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무사-354화 (352/425)

# 354

<귀환무사 354화>

귀환무사 2부

129화

제2장 가인과 카츄

수천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진 케논 산맥의 최북단 봉우리는 다른 곳과는 달리 유난히 푸르렀다. 암벽은 거의 보이지 않는 그곳은 전설의 종족, 엘프들이 살아간다는 곳을 연상시킬 정도로 무성한 숲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엘프의 고향이라고 불리는 이곳은 인간들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는 천험의 오지였다. 산맥이 끝나는 곳엔 끝이 보이지 않는 망망대해가 펼쳐져 있었고 그 앞은 선박이 다닐 수 없을 정도로 거친 물살을 자랑하는 널찍한 강이 흐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워낙 우거진 숲으로 둘러져 있어서 어지간한 사람들은 엄청난 수의 몬스터가 살고 있을 거라 지레짐작하고는 접근을 꺼린 이유도 한몫했다.

콰르…….

장대한 폭포가 천지를 울리며 요동치는 곳의 끝 부분에 사람 한 명이 서 있었다.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금발에 눈처럼 하얀 피부, 그리고 보석처럼 빛나는 눈동자는 세상의 모든 미를 모조리 담아 놓은 듯 찬란하기까지 했다. 놀라운 것은 그가 남자라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것은 보통의 사람들과는 다른 뾰족한 귀에 있었다.

엘프!

그랬다. 청년은 전설의 종족이라는 엘프의 모습과 닮아 있었다.

“흠!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거야? 정말 못 말리는 말썽꾸러기군.”

폭포수를 내려다보며 살짝 찌푸리는 얼굴은 보는 이의 가슴을 떨리게 만들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바스락!

청년의 뒤쪽 수풀이 살짝 흔들렸다.

“나와!”

청년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서 말했다. 수풀이 흔들리며 얼굴 하나가 쑥 튀어나왔다. 무척 귀엽게 생긴 사내아이였는데, 역시 뾰족한 귀를 하고 있었다.

“헤헤! 여기 있었어?”

“무슨 일이야?”

“오래, 빨리…….”

“누가? 난, 내가 할 일은 다 끝냈는데?”

“나도 몰라. 그냥 촌장님이 부르셔.”

청년이 벌떡 일어섰다. 갑작스럽게 일어나자 바짝 붙어 있던 사내아이가 깜짝 놀라서 넘어질 뻔했다.

“촌장님이? 하하! 정말 촌장님이 부르셨단 말이지?”

“응! 그런데 왜 그렇게 좋아해?”

사내아이는 대답을 듣지 못했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청년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심드렁한 표정으로 변한 사내아이는 입을 삐죽거리고는 청년이 섰던 자리에 털썩 앉았다.

“쳇! 엄청 빨라졌네. 난 언제 저렇게 빨라지고 강해질까?”

* * *

엄청난 굵기를 자랑하는 거목은 단순한 거목이 아니었다.

중간 부근에 사람이 사는 듯한 집이 만들어져 있었고 곳곳에는 짧은 검과 활을 둘러멘 청년들이 삼엄하게 경계를 서고 있었다.

“하하! 이봐! 촌장님께서 나를 부르셨다고?”

거목 밑에서 청년이 환하게 웃으며 물었다.

경계를 서던 청년이 손을 입으로 가져가며 눈을 부라렸다. 조용히 하라는 시늉이었다. 고개를 살짝 움츠린 청년이 조심스럽게 거목에 둘러진 줄기 계단으로 올라섰다. 넝쿨을 엮어서 만든 줄기 계단이 사람이 올라섰음에도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놀랍게도 청년의 발은 살짝 허공에 떠 있었다.

[바보야! 그냥 날아오면 될 걸 계단은 왜……?]

[후훗! 그럼 만들긴 왜 만들었냐?]

[……!]

경계를 서던 청년의 앞에 내려선 그는 고개를 살짝 빼고는 안을 슬쩍 쳐다봤다. 안에 몇 명이 모여 있음을 본 그는 눈앞의 청년에게 다시 물었다.

[장로님들은 왜……?]

[나도 몰라. 얼른 들어가! 아까부터 찾으셨어.]

[그래, 수고해라!]

* * *

“왔느냐?”

“찾으셨습니까? 족장님! 안녕하셨습니까? 장로님들!”

청년은 해맑은 얼굴로 일일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그를 바라보는 실내의 인물들은 무척 온화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눈으로 보기에 그들은 청년과 나이 차가 얼마 나지 않아 보였다.

“또 폭포에 갔던 모양이구나?”

“예! 그냥 심심해서…… 그런데, 절 찾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청년의 눈동자는 뭔가를 갈망하는 빛으로 반짝거렸다. 족장이라 불린 인물이 인자한 웃음을 지으며 주변을 돌아봤다. 좌우로 앉았던 세 명도 그와 같은 인자함으로 청년을 응시했다.

“아리엘이 홀베른에 있다는구나.”

“하하! 그러니까 저보고 아리엘을 데리고 오라, 이 말씀이죠?”

청년은 기다렸다는 듯, 앞서 나갔다. 족장의 얼굴이 어이가 없다는 투로 바뀌었다.

“허허! 이놈아! 세상으로 나가는 게 그리도 좋으냐?”

“하하! 그럼요! 정말 꼭 가 보고 싶습니다!”

그때, 가장 우측에 앉았던 인물이 정색으로 말했다.

“카츄를 데리고 가거라. 단, 아리엘을 찾으면 곧장 돌아와야 한다. 괜한 시비에 휘말려 시간을 지체하면 다음부턴 절대 내게 일을 맡기지 않을 테니까, 알아들었느냐?”

“그럼요. 아리엘을 찾으면 곧장 달려오겠습니다! 그런데 카츄는 왜……?”

“너만큼 카츄도 세상을 보고 싶어 하지 않느냐? 그리고 혹시 모를 험한 일에 그 아이의 신비한 능력이 도움이 될 것이다.”

“알겠습니다! 제가 잘 데리고 다녀오겠습니다! 그런데, 언제 가면 될까요?”

“내일 당장 떠나거라.”

청년의 입이 함지박만 하게 찢어졌다. 그 모습에 좌중의 인물들은 실소를 금치 못했다.

* * *

케이론 제국과 홀베른, 그리고 요란 제국의 영토가 한곳에서 부딪치는 삼각 지역을 가로지르는 강줄기는 며칠 전부터 내린 비로 인해 거친 물줄기로 변해 있었다.

세 국가의 영토가 한눈에 다 보이는 그곳은 말이 국경이지 영토를 구분하는 잣대는 강이 전부였다. 그것도 한바탕 폭풍이라도 쓸고 지나가면 부분적으로 각국의 영토가 뒤바뀔 정도로 매우 협소한 지역이었다.

콰르르…….

거센 물줄기가 주변 숲까지 범람하는 바람에 사람이 다닐 수 없을 정도였는데, 물줄기의 끝자락에 위치한 숲에 한 인물이 앉아 있었다.

바람에 날리는 은발이 한껏 멋스러움을 자아내는 청년은 바로 혁련소였다. 작은 술병을 손에 들고 커다란 거목에 등을 기대고 앉은 그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힘차게 흐르는 강물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와 함께 다녔던 아이스 오우거는 보이지 않았다.

“흠! 어디서 찾는담? 이럴 줄 알았으면 망치를 데리고 올걸 그랬나?”

그는 지금 자신의 아버지와 숙부들을 찾아다니는 중이었다.

당초, 칸빌의 행방을 쫓았던 그는 갑작스럽게 칸빌의 기운이 사라져 버리자 한동안 케논 산맥을 헤매다가 다크 영지로 가기 위해 텔레포트를 시전했다가 엉뚱하게도 이곳으로 떨어진 것이다.

텔레포트는 마계에서 머물 때, 틈나는 대로 배워 두었던 것인데 완벽하지 못한 탓에 좌표가 틀어져 이곳으로 오게 된 그는 잠시 쉬면서 행로를 고민 중이었다.

혁련소는 문득 연소민을 떠올렸다. 마계에 있으면서도 하루도 잊지 않았던 그녀였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데 자신은 그렇지 못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녀에 대한 애절함은 더욱 커질 뿐이었다.

“후…… 살아 있겠지. 살아만 있다면 만날 거야.”

스스로 그러기를 간절히 바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저곳이 홀베른인가?”

강 건너편으로 보이는 전경은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넓게 펼쳐진 초원의 너머로 희미하게 보이는 궁전과 수많은 건물들이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들과 어우러져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혁련소는 이내 시선을 우측으로 던졌다. 그곳으로 가면 다크 영지가 나온다.

“잘들 지내고 있겠지? 아버님과 숙부들도 어쩌면 그곳에 계실지도 몰라, 후후!”

이 세상에 마땅한 근거지가 없는 아버지는 자신이 영주로 있었던 다크 영지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혁련소의 육신이 강을 훌쩍 뛰어넘어 건너편으로 내려섰다. 다시 텔레포트를 이용할까 했지만 또 어느 곳으로 떨어질지를 몰라서 그냥 걸어가기로 작정했다.

“말이라도 한 필 구할까?”

그는 다시 홀베른을 흘긋 돌아봤다.

걸어서 다크 영지까지 가려면 엄청난 시간이 소모된다. 케논 산맥 인근에 위치했다지만 케논 산맥 자체만도 끝에서 끝까지 걸어서 가면 일 년은 더 걸리는 엄청난 거리다.

혁련소가 눈빛을 발했다.

“좋아! 홀베른을 구경도 할 겸 말을 사러 가 볼까?”

발길을 돌린 혁련소는 느긋하게 홀베른으로 걸었다.

* * *

과연 소문대로 홀베른의 도시는 번화로웠다.

길의 양옆을 늘어선 수많은 상점들과 그곳을 가득 채운 사람들에게서 행복이라는 것을 느낀 혁련소는 내심 다크 영지를 떠올리고는 씁쓸하게 웃었다.

“걱정이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군. 조금은 부러운걸.”

다크 영지의 주민들에게선 볼 수 없는 활력이 이들에게 있었다. 하물며 노점상을 하는 사람들까지도 표정이 너무나도 환했다.

혁련소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말을 파는 곳을 찾았으나 좀처럼 발견할 수 없었다. 두 시간을 헤맸지만 도저히 찾을 수 없자 노점에서 과일을 파는 사람에게 물었다.

“말을 파는 곳이 어디에 있습니까?”

“말을 산다고요? 흠…… 쉽지 않을 텐데요.”

“쉽지가 않다니요?”

“며칠 전에 말의 거래를 금지한다는 공고가 붙었소. 걸리면 처벌을 받게 되는 까닭에 아마 구입하기가 어려울 것이오.”

혁련소는 미간을 슬쩍 찌푸리고는 다시 물었다.

“무슨 전쟁이라도 났답니까? 말의 거래를 중단시키게…….”

“허허! 아시면서 묻긴 왜 묻소? 당연히 기사들과 병사들이 쓸 전마 때문에 그런 것 아니겠소?”

혁련소는 상인에게 가볍게 고마움을 표시하고는 걸음을 딴 곳으로 옮겼다.

‘전쟁이 났단 말이야? 케이론과 요란이 붙었나?’

케이론 제국와 요란 제국이 조만간 대대적인 전면전을 벌일 거란 소문은 이미 전 대륙에 파다하게 퍼진 상태였지만 혁련소는 그걸 모르고 있었다. 케논 산맥 근처에서 칸빌의 행방만을 쫓았던 까닭에 당연히 들을 기회가 없었던 탓이다.

“웃기는군. 전쟁이 나면 이곳도 피해가 올 텐데, 표정들이 저리도 밝다니…….”

그랬다.

노점 상인이 알 정도면 모두가 안다고 봐야 했다. 그럼에도 저렇듯 활력이 넘치는 모습들을 보인다는 게 그로서는 이해되지 않았다.

쪼르륵…….

“쩝! 배고픈데.”

혁련소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저기가 좋겠군.”

조그만 식당이 보였다. 다른 곳과는 달리 화려하지는 않지만 꽤 깔끔한 외관을 지닌 식당으로 그는 걸음을 옮겼다. 식당은 사람들로 넘쳤다. 다행히 건물 밖에 마련된 탁자 한 곳이 비어 있음을 본 혁련소는 재빨리 그곳에 앉았다.

음식을 주문한 그는 누군가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는 고개를 돌렸다. 금발에 보석처럼 새파란 눈동자를 지닌 꼬마가 자신을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다.

아이의 옆에는 역시 금발을 한 청년이 함께하고 있었는데, 그는 음식을 먹느라 정신이 없었다.

“안녕! 꼬마야!”

혁련소는 손을 흔들며 환하게 웃었다. 그러나 아이는 시선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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