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무사-352화 (350/425)

# 352

<귀환무사 352화>

귀환무사 2부

127화

명령이 떨어지자 모두가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리고 몇 시간이 지나자 군영이 차려졌다. 막스 황제는 중앙의 설치된 사령막으로 들어갔다.

바닥은 종류를 알 수 없는 꽃잎들이 깔려 있었고 임시로 마련된 진열장엔 최고급 명주들이 잔뜩 채워져 있었다. 지나치게 화려한 그것은 전쟁광이라는 막스 황제의 의외의 단면을 보여 주었다.

모두들 물리고 홀로 남은 막스 황제는 품에서 작은 구슬을 꺼내 탁자에 놓았다. 그리고 뭔가 주문을 외우자 구슬에 사람의 영상이 나타났다.

“도착했습니다.”

“준비는 다 되어 가겠지?”

“내일, 케이론 측에서 사신단이 올 예정입니다. 그들을 만나 보고 결정짓겠습니다.”

놀라운 일이었다.

황제가 존대를 하는 인물이 있었다니, 그것도 허리까지 굽혀가며 극도의 공경스러운 태도를 보이면서 말이다.

“막스! 케논 산맥은 내게 반드시 있어야 할 보물이다. 전쟁을 벌여서라도 그곳을 요란의 영토로 삼아야 한다. 알겠느냐?”

“명심하겠습니다.”

“너를 믿겠다, 막스!”

“항상 사부님을 위해 모든 걸 바칠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심려 놓으십시오.”

막스 황제의 공경한 태도에 구슬 안의 인물이 흡족한 웃음을 지었다. 숙였던 고개를 들었을 때, 구슬 안의 인물은 사라지고 없었다.

구슬을 소중히 품속에 갈무리한 막스 황제는 시녀들을 불렀다. 그는 무척 색을 즐겼다. 그래서 전쟁 중에도 항상 시녀들을 대동하고 다녔다.

“후후! 모든 준비는 끝났다. 이제, 이 세상은 나, 막스가 지배하게 될 것이다.”

첨벙!

그는 뜨거운 물이 가득 찬 임시 욕조에 몸을 담그며 눈을 감았다. 따라 들어선 시녀들이 옷을 벗고는 욕조에 들어섰다. 풍만한 여인의 나신이 막스의 숨결을 거칠게 만들며 사령막은 이내 뜨거운 숨결로 채워졌다.

* * *

케이론 제국을 상징하는 제국기를 꽂은 마차가 빠르게 케논 산맥의 능선을 타고 북쪽으로 질주를 하고 있었다.

마차 주변은 십여 기의 기사들이 호위하고 있었는데, 바로 테세우드 공작이 막스 황제에게 보내는 사신단이었다. 목적은 막스 황제가 군을 직접 이끌고 온 목적을 알아내기 위함이었다. 사신단의 수장은 이튼 백작으로 제국에 소문난 무관이자 정치가였다.

언제나 이런 일은 그의 몫이었다. 달변에다 강심장까지 지닌 그였기에 테세우드 공작의 신임은 대단했다.

“각하! 다섯 시간 정도만 더 가면 막스 황제의 군영이 나옵니다! 잠시 쉬었다 가시겠습니까?”

호위장이 마차에다 대고 큰 소리로 물었다.

“그렇게 하지. 간단하게 식사라도 하고 가겠다.”

“준비하겠습니다!”

호위장이 무리의 이동을 멈추게 하고는 적당한 장소를 찾아 그곳으로 이동시켰다. 기사들이 재빨리 조립식 의자와 탁자를 꺼내어 자리를 만들자 이튼 백작이 마차에서 내려 그곳에 앉았다.

“이곳은 몬스터들이 출몰하는 곳은 아니겠지?”

“걱정 마십시오. 이곳은 낮은 지역이라 있어 봤자 고블린이나 오크 정도가 고작입니다. 오우거나 와이번은 이십 일이 넘게 모습을 보인 적이 없는 것으로 보아 동면기에 들어간 것 같습니다.”

“그래도 각별히 주변을 살피게. 혹, 아이스 오우거가 나타날 수도 있으니까.”

“예! 각하!”

이튼 백작은 조금은 긴장한 빛으로 주변을 살폈다.

불과 이십 일 전까지는 몬스터 대전이 발발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을 자아낼 만큼 엄청난 수의 몬스터들이 이곳, 케논 산맥에 나타나지 않았던가. 엄청난 피해를 입힌 블랙 오우거나 블러드 와이번이 나타나는 날에는 자신을 비롯한 모두는 목숨을 잃게 된다.

“흠! 그건 그렇고 요란의 뜻이 과연 무엇일까? 소문대로 실종된 황태자 때문일까, 아니면 전쟁을 목적으로 움직인 것일까? 자넨 어찌 생각하는가?”

“황태자를 찾으려고 대군을 몰고 올리는 없잖습니까. 분명 어떤 구실을 내세워 전쟁을 하고자 함일 겁니다.”

“그렇지. 그건 그렇지…… 그렇다면 이거 정말 큰일이 아닌가. 물론 본 제국도 막강한 군사력을 지니곤 있다지만 요란은 전쟁으로 먹고사는 나라인데 말이야…… 설사, 승리한다고 해도 최소한 십 년은 후퇴할 것이 뻔한 전쟁이야. 그렇지 않은가?”

“그렇습니다. 그래서 각하께서 가시는 게 아닙니까? 모두는 각하를 믿고 있습니다.”

“허허! 이 사람아! 그들이 전쟁을 작정하고 있다면 나도 어쩔 수 없네.”

이튼 백작은 헛웃음을 흘렸다.

잠시 후, 기사들이 뜨거운 수프와 과일로 만든 음료를 내놓자 모두는 간단하게 식사를 시작했다.

식성이 좋은 이튼 백작이 수프를 다 먹고 빵을 입으로 가져갈 때였다. 그가 타고 왔던 마차의 뒤쪽에서 기척이 들렸다.

바스락!

순간, 기사들이 재빨리 검을 뽑아 들고 이튼 백작을 둥그렇게 에워쌌다. 상당히 빠른 반응이었다.

“몬스턴가?”

“확인하겠습니다!”

호위장이 직접 마차 쪽으로 몸을 날렸다. 제법 강한 무력을 지녔던 호위장은 한 번 도약에 마차까지 날아갔다. 이튼이 고개를 끄덕이며 놀라워할 때 호위장의 육신이 허공에서 그대로 두 동강으로 썰어졌다. 비명조차 없었다.

“헉!”

“저, 저런…….”

지켜보던 모두가 크게 놀랐다.

스슥!

호위장의 잘린 머리를 밟고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나타난 자들은 모두 셋. 하나같이 칙칙한 마기를 줄기줄기 발산하며 이튼 백작 일행을 노려봤다.

“누구냐!”

기사들이 이튼 백작에 대한 호위망을 더욱 굳건히 하며 소리쳤다. 그러나 나타난 자들은 대답이 없었다. 어둡게 죽어 버린 눈동자로 이튼과 기사들을 쓸어 본 가운데의 인물이 손짓을 하자 좌우에 섰던 둘이 느릿하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잔뜩 긴장한 눈으로 그들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이튼 백작이 갑자기 눈을 부릅떴다.

“저, 저자는 요란의 황태자가 아닌가!”

그랬다.

가운데 선 인물은 분명 카르스가 맞았다.

그런데 그가 이상했다. 자신감으로 가득했던 얼굴은 온데간데없고 죽은 자의 그것을 연상시키는 음습함만이 그에게서 느껴졌다.

“후후! 쓸 만한 인간이 전혀 보이지 않는군.”

카르스가 섬뜩하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그의 목소리는 마계의 존재들을 연상시킬 만큼 굵직하면서도 ‘웅웅’ 울렸다.

“난 케이론의 이튼 백작이오! 저 깃발이 보이지 않소? 지금 귀국의 황제를 만나러 가는 사신단에게 이게 지금 무슨 짓이오?”

“사신단? 황제? 후후후! 웃기고 있군.”

“지금 당신은 명백한 국제법 위반을 범했소. 이 사실이 대륙에 알려지면 당신은 곤경을 면치 못할 것이오! 카르스 황태자!”

“말이 많은 놈이군. 모조리 죽여라! 저 말들만 빼고 말이야…….”

카르스가 명령을 내리자 다가오던 둘의 속도가 빛처럼 빨라졌다. 그들이 벼락같이 검을 휘두르며 달려들자 기사들은 이튼 백작을 뒤로 밀어내며 검을 마주 뻗었다.

까가강!

퍽퍽!

“으악!”

기사들이 뻗은 검들이 모조리 두 동강이 나며 쥐었던 팔이 싹둑 잘려 나갔다. 이튼 백작의 두 눈이 찢어질 듯 부릅떠졌다. 보고도 믿기지 않는 광경이었다.

자신을 호위해서 온 기사들은 꽤 강한 자들만 추려서 왔다. 그런 그들이 한 번 손짓에 팔을 잘려 버렸다. 더구나 강철로 만든 검과 동시에 팔이 잘렸으니…….

“설마 마스터……?”

마스터가 아니면 보일 수 없는 경지였다.

아니, 마스터라도 쉽게 할 수준이 아니었다. 팔이 잘린 기사들이 고통에 몸부림치며 비명을 질러 댔다. 상황을 빨리 파악한 기사 하나가 이튼 백작에게 도주할 것을 권했다.

“각하! 보통 자들이 아닙니다! 어서 본대로 귀환하십시오! 여기는 저희들이 맡겠습니다!”

생각하고 말고 할 상황이 아님을 깨달은 이튼 백작은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기사들이 탔던 전마에 몸을 실었다.

“부탁하네!”

“후후! 어딜!”

지켜보고만 섰던 카르스가 검을 뽑아 들며 사악하게 웃었다.

이튼 백작은 서둘러 말의 옆구리를 발로 걷어찼다. 그 짧은 시간에 열 명이 넘어가는 기사들이 목숨을 잃었다. 광포하게 날뛰는 둘에게 도저히 상대가 되질 않았다.

전마가 먼지를 일으키며 질주를 시작했다. 동시에 카르스의 육신이 그 자리를 벗어나 이튼 백작을 향해 날아갔다.

“놈!”

허공에 뜬 카르스를 향해 기사 하나가 검을 뻗었다.

“허약한 인간 주제에…….”

“으악!”

날아가는 속도를 멈추지 않는 카르스가 손을 슬쩍 휘두르는 시늉을 하자 기사는 머리가 박살이 나며 피를 뿌렸다.

“놈을 저지하라! 각하께서 위험하다!”

살아남은 기사들이 달려드는 둘을 포기하고 일제히 카르스를 향해 목숨을 걸고 달려들었다. 전과는 달리 엄청나게 강력해진 카르스도 그들의 목숨을 내건 돌진에 추격을 포기하고 바닥으로 내려서야만 했다.

“죽여 주지!”

콰지직!

“으아악!”

내려서기가 무섭게 그의 육신 주변이 피안개로 물들었다.

횡으로 그어진 단 한 번의 공격에 여섯 명의 기사들이 핏물로 화해 쓰러졌다. 카르스의 고개가 재빨리 이튼 백작을 향해 돌아갔다. 그러나 이미 그를 태운 전마는 까마득한 거리 밖을 질주하고 있었다.

“후후! 그나마 아까운 먹잇감을 놓쳤군.”

중얼거리는 카르스에게서 인간의 감정이라곤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다른 둘이 그에게로 다가왔다. 놀랍게도 그들은 폭스 후작과 크루즈 백작이었다.

그들의 눈동자 역시 음습하게 죽어 있었다. 전신을 죽은 자들의 피로 흠뻑 적신 그들은 입가에 묻은 핏물을 혀로 핥으며 아무런 표정조차 짓지 않았다.

“몬스터들을 깨워라.”

“알겠습니다.”

“후후! 피의 잔치를 벌여야겠어.”

* * *

“그게 사실인가요? 실종되었다던 요란의 황태자가 사신단을 모조리 죽였단 말인가요?”

테세우드 공작이 머물고 있는 본대로 합류한 레이나 공주는 자신의 군막에서 헤론 후작의 보고를 들으며 경악했다.

“그렇습니다! 이튼 백작만이 살아서 돌아왔다고 합니다.”

헤론 후작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 딱딱하게 굳어져 있었다. 그들은 지금 제국 전쟁을 떠올리고 있었다. 사신단이 요란 측에 의해 모조리 죽임을 당했다면 테세우드 공작이 어떻게 나올지는 불을 보듯 훤했다.

사신단을 보낸 것도 주변국의 눈을 의식해 형식적으로 보낸 것이 아닌가.

“이 일을 도대체 어떻게 한단 말인가요?”

“……!”

레이나 공주는 머리를 감싸며 힘없이 의자에 앉았다. 입술을 굳게 다문 헤론 후작은 수염마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그토록 우려했던 제국 전쟁은 이제 도저히 막을 방법이 없게 되었다. 확실한 명분을 얻은 테세우드 공작은 선전 포고조차 없이 분명 제국에 총동원령을 내릴 것이고, 그렇게 되면 제국의 모든 실권은 그에게로 완벽하게 귀속되는 것이다.

전시에는 그가 황제를 대신하게 되어 있었는데, 그가 그토록 전쟁을 원했던 가장 큰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이었다.

“마마! 힘을 내십시오! 어떻게든 방법이, 아니 신께서 존재하신다면 반드시 폐하를 외면하시지는 않을 것입니다!”

“신! 신! 그 위대하신 신이 있다면 왜 엄청난 희생을 강요하는 전쟁을 방관하겠어요. 차라리 사라진 몬스터들이 전쟁에 미친 미치광이들을 죽여 주는 것을 바라는 게 낫겠군요.”

“마마…….”

레이나 공주는 거의 울부짖음에 가까운 소리를 냈다.

“폐하께서 실권을 잃는 것이 두려운 게 아니에요. 전쟁에 의해 죽어 나갈 수많은 사람들, 그 사람들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