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무사-348화 (346/425)

# 348

<귀환무사 348화>

귀환무사 2부

123화

“너희 둘도 함께 가라!”

“쿨럭!”

혁련천후가 전음도 엿들을 수 있음을 둘은 깜빡 잊은 것이다.

모두가 모처럼 옅은 미소를 머금었다. 넷이 나가자 문을 지키고 섰던 룻거 후작이 조심스럽게 나섰다.

“방법이 있습니다!”

모두가 그를 돌아봤다. 부담스러운 존재들의 눈빛이 모조리 자신에게 몰리자 룻거 후작은 더욱 조심스럽게 말했다.

“텔레포트로 이동시키면 가능합니다. 물론 몇 번을 걸쳐야 하는 번거로움은 있지만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사료됩니다!”

“옳거니! 바로 그거군! 상왕 전하! 그 방법이면 짧은 시간 안에 충분히 두 영지의 영지민들을 데려올 수 있습니다.”

홀베른 국왕이 무릎을 치며 소리를 높였다.

그는 혁련천후를 상왕이라 칭했다. 조만간 대외적으로 대륙의 전면에 나설 혁련천후의 입장을 생각해 그렇게 부르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면 되겠군. 단, 그들의 의사에 따른다. 그곳에 남겠다는 사람들은 그냥 내버려 두도록!”

“일단은 먼저 소를 찾아야겠습니다. 저희들이 다녀오겠습니다.”

조윤이 그렇게 말하자 혁련천후는 고개를 저었다.

“나도 함께 간다. 그리고 국왕은 마법사들을 준비시키도록! 그들도 데려 갈 것이다.”

“분부 받들겠습니다!”

혁련천후는 에이미 공주에게 시선을 던졌다. 시선이 부딪치자 그녀는 놀란 사슴처럼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그동안 홀베른에서만 생활한다고 갑갑했을 것이다. 이젠, 네 숙부들이 이곳을 보호할 것이니 너도 함께 데려가겠다.”

에이미 공주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렸다.

사실 그녀는 태어나서 홀베른을 벗어나 본 적이 없었다. 제단을 지켜야 하는 임무가 그녀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강자들도 넘쳐 났지만 워낙 중요한 임무였기에 그녀가 맡아야만 했다. 물론 그녀는 세상이 놀랄 만한 능력을 소유하고 있다.

홀베른 국왕이 딸을 쳐다보며 미소를 머금었다.

“저 아이가 영지민들을 수송하는 일을 맡게 될 것입니다.”

“마법사?”

조윤이 놀랐다는 듯 짧게 물었다.

“결코 실망시키지 않음을 말씀드립니다, 허허!”

모두가 감탄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홀베른 국왕이 그녀에게 따뜻하게 말을 건넸다.

“누가 되지 않게끔 조신하게 행동하여라.”

“그럴게요.”

연소민이 활짝 웃으며 말을 건넸다.

“나도 있으니 심심하지는 않을 거야.”

“고마워요, 언니.”

연소민이 한 살 위였다. 이미 만나자마자 친해져 버린 둘은 서로를 보며 환하게 미소 지었다. 흑야가 혁련천후를 응시했다.

“이곳에 몇은 남아야지 않겠습니까?”

“저들은 강하다. 특히 국왕과 저 친구는 이 세상에서 초인이라 불리는 자들보다 약하지 않아.”

“그래도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요란에서 이곳을 노리고 꾸준히 준비를 해 왔다면 언제, 어떤 놈들이 들이닥칠지 모르지 않습니까?”

틀린 말이 아니었다.

“마차를 나르는 놈들에게 이곳을 지키라고 해.”

듣고만 있던 홀베른 국왕이 조심스럽게 끼어들었다.

“데얀과 케니언 크로우 기사단과의 일을 먼저 해결하심이…….”

“……!”

“우리의 피가 흐르는 친구들입니다. 상왕께서 따뜻하게 보듬어 주시면 크나큰 힘이 될 것입니다.”

팔짱을 끼고서 홀베른 국왕을 지켜보던 흑야가 피식 웃었다.

“놈들이 화산의 후예라며?”

“그렇습니다.”

“주공은 화산의 주인이시다. 보살펴 주고 말고가 어디 있어.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거지.”

혁련천후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지금 그 친구들을 만나 보겠다.”

“모시겠습니다.”

룻거 후작이 재빨리 문을 열고 앞장섰다. 흑야와 조윤, 그리고 담대소천 등이 뒤를 따랐다.

* * *

거처에서 자신의 대도를 다듬고 있는 데얀의 표정은 꽤 일그러져 있었다.

“웃기는 놈들이야. 뜬금없이 나타나서는 뭐? 선조님들의 주인이었다고? 개소리!”

무술 대회에 출전했던 한 사내가 뜬금없이 자신이 모시는 선조의 주인이란다. 웃기는 건, 홀베른 국왕이 그걸 인정하고 스스로 머리를 숙였다는 것에 있었다.

대도를 벽에 건 데얀은 자리에서 일어나 커다란 거울 앞으로 다가갔다.

팍!

순간, 그가 변했다.

놀랍게도 시커먼 흑발에 흑안을 지닌 중원인의 모습이었다.

“다시는 이 모습으로 변하기 싫었는데…….”

그는 지금의 이 모습이 싫었다.

드래곤 아이아스의 심장을 보호하는 숙명 때문에 대대로 이곳을 벗어나지 못했던 선조들의 삶을 그는 이해하지 못했다. 자그마치 칠백 년을 그렇게 살아온 자신들의 선조들이었다. 자신도 태어나서 단 한순간도 이곳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껏 금발에 벽안의 모습으로만 살아온 그였다.

“멍청한! 그냥 요란으로 쳐들어가 고룡의 심장을 빼앗으면 간단한 것을…… 나약해 빠진 작자 같으니!”

그는 홀베른 국왕의 유약함이 싫었다.

자신이 이곳을 지키는 자리에 올랐을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해 왔던 말이 그것이었다.

“언제까지 이곳에 묶여서 살 것인가? 우린 힘이 있다. 그냥 요란으로 쳐들어가서 고룡의 심장을 빼앗아 지긋지긋한 숙명에서 벗어나자.”

하지만 국왕은 그때마다 고개를 저었다.

“적도 만만찮은 준비를 해 왔다. 모험을 하기엔 선조들의 유지가 너무나도 큰 것이 아닌가? 혹, 우리들의 실수로 잠을 자고 계신 여왕께서 다시는 깨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면 죽어서 선조들을 어찌 볼 텐가.”

항상 그가 해 왔던 대답이다.

그것 때문에 자신과 국왕은 완전히 틀어졌다. 스스로 문을 걸어 잠그고 국왕조차도 함부로 이곳에 들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가 선조들께서 유지로 남기셨던 전설의 주인인지는 내 스스로 확인해 보기 전엔 절대 인정하지 못한다. 고작 남작 정도가 전설의 주인이라고? 개소리!”

팍!

데얀의 모습은 다시 금발에 벽안의 청년으로 돌아왔다.

“단장님!”

밖에서 누군가가 그를 불렀다.

“들어와.”

문이 열리며 날카로운 인상을 지닌 흑발 청년이 들어섰다. 그런데 그의 복장이 특이했다. 이 세상의 복장과는 전혀 다른 옷을 걸치고 있었는데, 놀랍게도 화산의 무사들이 입는 무복이었다. 소매에 새겨진 매화가지가 유난히 반짝 빛을 발하고 있었다.

“또 그 옷이냐?”

“언제나 이 옷인데요.”

데얀의 심드렁한 물음에 청년은 옅은 미소로 화답했다. 신경질적으로 과일을 입으로 가져간 데얀이 못마땅한 빛으로 청년을 쳐다봤다.

“국왕이 뵙자고 하십니다.”

“그 인간이 왜?”

“그분도 오셨습니다.”

“그분이라니?”

“전설의 주인이라는 그분 말입니다.”

데얀의 눈동자가 번쩍 빛을 발했다.

“좋아! 잘됐군. 그렇잖아도 한번 볼까 했다. 가자!”

데얀이 벽에 걸린 대도를 집어 들고 성큼 걸음을 옮겼다. 청년의 그의 거친 반응에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거칠게 문을 열고 나가는 데얀의 뒷모습을 잠시 쳐다본 청년은 우측 벽면을 보며 가볍게 머리를 숙였다.

그곳에 청년과 같은 복장을 한 인물들이 그려진 벽화가 있었다. 모두 다섯이었는데 그림만으로 날카로운 예기가 느껴질 정도로 그림 속의 인물들은 대단한 기세를 뿜어내고 있었다.

“선조들께서 예견하셨던 분이 오셨답니다. 그분이 진정, 전설 속의 주인이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야만 저희들이 이곳을 벗어날 수 있을 테니까요.”

청년은 그림 속의 인물들과 대화를 하듯 읊조렸다.

그런 청년의 두 눈동자엔 열망이 어려 있었다. 그것은 숙명에서 벗어나고픈 간절함이었다.

* * *

사방 벽면이 온통 무기들로 가득한 넓은 대전은 케니언크로우 기사단의 기사들이 머무는 곳이었다. 그곳의 수장인 데얀의 취미가 무기를 수집하는 것이기에 대륙에 유행하는 모든 무기들이 사방을 꽉 채우고 있었다.

혁련천후는 무기들을 구경하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만으로 데얀과 기사들의 성정을 대충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는 자신과 함께했던 화산의 다섯 제자들을 떠올렸다. 화산오웅이라 불리며 천하를 종횡했던 그들의 성정이 이곳 대전과 각종 무기들에게서 묻어났다.

“비록 지금은 틀어졌지만 홀베른에 대한 애정은 누구보다 남다른 친구들입니다. 성정이 거칠어 상황께 무례를 끼칠 수도 있으나, 속내는 그렇지 않으니 부디 노여워하지 마십시오.”

국왕은 데얀과 혁련천후가 부딪힐 것을 꽤 염려했다.

유일하게 혼자 혁련천후를 수행하고 나선 흑야가 대전의 중앙에 걸린 검을 발견하고는 중얼거렸다.

“진청의 검입니다, 주공!”

혁련천후의 시선이 그곳으로 향했다. 틀림없었다. 누구보다 거친 싸움을 즐겼던 다섯의 하나인 진청의 검이 분명했다. 순간, 그의 얼굴에 그리움이 언뜻 스치고 지나갔다.

그는 한동안 그 검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드르륵!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데얀이 들어섰다. 그는 국왕에게 고개만 까닥거리고는 자신의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혁력천후에겐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흑야의 눈매가 매섭게 돌아갔다.

“일어나서 예를 갖춰라, 애송이!”

“뭐! 애송이?”

데얀의 입가가 올라갔다. 앉았던 그가 다시 일어서며 이글거리는 눈동자로 흑야를 노려봤다. 홀베른 국왕이 한숨을 내쉬었다. 데얀이 예상했던 대로 반응하자 그는 은근히 노여움을 드러냈다.

“말과 행동을 조심하여라! 데얀!”

“후후! 먼저 도발한 건 저 작자라고, 국왕 나리!”

데얀의 안하무인격인 태도에 흑야는 혁련천후를 슬쩍 돌아봤다. 묵묵히 데얀을 응시하던 혁련천후가 입을 열었다.

“데얀이라고 했나?”

“이봐! 입 좀, 조심해야겠어. 전설이고 나발이고 수틀리면 모조리 부숴 버릴 테니까!”

순간, 흑야의 육신이 흐릿하게 변하며 사라졌다.

꽝!

불꽃이 튀었다.

“이런 개자식이!”

어느새 대도를 뽑아 흑야를 막아 낸 데얀이 거친 욕설을 토해 냈다. 놀라울 정도로 빠른 반응 속도였다.

“넌, 좀 맞아야겠다. 네놈의 선조들은 그러지 않았는데, 싹수가 글러먹은 새끼군.”

흑야는 꽤 화가 나 있었다.

자신보다 혁련천후에게조차 함부로 행동하는 데얀의 오만한 태도 때문이다. 홀베른 국왕은 손으로 머리를 집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물러나라, 흑야!”

혁련천후의 눈빛이 무척 차갑게 가라앉아 있음을 본 흑야는 데얀을 싸늘하게 노려보고는 뒤로 물러났다.

“무례함에 대한, 용서는 이번뿐이다. 묻는다. 네가 데얀인가?”

“닥쳐!”

“삐뚤어질 대로 삐뚤어진 놈이군.”

혁련천후의 눈동자가 매섭게 변했다. 그는 데얀에게로 걸었다. 데얀이 대도의 방향을 틀어 그에게로 겨누며 소리쳤다.

“웃기지 마! 칠백 년을 이곳에서 꼼짝하지 못하고 살아온 우리야. 그런데, 뭐? 네가 전설의 주인이라고? 그걸 나보고 지금 믿으라는 거냐? 개소리 작작 집어치우시지!”

“데얀!”

홀베른 국왕이 버럭 고함을 질렀다.

손을 들어 그를 제지한 혁련천후는 데얀의 지척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화산은 검을 사용하는 곳, 왜 주 병을 도로 바꾼 것이냐? 화산의 긍지를 버릴 셈인가?”

“후후! 그런 뭣 같은 소린 집어치워! 난, 화산과는 상관없는 몸이야! 선조들의 유지 따윈 지나가는 개에게나 주라고! 차라리 잘됐어. 전설의 주인이라는 너를 쓰러뜨리고 세상으로 나가겠다!”

혁련천후의 눈동자에 섬광이 돌았다.

“네 선조들은 내겐 혈육과도 같았던 아이들이다. 그들을 부정하면 넌 나의 적이라고 봐야겠군. 그렇다면 넌, 죽어야 해.”

“재주가 있으면 그렇게 해 보시지!”

“그럴 생각이다!”

말이 끝남과 동시에 혁련천후의 육신이 벼락같이 데얀을 덮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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