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무사-344화 (342/425)

# 344

<귀환무사 344화>

귀환무사 2부

119화

“크어어…….”

괴성이 모두의 귓속을 쩌렁쩌렁 울렸다. 어느새 제법 떨어져 있던 블랙 오우거가 지척까지 접근해 들어오고 있었다. 모두는 이를 악물고 달렸다. 몬스터들과 부딪치지 않기 위해 빈 공간만을 골라서 뛰었다. 몸놀림이 상대적으로 빠른 고블린들이 앞을 막아섰으나 어김없이 기사들의 칼날 아래 죽어 갔다.

“으악!”

“칼스!”

또 한 명의 기사가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운이 없게도 오크의 칼에 관통상을 입은 기사에게로 고블린들이 벌 떼처럼 달려들어 피의 잔치를 즐겼다. 언제나 인간의 사냥의 대상이었던 몬스터들. 하지만 지금은 입장이 반대가 되었다.

기사들의 수가 점점 줄어들었다. 블랙 오우거들이 진로를 방해하던 몬스터들을 닥치는 대로 때려잡으며 전진을 했던 까닭에 후미의 기사들은 벌써 공격 사정권까지 좁혀진 상태에 이르렀다.

벌써 몇이 무자비한 주먹에 희생당했다. 돌아서서 싸운다면 그토록 허무하게 죽진 않을 그들이었지만 지옥 같은 이곳을 벗어나야만 한다는 생각에 맞서 싸울 생각조차 못하고 있었다.

“신이시여! 정녕, 이 카르스를 버리시나이까!”

카르스는 달리면서 신을 부르짖었다.

폭스 후작과 크루즈 백작이 그의 좌우를 호위하며 죽을힘을 다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도 뼈와 살로 이루어진 인간이기에 서서히 지쳐갔다.

“전하 조금만 참으십시오! 전방에 강이 있습니다! 강만 넘으면…… 헉!”

“으윽!”

콰앙!

그들이 질주하던 전방에 지금까지와는 비교 불가능의 엄청난 화염이 떨어졌다. 질주하던 셋의 육신이 폭발의 반탄력으로 인해 뒤를 쫓던 몬스터들에게로 튕겨서 날아갔다. 바닥으로 떨어진 셋은 정신을 잃은 듯, 미동조차 없었다.

몬스터들이 그들에게로 일제히 달려들었다.

그때였다.

“물러나라!”

허공을 웅웅 울리는 공명이 주변을 몰아쳤다.

혼절한 카르스와 기사들에게 달려들던 몬스터들이 두려움에 몸을 떨며 사방으로 빠르게 물러나기 시작했다.

화르륵!

불꽃이 생겨나기 시작하더니 이내 거대한 육신을 드러났다. 칸빌이었다. 한바탕 격전을 치른 그는 제법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화염으로 이글거리는 육신 주변의 불꽃이 조금은 줄어든 듯 보였다.

그는 혼절을 하고 쓰러져 있는 카르스와 폭스 후작 등을 내려다보며 괴소를 흘렸다.

“꽤 강한 기운을 지닌 놈들이군.”

그가 성큼 움직이자 몬스터들은 두려움에 고개조차 들지 못했다. 그 난폭했던 블랙 오우거들도 마찬가지였다.

“마계의 종자들이여! 다음 명이 내려질 때까지 어둠 속으로 돌아가라!”

칸빌이 허공에다 대고 나지막이 말했다.

그러자 놀랍게도 블러드 와이번들과 블랙 오우거들이 어디론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오크들과 고블린들 역시 썰물이 빠져나가듯 사라졌다.

카르스를 살피던 칸빌의 눈동자가 화염으로 출렁거렸다.

“이놈들도 그 흑발을 한 놈들과 비슷한 기운을 지니고 있군.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인간 세상에 이토록 마기가 만연해 있다니…….”

그는 조금 전까지 자신과 치열하게 싸웠던 인간들을 떠올렸다.

그들과 비슷한 기운을 이들이 지니고 있었다. 물론 그들과 비교하면 상당한 차이가 있었지만 칸빌은 그것만으로도 만족했다.

“후후! 너희들의 힘을 가져가겠다. 백 일이 지나면 너희들은 위대한 마계의 전사들로 새롭게 태어나는 영광을 누릴 것이다.”

* * *

우우웅…….

마나의 진동이 요란하게 텔레포트진, 주변을 몰아쳤다.

그러고는 잠시 후, 누군가가 그곳을 통해 모습을 드러냈다. 케이론 제국의 실질적인 지배자, 테세우드 공작이었다.

모든 이들이 그에게 머리를 숙였다.

“어서 오십시오, 각하!”

대마법사 쉐인이 그를 맞이했다. 역시 고개를 숙여 화답한 테세우드 공작은 곧장 쉐인의 안내를 받아 사령막으로 이동했다. 지위가 높은 귀족들도 그를 따라 사령막에 모였다.

간단한 다과를 준비한 그들은 곧장 회의에 들어갔다.

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테세우드 공작이 물었다.

“놈들은 아직 별다른 움직임은 없습니까?”

테세우드 공작의 물음에 쉐인이 대답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나 마법 병단이 자리를 비운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몬스터 토벌 과정에서 뭔가 일이 벌어진 것으로 추측됩니다.”

“흠…….”

“신께서 주신 좋은 기회가 아니겠습니까?”

“당연하지요. 그래서 내가 직접 온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번 기회에 케논 산맥을 수복하는 것은 물론이고, 놈들의 일부 지역까지 쓸어버릴 작정입니다!”

테세우드의 말에는 단호함이 서려 있었다.

모두가 입술을 굳게 다물며 고개를 끄덕일 때, 레이놀드 백작이 조심스럽게 끼어들었다.

“몬스터들을 그냥 내버려 둬도 괜찮겠습니까?”

그 말에 테세우드 공작이 무릎을 치며 엉뚱한 말을 꺼냈다.

“아! 그렇지. 출진에 앞서 그 친구들을 먼저 만나 봐야겠군. 지금 어디 있느냐?”

“공주와 함께 능선에 주둔한 선발진에 머물고 있습니다. 지금 당장 오라고 명령을 내리겠습니다.”

“아니야. 내가 직접 그곳으로 가겠다.”

당장에 급한 듯, 테세우드 공작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모시겠습니다.”

레이놀드 백작이 앞장섰다.

테세우드 공작은 쉐인을 돌아보며 힘주어 말했다.

“모든 준비를 서둘러 주십시오. 놈들이 진영을 전력을 보강하기 전에 쓸어버려야 합니다. 저 친구들이 공을 도와 드릴 것입니다.”

그는 자신과 함께 텔레포트로 이동해 온 기사들을 가리켰다. 모두는 그들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테세우드 공작의 사병들인 그들은 신비에 가려진 집단이지만 그 무력만큼은 엄청나다고 제국에 소문이 파다한 자들이었다.

“내일 아침에 출진할 수 있도록 준비를 마치겠습니다.”

“부탁합니다. 그럼!”

테세우드 공작과 레이놀드 백작이 빠른 걸음으로 사령막을 벗어나자 쉐인은 다시 자리에 앉으며 배석한 인물들과 논의에 들어갔다.

* * *

테세우드 공작과 레이놀드 백작은 소수의 기사들만 데리고 케논 산맥의 능선을 향했다. 가는 내내 레이놀드 백작은 정체불명의 괴물체와 아르소의 기사들에 대한 모든 것을 늘어놓았다.

테세우드 공작은 괴물체와 싸워서 기어코 물리쳤다는 아르소의 기사들에게 대단히 큰 관심을 보였다. 물론 그들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기 위해 직접 나선 것이 아닌가? 말을 늘어놓는 레이놀드 백작도 사실 그들이 어떻게 싸웠는지는 모른다.

그 자리에 없었으니 당연했다.

다만 그들에 대한 소문은 그들과 함께했던 아르소의 기사들에 의해 전 주둔군에 조금씩 돌고 있는 중이었는데, 마침 그것을 들은 레이놀드 백작이 요란 제국의 마법 병단의 부재를 보고할 때, 그 부분에 대한 것을 함께 보고했던 것이다.

“어지간한 기사들을 한 번에 몰살을 시킬 정도의 괴물과 싸워서 물리쳤다면 결코 이름 없는 자들은 아닐 터, 어디서 온 어떤 자들인지는 알아보았느냐?”

“그냥 아르소의 영주, 아리안의 숙부들이라고만 했습니다. 셤서라는 곳에서 왔다더군요.”

“셤서? 그런 곳이 제국에 있었나?”

“다른 대륙의 조그마한 섬이라고 합니다. 자세한 건, 저도 아직은…….”

“흠…… 하여튼 그들을 우리 측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레이놀드 백작이 코를 벌름거리며 대답했다.

“레이나 공주가 꽤 공을 들인다고 들었습니다.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만…….”

“무슨 소리! 황제 측으로 간다면 우리에겐 적이나 다름없지 않느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무조건 끌어들여라!”

대화를 나누는 와중에 그들은 레이나 공주가 주둔하고 있는 진영에 거의 다다르고 있었다.

* * *

레이나 공주는 요리를 하느라 꽤 분주했다.

태어나서 스스로 요리를 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물론 황실의 주방장에게 대부분의 요리에 대한 공부는 했었던 그녀였기에 손놀림은 꽤 익숙했다.

“아리안! 그것 좀 가져다 줘.”

“뭘요?”

“고기 썰어 놓은 것 말이야.”

연소민이 그녀의 요리를 돕고 있었다.

그리고 불을 피워 놓은 화로엔 우드와 요란이 앞치마를 두르고 뭔가를 열심히 썰어 대고 있었는데, 케논 산맥에서만 서식한다는 산양 고기였다.

천막 안이 구수한 요리 냄새로 가득했다. 천막을 젖히며 가투소가 들어섰다. 양손 가득 뭔가를 안은 그의 뒤쪽으로 솥을 걸어 놓고 불을 피우느라 여념이 없는 기사들이 보였다. 큼지막한 산양 몇 마리가 곳곳에 통째로 불에 구워지고 있는 모습은 저절로 군침이 돌게 만들었다.

“마마! 이제 삶기만 하면 됩니다.”

“수고했어요, 가투소 대장! 오늘만큼은 모두들 배불리 먹고 즐기라고 하세요. 술도 잔뜩 준비했으니 음식은 충분할 거예요.”

“하하! 모두들 신나서 죽으려고 합니다.”

“호호! 그래요? 숙부들은 벌써 술판을 벌이셨죠?”

“하하! 한 시간 전에 이미 시작하셨습니다.”

“하여튼…….”

모두가 밝은 표정이었다.

죽은 자들에 대한 슬픔보다는 왕전 등의 놀라운 능력을 확인한 것에 대한 설렘이 더 컸던 탓이다. 그들이 자신들과 함께 있다는 것이 천군만마를 얻은 것처럼 기분이 좋았던 레이나 공주는 누구보다 밝은 얼굴로 음식준비에 열을 올렸다.

“전 담대 숙부께 가봐야겠어요.”

연소민이 손을 털고 일어섰다.

“치료 때문이야?”

“예.”

레이나 공주에게 환한 미소로 화답한 그녀가 천막을 올리려고 손을 뻗을 때 헤론 후작이 다소 급한 걸음으로 들어섰다. 그의 표정이 경직된 것을 본 레이나 공주가 눈을 동그랗게 하고서 물었다.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요?”

“테세우드 공작이 오고 있습니다.”

“예?”

대번에 레이나 공주의 얼굴이 찌푸려진다.

“아마도 저들에 대한 소문을 들은 것 같습니다.”

“……!”

나가려던 연소민이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숙부들 때문이라면 혹시……?”

“그래. 틀림없이 제 사람으로 만들려고 수를 쓰러 오는 것이겠지.”

헤론 후작이 힘주어 말했다.

“저들의 신분은 마마의 호위기사들입니다. 마마께서 허락하지 않으신다면 누구도 저들을 데려 갈 수 없습니다. 테세우드 공작이라도 마찬가집니다!”

수건으로 손을 닦은 레이나 공주가 의자에 앉으며 고개를 저었다.

“제국군의 총사령관은 그예요. 분명 그것을 가지고 물고 늘어질 게 뻔해요. 지금이 전시라고 우기면 마땅한 방법이 없어요.”

정체불명의 괴물체와 전투를 벌인 것은 고작 이틀이 지났을 뿐이었다. 그 짧은 시간에 소식이 들어가고 직접 나선 것이다. 레이나 공주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연소민이 그녀를 달랬다.

“숙부님들을 믿으세요. 오란다고 가실 분들이 아님을 아시잖아요.”

“그건 그렇지만…….”

“마마!”

누군가가 천막으로 바삐 들어서며 레이나 공주를 찾았다. 천인장 휼튼이라는 기사였다. 그가 자신을 찾는 이유를 이미 짐작하고 있었던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지금 곧 간다고 전하세요.”

“예! 마마!”

휼튼이 다시 천막을 벗어나자 레이나 공주는 연소민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아리안만 믿겠어. 그들은 아리안의 말이라면 뭐든 다 들어주니까…….”

“알겠어요.”

연소민은 웃음으로 그녀를 위로했다.

내심으로는 공주의 신분으로 공작의 눈치를 보는 그녀가 안쓰럽게 생각했다. 레이나 공주와 헤론 후작이 테세우드 공작을 맞이하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요란이 이마의 땀을 훔치며 말했다.

“흑야 님이 돼지와 싸우지나 않을까 걱정입니다.”

“돼지…… 아! 레이놀드 백작 말인가요?”

“꽤 싫어하시지 않습니까. 저도 죽도록 싫은 놈이지요.”

“훗! 요란 님이 먼저 싸우는 거 아녜요?”

“법만 아니라면 그러고 싶습니다, 하하!”

요란은 꽤 밝아져 있었다.

음습했던 지난날의 이미지는 전혀 없었다. 혼자서만 살아왔던 그가 여러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조금씩 성격이 변해 간다는 증거였다. 특히, 우드와 그는 무척이나 가까워져 있었는데 매일 요란이 마법을 전수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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