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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무사-345화 (343/425)

# 345

<귀환무사 345화>

귀환무사 2부

120화

* * *

가투소 부대의 기사들이 모두 부동자세로 굳어졌다.

느닷없이 나타난 테세우드 공작 때문이다. 평생 한 번 보기 힘든 그가 뜬금없이 나타나자 부대 전체엔 긴장감이 흘렀다. 반면에 아르소의 기사들은 그를 몰라보고 제대로 인사를 하지 못한 관계로 레이놀드 백작에게 호된 질책을 받아야만 했다.

“쓰레기 같은 놈들……!”

바닥을 몇 차례 구른 아르소의 기사들은 흙먼지로 범벅이 되었다. 그들은 두 팔을 허벅지에 붙이고 전방을 바라보는 자세로 꼼짝을 하지 못했다.

움직이면 곧장 영창으로 보낸다는 레이놀드 백작의 엄포가 있었기 때문이다.

“각하! 공주가 옵니다.”

레이놀드 백작의 말에 테세우드 공작은 시선을 우측으로 돌렸다. 반가움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싸늘한 얼굴을 한 레이나 공주가 가까이 다가오자 테세우드 공작은 가볍게 고개 숙여 그녀를 맞았다.

레이나 공주 역시 살짝 고개만을 숙여 화답했다.

서로를 향한 눈빛은 냉랭하기 그지없었다. 주인을 모시는 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헤론 후작은 히죽 웃으며 고개를 숙이는 레이놀드 백작을 차가운 눈빛으로 대했다.

명백히 레이놀드 백작은 헤론 후작의 아래였다.

하지만 태도는 전혀 상관에 대한 예의가 담겨 있지 않았다.

레이나 공주의 눈에 이채가 돌았다.

그제야 그녀는 부동자세로 선 아르소의 기사들을 보았다. 진흙투성이로 변해 있는 그들의 갑주 상태를 보니 어떤 상황인지 듣지 않아도 훤히 짐작이 갔다.

그녀의 고운 눈썹이 매섭게 올라갔다.

“벌을 준 건가요?”

“흐흐! 각하께 불경을 저질러서 벌을 주던 참입니다. 촌놈들이라 대갈통을 개조하려면 시간이 꽤, 걸릴 것 같습니다만…….”

“감히, 나와 함께하는 기사들을 당신 마음대로 벌을 주다니! 오만하군요, 레이놀드 백작!”

“마마! 케논 산맥에 주둔하고 있는 모든 기사들은 제 소관하에 있습지요. 물론 이곳에 있는 저 촌놈들도 마찬가지고 말입니다.”

고개를 비딱하게 숙여 가며 대답하는 레이놀드 백작의 태도에 분노가 치민 헤론 후작이 검을 뽑아 들었다.

챙!

“몸을 똑바로 가누지 못할까? 레이놀드!”

“오호! 이거 지금 뭐 하자는 겁니까? 후작님?”

“이놈!”

전혀 두려움이라곤 보이지 않는 레이놀드 백작의 능글거림에 헤론 후작은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테세우드 공작이 나섰다.

“레이놀드의 말이 맞네, 헤론. 그가 이곳 주둔군의 사령관이니 당연히 모든 기사들은 그의 명령을 따라야 하네. 소문의 그 친구들도 마찬가지고 말이야.”

말속에 은근히 이곳을 방문한 목적을 드러냈다. 가만히 보고만 있을 레이나 공주가 아니다. 발끈하며 소리쳤다.

“그들은 나의 호위기사로 임명된 사람들이에요. 군과는 무관함을 미리 밝혀 두겠어요.”

“제국의 법규를 어길 셈이오?”

“제국의 법규에 그렇게 나와 있는 걸 깜박하셨나 보군요. 황실의 직계를 호위하는 기사들은 폐하를 제외한 그 누구도 부릴 수 없다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 아닌가요?”

그녀의 말이 옳았다.

케이론 제국의 법에는 분명 그렇게 명시되어 있었다. 그러나 테세우드 공작은 입가에 묘한 웃음을 걸고는 받아쳤다.

“전시는 모든 것에 예외를 두는 법이오. 지금은 전시이니 당연히 예외 법규에 해당되는 것이 아니겠소? 물론 법문에도 그렇게 적혀 있고 말이오.”

“……!”

레이나 공주는 그만 말문이 막혀 버렸다.

그 말 역시 틀린 말이 아니었다. 사실 그녀가 말한 조항도 전시에는 무효였다. 비릿한 웃음을 머금은 테세우드 공작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아르소의 기사들은 불똥이 엉뚱한 곳으로 옮겨 가자 선 자세 그대로 눈만 멀뚱거렸다. 그때 양측의 최대 관심사인 왕전 등이 저만치에서 걸어오는 광경이 모두의 눈에 비쳤다.

테세우드 공작의 눈동자에 진한 호기심이 어렸다. 반대로 레이나 공주는 얼굴색이 확연히 어둡게 변했다.

‘하필이면 지금 이곳으로 올 게 뭐야.’

어떤 식으로든 그들과 테세우드 공작의 만남을 저지하려고 했건만 그들, 스스로가 테세우드 공작 앞에 나선 꼴이 되어 버렸다. 우연이라지만 레이나 공주는 마음이 무척 불안했다.

“저 친구들입니다! 제가 데리고 오겠습니다.”

레이놀드 백작이 성큼성큼 왕전 등에게로 걸음을 놓았다. 얼굴색이 변한 레이나 공주를 쳐다보는 테세우드 공작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요란 제국의 놈들도 어쩌지 못한 괴물체를 물리친 것에 대한 공로를 치하하러 온 것이니 마음에 두지 마시오.”

은근히 비꼬는 어조였다.

‘교활한 여우 같은 인간!’

레이나 공주는 속으로 욕설을 퍼부었다. 그녀는 다가오는 왕전 등을 보며 발을 굴렀다. 테세우드 공작이 그들에게 본영으로 파견을 명령하면 어쩔 수 없이 그들도 따라야 한다. 제국의 군사권은 그에게 있었으니까.

그다음은 불을 보듯 훤했다. 온갖 유혹으로 그들을 회유하려 들 것이 분명했다.

* * *

“요리를 하다 말고 여기서 뭣들 하시오?”

왕전이 큰 소리로 물었다.

그들은 레이나 공주와 헤론 후작 등이 한곳에 몰려 있자 의아한 빛으로 쳐다봤다. 그때, 먼지투성이로 서 있는 아르소의 기사들을 발견한 조윤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이봐! 너희들, 왜 그래?”

기사들은 대답하지 못했다.

뒤늦게 와서 한쪽에 부동자세로 서 있던 가투소도 입을 굳게 다물고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들에게 걸어가던 레이놀드 백작이 껄껄 웃으며 큰 소리로 말했다.

“껄껄! 테세우드 각하께서 오셨다! 모두들 예를 갖추어라!”

그제야 모두는 레이나 공주의 옆에 서 있는 테세우드 공작을 쳐다봤다. 자신들을 보며 흡족한 웃음을 짓고 있는 그를 보고는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저놈이 그 공작인가 하는 그놈인가 보군.]

[제법 강한 힘을 지녔군. 꽤 강하겠어.]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하다는 놈들 중, 하나이니 당연히 강하겠지.]

[그런데, 저놈이 왜 우릴 보고 실실 웃는 걸까? 저 공주 표정은 왜 저렇게 안절부절못하지?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거야?]

전음으로 그들은 의아함을 주고받았다.

그들이 자신의 말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레이놀드 백작의 짙은 눈썹이 위로 치켜 올라갔다.

“이놈들! 예를 올리라고 하지 않았느냐!”

북궁천소의 미간에 굵은 힘줄이 돋아날 때, 연소민이 재빨리 뛰어왔다.

“숙부님들! 제국의 테세우드 공작이세요. 인사드리세요.”

[싸우시면 곤란하니 하는 척만 해 주세요.]

그녀는 재빨리 전음으로 부탁했다. 그녀가 조금만 늦었더라면 레이놀드 백작의 턱은 작살이 났을 것이다. 그들은 레이놀드 백작을 무시하고 지나쳤다.

“응? 이, 이놈들이……!”

레이놀드 백작은 다섯이 그냥 자신을 지나쳐 가자 귀에서 연기가 날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의 성질에도 아랑곳 않은 모두는 테세우드 공작의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담대소천이 레이나 공주를 응시했다.

그녀는 억지웃음을 지었다.

“테세우드 공작이세요.”

“공작을 뵙습니다!”

담대소천이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뒤에 섰던 나머지는 머뭇거렸다. 북궁천소는 이미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상태였다.

[주공께서 오시기 전엔 곤란한 일을 만들지 마라.]

담대소천이 전음으로 그같이 말하자 그제야 모두는 건성건성 고개를 숙였다. 불량기마저 풍기는 그들의 태도에 테세우드 공작은 내심 불쾌했지만 짐짓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 그대들의 공로는 보고를 통해 들었다! 제국의 모든 군사를 지휘하는 책임자로서 기사들을 대신하여 감사를 표하는 바이다!”

[지랄한다.]

[그만해라.]

북궁천소와 왕전은 속이 울렁거려 미칠 지경이었다. 저절로 욕이 들끓었지만 담대소천의 만류로 모두는 용케 참아 냈다. 테세우드 공작이 서둘러 본색을 드러냈다. 그는 레이나 공주에게 목소리에 무게를 싣고 말했다.

“더 이상 이곳에 주둔할 필요가 없어졌소. 정체불명의 괴물체가 출현한 이상, 조만간 최정예로 부대를 꾸려 다시 올 것이니 본대로 합류해야겠소.”

“공작의 뜻인가요?”

“있어 봤자 피해만 늘 뿐이니 서두르시오.”

틀린 말은 아니었다.

드래곤의 브레스를 연상시키는 화염을 뿜어내는 괴물체가 다시 나타난다면 왕전 등을 제외한 다른 이들은 목숨을 장담하지 못한다. 그걸 알면서도 레이나 공주는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다. 본대로 합류하면 저들과 자신을 떼어 놓으려고 할 게 분명했다.

그때, 담대소천이 나섰다.

“우린 합류하지 않겠소.”

“뭣이!”

“……!”

그는 레이나 공주를 쳐다보며 특유의 묵직한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우린 따로 갈 곳이 있어서 이만 헤어져야겠소.”

레이나 공주는 갑작스러운 말에 입을 열지 못했다. 당황하기는 테세우드 공작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을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 요량으로 만사를 제쳐 두고 부리나케 달려왔건만 보자마자 가 버린다고 하니 그의 입장에선 그럴 법도 했다.

레이놀드 백작이 테세우드 공작을 쳐다보며 눈빛으로 물었다. 슬쩍 고개를 저은 테세우드 공작이 직접 나섰다.

“지금은 전시 상황이다. 제국군의 소속으로 본 공작의 허락 없이 어딜 간단 말이냐?”

그의 매서운 어조에도 담대소천은 테세우드 공작은 쳐다보지도 않고서 여전히 레이나 공주에게 시선을 주었다.

“누굴 찾아가려는 것인지는 아실 거라 믿소.”

“주공이라는 분께 가는 거군요.”

레이나 공주의 목소리는 꽤 풀이 죽어 있었다. 연소민이 측은한 표정으로 그녀의 팔을 잡았다.

“죄송해요. 미리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아니야. 괜찮아.”

“다시 돌아오면 꼭 마마께 들를게요. 약속해요.”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자신이 소외되자 테세우드 공작은 속에서 불끈 부아가 치밀었다. 황제도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자신을 눈앞의 인물들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이다. 더욱이 공식적인 작위를 지닌 아리안마저도 그런 태도를 보이자 그의 눈매가 매섭게 돌아갔다.

테세우드 공작이 입을 열려고 할 때였다.

우우웅!

허공에서 마나의 소용돌이가 요란스럽게 일어났다.

느닷없는 상황에 모두는 뒤로 물러나며 허공을 쳐다봤다. 공간이 일렁거리더니 빛이 번쩍하며 누군가가 튀어나왔다.

“어! 진천!”

진천이었다.

담대소천을 비롯한 모두가 반가운 표정으로 다가가려다 멈칫했다. 진천의 표정이 평소의 그와는 너무 달랐다. 어둡게 가라앉은 표정의 진천은 테세우드 공작과 레이나 공주 쪽을 흘긋 쳐다보고는 담대소천 등에게 걸어갔다.

“저와 함께 가셔야겠습니다, 형님들!”

“어딜?”

“주공께서 기다리십니다.”

“그렇잖아도 찾아 나서려는 중이었다. 한데 무슨 일이라도 벌어진 거냐? 너, 얼굴이 왜 그런 거냐?”

“가 보시면 압니다. 서두르십시오. 소민도 함께 간다.”

차갑게 굳은 진천을 보며 모두는 의아함을 금치 못했다. 그때 카루가와 우드, 그리고 요란이 재빨리 그들에게로 다가왔다.

요란을 본 진천이 날카로운 눈빛을 발했다. 그로서는 처음 보는 요란이다. 담대소천이 요란을 진천에게 소개했다.

“새롭게 맞은 친구다. 앞으로 함께할 거니 서로들 인사나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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