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5
<귀환무사 355화>
귀환무사 2부
130화
* * *
[가인! 이상한 사람이 있어.]
식사를 하던 금발 청년, 가인이 아이를 쳐다봤다. 아이가 눈짓으로 혁련소를 가리켰다. 가인이 그에게로 시선을 던졌다.
[뭐가 이상해?]
[저 사람에게서 마계의 기운이 느껴져. 그것도 무척이나 강력한…….]
[뭐! 마계의 기운? 그럼 저 자식이 마족이란 말이야?]
[마족은 아닌 것 같은데, 이상해. 정말…….]
가인은 혁련소를 노려보다가 그가 자신을 보자 황급히 시선을 돌렸다. 그는 아이의 옆구리를 슬쩍 건드렸다.
[카츄! 그냥 밥이나 먹어. 괜히 시비라도 붙으면 곤란하니까.]
[알았어. 가인!]
둘은 이내 식사에 열중했다.
그런 그들을 바라보며 혁련소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거 이상한 놈들이네. 아주 묘한 기운이 느껴져…….’
그 역시도 그들에게서 묘한 기분을 느꼈다. 어쩐지 자신과 상극의 기운이란 느낌도 들었다. 그는 지금 중원에서 얻었던 모든 기운을 버리고 마계의 기운만을 지니고 있었다. 물론 궁극의 힘이라는 천살강기도 사라진 지 오래다.
덕분에 혁련천후를 찾는 것이 더욱 어려워졌다. 천살강기를 잃는 바람에 천살강기의 흔적을 쫓는 것이 불가능해진 것이다.
혁련소는 잠시 둘을 쳐다보다 이내 식사에 열중했다. 간단한 고기볶음과 수프로 배를 채우는 데 십여 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마법으로 얼린 시원한 음료수를 후식으로 마신 혁련소는 무심결에 아이가 있던 탁자로 시선을 던졌다.
‘응! 갔네?’
그랬다.
둘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내가 신경이 무뎌진 건가? 전혀 느끼지 못했잖아…….’
비록 둘에게 그다지 신경을 쓴 건 아니지만 그래도 그들이 사라지는 것을 전혀 몰랐다는 것이 조금은 놀라웠다. 묘한 느낌이라는 게, 뭔가 대단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혁련소는 생각을 떨쳐 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식당이 보이는 모퉁이에 가인과 카츄는 서 있었다.
혁련소를 바라보는 카츄의 눈동자는 어린아이의 그것과는 사뭇 달랐다. 보석처럼 새파랗게 빛나던 눈동자는 신비로운 빛으로 가득했는데, 한순간도 혁련소에게서 떨어질 줄 몰랐다.
“정말이네? 저놈 나쁜 놈이잖아?”
가인이 눈을 동그랗게 하고서 중얼거렸다.
혁련소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은 분명 마계의 것이었다. 가인과 카츄는 세상이 모르는 신비로운 능력들을 지니고 있다. 그중 하나가 모든 생명체가 지니고 있는 힘의 본질을 파악하는 것이다. 제아무리 기운을 감추려고 해도 둘의 눈을 피하기란 불가능했다.
“따라가 볼까?”
“에이! 그냥 가자! 아리엘을 찾는 게 우선이야.”
가인은 카츄를 잡고 반대편으로 걸었다. 카츄는 여전히 혁련소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듯 끌려가면서도 그를 쳐다봤다.
그들이 모퉁이를 돌아설 때였다. 둘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후후! 너희들 뭐냐? 왜 사람을 흘깃거리는 거지?”
혁련소였다.
분명 건너편에 있던 것을 봤는데 어느새 이곳에 나타났단 말인가? 둘은 그것 때문에 크게 놀랐다. 워낙 당황했던 둘은 입을 열지 못했다.
“뭐냐니까? 나쁜 놈들인가?”
“나쁜 놈은 너잖아!”
가인이 그제야 입을 열었다. 얼굴에 잔뜩 경계의 빛을 품은 그는 여차하면 주먹을 뻗을 듯, 손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어설픈 동작이지만 혁련소는 가인의 내면에 감춰진 거대한 힘을 어렴풋이 파악했다.
‘뭐야? 이놈들, 엄청난데?’
그 역시 상대방의 힘을 측정할 능력이 있었다. 순간적으로 발산된 가인의 힘은 놀라울 정도로 강력한 것이었다. 카츄가 물었다.
“마계에서 온 거야?”
“마계? 그렇지, 난 마계에서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지. 그런데 그건 왜?”
혁련소는 무심결에 그렇게 대답했다. 그게 문제였다.
쾅!
뭔가 번쩍한다 싶더니 혁련소의 육신이 저만치로 튕겨져 날아가고 있었다. 카츄의 앙증맞은 손이 앞으로 뻗어져 있었는데, 주먹 주변이 빛의 고리로 둘러져 있었다.
“와! 엄청난데? 너 더 강해진 거야?”
가인이 눈을 동그랗게 하고서 카츄를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카츄의 표정이 굳어져 있음을 본 것이다.
“죽지 않았어. 아니, 멀쩡해!”
“뭐? 무슨 소리야? 저렇게 개구리처럼 뻗었는……!”
무슨 소리냐는 표정으로 혁련소가 쓰러진 곳을 쳐다보던 가인의 눈동자가 다시 부릅떠졌다. 피를 흘리고 죽었어야 할 그가 팔짱을 하고서 씩 웃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 자식들! 정말 나쁜 놈들이네? 다짜고짜 사람을 죽이려고 하다니.”
“닥쳐! 마계에서 온 주제에 무슨 사람 타령이야!”
귀엽기만 했던 카츄가 적개심을 드러내며 소리쳤다.
“난, 엄연한 사람이야. 물론 사정이 있어서 마계에 갔다 오긴 했지만…… 그런데, 너희들은 뭐 하는 놈들이지? 그 뾰족한 귀는 또 뭐야?”
“뭐……?”
가인과 카츄는 엉겁결에 손을 귀로 가져갔다.
특수한 능력으로 귀를 보통의 인간들과 같게 변화시켰는데 혁련소가 그걸 알아본 것이다. 인간이라면 절대 눈치챌 수 없는 방법이 그것인데, 대번에 알아보자 혁련소에 대한 적개심이 더욱 강해졌다.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커다란 굉음과 혁련소가 부딪혔던 벽면이 무너지는 바람에 길을 가던 수많은 사람들이 셋을 둘러싸기 시작했다.
혁련소는 난감했다. 가인과 카츄도 마찬가지였다.
“이봐! 저기 저 산이 보이지? 그곳에서 기다리겠다.”
혁련소는 둘에게 자신이 잠시 쉬었던 케논 산맥의 강줄기 부근을 가리켰다. 그러고는 유령처럼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우……!”
“마법사구나. 순간 이동을 했어!”
혁련소가 사라지자 사람들이 저마다 놀란 소리를 했다. 모두는 또 한 번 놀랐다. 가인과 카츄도 그 자리에서 사라졌기 때문이다.
모였던 사람들은 이내 뿔뿔이 흩어졌다. 그리고 한참 뒤에 혁련소가 다시 나타났다.
“망할 놈들! 도망을 치다니…….”
가인과 카츄가 오지 않았던 것이다.
주변을 살폈으나 있을 리 만무했다. 입맛을 다신 혁련소는 다시 말을 사기 위해 시내를 누비고 다니기 시작했다. 한참을 돌아다녀도 도저히 말을 파는 곳이 보이질 않자 노점에서 술을 한 병 사 들고는 시내를 빠져나가기로 작정했다.
“어쩔 수 없군. 경공으로 갈 수밖에…… 이거, 완전히 개고생이잖아!”
조금 전 소란을 기억했던 몇몇 사람들이 그를 보고는 수군거렸다. 혁련소는 머쓱한 표정으로 외곽 지역으로 걸음을 놓았다.
저 멀리 웅장한 궁전이 우뚝 솟아 있는 것을 본 혁련소는 내심 감탄했다.
“일개 왕국치고는 엄청난 규모군. 강자들의 고향이라는 홀베른답구나.”
어지간한 제국의 황궁과 맞먹는 규모였다.
사실, 이 세상으로 건너와서 흑야와 대륙을 떠돌 때, 가장 와 보고 싶었던 곳이 홀베른이었다. 케이론 제국의 위성 국가이면서도 케이론 제국이 함부로 어쩌지 못했던 곳, 강자들이 득실거린다고 소문난 곳이 바로 홀베른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크 영지로 가는 것이 급선무였다. 아버지와 숙부들이 그곳에서 자신을 기다릴 거란 확신을 그는 가지고 있었다.
“달려 볼까?”
인적이 뜸해지자 그는 경공을 펼치기로 마음먹었다. 마계에서 중원의 무공과는 다른 기이한 마공들을 배운 그는 그것을 직접 펼쳐 보기로 작정하고는 기운을 끌어올렸다.
순식간에 주변이 칙칙한 마기로 채워졌다.
“이게 단점이군. 백마법사들이 보면 입에 거품을 물고 달려들겠지? 후후!”
쾅!
그가 섰던 자리에 자욱한 먼지만이 남았다.
* * *
써튼은 오늘도 홀로 다크 영지의 낮은 성곽에 앉아 술잔을 기울였다.
모두 어디론가 떠나 버린 뒤부터는 매일같이 술이었다.
“왜 나만 쏙 빼놓고 가 버린 거야. 젠장!”
함께 있을 땐 그토록 무서웠던 그들이 무척 보고 싶었다. 특히 우드는 꿈속에 나타날 정도였다. 내일이면 오겠지, 하던 게 벌써 두 달이 지났다.
섭섭하기도 하고 그립기도 했다.
벌컥벌컥!
막 숙성된 맥주를 물 마시듯 들이부었다. 배가 올챙이처럼 볼록하게 나올 정도로 많이 마셨건만 취기는 전혀 오르지 않았다.
“그만 드세요.”
귀엽게 생긴 꼬마 아이가 써튼의 옆에 앉아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지난날, 혁련소에게 커다란 송아지 뒷다리를 선물받았던 루크였다. 써튼의 유일한 말동무가 루크였다.
“이놈아! 너도 커서 버림이란 걸 당해 봐라. 기분이 얼마나 더러운지 알 거다.”
“술 때문에 배가 볼록하게 나왔잖아요.”
“이까짓 배 나온 게 무슨 큰일이냐? 배가 터져도 좋으니 술이나 마시련다.”
“쳇!”
루크는 무릎에 얼굴을 올리고는 석양을 바라보았다.
저 멀리 들녘에선 영지민들이 밭을 일구고 있었는데, 그곳에 루크의 엄마도 있었다. 루크는 자신을 간혹 쳐다보는 그녀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남작님도 일 좀 하시지…….”
“나 보고 밭을 일구라고? 이놈아! 할 줄 알면 벌써 했다. 내가 하기 싫어서 안 하는 줄 아느냐? 젠장…….”
“밭일이 뭐 어렵다고 그러세요. 그냥 농기구로 갈면 될 걸…….”
“어허! 어른이 말씀하는데 꼬박꼬박 말대꾸할 거냐?”
벌컥벌컥!
반은 흘러내려 옷을 적신 맥주 냄새 때문에 루크는 멀찌감치 떨어져 앉았다. 잠시 둘 사이에 정적이 흘렀다. 들녘을 바라보던 루크가 고개를 갸웃했다.
“어! 저기 누가 와요!”
“오긴 누가 온단 말이냐? 보나마나 아르소의 맥주 상인들이겠지.”
“아닌데…….”
써튼은 마른 육포를 질겅질겅 씹으며 들녘으로 시선을 돌렸다. 정말이었다. 여러 명이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석양이 워낙 강렬했던 탓에 잔뜩 눈을 찌푸린 써튼이 어느 순간 입에 물었던 육포를 흘렸다.
퍽!
나무로 만들어진 맥주 통이 밑으로 떨어져 박살이 났다. 루크가 써튼을 돌아보며 의아한 듯 물었다.
“왜 그러세요? 몸까지 떨고…….”
“으흐흐…… 오셨다, 오셨어!”
써튼이 기괴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는 허겁지겁 성곽을 내려와 밖으로 뛰었다.
* * *
“쯧쯧! 저러다가 자빠져서 코가 깨져야 정신을 차리지…….”
조윤이 엄청난 속도로 달려오는 써튼을 보고는 혀를 찼다. 불안정한 무게 중심이 금방이라도 앞으로 꼬라박힐 듯 보였다. 우드가 반가운 얼굴로 마주 달리려고 할 즈음, 써튼이 밭에 얼굴을 박으며 자빠졌다.
“후후! 제대로 자빠졌군.”
“하여튼 저 인간은 발전이 없네.”
흑야와 조윤이 실소를 금치 못했다. 연소민과 에이미 공주는 손으로 입을 가리고 소리 내 웃었다.
얼굴에 흙은 잔뜩 묻힌 써튼은 혁련천후 앞에서 넙죽 엎드렸다.
“오, 오셨습니까? 하하!”
옅은 미소로 대신한 혁련천후가 성곽으로 걸음을 옮기자 우드가 재빨리 써튼을 일으켜 세웠다. 흑야와 조윤이 써튼의 어깨를 툭 쳐 주고는 혁련천후를 따랐다.
“아유! 술 냄새…….”
연소민이 코를 쥐는 시늉을 하자 써튼은 머리를 긁적이며 바보처럼 웃었다. 그러다가 에이미 공주를 보고는 눈이 동그래졌다.
“예를 갖추세요. 홀베른의 공주마마세요.”
“아이참, 언니는…….”
에이미 공주는 연소민의 어깨를 흔들며 쑥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연소민의 말을 믿지 못한 써튼이 우드를 돌아봤다. 우드가 짐짓 눈을 부라리며 닦달했다.
“뭐 하는가? 공주마마께 예를 올리지 않고!”
“주, 준남작 써튼이라고 합니다! 신비의 왕국, 홀베른의 공주마마를 이렇게 뵙게 되다니…… 아, 그리고…….”
써튼은 갑자기 취기가 확 도는 바람에 말이 꼬였다.
“반가워요. 얼른 들어가서 술부터 깨야겠네요?”
“풋!”
연소민과 에이미 공주는 우드에게 먼저 가겠다는 눈빛을 주고는 총총걸음으로 저만치 앞서가는 혁련천후를 쫓았다. 우드가 그제야 부드러운 표정으로 써튼을 바라봤다.
“하하! 잘 지냈는가?”
“외로워 죽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다른 분들은……?”
“아, 홀베른에 일이 있어 그곳에 계시지. 무서워서 숨도 제대로 못 쉬더니 그래도 보고 싶은 모양이지?”
“그럼요. 그분들이 없으니 낯선 사람이 영지로 들어오기만 해도 무슨 일이나 벌어지지 않을까, 심장이 철렁거리던걸요. 제국 전쟁이니 뭐니 세상이 좀 시끄럽습니까? 아! 이젠 두 발 쭉 뻗고 잘 수 있겠습니다!”
술 냄새를 풀풀 풍기는 써튼은 모처럼 활짝 웃었다.
우드도 그런 써튼이 무척 반가워 둘은 한동안 그 자리에서 이야기꽃을 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