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6
<귀환무사 346화>
귀환무사 2부
121화
“요란이라고 합니다.”
요란이 허리를 굽혔으나 진천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시선을 돌렸다.
“서두르세요. 마법진이 곧 닫힙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나, 주공께서 기다리신다니 서두르자.”
모두가 진천이 가리킨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가만히 보고만 있을 레이놀드 백작이 아니었다.
“이놈들! 감히 각하의 명을 어길 셈이냐? 군법에 회부되고 싶은 게냐?”
진천이 그를 돌아보며 차갑게 물었다.
“넌, 누구지?”
“뭐, 너, 너라고 했냐?”
“죽기 싫으면 꺼져!”
“이런 미친 새끼를 봤…… 으헉!”
레이놀드 백작이 숨넘어가는 소리를 토해 냈다. 십 미르밖에 섰던 진천이 어느새 레이놀드 백작의 코앞에 나타나 있었다. 섬뜩한 기운이 매섭게 요동치는 진천의 눈동자가 레이놀드 백작을 똑바로 쳐다봤다.
“내가 미치면 넌 죽어.”
“흡……!”
스슥!
진천의 육신이 유령처럼 사라지더니 마법진이 있는 곳에 나타났다.
“후후! 인연이 되면 또 봅시다!”
왕전이 레이나 공주에게 손을 흔들었다. 연소민은 여전히 애처로운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헤어짐이 섭섭하기는 그녀도 레이나 공주에 못지않았다. 진천의 가공할 신법에 놀란 테세우드 공작과 레이놀드 백작이 잠시 멍한 상태를 보일 때 모두는 그 자리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휘이잉…….
찬바람이 불어 먼지가 잔뜩 일었다. 테세우드 공작의 얼굴은 무척이나 굳어 있었다.
‘분명 텔레포트였다. 그것도 정해진 좌표에 설치된 마법진이 아닌 이동…… 설마 혼자의 힘으로 텔레포트를 시전할 정도의 마법사였단 말인가?’
텔레포트진을 이용하지 않고 자유자재로 펼치는 것은 대마법사들의 전유물이다. 이곳에 텔레포트를 시전할 포탈이 있었다는 것은 금시초문이었다. 아니 없었다.
그런데 조금 전, 무척 어려 보이는 금발 청년이 그것을 펼쳤다.
테세우드 공작의 고개가 벼락같이 레이나 공주에게로 돌아갔다.
“대화를 좀 나누어야겠소!”
* * *
홀베른 공국의 궁전이 내려다보이는 산 정상에 혁련천후는 앉아 있었다.
공허한 그의 시선은 초점을 잃은 채, 그저 허공에 던져져 있었다. 천지간을 가득 덮은 눈발은 그의 어깨에 하염없이 쌓여만 갔다.
휘이잉…….
매서운 칼바람이 사위를 몰아쳤지만 그는 움직일 줄을 몰랐다. 주변이 그가 비운 술병으로 가득했다.
스스슥!
그의 뒤쪽에 누군가가 나타났다. 백색 일색인 세상과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눈부신 미녀였다. 여인은 그의 뒤에서 공손하게 두 손을 모으고 말했다.
“그분들께서 오셨습니다.”
에이미 공주였다.
혁련천후는 돌아보지도, 대답하지도 않았다. 에이미 공주 역시 뒤에 서서 한참을 움직이지 않고 그의 뒷모습만을 응시했다. 그런 그녀의 눈빛은 안타까움이 역력했다.
그러기를 얼마나 지났을까? 혁련천후가 입을 열었다.
“요란 제국에 있는 드래곤의 심장을 얻으면 그녀들을 깨어나게 할 수 있다는 게 사실이냐?”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그걸 알면서도 왜 시도하지 않았던 거지? 너희들에겐 그녀들이 소중하지 않았던 것이냐?”
에이미 공주는 그 물음에 흠칫했다. 그러곤 황급히 대답했다.
“아닙니다. 우리가 그것을 노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들도 아이아스의 심장을 노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궁을, 아니, 제단을 비우지 못했습니다.”
에이미 공주의 음성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눈앞의 존재, 그 광포함을 직접 두 눈으로 목격한 그녀는 최대한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이곳엔 꽤 강한 자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들 중, 소수만 보내면 충분하리라 보는데…….”
“그곳에도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들이 있습니다. 그들도 저희들 못지않게 강합니다. 그래서 서로를 견제하는데 수백 년이 흘렀습니다. 서로 원하는 것을 지녔으면서도 움직이지 못했던 이유입니다.”
“놈들이 아이아스의 심장을 원하는 이유는……?”
“켈베로스라는 존재가 그곳에 있습니다. 그는 수백 년을 살아오는 불사의 존재라고 전해진 자입니다. 입수한 정보로는 그가 마계전쟁에서 패한 뒤, 인간 세상으로 강제로 쫓겨난 마계의 황족이라고 했습니다. 자신을 쫓아낸 마계에 복수하고자 힘을 키우고 있다고 했는데, 아이아스의 심장과 고룡, 트로이안의 심장을 이용해 강력한 힘을 얻으려는 속셈입니다.”
혁련천후는 켈베로스라는 이름을 듣자 가슴 한구석에서 묘한 감정이 생겨났다. 에이미 공주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놈이 정체불명의 강자들을 이계에서 소환시켜 수련을 시키고 있습니다. 그 수가 얼마인지는 모르나 엄청난 강자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현재 대외적으로 활동을 하고 있는 크로우 기사단이라는 자들이 그들 중 하나인데, 그들의 수장은 대륙의 초인보다 강한 것으로 파악되었습니다.”
“그 정도로는 네 아버지와 기사단장에겐 상대가 되지 않는다. 고작 그런 이유만으로 지금껏 미룬 것이란 말이냐?”
그의 주변에 한풍이 몰아쳤다. 결코 자연적인 바람이 아니었다. 에이미 공주의 얼굴에 살짝 땀방울이 맺혔다.
“그들의 모든 전력을 확실하게 알 수 없었습니다. 죄송합니다.”
혁련천후는 잠시 말을 끊었다.
에이미 공주는 잔뜩 긴장한 채 오직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녀의 고운 미간에 맺힌 땀방울이 이내 얼음으로 변해 갔다. 날씨는 그만큼 매섭게 차가웠다. 잠시 하늘에 시선을 던졌던 혁련천후가 입을 열었다.
“내게 모든 것을 말해라.”
“……!”
“그녀들과 관련된 모든 것을 말이다. 요란 제국이 왜 너희들의 선조들과 싸웠는지, 너희들이 파악한 그곳의 모든 것을 빠짐없이 네게 말하란 말이다.”
에이미 공주의 커다란 눈동자가 파르르 떨림을 보인다.
그녀는 불길한 마음이 일었다.
‘복수……!’
그랬다.
눈앞의 존재가 복수를 꿈꾸고 있다고 그녀는 확신했다. 입술을 지그시 깨문 그녀는 호흡을 고르고는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말해야만 했다.
제7장 홀베른의 비밀
홀베른의 인구는 이십만이다.
왕국으로 보기엔 작고, 공국으로 보기엔 큰 규모라고 할 수 있었다. 영토 또한 제국의 수도와 비슷한 크기였기에 스스로는 왕국이라 칭했지만 외부에선 그들을 공국으로 규정짓고 있었다.
지리적으로 케이론의 영토에 가까운 탓에 대륙은 홀베른을 케이론의 위성 국가로 보고 있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대륙인들의 생각일 뿐이었다. 이곳 사람들은 독립된 국가의 백성으로 큰 자부심을 지니고 살아가고 있었다.
칠백 년 전 몬스터와의 대전 이후 홀베른 평원에 세워진 거대한 궁전은 홀베른의 산 역사와도 같은 곳이다. 홀베른의 모든 사람들은 그곳을 경배와 숭상의 성지로 삼고는 광장을 찾아와 축복을 빌고 염원했다.
그들이 축복을 소원하는 대상은 신이 아니다. 홀베른을 세운 선조들이 그 대상이다. 몬스터들의 마수에서 인간을 구해 준 은혜를 잊지 않은 홀베른의 백성들은 오늘도 제단을 찾아 그들의 동상 앞에 머리를 숙였다.
제단이 내려다보이는 궁전의 지붕에 천사처럼 아름다운 여인이 기둥에 등을 기댄 채, 과일을 먹고 있었다.
“흠! 역시 이곳의 과일은 최고야. 너무 맛있어!”
아리엘이었다.
중성적인 모습에서 완연한 여인의 모습을 한 그녀는 여전히 갑주 차림으로 과일을 바구니째로 껴안고 있었다. 검술 대회가 중도에 끝나 버렸음에도 그녀는 홀베른을 떠나지 않았다. 이유는 그녀만이 알 뿐이었다.
그리고 홀베른 측에서도 그녀에게 별다른 제재를 가하지 않고 있었다.
“흠! 날씨 한번 좋다!”
눈이 그친 하늘은 눈이 시리도록 푸르렀다.
평원을 덮은 눈에 반사된 햇빛은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간혹 평원에 모습을 드러내는 순록들은 이곳이 동화 속의 세상이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불러일으켰다.
제철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특수한 방법으로 재배된 사과를 한입 물은 아리엘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광장을 오가는 사람들 구경하며 한시도 입을 가만두지 못했다.
“어머! 엉덩이가 엄청 크네? 가슴은 완전히 호박만 하잖아?”
지나가는 여인들의 몸매를 보며 자신의 가슴을 만졌다, 엉덩이도 만졌다 하면서 혼자 수다를 떨기에 분주했다.
살짝 찡그린 얼굴이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남자들이 봤다면 심장이 터질 정도로 그녀의 아름다움은 환상적이었다. 말투만 빼고…….
“이 정도면 환상적인 몸맨데, 쩝! 왜 남자 친구가 생기지 않을까? 내가 못생겼나?”
아리엘은 반짝이는 투구를 들어 얼굴에 비추었다. 스스로 봐도 아름답기 그지없는 얼굴이 투구에 비쳤다.
머리를 뒤로 넘기던 그녀가 살짝 주변을 살폈다.
“귀가 드러나면 곤란해. 내 정체가 탄로 날 수 있으니까…….”
그녀의 귀가 조금 이상했다.
보통의 사람들보다 다소 길고 뾰족한 형태였다. 재빨리 머리카락으로 귀를 가린 그녀는 다시 등을 기대고 과일을 입으로 가져갔다. 다시 사람 구경에 돌입한 그녀가 갑자기 눈빛을 반짝 빛내더니 벌떡 일어섰다.
“어머! 멋쟁이 아저씨가 나왔네.”
스슥!
* * *
“안녕!”
혁련천후는 뒤쪽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아이처럼 천진난만한 웃음을 머금고 손을 흔들어 대며 다가오는 아리엘이 보이자 슬쩍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그러고는 이내 몸을 돌려 걸음을 놓았다.
그의 옆에 찰싹 달라붙은 아리엘이 턱을 살짝 내밀며 물었다.
“며칠 동안 보이지 않던데,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요?”
혁련천후는 대답 없이 걸음을 빨리했다. 아리엘은 잽싸게 따라붙으며 입을 놀렸다.
“지금 어딜 가나요?”
“……!”
“인연도 보통 인연이 아닌데, 서로 말은 하면서 지내죠.”
“난, 남자 같은 여자는 싫다.”
“남자 같은 여자? 내가?”
아리엘이 눈을 동그랗게 하고서 걸음을 멈추었다. 그녀는 자신을 내려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눈을 가늘게 하고서 혁련천후를 쳐다봤다. 그는 벌써 저만큼 걸어가고 있었다.
‘내가 남자 같다고? 가슴이 작아서 그런가? 이 정도면 풍만한데…….’
잠시 자신의 몸매를 살핀 그녀는 다시 혁련천후의 옆으로 바짝 따라붙었다.
“어디 가세요?”
짧은 순간에 그녀의 말투는 무척 여성스럽게 변했다.
혁련천후는 그저 말없이 걸음을 옮겼다. 그동안 많은 것을 물었지만 한마디도 대답하지 않은 그를 아리엘은 한순간도 떨어지지 않고 연방 쫑알댔다. 잠시 후, 그가 걸음을 멈추었다. 아리엘이 눈을 동그랗게 하고는 중얼거렸다.
“여긴 공방인데?”
그랬다.
그가 멈추어 선 곳은 홀베른 최고의 장인이 운영한다는 금속 공방이었다. 드래곤의 뼈도 가공할 줄 안다고 소문난 그는 국왕이라도 선약이 되어 있지 않으면 절대 받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다. 혹자는 그가 신의 재주를 지녔다는 드워프의 후예라고 말하기도 했다.
딸랑딸랑!
혁련천후는 문고리를 가볍게 흔들었다. 그러자 안쪽에서 굵직한 음성이 들려왔다.
“누구시오?”
삐거덕!
육중한 철문이 열리며 덥수룩한 수염을 코밑까지 기른 장한이 고개를 내밀었다. 그는 혁련천후의 아래위를 기분 나쁘게 살피고는 퉁명스럽게 물었다.
“선약은 하셨수?”
“그대가 장인인가?”
“난, 아니오. 선약은 하셨수?”
“장인을 불러라.”
장한의 눈초리가 매섭게 돌아갔다. 반말 때문이다.
“이 자식이 입에 걸레를 쳐 물었나. 말끝마다 반말이네. 선약이 되어 있지 않으면 곱게 쳐 돌아가라이!”
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