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7
<귀환무사 347화>
귀환무사 2부
122화
어찌나 세게 문을 닫았는지 문고리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리엘이 혀를 내둘렀다.
“성질 한번 끝내준다.”
아리엘이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혁련천후를 올려다보았다. 그의 반응이 궁금해서였다. 반응은 대번에 나타났다.
쾅!
나무에 철을 덧댄 육중한 정문이 산산조각으로 박살 났다. 이렇게 나올 줄 알았다는 듯, 아리엘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이런 개자식이!”
거친 욕설과 함께 장한이 성난 맹수처럼 울부짖으며 뛰어왔다. 팔을 걷어붙이며 오는 모양새가 한바탕 주먹질을 할 태세였다. 물소처럼 돌진해 들어오던 장한이 얼음처럼 굳어졌다. 혁련천후의 눈을 본 것이다.
“장인을 불러라.”
“그, 그…….”
그때였다.
“뉘시오?”
탁한 음성과 함께 우측 모퉁이에서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짧은 백발에 가죽조끼를 걸치고 손에는 커다란 망치를 든 노인이었다. 시커멓게 그을린 얼굴이 눈처럼 흰 백발과 어울려 묘한 느낌을 풍겼다.
“그대가 이곳의 주인인가?”
“그렇소만, 무슨 일이기에 이런 난동을 부리는 것이오?”
“드래곤의 뼈를 가공할 줄 안다고 들었다. 맞나?”
“내 물음에 먼저 대답하시오. 난동을 부리는 이유가 무엇이며 당신은 누구요?”
“그분께 예를 갖추세요, 테리스!”
아름다운 음성이 울리며 마당에 누군가가 모습을 나타냈다. 여인이었다. 노인, 테리스는 그녀를 보자 허리를 굽히며 고개를 숙였다.
“공주마마…….”
나타난 여인은 에이미 공주였다.
그녀가 순간 이동으로 모습을 드러내자 아리엘의 눈동자가 살짝 빛을 발했다.
“여전하시군요, 테리스.”
“마마께서도 여전히 아름다우십니다. 한데 기별도 없이 어인 일로…….”
에이미 공주가 혁련천후를 돌아봤다. 자신이 말을 하겠다는 뜻을 눈빛으로 물었다. 그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자 에이미 공주는 다시 테리스에게 시선을 던졌다.
“이곳에 세워 둘 참인가요?”
“오! 이런! 어서 이리 오시지요, 마마!”
모두는 테리스를 따라서 건물의 안쪽으로 들어갔다. 혼자 남은 장한은 산산조각이 나 버린 정문의 파편들을 바라보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응! 마법이 아니었네? 그럼, 주먹 한 방에 이게 이렇게 되었단 말이야?”
그는 건물 안쪽으로 들어가는 혁련천후를 돌아봤다.
조금 전, 그의 눈빛을 떠올리자 저절로 몸이 떨렸다.
“소름 끼치도록 무서운 눈빛이었어, 으흐!”
몸서리를 친 그는 빗자루를 들고 와서는 마당을 치우기 시작했다.
* * *
테리스는 고즈넉한 공간으로 모두를 안내했다.
바깥에서 볼 때와는 달리 공방 안쪽은 매우 넓었다. 각종 설치물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그들이 들어선 방에서 바깥이 적나라하게 보였다. 웃통을 벗은 채, 열심히 뭔가를 만들고 있는 장인들을 바라보며 테리스는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여전히 수고가 많으시군요.”
“허허! 모든 게 홀베른을 위한 충성에서 나오는 것이지요. 아! 그리고 부탁하신 건 며칠 후면 완성이 될 것 같습니다. 마마!”
“고마워요. 테리스! 그리고 하나 더 부탁드릴 게 있어요.”
테리스가 눈빛으로 그게 뭐냐를 물었다. 옅은 미소를 머금은 에이미 공주는 혁련천후를 돌아봤다.
“그전에 이분께 예를 올리세요. 상왕 전하세요.”
“예? 그게 무슨…….”
테리스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말끝을 흐렸다.
상왕이라면 현 국왕의 선대왕이란 소린데, 선대왕은 이미 오래전에 돌아가신 것으로 홀베른의 모든 국민들은 알고 있었다.
“자세한 건 나중에 궁으로 들어가서 말해 줄게요. 단, 이분께서 홀베른의 진정한 주인이시니 어서 예를 올리세요.”
테리스는 여전히 주저했다.
“인사 따윈 필요 없어! 그냥 본론으로 들어가지.”
“알겠습니다.”
에이미 공주가 이동식 인벤을 열어 그 안에서 뭔가를 꺼냈다. 투명하게 빛나는 그것을 본 테리스의 두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이, 이것은……!”
호기심 어린 빛으로 상황을 주시하던 아리엘도 크게 놀랐다. 놀랍게도 그녀가 내놓은 것은 드래곤의 뼈였다.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물질보다 강하다고 알려진 그것은 장인들에겐 꿈의 재료이자 소재다.
그것을 내려다보는 테리스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렸다.
“이것으로 무기를 만들어 주세요. 형태는 그림으로 그려 왔으니 보시고 그대로 만들면 돼요.”
그녀가 내놓은 드래곤의 뼈는 상당한 양이었다.
일 미르 정도면 어지간한 대저택보다 더한 값을 받을 수 있다는 그것이 거의 오십 미르 가까운 분량이 쏟아졌다. 탁자 위에 왕궁을 세우고도 남을 돈이 쌓인 것과 같았다.
“마마! 이렇게 많은 무기를 어디다 쓰시려고…….”
“언제까지 가능한지, 그것만 말해!”
혁련천후의 차가움에 에이미 공주는 눈빛으로 테리스에게 주의를 주었다. 잠시 혁련천후를 바라보던 테리스가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당신이 이곳의 주인이라는 마마의 말씀은 귀담아듣지 않겠소. 그저 내겐 국왕 전하만이 주인일 뿐이오. 단, 내게 명령조로 말하지 마시오. 난,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는 사람이니 다시 한 번 그런 식으로 말하면 아무것도 하지 않겠소. 아시겠소?”
테리스의 그 같은 말에 크게 놀란 에이미 공주가 입을 열려고 할 때, 테리스의 짧고 굵은 육신은 이미 허공에 둥실 떠올라 있었다.
“으윽!”
테리스의 얼굴이 고통으로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보이지 않는 힘이 그의 육신을 사슬처럼 조이고 있었다.
“하라면 하는 거다. 하지 않으면 너희 일족은 세상에서 사라진다. 알겠나? 난장이!”
예상치 못했던 상황에 에이미 공주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갔다.
테리스는 함부로 해선 곤란한 인물이다. 그가 지닌 장인 기술은 홀베른의 전력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친다. 혹, 마음이 틀어져 홀베른을 떠나기라도 한다면 엄청난 손실일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혁련천후는 당장에 죽이겠다는 듯 테리스에게 엄포를 놓았다.
“거절하면 죽는다. 기한을 넘겨도 죽는다. 알았나?”
“으으…….”
테리스는 숨을 쉴 수 없었다.
엄청난 압박감에 몸이 금방이라도 터져 버릴 것 같았다. 언제나 밝은 표정의 아리엘이 조금은 굳은 표정이다. 혁련천후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동자가 가늘게 흔들렸다.
‘이 사람, 변했어. 갑자기 이렇게 분노한 이유가 뭘까?’
며칠 전과는 확연히 달랐다.
그때도 차갑기는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아리엘은 테리스를 쳐다봤다.
‘위험해…….’
조금만 더 지나면 테리스는 죽는다. 그러나 아리엘은 선뜻 나서지 못했다.
콰당!
공중에 떴던 테리스가 사정없이 탁자 위로 내동댕이쳐졌다. 거친 숨을 몰아쉬는 그를 보며 혁련천후는 차갑게 말했다.
“돌아왔을 때, 완성이 되어 있기를 바란다.”
그가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갔다.
에이미 공주는 혁련천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여전히 숨을 헐떡이는 테리스의 어깨에 손을 얹고는 마나를 불어넣었다. 그러자 테리스의 붉어진 얼굴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휴…….”
아리엘도 큰 숨을 내쉬었다.
겁을 모르는 그녀도 조금 전의 광포함엔 숨이 막혔던 것이다. 테리스의 눈동자는 사정없이 흔들렸다. 그것을 본 에이미 공주는 내심 놀랐다.
‘두려움을 느끼고 있어.’
테리스는 두려움을 모르는 종족의 출신이다.
세상의 그 어떤 존재에게서도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그가 아니었던가. 그런데 지금은 유령을 본 아이처럼 몸을 떨고 있었다. 그녀는 테리스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그를 위로했다.
“테리스! 그분을 이해하셔야 해요. 아리엘 님! 자리를 좀……!”
“훗! 내가 들으면 안 되는 건가? 쳇! 알았어! 나간다고!”
아리엘이 입을 삐죽거리고는 거처를 나갔다. 그제야 테리스가 에이미 공주를 쳐다봤다. 여전히 두 눈엔 막연한 공포감이 가득했다. 아리엘 공주는 옅은 미소를 머금고는 혁련천후에 대한 모든 것을 말하기 시작했다.
테리스는 듣는 내내 놀람과 탄성을 반복했다.
그리고 모든 얘기가 끝난 뒤, 자신이 두려움을 가질 수밖에 없었음을 깨달았다. 그는 너무나도 엄청난, 아니, 위대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 * *
궁전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넓은 대전에 모두가 모였다.
가장 상석에 혁련천후가 앉았고 좌우로 담대소천 등이, 그리고 가장 말석에 홀베른 왕과 에이미 공주가 앉아 있었다.
다른 이들이 보았다면 놀랄 일이었다.
일국의 왕이 가장 말석에, 그것도 무척이나 공손한 태도를 보이며 조심스럽게 앉아 있었다. 게다가 왕실의 기사단장인 룻거 후작은 아예, 대전의 문을 지키고 서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얼굴엔 조금의 불쾌함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경건함마저 느껴졌다.
분위기는 다소 무거웠다.
지금 이들은 다크 영지와 아르소의 영지에 관한 대화를 나누고 있는 중이었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활동할 근거지가 홀베른으로 정해졌다. 물론 중원으로 돌아갈 때까지에 국한된 것이다.
다만, 곧 있으면 벌어질 가능성이 높은 제국 전쟁의 참화 속에서 다크와 아르소의 영지민들이 받을 고통이 마음에 걸렸던 터라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었다.
다소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담대소천의 목소리가 좌중을 울리고 있었다.
“……그래서 다크 영지와 아르소는 별도로 보호를 해 줘야 하는 것이 옳습니다.”
그는 장시간에 걸쳐 다크 영지와 아르소에 대한 의견을 끝냈다.
연소민이 혁련천후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누구보다 아르소의 영지민들을 구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그녀였다.
“어떤 식으로 보호하잔 말이냐?”
혁련천후의 물음에 담대소천이 대답했다.
“그들을 이곳으로 이주시키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몇 번의 전투로 인해 영지민들이 꽤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터전을 마련해 주고 이주시킨다면 반대할 사람은 없을 거라 확신합니다.”
혁련천후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홀베른 국왕이 조심스럽게 나섰다.
“그것엔 다소 문제의 소지가 있습니다. 홀베른이 비록 케이론의 제후국이라곤 하지만 엄연히 자치권을 행하는 독립국가입니다. 엄연하게 본다면 타 국가로의 이주는 정치적 망명으로 볼 수 있습니다. 몇이라면 모를까, 수천에 이르는 영지민들이 한꺼번에 이주를 한다면 케이론 측에서 가만히 있을 리 없습니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담대소천도 미처 그 생각은 못했던지 고개를 끄덕이며 가볍게 숨을 토해 냈다. 이런 대화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북궁천소와 왕전은 꾸벅꾸벅 졸았다. 마침 그것을 본 혁련천후가 둘을 불러 깨웠다.
“예! 주공!”
둘을 지그시 노려본 혁련천후가 조윤에게 물었다.
“이곳에 집단전에 쓰일 전차가 있다고 들었다.”
“궁의 외곽 연병장이 격납고로 쓰이고 있습니다.”
혁련천후는 북궁천소와 왕전을 다시 응시했다.
“가서 가져와.”
“예? 뭘 말입니까?”
“전차 이백 대!”
“뭣에다 쓰시려고…….”
“그냥 가져와.”
“아! 알겠습니다. 기사 놈들을 데리고 다녀오겠습니다.”
“아니, 너희 둘만 가서 가져와.”
둘이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고는 풀이 죽은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고 나섰다.
[좀 무거울 겁니다.]
[전차 하나의 무게가 소 열 마리 정도 된다고 들었습니다. 형님들!]
[부럽습니다. 모처럼 몸에 좋은 운동도 하고 말이죠.]
진천과 사공진무가 전음으로 둘을 부러워(?)했다. 왕전과 북궁천소의 살벌한 눈빛에 고개를 움츠린 둘은 자신들이 미처 깜박한 것이 있음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