이 설치되었던 주변이 태풍에 휩쓸린 듯 초토화로 변했다. 동시에 네 명의 기사들이 떨어져 내렸다.
섬뜩한 기운으로 번뜩이는 시뻘건 눈동자를 지닌 그들은 바로 크로우 기사 단원들이었다.
“대마법사가 직접 정찰을 오다니…….”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순간적으로 요동쳤던 마나의 흐름만으로 그는 쉐인이 직접 다녀갔음을 눈치챘다. 다른 셋이 주변을 샅샅이 수색하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마법경을 손에 들고 돌아왔다. 레이놀드 백작이 창졸지간에 떨어뜨린 것을 발견한 것이다.
“놈들이 흘리고 갔습니다.”
“좋아! 그걸 전주님께 갖다 드려라. 우리에게 좋은 정보를 줄 것이다.
“대형! 호칭을…….”
“우리뿐이니 괜찮다!”
전주라는 중원식 호칭이 흘러나왔다. 이들이 전주라고 칭하는 존재는 다름 아닌 크로우 기사단의 단장이 분명할 것이다. 섬뜩한 눈으로 주변을 쓸어 본 그들은 이내 유령처럼 강을 건너 군영으로 돌아갔다.
* * *
“우욱!”
공간이 울렁거리더니 그곳에서 대마법사 쉐인과 레이놀드 백작이 튀어나왔다. 레이놀드 백작이 시뻘건 핏물을 주르륵 토해 냈다.
놀란 쉐인이 황급히 그를 부축했다.
“당한 것이오?”
“크윽! 견딜 만합니다. 빌어먹을 놈들…….”
레이놀드 백작의 거친 얼굴이 창백하게 변해 갔다. 이동하는 순간에 날아든 오러에 등을 정통으로 격타당한 그는 상당한 내상을 입고 말았다.
쉐인의 놀람은 지워지지 않았다.
‘그토록 강력한 놈들이 있었다니…….’
자신들이 발각된 것을 깨닫고 마법진으로 뛰어가 운용하는 데까지 걸린 시각은 고작 일 분이 채 안 되었다. 그러나 상대는 그 시간에 강을 건너고 레이놀드 백작에게 부상까지 입혔다. 직접 당하고서도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레이놀드 백작에게 포션을 건넨 그는 주변을 둘러봤다.
“여긴 어디지?”
창졸지간에 마나를 운용한 탓에 본대가 주둔하고 있는 카티르 평원이 아닌 엉뚱한 곳으로 이동하고 말았다. 산세를 보니 케논 산맥은 분명했다.
그는 눈을 감고 스캔 마법을 펼쳤다. 카티르 평원에서 가까운 곳이라면 마법 병단의 마나를 포착할 수 있을 것이다. 케이론의 마법사들은 대부분이 쉐인의 제자들이다. 요란 제국의 마법사들과는 확연히 다른 속성이기에 먼 거리만 아니라면 쉽게 감지할 수 있다.
쉐인이 눈을 떴다.
“이런 난감한 상황이…….”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물론 텔레포트를 통해 돌아가면 그뿐이지만 방금 막대한 마나를 소모했기 때문에 시간이 조금 필요했다.
그는 레이놀드 백작을 돌아봤다.
포션 덕분에 조금 전보다는 안색이 좋아져 있었지만 워낙 제대로 입은 내상 탓에 가슴을 움켜쥐고 일어서지 못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