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9
<귀환무사 349화>
귀환무사 2부
124화
* * *
쿵…….
갑자기 왕궁이 흔들렸다.
“무슨 일이지?”
연소민이 눈을 동그랗게 하고서 에이미 공주를 응시했다. 그녀도 같은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쿵…….
다시 진동이 이어지며 벽에 걸린 액자들이 흔들렸다.
“지진인가? 에이미! 밖으로 나가 보자!”
“예! 언니!”
둘은 창문을 통해 몸을 날렸다.
왕궁의 후문에 위치한 연무장엔 이미 상당한 사람들이 나와 있었다. 그중엔 룻거 후작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녀들이 나타나자 모든 기사들이 일제히 허리를 숙였다.
“무슨 일인가요? 후작님!”
에이미 공주가 묻자 그는 다소 경직된 표정으로 대답했다.
“상왕 전하께서 데얀을 만나러 가셨는데…….”
“어머! 그럼 데얀이……!”
깜짝 놀란 에이미 공주가 뾰족하게 소리치고는 연소민을 돌아봤다. 연소민이 고운 아미를 살짝 찌푸렸다. 상황은 더 말하지 않아도 충분이 짐작이 되었다.
“데얀이 누구야?”
“있어요, 그런 사람…….”
“성주님께 대들면 큰일 나는데…….”
“제가 가 봐야겠어요.”
“아냐! 나도 같이 가겠어.”
둘은 재빨리 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몸을 날렸다.
* * *
어지간해서는 놀라지 않는 왕전과 북궁천소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저걸 우리가 다 날라야 한단 말이냐?”
“으흐…….”
눈앞에 펼쳐진 전차의 행렬은 입을 다물 수 없게 만들었다. 널찍한 평원에 햇빛에 반짝이며 줄지어 늘어선 전차의 수는 이백 대가 아닌 오백 대에 가까워 보였다. 게다가 하나같이 철갑으로 중무장을 하고 있어 그 무게가 만만치 않아 보였다.
“젠장! 왜 졸아 가지고…… 돌아버리겠네.”
“네놈 때문에 나까지 걸렸잖아! 망할 자식아!”
“이런, 빌어먹을 새끼 좀 보게? 그게 왜 나 때문이야!”
“졸음은 전염이란 말도 모르냐? 네놈이 먼저 조는 바람에 나까지 졸았잖아!”
사공진무와 진천은 싸우는 둘을 보며 혀를 찼다.
“형님들, 지금부터 열심히 날라도 밤을 꼬박 샐까 말깝니다. 서두르시죠. 억울한 건 우리들이니 그만들 싸우세요.”
심드렁하게 말을 던진 진천이 옷소매를 걷어붙이며 전차가 늘어선 곳으로 걸었다. 암담하기는 그들도 마찬가지였다. 그야말로 개고생을 하게 생겼으니 얼굴은 어린아이처럼 울상이 되었다.
“야! 너, 환술로 어찌 안 되겠냐?”
“아직 물건까지 옮기는 건 배우지 못했는데요?”
“뭐야? 그럼, 네놈의 환술이 이 세상의 마법보다 허접하단 소리냐?”
“뭐요?”
진천이 발끈하자 왕전이 대놓고 으르렁거렸다.
“어쭈구리! 네놈이 지금 나한테 눈을 부라렸냐?”
“끙! 내가 참아야지. 어서 전차나 날라요!”
황당한 얼굴로 전차를 바라보던 사공진무가 손뼉을 치며 소리쳤다.
“아하!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셋이 엄청난 속도로 그에게로 몰려들었다.
“라이트 마법이란 거 있잖습니까? 전에 말에다 그걸 걸으니 말이 가벼워져서 엄청나게 빨리 달렸던 그 마법 말입니다.”
“있었지. 그게 왜?”
“후후! 전차에다 그걸 걸면 엄청 가벼워지지 않을까요?”
“오호!”
대번에 모두의 얼굴에 희열이 돌았다.
“우드! 놈을 불러와야겠다! 이봐, 진천! 얼른 뛰어갔다 와!”
“제가요?”
“그럼, 내가 갈까?”
오만상을 찌푸리고 달려갔던 진천이 잠시 후, 풀이 죽은 모습으로 돌아왔다. 모두가 의아한 빛으로 진천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우드는?”
“주공께서 엄명을 내리셨답니다.”
“엄명? 그게 뭔데?”
“도와주지 말라고 하시고는 데얀이란 놈을 만나러 가셨다는데요?”
모두가 울상이 되었다. 그때 ‘쿵쿵’ 하는 진동 소리가 들렸다.
“뭐야? 이 소린……!”
“누가 싸우는 거 같은데요?”
“싸워? 이렇게 땅이 흔들릴 정도로 강력한 놈이 이곳에 있단 말이냐? 이 정도면 거의 주공급인데…….”
말을 늘어놓던 왕전이 북궁천소를 돌아봤다. 마침 그도 같은 표정으로 왕전을 돌아보고 있었다. 진천의 육신이 뿌연 기운으로 둘러졌다. 환술을 펼쳐 파생되는 기운을 감지하려는 것이다. 진천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천살강기! 데얀이라는 놈이 주공께 덤볐나 봅니다!”
“이런 망할 놈의 새끼!”
콰앙!
넷의 육신이 폭풍처럼 북쪽으로 날아갔다.
* * *
콰다당!
데얀의 육중한 육신이 사정없이 벽에 부딪혔다. 부딪힌 벽이 금이 갈 정도로 엄청난 충격이 있었지만 데얀은 용수철처럼 벌떡 일어섰다.
“빌어먹을! 젠장!”
입은 연방 욕설을 토해 냈다.
“좋아! 오늘 너 죽고 나 죽는다! 퉤!”
진득한 핏물을 뱉어 낸 데얀은 다시 혁련천후를 덮쳤다. 당초, 긴장했던 홀베른 국왕은 다소 여유로운 표정으로 둘의 싸움을 지켜보고 있었다. 만에 하나 혁련천후가 불상사를 당할까 염려했었지만 싸움은 일방적으로 그가 주도하고 있었다.
퍽!
“우욱!”
곰처럼 달려들었던 데얀의 육신이 다시 벽으로 날아갔다. 이번엔 아예 벽 속에 깊숙이 박혀 버렸다.
쩌저적!
벽에 거미줄 같은 금이 생겨나며 당장에라도 무너질 듯 흔들렸다. 그런 데얀을 바라보며 불신에 찬 눈을 한 인물들이 있었다. 모두가 화산의 무복을 걸친 스물에 가까운 청년들이었는데, 그들이 바로 데얀이 거느리고 있는 케니언 크로우 기사단이었다.
그들 중, 몇이 달려 나올 듯이 몸을 움직이자 데얀이 버럭 고함을 질렀다.
“끼어들지 마! 끼어들면 죽을 줄 알아!”
“다, 단장님!”
“닥쳐! 너희들은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말고 그대로 있으란 말이야!”
사공진무의 검도 뚫어 내지 못했던 데얀의 갑주는 이미 곳곳이 움푹 파여 있었다. 혁련천후의 주먹에 의한 것이었다. 그는 지금 맨손으로 데얀을 상대하고 있었다.
“아직 입을 살아 있군. 힘이 남았으면 어서 덤벼!”
“이런, 썅!”
퍽!
달려들었던 데얀의 육신이 이번엔 상당한 거리까지 날아가서 사정없이 곤두박질쳤다. 모두가 저절로 움찔할 만큼 패대기쳐진 데얀은 지금까지와는 달리 그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흑야! 놈을 깨워라.”
케니언크로우 기사단의 앞에 섰던 흑야가 눈 깜짝할 사이에 저만치에 쓰러진 데얀의 옆에 나타나자 청년들은 다시 놀랐다.
퍽!
흑야의 발이 사정없이 데얀의 머리통을 걷어찼다. 정신이 깬 데얀이 본능적으로 몸을 일으키려 했으나 가슴에 올려진 흑야의 발 때문에 꼼짝하지 못했다.
“더 덤비면 내가 너를 두 동강 낼 거야.”
“이런 개자식이……!”
“후후! 그 말도 나중에 다 돌려주지.”
데얀이 일어서려고 몸부림을 쳤지만 꼼짝을 할 수 없었다. 혁련천후가 다가와 흑야의 옆에 섰다. 한기가 물씬 느껴지는 그의 눈동자를 데얀은 이글거리는 눈으로 노려보았다.
“한 시간 안에 왕궁의 연회장으로 오도록! 물론 저 아이들도 함께!”
“닥쳐! 아직 더 싸울 수 있다.”
“오지 않으면 이곳을 영원히 폐쇄시키겠다. 물론 너와 저 아이들은 죽는 그날까지 이 안에서 살아야 할 것이다.”
그 말을 끝으로 혁련천후는 등을 돌렸다. 데얀을 내려다보며 차갑게 웃어 준 흑야도 몸을 돌려 혁력천후를 따랐다. 홀베른 국왕이 안타까운 눈으로 데얀을 쳐다보다가 가볍게 한숨짓고는 몸을 돌리려고 할 때였다.
쾅!
문이 거칠게 젖혀지며 왕전과 북궁천소가 뛰어들었다. 뒤이어 사공진무와 진천이 둘의 옆에 나타났다. 왕전이 성난 곰처럼 으르렁거렸다.
“어떤 개자식이 주공께 건방을 떤 것이냐! 응?”
고함을 지른 왕전은 걸어오는 혁련천후와 흑야를 보고는 눈을 동그랗게 했다.
“주, 주공……!”
“전차는?”
“예? 아, 그게 주공께서 싸우시는 것 같아서 그만…….”
“다섯 시간 안에 옮겨놔.”
“쿨럭!”
* * *
왕궁의 주방은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다.
수많은 요리사들이 요리를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연소민과 에이미 공주도 일손을 거들고 있었고, 제법 요리 솜씨가 붙은 우드는 별도의 공간에서 요리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카루가는 우드 옆에서 재료를 날라 주며 틈나는 대로 과일을 입으로 가져갔다.
“하! 냄새 좋다!”
“하하! 좋습니까? 조금 드릴까요?”
“싫어! 난, 그래도 과일이 제일 좋아.”
“요즘, 요리를 제법 많이 드셨잖습니까? 빨리 이 세상의 음식에 적응하셔야죠. 하하!”
우드는 쪼그리고 앉아서 과일을 우물거리는 카루가에게 따뜻한 눈빛을 주었다. 이미 둘은 가족 이상의 관계로 이어져 있었다. 비록 카루가가 함부로 못하는 존재라지만 잃어버린 아들에 대한 애정을 그에게 대신 듬뿍 쏟아붓는 우드였다.
“우드!”
“예! 왕자님!”
“지금 만드는 그게 숙부들이 온 세상에서 먹는 음식이지? 그거 맛있을까?”
“그럼요! 제가 실력이 제법 늘었기 때문에 별미 중에 별미입지요. 조금 드셔 볼랍니까?”
“조금만 줘.”
카루가는 우드가 조금 떼어 준 요리를 입에 넣고 오물거렸다. 우드는 기대 어린 눈으로 카루가의 반응을 기다렸다.
“으…… 맛이 이상해.”
“헉! 정말입니까? 그럼 안 되는데…….”
우드는 재빨리 자신도 맛을 보았다. 꽤 맛있었다.
“괜찮은데요?”
“그걸 어떻게 먹어? 그냥 난 과일만 먹을래.”
고개를 갸웃거린 우드는 다시 요리가 끓고 있는 솥에 신경을 쏟았다. 과일을 손에 든 카루가는 주방의 곳곳을 누비며 코를 킁킁거렸다.
그러다가 연소민을 발견하고는 한걸음에 그녀에게로 달려갔다.
“뭐해?”
“카루가 왔구나. 요리 만들지. 좀 줄까?”
“맛있어?”
“먹어 봐. 이래 봬도 난 꽤 알아주는 솜씨가거든.”
카루가는 그녀가 건네준 요리를 입안에 넣고 오물거렸다. 우드가 준 것과는 다른 반응이 나왔다.
“와! 맛있다! 뭘로 만든 거야?”
“훗! 돼지고기하고 야채를 섞어서 만든 거야. 더 줘?”
“응! 더 줘.”
쾅!
그때, 주방문이 부서질 듯 거칠게 열렸다. 모두가 깜짝 놀라서 그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밖에서 안으로 비치는 태양의 역광 때문에 누군지 알아보기가 힘들었다.
연소민이 눈매를 가늘게 하고서 살펴보다가 깜짝 놀랐다.
“어머! 숙부…….”
“뭐 먹을 것 좀 없냐? 배고파 뒈지겠다.”
* * *
“놈이 올까요?”
흑야는 연회장의 입구를 흘긋거리며 혁련천후에게 물었다.
“온다.”
“성질이 보통이 아니라 안 올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기다려 봐.”
혁력천후는 에이미 공주가 건넨 술을 꽤 많이 마셨다. 독한 데다가 뒷맛이 개운해서인지 입에 꼭 맞았다. 그의 우측에 앉았던 홀베른 국왕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방금 나섰다고 합니다.”
“그걸 어떻게 아는 거요? 전서구가 온 것도 아니고, 통신석을 본 것도 아닌데…….”
흑야가 물었다.
“마법을 이용해서 장거리 통신이 가능하게 만들어 보았습니다. 사정거리가 그다지 길진 않지만 왕궁 내에선 충분한 정돕니다. 선조들께서 전음이라 불렀던 것과 흡사한 건데 조금 손을 봐서 개조한 방식입니다.”
어지간한 흑야가 얼굴 표정이 바뀔 정도로 감탄했다. 혁련천후도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 다 나섰다고 하던가?”
“그렇습니다. 데얀을 포함한 스물한 명 전부가 정문을 나섰다고 합니다.”
“놈들이 한판 뜨려고 오는 것은 아닐까요?”
“죽으려면 무슨 짓을 못해…….”
기다란 탁자의 끝 부분에 움츠리고 앉았던 진천과 사공진무가 끼어들었다. 목욕을 하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은 그들은 연방 팔과 어깨를 주무르기 바빴다. 전차를 이백 대도 아닌 오백 대를 다섯 시간에 나른 덕분에 근육이 뭉친 것이다.
“그렇다면 아예 고개를 들지도 못하게 작살을 내 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