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3
<귀환무사 353화>
귀환무사 2부
128화
그녀는 결국 말을 잇지 못하고 흐느꼈다.
뿌우우우…….
밖이 소란스러웠다. 분주하게 오가는 병사들의 발걸음 소리는 레이나 공주의 가슴을 더욱 무겁게 짓눌렀다.
“후작 각하! 비상 회의 소집 명령이 내려졌습니다. 지금 즉시 사령막으로 가셔야 합니다.”
기사 하나가 군막의 입구에서 부동자세로 말했다.
“곧 갈 것이니 자네 먼저 사령막으로 가게.”
“서두르셔야 합니다!”
“알았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만 물러가게!”
헤론 후작이 버럭 소리를 지르자 기사는 허리를 숙이고는 황급히 몸을 돌려 사라졌다. 헤론 후작은 안타까움이 가득한 눈빛으로 레이나 공주를 내려다보았다.
“마마! 다녀와서 결과에 대한 보고를 올리겠습니다.”
레이나 공주는 두 팔에 얼굴을 파묻고는 머리만 끄덕였다. 짙은 한숨을 내쉰 헤론 후작은 몸을 돌려 군막을 벗어났다.
* * *
요란 제국의 막스 황제는 막 들어온 보고를 받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카르스가 나타났단 말이지?”
“그렇습니다! 놈들의 정보를 포착한 결과, 틀림없습니다.”
보고를 하는 크로우 기사단의 단장, 레인은 언제나 그랬듯 일말의 감정조차 드러내지 않았다. 격앙된 반응을 보이는 막스 황제와 전혀 다른, 이질적인 기운이 그에게서 진득하게 묻어났다.
“다른 이들은?”
“그것까지는 포착하지 못했습니다. 어쩌시겠습니까? 아이들을 그곳으로 보내시겠습니까?”
“그걸 말이라고 하는 게냐? 당장 아이들을 카르스가 출현했다고 전해진 곳으로 보내라!”
“알겠습니다.”
레인이 돌아가자 막스 황제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고약한 놈! 살아 있었다면 즉각 돌아올 것이지…….”
그는 술을 병째 입으로 가져갔다. 레인이 들어서면서 자리를 지켰던 여인들이 다시 옷을 벗으며 그에게로 다가왔다. 뱀처럼 흐물거리는 농염한 육신이 막스 황제의 곳곳을 누비기 시작했다.
“후후! 놈을 찾았으니 이젠 명분을 찾는 것만 남았군.”
막스 황제의 얼굴에 흡족함이 나타날 때 레인이 갑자기 다시 들어섰다. 여인들이 깜짝 놀라며 다시 뒤쪽으로 사라졌다.
막스 황제의 얼굴에 불쾌함이 떠올랐다.
“노크를 하는 법을 배워야겠군, 레인.”
“보고 사안이 하나가 더 있습니다.”
“그게 뭔가?”
“황태자가 적국의 사신단을 참살하는 바람에 케이론의 전군이 전시 체제로 돌입했다고 합니다. 이십만으로 추정되는 선발진에 이어 이십만의 지원군이 방금 케이론의 수도를 떠났다고 전해 왔습니다.”
막스 황제가 벌떡 일어섰다.
“그게 정말이냐?”
“마법 전령이 직접 영상까지 담아서 보내온 것이니 틀림없습니다.”
막스 황제의 얼굴빛이 대번에 변했다. 결코 전쟁이 일어날 것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었다. 오히려 희열에 가까운 표정은 마치 케이론이 그래 주기를 기다렸다는 듯 보였다. 레인의 죽은 눈동자가 막스 황제의 얼굴에 고정되었다.
“후후! 돌아오면 벌을 줄까 했는데 꽤 큰일을 해 주었군. 이거, 너무 쉽게 일이 풀리는 것 아니냐? 레인!”
“수도에 지원을 요청하셔야 합니다. 현재의 병력으로는 승리를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야지! 당연히 그래야지! 그대가 직접 중앙군 사령관에게 통신을 넣어, 중앙군 전체를 이곳으로 출진시키라고 전하여라! 아! 그리고 올 때, 제7강습여단을 전부 오라고 전해.”
“그리하겠습니다.”
레인이 다시 군막을 벗어나 사라졌다.
희열로 번득이는 막스 황제의 눈동자는 이내 탐욕스러움으로 바뀌었다.
“후후! 케이론만 삼키면 대륙통일은 시간문제다. 그렇게 되면 난 역사상 최초로 대륙을 통일한 위대한 인물이 될 것이고 말이야.”
다가오던 여인들이 귀를 막고 얼굴을 찌푸렸다.
“하하하하!”
막스 황제의 파안대소는 한동안 그치지 않고 이어졌다.
* * *
“크르르…….”
블랙 오우거의 입에 고인 침이 주르륵 바닥으로 흘렀다. 시뻘건 눈동자는 두려움으로 가득했다. 움츠린 어깨는 자신을 바라보는 존재가 움직일 때마다 움찔거렸다.
카르스는 그런 블랙 오우거를 보며 사악한 웃음을 지었다. 잿빛으로 번들거리는 그의 눈동자는 죽은 자의 그것이었다.
“후후후! 이 육신이 인간 세상의 황태자였단 말이지? 재밌겠군. 꽤 말이야…….”
그는 자신의 몸을 살펴보며 웃음을 지우지 못했다.
“크르르…….”
“카악…….”
수십만에 달하는 몬스터들이 평원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모두가 카르스를 바라보며 두려움을 드러내고 있었다. 폭스 후작이 고개를 들어 고저 없는 목소리를 냈다.
“어둠의 왕이시여! 인간들이 모여들고 있습니다.”
“인간들? 후후! 모여들라고 해. 많으면 많을수록 좋겠지. 왕께서 바라시는 게 그것이니까. 어차피 주인께서 완벽하게 변신하려면 조금은 더 있어야 하니 그동안 우린 닥치는 대로 인간 놈들을 쓸어버리는 것으로 시간을 보내자고…….”
“인간이 피가 언제나 그리웠습니다.”
“흐흐흐…….”
폭스 후작과 크루즈 백작이 사악하게 웃었다.
카르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몬스터들이 일제히 바닥에 머리를 찧으며 낮게 엎드렸다. 그 모습에 카르스의 입가에 흡족함이 걸렸다.
“나의 병사들이여! 명령을 내리겠다.”
“크아아…….”
“카악…….”
몬스터들이 괴성을 지르며 요동쳤다. 하늘을 배회하던 블러드 와이번도 카르스의 머리 위를 선회하며 괴성을 토해 냈다.
“북쪽으로 간다! 그곳에 주둔하고 있는 인간 놈들을 모조리 어둠의 세상으로 보내라! 나, 어둠의 왕이 함께하나니, 승리는 우리가 쟁취하게 될 것이다!”
“크아아…….”
카르스의 명령이 떨어지자 몬스터들이 일제히 북쪽으로 이동을 시작했다. 시커먼 철갑을 두른 전마에 몸을 실은 카르스는 폭스 후작과 크루즈 백작의 호위를 받으며 무리의 선두를 이끌었다. 그들이 향하는 곳은 요란 제국의 막스 황제가 친히 군사들을 거느리고 주둔하고 있는 곳이었다.
* * *
홀베른 왕궁의 뒤편은 홀베른 전체를 병풍처럼 두르고 선 산맥 테베르가 있다. 높이 육천 미르의 테베르 산맥의 정상은 언제나 만년설로 덮여 있었는데, 그곳에 숨을 헐떡이며 뛰어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사람이라면 견딜 수 없는 혹한의 날씨에다 제대로 숨조차 쉬기 힘든 희박한 공기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웃통을 벗은 채, 어디론가 열심히 뛰었다.
“헉헉!”
거친 숨결이 토해 낸 입김은 순식간에 작은 얼음으로 변해 바닥으로 떨어졌다. 육신이 흘려 낸 땀은 얼었다가 깨어지기를 반복하며 그들이 지나간 길 위로 떨어졌다. 인원은 모두 스무 명, 아니, 한참을 앞서서 뛰어가는 인물을 포함하면 모두 스물한 명이었다.
“젠장! 힘들 내라고! 그 정도밖에 안 되었어? 헉헉!”
선두에서 뛰어가는 인물이 뒤를 돌아보며 고함을 질러 댔다. 시커먼 흑발이 땀과 얼음으로 범벅이 된 그는 데얀이었다.
그렇다면 뒤를 따르는 스무 명의 청년들은 말하지 않아도 케니언 크로우의 기사들일 것이다. 그들이 왜 이런 극한의 고지에서 뜀박질을 하고 있는 것일까?
“헉! 헉! 단장님! 조금만 쉬었다가 하시죠.”
“주, 죽겠습니다! 헉! 헉!”
기사들은 탈진 상태에 이르러 있었다.
“자식들아! 오늘도 쫄쫄 굶을 거야? 벌써 닷새째 물 한 모금으로 보냈잖아!”
“그전에 심장이 터져 죽겠습니다.”
“빌어먹을…….”
데얀이 걸음을 멈추고 털썩 눈밭에 누웠다. 따르던 모두가 그의 옆으로 줄줄이 쓰러지듯 누웠다.
“헉! 헉! 젠장, 언제까지 체력 훈련만 할 건지…… 그냥 마나를 돌리면 이까짓 체력쯤은 평생 써도 남을 것을…….”
“그러게 말이다!”
기사들은 연방 불만을 쏟아 냈다.
눈밭에 누었던 그들이 하나둘씩 몸을 일으켰다. 당장에 더워서 누웠는데, 뼛속까지 시리는 한기가 금방 차고 올라왔기 때문이다. 아주, 잠깐 사이에 참을 수 없는 한기가 전신을 꽁꽁 얼려 버릴 듯 매섭게 몰아쳤다.
“으…….”
“뛰어! 뛰어야 산다!”
데얀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자 모두는 다시 죽어라 뛰었다.
그런 그들을 반대편 봉우리에서 지켜보는 인물이 있었다. 흩날리는 눈발에 몸을 맡긴 채, 케니언 크로우 기사단을 응시하는 그는 바로 담대소천이었다.
그의 입가가 슬쩍 올라갔다.
‘후후! 끈기 하나는 제대로 타고난 놈들이군.’
그랬다.
그들은 생각 이상으로 끈기가 있었다. 오기도 있었고 승부욕도 넘쳤다. 담대소천은 그러한 점들이 꽤 마음에 들었다.
“한 달 안에 제대로 만들어 놔.”
혁련천후가 그에게 내린 지상 명령이 그것이었다.
담대소천은 선두를 달려가는 데얀을 응시했다. 가장 속을 썩일 것이라 예상했던 그가 의외로 가장 열성적으로 움직였다.
‘슬슬 가 볼까?’
생각이 끝나자 그가 사라졌다.
* * *
데얀은 전방에 나타난 담대소천을 발견하고는 몸을 세웠다.
놀랍게도 그가 허리를 숙였다. 뒤따르던 스무 명도 일제히 허리를 숙여 예를 표했다.
“할 만한가?”
“죽겠습니다.”
담대소천이 큼지막한 상자를 앞으로 밀었다.
“술이다! 마셔라!”
“오오! 술!”
“으흐…… 술이래, 술!”
너 나 할 것 없이 벌떼처럼 상자로 몰려들었다. 데얀이 누구보다 빨리 상자를 열어젖혔다. 그 안에 수십 병의 술과 건포가 들어 있었다.
술을 보자 훈련의 고단함은 눈 녹듯 사라졌다. 모두가 병째 술을 들이켰다. 청년 한 명이 담대소천에게 물었다.
“체력 훈련은 언제까지 해야 합니까?”
“힘든가?”
“그것보다는 다른 훈련을 하는 것이 더 좋을 듯해서…….”
담대소천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걸렸다.
“주공께서는 너희들이 완벽해지기를 원하신다. 그 완벽의 시작이 체력 훈련이다. 이 세상에서 마나라고 하는 것을 너무 믿지 말도록!”
“마나를 믿지 말란 말입니까?”
모두가 눈을 동그랗게 했다. 기사들에겐 마나가 전부다. 마나와 강함은 비례한다. 누가 더 많은 마나를 보유하고 있느냐에 따라서 강자와 약자의 구분이 지어진다.
그런데 마나를 믿지 말라니…….
“지금 내게서 느껴지는 마나의 양이 어느 정도지?”
“형편 없습…….”
누군가가 대답을 하다가 말끝을 흐렸다.
“그렇다. 너희들보다 형편없는 마나가 느껴질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떤가?”
화아악!
순간, 담대소천의 주변에 쌓였던 눈이 모조리 수증기로 화해 사라졌다.
그 두꺼운 만년설이 바닥까지 드러났다. 데얀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그뿐이 아니다. 다른 모두는 경악에 가까운 표정으로 변했다.
“이, 이건…….”
측정 불가의 마나가 그에게서 느껴졌다.
“이건 마나가 아니다. 내공이라고 하는 것이지. 물론 너희들이 맹신하는 마나와 본질은 같지만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그 차이는 엄청나다.”
담대소천이 데얀에게 시선을 주었다.
“이 세상에서 초인이라 불리는 자들과 붙는다면 이길 수 있나?”
“당연합니다!”
“네가 입는 갑주를 빼고도 장담할 수 있느냐?”
“그건…….”
데얀은 말끝을 흐렸다.
담대소천의 가라앉은 눈동자가 모두를 쓸고 지나갔다. 눈발과 어우러진 그를 바라보던 모두는 그가 무척 멋지다는 생각을 했다. 데얀도 마찬가지였다.
“넌, 주공께서 어느 정도의 힘으로 너를 상대했다고 보느냐?”
“전력이 아니었습니까?”
다소 불편한 기색으로 되묻는 데얀을 담대소천은 담담하게 쳐다봤다. 모두가 담대소천의 입을 주시했다. 데얀 역시 설마 하는 표정으로 그를 주시했다.
“그분이 검을 들었다면 넌, 한 수에 죽었다.”
“쿨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