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0
<귀환무사 350화>
귀환무사 2부
125화
으르렁거리는 왕전을 보며 흑야가 웃었다.
“성질머리가 네놈하고 비슷하더라.”
“흐흐! 그럼 완전 개 같은 성질이잖아?”
북궁천소가 가는 눈으로 왕전을 홀기며 놀렸다. 얼굴이 시뻘게진 왕전은 그저 화를 참아야만 했다. 괜히 여기서 소란을 피우다 잘못 걸리면 궁전을 뽑아다 다른 곳으로 옮기라고 할지도 몰라서였다.
“어머! 왔어요.”
연소민이 가볍게 놀란 소리를 냈다.
모두가 연회장의 입구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 데얀과 스무 명에 달하는 청년들이 들어서고 있었다. 여전히 은빛 갑주를 걸친 데얀과는 달리 뒤를 따르는 청년들은 화산의 무복을 걸치고 있었다.
모두의 시선이 자신에게 집중되자 데얀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홀베른 국왕에게 슬쩍 고개를 숙인 그는 혁련천후를 똑바로 쳐다보며 거친 소리를 냈다.
“다시 싸우자!”
“무례는 한 번으로 족하다, 애송이!”
싸늘한 말이 우측에서 들렸다. 조윤이었다. 데얀은 조윤을 보고는 내심 놀랐다. 그리고 그 옆에 앉은 담대소천과 왕전 등을 보고는 다시 한 번 놀랐다.
‘강한 놈들이다! 뭐야? 저놈들이 전부 똘마닌가?’
그들과 데얀은 첫 만남이었다.
결코 만만치 않았던 흑야와 비교해도 절대 약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이상한 갑주를 걸친 담대소천은 다른 자들보다 훨씬 강력한 분위기를 발산하고 있었다. 데얀의 그들의 묵직함에 위압감을 느꼈다.
“그만!”
혁련천후가 나섰다.
조윤이 시선을 거두자 데얀은 다시 혁련천후에게로 시선을 던졌다. 혁련천후가 턱짓으로 빈자리를 가리켰다. 데얀의 입장에선 상당히 모욕적인 태도였다.
“네 자리로 가라!”
입술을 지그시 깨문 데얀은 잠시 그를 노려보다가 빈자리로 가서 앉았다. 뒤쪽의 청년들은 에이미 공주가 자리를 권했지만 거부하고서 데얀의 뒤쪽에 늘어섰다. 그것을 본 혁련천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의 입을 통해 싸늘한 말이 흘러나왔다.
“오늘까지만 그런 행동을 용서하겠다. 지금 이 순간부터 너희들의 주인은 나다. 그것에 이의가 있거나 불만이 있으면 언제든, 너희들 방식으로 붙어 주겠다.”
데얀의 뒤쪽에서 일시에 뜨거운 기운이 확 솟구쳤다.
몇몇은 사나운 기세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혁련천후를 노려보기까지 했다.
“무례한 놈들이군…….”
담대소천이 느릿하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가 일어서자 데얀의 눈동자가 반짝 빛을 발했다. 담대소천은 눈빛으로 혁력천후에게 허락을 받은 뒤, 의자를 밀어내고 데얀과 청년들에게로 걸음을 놓았다.
연회장에 정적이 흘렀다.
연소민은 근심 어린 표정으로 혁련천후를 돌아봤다.
[초장에 기를 죽이는 것도 괜찮을 거다.]
[하지만…….]
[소천은 강하다.]
그 말에 연소민은 가볍게 호흡하며 마음을 안정시켰다. 담대소천이 데얀과 청년들을 한 번 쓸어 보고는 몸을 돌렸다.
“모두 밖으로 나와.”
“지금 우리와 싸우겠단 것이냐?”
“그 말투도 바꿔야겠어. 네 선조들도 내겐 허리를 굽혔거든…….”
“후후! 그걸 증명해 달라고 온 거야. 당신들이 전설의 주인인지를 납득할 수 있게 해 달란 말이지. 우리가 납득하지 못하면 오늘부로 우린 홀베른을 떠날 테니까.”
“밖에서 증명해 주지.”
홀베른 국왕이 근심 어린 빛으로 혁련천후를 응시했다. 그는 담대소천을 걱정했다. 한눈에 그가 강하다는 것을 알아보았지만 그래도 상대는 데얀이다. 혁련천후에게 일방적으로 패했다고 해도 그는 여전히 엄청난 강자이기 때문이다.
그의 속내를 짐작한 혁련천후는 옅은 미소로 대신 답하고는 몸을 일으켰다.
제8장 케니언 크로우를 접수하다
연회장 밖에 자리한 널찍한 정원에 모두 모였다.
“싸우는 거야?”
허공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아리엘이었다. 그녀는 손을 마구 흔들며 활짝 웃었다. 당연히 손을 흔드는 대상은 혁련천후였다.
진천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불퉁거린다.
“쳇! 젊은 우리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가 보네. 취향 한번 이상하다.”
“우리도 별로 젊은 나이는 아니거든?”
“주공보단 젊잖아. 쩝! 어째 예쁜 여자들은 죄다 주공을 좋아하냐? 중원에서도, 이곳에서도 말이야, 에잉!”
사공진무가 묘하게 웃으며 진천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에이미 공주는 어떠냐? 저 정도면 무지 예쁘잖아.”
“엄연히 촌수를 따지면 저 아인 수백 년 후에 태어난 조카가 되잖아. 에라! 이 미친놈아!”
“그런가?”
에이미 공주는 관산악의 후예이니 진천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
둘이 수군거릴 때, 데얀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울렸다.
“싸워서 이긴다는 것만으로 전설의 주인임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단 말이오? 국왕!”
홀베른 국왕이 난감한 표정으로 혁련천후를 돌아봤다.
혁련천후도 마땅한 대답이 없었다. 데얀이 지켜 온 전설에는 자신들의 선조가 몸담았던 화산이란 곳의 주인이 언젠가는 반드시 출현할 것이라 했지 다른 것은 없었다. 데얀의 입장에선 당연한 반응일 수도 있었다.
혁련천후의 눈가에 슬쩍 주름이 잡혔다. 잠시 생각한 그가 나지막이 말했다.
“소천! 물러서라. 내가 하겠다.”
혁련천후가 자리에서 일어나 가운데로 걸어갔다. 그의 의중을 짐작한 담대소천은 말없이 뒤로 물러났다. 혁련천후는 데얀을 비롯한 청년들에게 차가운 음성으로 말했다.
“너희들이 배워 온 모든 것을 내게 펼쳐 보도록!”
“그게 전설의 주인을 증명하는 것과 무슨 상관이야?”
데얀이 인상을 잔뜩 구기고서 물었다.
“너희들이 배운 것으로 모두 상대해 주지.”
그 말에 데얀의 뒤에 늘어선 청년들이 다소 동요했다. 대부분은 불신을 드러냈다. 혁련천후는 화산의 무공으로 그들의 기를 죽일 작정을 했다.
데얀이 그토록 강력한 검법을 펼칠 수 있었던 것도 모두가 화산의 태청검법을 익힌 탓이다. 물론 내공 운용법이 다른 탓에 조금은 변질된 부분도 있었지만 본질은 태청검법에 충실하고 있었다.
혁련천후는 데얀과 싸울 때, 이미 그러한 부분을 모두 간파하고 있었다. 데얀은 혁련천후가 자신들이 익힌 무공으로 상대한다고 하자 내심 놀랐다. 그건 오직 케니언크로우의 기사들만이 익히는 가문의 비전이다.
‘정말 전설의 주인이란 말인가?’
데얀은 자신과 싸울 때의 혁련천후를 떠올렸다.
그의 주먹질에 드래곤의 비늘로 만든 갑주가 사정없이 구겨지지 않았던가? 이 세상에 그런 강자는 없는 것으로 데얀은 알고 있었다. 대륙에서 초인이라 불리는 강자들도 그 정도는 아닐 것이다.
‘젠장! 정말 전설의 주인이라면 이거, 꽤 곤욕을 당하겠는데…….’
혁련천후가 진정, 전설의 주인이라면 자신은 목숨을 바쳐 충성을 다해야만 한다. 선조들이 당부했던 것이 그것이었고 자신 역시 그러리라 다짐하고 있었다.
데얀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조금은 찝찝했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라 여기서 물러설 순 없었다. 그는 수하들에게 눈짓을 주었다.
그러자 날카로운 인상의 청년이 앞으로 나섰다.
“혼자 해 볼 생각이냐?”
혁련천후의 물음에 청년은 눈빛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화산은 강하다. 너희들의 선조는 특히 더 강했다. 그 후손인 너희들이 그들의 명예를 지켜나갈 수 있는지를 보겠다. 와라!”
“타앗!”
청년이 한 줄기 기합성을 토해 내고는 섬전처럼 달려들었다.
* * *
‘훗! 흥미로운걸?’
아리엘은 궁전의 옥상에서 눈빛을 발하며 결투를 지켜보았다. 그녀는 자신의 비기를 가동해서 혁련천후와 청년들을 탐지했다.
아리엘의 눈동자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순간순간 힘을 쏟아 내는구나. 저런 방법이 있었다니…….’
혁련천후가 발산하는 마나의 움직임이 무척 독특했다.
한순간 거의 무에 가깝게 느껴지다가도 공격을 할 때면 갑작스럽게 강력한 마나의 분출이 이루어졌다. 자신도 그 정도는 가능했지만 혁련천후만큼 완벽하지는 못했다.
‘정말 흥미로운 사람이야. 확! 시집이나 가 버릴까?’
혁련천후를 향한 아리엘의 눈동자는 보석처럼 반짝였다.
“화이팅!”
그녀는 사람들의 시선에 아랑곳 않고 큰 소리로 그를 응원했다. 왕전의 부리부리한 눈길과 마주지차 배시시 웃기까지 했다.
“저게 미쳤나?”
왕전이 아리엘을 보고 인상을 부라렸다. 북궁천소가 왕전을 보며 히죽 웃었다.
“그게 다 주공이 멋져서 그런 것 아니겠냐? 넌, 한 번도 여자한테 눈길을 받아 본 적이 없으니 모를 거다. 그런 마음…….”
“지랄을 하세요. 네놈이나 나나 마찬가지지.”
“새끼야! 난, 그래도 중원에 있을 때, 나 없으면 죽는다고 따라다녔던 여자가 둘은 있었다.”
“흐흐! 그 계집들이 네놈이 멋있어서 그랬겠냐? 네놈의 내공이 탐나서 그런 거지.”
“이런 백정 새끼!”
북궁천소를 따라다녔던 여인들은 채음보양술을 전문으로 했던 요녀들이었다. 불끈 성을 내는 북궁천소에게 가운데 손가락을 세워 보인 왕전은 이내 결투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흐흐! 한 방에 한 놈씩 가는군. 화산장문인이 저걸 보면 입에 거품을 물고 탄식을 하겠군. 놈들도 따지고 보면 화산의 제자가 아니냐?”
팔짱을 하고서 결투를 지켜보던 조윤이 중얼거렸다.
“화가 나셨군.”
“주공께서?”
“그래. 놈들이 생각보다 약해서 그러신 듯싶다. 내가 봐도 저건 완전히 허접질을 하는 거야. 화산의 날카로움이 전혀 보이지 않아. 무식하게 힘을 중시하는 쪽으로 완전히 변해 버렸어.”
조윤의 말 그대로였다.
청년들, 그러니까 케니언 크로우 기사단원들은 하나같이 파괴력에 중점을 둔 공격만을 펼치고 있었다. 당초 하나만 대결코자 했던 그들은 몇을 남겨 두고 모조리 바닥을 구르고 있었는데, 그들을 상대하는 혁련천후의 얼굴에 확연하게 노기가 드러나 있었다.
퍽!
그의 주먹이 작렬하자 마지막으로 도전했던 청년이 허공을 날아가 사정없이 곤두박질쳤다. 혁련천후의 매서운 눈길이 데얀에게로 돌아갔다.
“네 선조들이 남겨 준 무공이 이거였나?”
“……!”
데얀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지금 데얀은 전신을 가늘게 떨고 있었다. 자신의 수하, 스무 명을 주먹질로 날려 보낸 그를 보며 그는 혼란을 겪고 있었다. 그가 펼친 공격 수법은 바로 자신들의 선조가 물려준 무공이 분명했다. 놀라운 것은 가장 기초적인 수법이라는 것에 있었다. 무공을 입문할 때 기초 체력을 다질 목적으로 수련했던 그것으로 모조리 제압을 한 것이다.
‘저, 정말이잖아!’
그랬다.
그가 전설의 주인임에 틀림없었다.
“네놈이 이들을 가르쳤나?”
데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금 전까지의 데얀이 아니었다. 난폭했던 표정은 경건하게 굳어져 있었고 몸놀림도 무척 공경하고 신중했다. 그가 느릿하게 바닥에 무릎을 꿇고 이마를 땅에 대었다.
전형적인 중원식의 예법이었다.
“사조님을 뵙습니다!”
“사조님을 뵙습니다!”
쓰러졌던 모두가 데얀과 같은 자세로 복창했다.
사조라는 단어도 전설에 이어져 온 것이다. 잠시 매서운 눈길로 그들을 노려보던 혁련천후가 담대소천을 눈빛으로 불렀다. 담대소천이 그에게 다가갔다.
“놈들을 처음부터 다시 바꿔 놔라. 따라오지 못하면 죽여도 좋다!”
“알겠습니다.”
쿵!
데얀을 비롯한 케니언 크로우 기사단, 전원의 가슴에 거대한 충격파가 전해졌다. 죽음보다 더한 지옥의 수련은 당장 그날 밤부터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