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3
<귀환무사 343화>
귀환무사 2부
118화
‘잡아야 해! 무슨 일이 있어도 숙부들을 내편으로 끌어들여야 해! 저들이라면 테세우드의 횡포에 대항할 충분한 힘이 있어!’
저절로 입술을 깨물었다.
어찌나 열망이 강했던지 피가 흘러나올 정도였다.
“이런, 불덩어리 새끼!”
왕전의 거친 음성이 주변을 쩌렁쩌렁 울렸다. 대도를 휘두르며 돌진하는 왕전은 무척 성이나 있었다. 켈빈의 공격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레이나 공주가 선물한 갑주가 화염에 의해 시커멓게 변해 있었다.
어지간한 공격에는 끄덕조차 없는 최상위 마법 갑주가 그렇게 될 정도라면 다른 이들은 벌써 죽어도 열 번은 더 죽었을 것이다. 모두가 놀라고 있을 때, 누구보다 놀란 건 칸빌이었다.
혈광으로 이글거리는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저 힘을 내 것으로만 만들 수 있다면 나는 차원최강의 자리에 오를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내가 당할 수도 있겠어. 도대체 이런 놈들이 있었다니……!’
믿기지 않았다.
자신은 마계의 전왕이라는 발록의 스승이다.
발록도 자신에겐 머리조차 들지 못한다. 그런 자신이 보잘것없는 인간 따위에게 지금껏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니…….
퍽!
어깨에 지독한 통증이 솟아났다.
고개를 돌려보니 마계의 그 어떤 종자들보다도 사납게 보이는 인간이 육탄으로 달려들고 있었다.
칸빌은 분노했다. 스스로에 대한 분노였다.
“크아아!”
두 팔을 교차하며 괴성을 지르자 몸에서 뿜어진 화염이 반경 십 미르를 잿더미로 만들었다. 지독한 뜨거움은 왕전 등도 마주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들이 잠시 뒤로 물러서자 칸빌이 이를 갈며 부르짖었다.
“돌아와서 반드시 네놈들을 나의 수족으로 만들어 주겠다.”
드드드…….
주변이 지진을 만난 듯, 심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놈이 이상하다! 물러서!”
조윤이 소리쳤다.
흑야가 눈매를 가늘게 하고서 칸빌을 유심히 살폈다.
“도주하려는 모양이군.”
“도주? 누구 마음대로!”
북궁천소가 대도를 고쳐 잡으며 몸을 날리려고 하자 조윤이 말렸다.
“놔둬! 어차피 싸워 봤자 승부를 보기 어렵다.”
“무슨 소리야? 끝장을 봐야지!”
“벌써 도망갔다.”
“뭐?”
북궁천소가 고개를 돌렸을 땐, 이미 칸빌은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었다. 좌측을 맡았던 흑야가 검을 갈무리하며 다가왔다.
“마법까지 부리다니, 꽤 귀찮은 놈이 나타났어.”
그는 다른 이들에 비해 갑주 상태가 훨씬 엉망이었다. 누구보다 근접거리에서 공격을 펼쳤던 까닭이다. 머리카락 일부도 시커멓게 그을린 상태였다.
“괜찮으세요!”
연소민이 한걸음에 그들 곁으로 뛰어오며 근심 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흐흐! 고작 저깟 놈에게 당할 성싶으냐?”
북궁천소가 히죽 웃어 그녀를 안심시켰다. 레이나 공주와 헤론 후작, 그리고 기사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가투소를 비롯한 모두의 눈이 반짝반짝 빛을 발했다.
“와!”
기사들이 환호성을 질러 댔다.
“대단해요. 정말! 갈수록 점점 더 말이죠.”
레이나 공주도 꽤 상기된 표정이다. 누구보다 넷을 바라보는 눈빛이 반짝였다. 머쓱한 표정이 되어 버린 조윤이 카루가를 번쩍 들어서 어깨에 올리며 말했다.
“피곤해. 얼른 돌아가자!”
“소천을 찾아야지.”
“모두 갈 필요는 없으니 누가 갈래?”
모두가 슬쩍 조윤의 시선을 외면했다. 조윤의 눈매가 가늘게 변했다. 셋을 노려보고는 카루가를 올려다보며 짐짓 친절하게 물었다.
“너, 소천을 좋아하지?”
“난, 전부 다 좋아해. 그런데 그건 왜……?”
“넌, 힘이 남아돌 테니 네가 좀 찾아서 데리고 와.”
“나쁜 놈이 있을 수도 있잖아?”
“무섭냐? 아깐 싸우겠다고 길길이 날뛰더니 그게 아니었냐?”
카루가가 머리를 긁적이며 바보처럼 웃는다.
“혼자선 조금 무서워…… 헤헤!”
결국 왕전이 담대소천을 찾으러 가야만 했다.
가장 소극적으로 싸웠다는 게 이유였다. 물론 왕전은 길길이 날뛰었지만…….
* * *
“이런, 젠장……!”
카르스는 눈앞에 들판이 펼쳐지자 당황한 표정으로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설마 산맥의 가운데 들판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던 그는 더 이상 은폐할 곳이 없어지자 본능적으로 하늘로 시선을 던졌다.
아니나 다를까, 블러드 와이번들이 먹이를 발견한 독수리처럼 가공할 속도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전하! 다시 숲속으로 들어가는 게 좋겠습니다!”
“그, 그렇군! 숲속으로 들어간다!”
당황한 카르스는 말까지 더듬었다.
그들은 들판을 포기하고 다시 돌아온 길을 되돌아 뛰었다. 간발의 차이로 블러드 와이번의 화염 공격을 피한 그들은 제법 높은 지대를 찾아 그곳으로 올라갔다.
그들이 올라서기가 무섭게 블랙 오우거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크르르…….”
고개를 치켜든 블랙 오우거들이 사납게 으르렁거렸다.
“놈들이 올라오지 못하니 섣불리 움직이지 마라!”
그들이 올라선 곳은 협곡을 두른 절벽의 중간 지점이었다. 삼십 미르에 달하는 높이 탓에 제아무리 블랙 오우거들이라도 올라설 수 없었다. 게다가 머리 위는 우거진 수림이 가리고 있었기에 블러드 와이번의 시야에도 들키지 않았다.
그야말로 당장의 위험에서 몸을 피하기엔 최적의 장소였지만 반대로 완벽하게 고립된 지형이기도 했다. 당장은 안전하다고 판단되자 모두는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율튼! 이 빌어먹을 늙은이!”
카르스가 이를 갈며 부르짖었다.
그가 있었다면 최소한 자신만은 지금쯤, 안전한 군영이나 황궁으로 텔레포트했을 것이다. 제국의 황태자로서 보여 주었던 당당했던 모습은 눈을 씻고 찾아 봐도 보이지 않았다. 초조함과 분노, 혼란스러움만이 보일 뿐이었다.
“전하! 이거라도 좀 드시지요.”
기사 하나가 가죽 물주머니를 내밀었다.
“고맙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도 마실 물은 있나?”
“……!”
물이 있을 리가 없었다.
대부분은 난리 통에 모조리 분실했고, 그나마 물주머니를 내민 기사와 몇 명만이 있었는데, 그것도 한 모금 마시면 동이 날 지경이었다.
카르스는 차마 물주머니를 입으로 가져가지 못했다.
그는 물주머니를 도로 기사에게 건네고는 주변을 살폈다. 자신들이 내려오기만을 기다리는 블랙 오우거들에다 언제 몰려들었는지 오크와 고블린들이 주변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완벽한 고립이었다.
“전하! 너무 염려하지 마십시오. 반드시 위기를 헤쳐 나갈 방도가 생길 것입니다!”
폭스 후작의 위로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스스로 헤쳐 나가지 못하면 외부의 지원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황궁이나 군영에 소식을 전할 방법이 없었으니…….
그때였다.
“전하! 놈들이 기어서 올라옵니다!”
“이런……!”
오크와 고블린들이 새카맣게 벽을 타고 올라오고 있었다. 그들이야 그다지 위협이 되진 않겠지만 그래도 모두는 잔뜩 긴장했다.
기사 몇이 검을 뽑아 들고 가장자리 쪽으로 이동했다. 올라오는 족족 쳐 낼 심산이었다. 덩치가 작고 놀림이 빠른 고블린이 가장 먼저 올라왔으나 기사들이 일제히 검을 휘두르자 피를 뿌리며 떨어졌다.
따다당!
쇳소리가 울렸다.
“조심해라! 놈들이 독침을 쏜다!”
고블린은 작은 대롱에 독침을 꽂아 쏘는 것이 주 공격 방법이다.
기사들이 걸친 갑주를 뚫어 낼 순 없었지만 운이 나쁘면 목이나 얼굴에 당할 수도 있다. 독이 어떤 것인지를 모르기에 기사들은 살이 드러난 부분을 마나로 둘러 방어막을 형성했다.
퍽!
“카악!”
고블린들은 올라오기가 무섭게 동강이 나며 떨어졌다. 그럼에도 그들은 끊임없이 올라왔다. 올라오는 공간이 다소 협소했던 까닭에 기사들은 번갈아 고블린들과 오크를 상대했다. 그러기를 한 시간 가까이 지났을 때였다.
카르스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저, 저놈들이!”
블랙 오우거들이 주변의 나무를 마구 주먹으로 부러뜨리고 있었다. 워낙 강력한 파워를 지닌 그들이라 굵직한 거목들도 몇 번 주먹질에 사정없이 넘어갔다.
콰지직!
“전하! 이대로 가면 곧 블러드 와이번에 위치가 노출됩니다!”
그랬다.
그게 문제였다. 주변 숲의 나무들이 모조리 넘어가면 위쪽이 그대로 노출된다. 그렇게 되면 화염 공격에 속수무책이 되어 버린다.
“방법이, 방법이 없어!”
카르스의 얼굴에 드디어 절망이 어린다.
블러드 와이번을 피해 숲으로 들어가면 블랙 오우거들 저지할 방도가 없었다. 있다면 지금 당장 뛰어내려서 그들을 쓰러뜨려야 한다.
하지만 그러기엔 블랙 오우거의 수가 너무 많았고 없던 오크들도 새카맣게 몰려든 상태였다.
“억!”
고블린과 오크들을 상대하던 기사 하나가 목을 움켜쥐고 쓰러졌다.
독침에 당한 것이다. 그들이 제아무리 강하다지만 마나를 이용한 방어막을 무한정 사용할 순 없었다. 잠깐 마나가 소멸된 틈을 노리고 그에게 집중적으로 날아온 독침이 새카맣게 얼굴 전체를 덮어 버렸다.
“매, 맹독입니다!”
쓰러진 기사는 벌써 숨이 끊어져 있었다. 독침에 발라진 독이 얼마나 강한 맹독인지 여실히 보여 주었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카르스는 점점 냉정을 잃어 갔다. 이대로 죽기엔 너무나 많은 것을 지닌 그였다.
우지끈!
거목이 부러지며 무수한 파편들이 그들이 있는 곳을 덮쳤다. 기사들이 손을 뻗어 밖으로 쳐 내는 어지러운 상황이 이어졌다. 그리고 조금의 시간이 더 지나자 부러진 나무들 사이로 블러드 와이번의 거대한 동체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전하! 이대로 있으면 당합니다! 차라리 뛰어내려서 돌파를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전하!”
폭스 후작과 크루즈 백작이 다급하게 외쳐 댔지만 카르스는 여전히 공황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보다 못한 폭스 후작이 카르스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전하! 전하!”
“젠장! 빌어먹을!”
카르스의 흔들리는 눈동자는 좀처럼 멈추지 않았다.
그들을 가려 줬던 나무들이 모조리 무너졌다. 그것은 공포의 시작을 알리는 서막과도 같았다. 창공을 배회하던 블러드 와이번들이 방향을 바꾸어 그들에게로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쾅!
“으악!”
화염이 좁은 공간의 가장자리를 강타했다.
끊임없이 올라오려는 몬스터들을 막아 내던 기사들이 화염에 휩싸여 바닥으로 추락했다. 빗맞아 땅으로 떨어진 화염 일부에 오크들과 고블린들도 떼거리로 죽어 갔다. 떨어진 기사들에게 수천 마리의 몬스터들이 달려들었다.
그제야 카르스는 정신을 차렸다.
“뛰어! 뛰어라! 무조건 뛰어라!”
그는 목이 터져라 소리쳤다. 유일한 방법이 그거였다.
살아남은 자들이 일제히 몬스터의 가운데로 뛰어내렸다. 기다렸다는 듯이 블랙 오우거들이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기 시작했다.
“무조건 북쪽으로 뛰어라!”
모두는 죽을힘을 다해 검을 휘두르며 전진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고블린과 오크의 수가 워낙 많았던 까닭에 블랙 오우거의 움직임이 다소 둔화되었다.
퍽!
퍽!
“크아아…….”
순식간에 카르스와 모든 이들의 육신이 몬스터의 핏물로 흠뻑 적셔졌다. 그들은 오직 검 끝에 오러를 품고서 막아서는 몬스터들을 베면서 전진했다.
콰앙!
“크아아…….”
허공에서 떨어진 화염이 몬스터들의 가운데를 휩쓸었다. 오크와 고블린들이 화염에 휩싸이며 죽어 갔다. 운 좋게도 기사들은 이번 공격에서 비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