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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무사-341화 (339/425)

# 341

<귀환무사 341화>

귀환무사 2부

116화

“가문의 전설에 그곳이 들어 있더군. 강자들의 고향이라고 말이야. 지금 너를 보니 전설이 옳았어…….”

담대소천의 짙은 눈썹이 꿈틀거렸다.

“네, 선조들이 중원에서 온 자들이더냐?”

“크크! 어쩌면…….”

아벨의 대답이 모호했다.

“요란 제국이 네놈의 선조가 세운 나라이더냐?”

“크크! 그깟 허울뿐인 제국은 세워서 뭣 하겠느냐. 하지만 전혀 상관없는 것은 아니지. 그곳의 황제라는 작자도 우리의 손에 놀아나는 허수아비일 뿐이니 말이야.”

놀라운 말이 아벨의 입에서 쏟아졌다.

“누구지? 너희들을 부리는 자가…….”

“크크! 그건 곤란해. 여기까지만 하도록 하지. 이제 그만 날 죽여라. 그 정도는 해 줄 수 있겠지?”

아벨의 육신이 휘청거렸다. 진득한 핏물이 입을 통해 쏟아졌다.

창백해진 얼굴은 죽음이 다가왔음을 깨닫게 했다. 담대소천은 아벨을 무겁게 쳐다봤다.

더 묻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저런 부류의 인간들은 더 묻는다고 대답할 자들이 아님을 알고 있다. 담대소천의 청룡언월도가 슬쩍 위로 올라갔다.

“넌, 아까운 놈이었다. 무사로서 말이야.”

“크크! 닥쳐!”

“내세엔 좋은 놈으로 환생하길 바란다.”

서걱!

아벨의 목이 바닥을 굴렀다.

죽은 자를 내려다보는 담대소천의 눈동자가 순간 가늘게 흔들렸다. 따끔한 통증이 허리에서 솟아났다. 그곳에서 선혈이 주르륵 흘렀다. 결코 만만치 않았던 아벨과 크로우 기사 단원들과의 대결에서 부상을 당한 것이다.

“꽤 위험했어…….”

그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둠이 조금씩 밀려오고 있었다. 자세히 보면 어둠이 아니라 새카맣게 몰려드는 새들이었다. 죽음을 먹고사는 까마귀들이었다. 주변을 돌아보니 최초 결투가 벌어졌던 곳에서 얼마나 떨어진지조차 모를 정도로 먼 곳까지 와 있었다.

“너무 멀리 와 버렸군.”

쓴웃음을 지은 담대소천은 잠시 나무에 등을 기대로 앉았다. 거친 호흡을 달래고 흔들린 속을 다스리기 위해 곧장 운기조식에 들어갔다.

* * *

황태자 카르스는 자꾸만 뒤를 흘긋 돌아봤다.

옹고르 분화구에 남은 크로우 기사 단원들이 자꾸만 마음에 걸렸다. 그다지 친한 사이가 아닌, 어쩌면 적보다 못한 사이일 수도 있었지만 그래도 그들은 제국의 소중한 전력이 아닌가.

“전하! 걱정 마십시오. 그들은 강한 자들이니 무사히 돌아올 것입니다.”

폭스 후작이 카르스의 마음을 헤아려 속내와는 달리 그같이 위로했다. 대마법사 율튼의 얼굴은 꽤 굳어져 있었다.

그는 마법사들이 들고 가는 거대한 철갑 덩어리를 보면서 의문에 빠져 있었다.

‘저건 이 세상의 물질이 아니다. 그 정도의 강력한 마기를 발산하는 괴물체라면 마계의 존재, 그것도 최상위급 존재가 틀림없을 것이다. 누구지? 어떻게 마계의 존재가 이곳으로 넘어왔단 말이지.’

율튼은 그것이 의문임과 동시에 놀라웠다.

비록 짧은 순간이었지만 순수한 마나의 이동량을 볼 때, 자신보다 더한 강력함을 느꼈었다. 텔레포트를 할 때나 가능한 양의 마나가 괴물체에게서 느껴졌던 것이다.

‘발록은 아니겠지…….’

율튼은 인간 세상에 가장 두려운 존재로 각인된 발록을 염려했다.

“전방에 마나의 흐름이 잡혔습니다!”

누군가가 나지막이 소리치자 율튼은 정신을 번뜩 차렸다. 카르스와 폭스 후작이 재빨리 앞으로 나섰다.

“적인가?”

율튼은 재빨리 스캔을 펼쳤다. 이내 그의 얼굴이 돌처럼 굳어졌다.

“마계의 기운입니다. 그것도 상당히 강력한…….”

“분화구에서의 그놈은 아니겠지요?”

폭스 후작이 긴장감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모르겠소…….”

모두가 초긴장 상태로 접어들었다. 이동을 멈추고 병기를 꺼내 든 그들은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옹고르 분화구에서 화염 한 방에 기사들이 재로 변하는 광경을 목격한 탓에 카르스조차도 경직된 반응을 보였다.

꿀꺽!

누군가의 침 넘기는 소리가 천둥소리처럼 울렸다. 카르스는 검에다 오러를 두르고 낮은 자세로 전방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스스슥!

숲이 가볍게 흔들렸다.

그리고 그 흔들림은 점점 카르스 일행이 있는 쪽을 향하고 있었다. 대마법사 율튼이 지팡이를 숲 쪽으로 겨누었다.

탁! 탁! 탁!

무엇인가가 뛰어 오는 소리가 들렸다. 나뭇가지가 흔들리며 고블린 한 마리가 숲에서 튀어나왔다.

퍽! 퍽!

칵!

고블린이 피를 뿌리며 날아갔다.

고블린이 모습을 보이기가 무섭게 기사들이 공격을 퍼부은 것이다.

“뭐야? 고블린이잖아?”

카르스가 율튼을 돌아봤다. 굳은 표정의 율튼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가볍게 숨을 내쉰 카르스가 다시 숲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 누군가 소리쳤다.

“오우거다!”

우거진 숲의 위쪽으로 오우거의 머리가 보였다. 나무 위로 머리만 쑥 내민 그것은 보통의 오우거와는 달리 눈처럼 흰 털을 지니고 눈동자도 붉은색이 아닌 검은색을 띠고 있었다.

“아이스 오우거?”

“그렇습니다. 괜히 놀랐습니다.”

폭스 후작이 가슴을 쓸어내리는 시늉을 하며 가볍게 숨을 토해 냈다. 아이스 오우거는 그다지 두려운 상대가 아니다. 물론 어지간한 기사들에겐 공포의 대상임에는 틀림없지만 지금 이곳엔 하나같이 마스터급에 이른 기사들만이 있었다. 기사들이 느릿하게 오우거를 향해 걸었다. 좀 전의 긴장감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낮은 자세를 취했던 카르스가 그제야 허리를 펴며 일어섰다.

“괜히 놀랐군.”

“전하! 평범한 오우거가 아닙니다.”

율튼은 여전히 경계심을 풀지 않았다. 카르스가 그를 돌아보며 물었다.

“평범한 오우거가 아니라니, 그게 무슨 말이오?”

“놈에게서 마계의 기운이 느껴집니다. 보통의 오우거는 절대 그럴 수 없는 법입니다. 기사들을 뒤쪽으로 물리십시오.”

“율튼 공! 너무 예민한 것 아닌가? 블랙 오우거도 아닌 고작 아이스 오우거 한 마리가 아닌가? 놈을 잡아가죽을 벗겨라!”

미간을 찌푸렸던 카르스가 기사들에게 다소 짜증스러운 투로 명령을 내렸다. 기사들이 기다렸다는 듯 몸을 날려 아이스 오우거를 덮쳤다.

퍽! 퍽!

오우거의 어깨와 복부에서 핏물이 튀었다.

“캬우!”

괴성과 함께 오우거는 뒤쪽으로 물러났다. 오우거의 반응이 조금 이상했다. 도망치거나 반격을 가했어야만 했는데, 어쩐 일인지 아이스 오우거는 기사들을 쳐다보며 당황한 빛을 보였다. 몬스터라면 당연히 가져야 할 인간에 대한 적개심 또한 느껴지지 않았다.

“이봐! 가죽이 상하지 않게 해야지!”

“목을 노려!”

카르스가 다시 소리쳤다.

율튼은 아이스 오우거의 그러한 반응이 수상했다. 자신들을 바라보는 눈빛에는 당혹감과 친근감이 뒤섞여 있었다. 몬스터라면 결코 보일 수 없는 눈빛이다.

기사들이 다시 오우거를 향해 몸을 날렸다. 보통의 오우거보다 훨씬 큰 아이스 오우거의 가슴까지 날아오른 기사 하나가 목을 향해 검을 내려칠 때였다.

“멈춰!”

차가운 일성이 숲에서 터졌다.

동시에 기사의 육신이 허공에서 ‘퍽’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뒤로 튕겨 날아갔다. 이번엔 또 뭔가라는 불안감에 기사들은 공격을 포기하고 뒤쪽으로 재빨리 물러났다.

“이게 무슨 짓이야!”

오우거의 앞에 누군가가 나타났다.

혁련소였다.

은발에 갑주를 걸친 그는 잔뜩 성이 난 눈빛으로 모두를 노려보았다.

뜻밖의 상황에 모두는 눈을 동그랗게 키웠다. 율튼의 탐스러운 수염이 부들부들 떨리는 것을 본 카르스가 이채를 발하고는 물었다.

“무슨 일인가?”

율튼은 대답하지 않았다.

혁련소가 나타나는 순간부터 율튼의 안색은 창백하게 변해 갔다. 그는 혁련소를 기억하고 있었다. 비록 흑발에서 은발로 바뀌었지만 어찌 저 얼굴을 잊을 수 있으랴.

아니, 혁련소보다는 그를 구해서 사라진 흑발 사내의 광포했던 영상이 지금, 율튼의 뇌리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돌아오면 지옥을 구경시켜 주지.”

사라지기 직전에 자신들을 향해 읊조렸던 사내의 음성이 환청처럼 울렸다.

율튼은 지금도 문득문득 그날을 떠올리면 깜짝깜짝 놀란다. 오던 잠도 날아가며 식욕마저 떨어지곤 했다. 아랫입술을 질끈 깨문 율튼은 황태자 몰래 마법사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이봐, 너희들! 미쳤어! 왜 다짜고짜 칼질이야!”

“누구냐? 누구이기에 감히 제국의 황태자 저하께서 하는 일을 막아서는 것이냐? 목이 잘려 죽고 싶으냐! 이놈!”

크루즈 백작이 호통을 치며 나섰다.

“황태자면 다짜고짜 칼질을 해도 되는 건가? 어디냐? 요란이야, 아니면 케이론이야?”

“이놈! 무례하다!”

“그만!”

카르스가 나섰다.

크루즈 백작이 성난 표정을 지우지 못하고 마지못해 뒤로 물러났다. 혁련소는 차가운 시선이 카르스를 향했다. 한눈에 그가 황태자임을 알아본 것이다.

“네가 황태자인 모양이군?”

폭스 후작이 화가 뻗쳐 움찔하자 손을 들어 제지한 카르스가 혁련소의 아래위를 쓸어 보고는 묘한 눈빛을 발했다.

“묘한 놈이군. 몬스터를 감싸다니, 제국의 법으로 몬스터를 키우거나 사냥을 방해하면 그 죗값이 어떠한지를 모르는 것이냐?”

“별 거지 같은 법도 다 있네. 어디냐니까? 요란이야?”

“후후! 그 입 때문에 제명에 못 살 놈이구나. 그래, 내가 요란 제국의 황태자, 카르스다.”

뜻밖에도 카르스는 화를 내지 않고 순순히 대답했다. 오히려 입가에 미소까지 머금고서 말이다. 혁련소의 입가가 올라갔다.

“난, 요란 제국의 백성이 아니다. 그러니 대접을 받을 생각 따윈 집어치우는 게 좋을 거야.”

“하하! 당돌한 놈이구나. 이 카르스의 위명은 전 대륙에 떨쳐져 있건만 전혀 두려운 기색이 없다니, 누구냐? 케이론의 기사냐? 아니면 다른 왕국의 기사냐?”

“후후! 글쎄, 처음 듣는 이름인데, 위명은 무슨…….”

폭스 후작이 끼어들었다.

“전하! 당장 놈을 베고 서둘러 군영으로 가시지요.”

카르스는 재밌는 장난감이라도 발견한 것처럼 호기심마저 보였다.

“여긴 본 제국의 영토, 네놈은 지금 영토를 침범한 것이다. 알겠느냐? 그러니 너를 포박해서 압송해야겠다. 물론 저 오우거까지 데려가야겠지?”

“케논 산맥은 케이론의 영토로 알고 있는데, 무슨 헛소리지?”

“하하! 웃기는 놈이군. 몬스터와 숲속에서만 살기라도 했던 모양이지. 그걸 지금껏 모르고 있었다니 말이다.”

카르스는 고개를 젖히고 크게 웃기까지 했다.

폭스 후작을 비롯한 기사들은 카르스가 당장에 목을 치지 않는 것이 의아했다.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는 그가 자신에게 반말을 지껄인 자를 살려 준 적은 단연코 없었다.

더욱이 상대는 상위 귀족도 아닌 정체불명의 평범한 기사가 아닌가. 모두가 의아해하면서 카르스를 바라보고 있을 때, 느닷없이 율튼의 창노성이 터졌다.

“놈을 잡아라!”

율튼을 비롯한 모든 마법사들이 동시에 손을 뻗어 혁련소를 공격했다. 느닷없는 상황에 카르스조차도 어리둥절한 반응을 보였다.

콰과광!

혁련소가 섰던 자리에 거대한 마나의 폭발이 일어났다. 위력이 어찌나 대단했는지 조금 뒤쪽에 섰던 아이스 오우거가 허공을 붕 날아서 숲속으로 곤두박질쳤다. 카르스의 매끄러운 눈썹이 급격하게 위로 치켜 올라갔다.

“이게 무슨 짓이지? 감히 내가 대화를 나누는데 이런 짓을 벌이다니!”

율튼은 대답 없이 혁련소가 섰던 자리를 뚫어져라 응시했다. 자욱한 연기로 인해 그곳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랑곳 않는 그의 반응에 카르스는 얼굴이 붉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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