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무사-339화 (337/425)

# 339

<귀환무사 339화>

귀환무사 2부

114화

아벨의 눈동자가 순간적으로 새파란 광망을 번뜩였다. 벽안이었던 눈동자가 순간적으로 흑안으로 바뀌었다가 이내 벽안으로 돌아왔다.

휘이잉…….

매서운 바람이 눈가루를 몰아왔다.

화염으로 불타 죽은 자들의 육신이 바람에 눈가루에 뒤섞여 사방으로 흩날렸다. 그때 아벨의 고개가 좌측 숲으로 돌아갔다.

그곳에서 누군가가 걸어 나오고 있었다.

묵빛 갑주에 핏빛처럼 붉은 흉갑을 두르고 이 세상의 것으로 보이지 않는 거대한 기병을 든 흑발의 사내가 아벨의 뇌리를 충격으로 흔들었다.

사내의 주변 공간이 아지랑이처럼 일렁거렸다. 그것은 극강의 마나가 발산될 때,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사내의 차가운 눈동자가 아벨을 향했다.

“누구지?”

“……!”

아벨은 대답하지 못했다.

“방금 네놈들이 발산했던 기운이 꽤 익숙하더군. 내가 가장 싫어하는 놈들의 것인데, 어떻게 네놈들이 그걸 익혔지?”

쿠오오…….

사내의 육신이 가공할 기운을 뿌려댔다.

“이, 이것은……!”

아벨을 비롯한 크로우 기사단원들의 얼굴이 돌처럼 딱딱하게 경직되었다. 사내가 뿜어내는 기운, 그것은 자신들과 상극의 기운이었다.

[궁극의 힘을 얻기 전에 만난다면 무조건 도주하는 것이 살 길이다.]

아벨은 전설을 떠올렸다.

자신들의 가문에서 수백 년을 전해져 온 전설 속의 존재가 눈앞에 나타났다. 전설은 무조건 도망치라고 전해 왔지만 아벨은 그러지 않았다.

아니, 그러지 못했다.

이미 전신 근육이 얼굴만큼이나 굳어졌기 때문이다.

“누, 누구냐?”

치르륵…….

거대한 칼이 광포한 기운을 뿜기 시작했다. 사내가 한 발 내디디며 중얼거렸다.

“투왕, 담대소천! 네놈들이 익힌 기운의 주인들이 그렇게 부르더군.”

* * *

온 세상이 백색으로 덧칠을 했다.

다시 내리기 시작한 폭설은 불과 두 시간 만에 성인 남자의 가슴 높이까지 쌓이는 대단한 폭설을 기록하고도 계속 쏟아졌다.

“마마! 이대로 정상으로 가기엔 무립니다! 군영지로 돌아갔다가 눈이 그치면 다시 오르는 것이 좋겠습니다!”

시커먼 하늘을 보니 눈이 그칠 것 같지 않자 헤론 후작은 레이나 공주에게 회군할 뜻을 비쳤다. 레이나 공주도 더 이상은 산을 오르는 것이 어렵다고 판단, 어쩔 수 없이 회군을 결정했다.

“다른 부대와는 여전히 연락이 닿지 않나요?”

“이런 폭설에는 마나의 흐름이 원활하지 않아 통신석이 무용지물이 됩니다. 기상이 더 악화되기 전에 군영으로 돌아가셔야 합니다. 더 이상은 위험합니다.”

레이나 공주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그녀 옆에는 연소민이 함께하고 있었고 우드와 요란이 그녀를 호위하듯 좌우에 포진하고 있었다. 담대소천 등이 갑작스럽게 사라져 버린 탓에 둘이 호위를 맡은 것이다. 우드는 결연한 표정으로 주변을 살피기에 여념이 없었다.

졸지에 호위병으로 전락한 요란은 우드와는 달리 느긋한 표정이다. 사실 우드에겐 레이나 공주보다 연소민의 안위가 더 중요했다. 만에 하나 조금의 이상이라도 생긴다면 그날로 자신은 왕전에게 맞아 죽을 목숨이라 여기고 안전에 만전을 기하는 중이었다.

3서클 마법사가 마스터에 근접한 고수를 호위한다는 게 남이 알면 웃을 일이지만 우드는 누구보다 결연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물론 그녀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에 대한 발로였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는 것이다.

“아리안! 그만 돌아가야겠어.”

“저는 잠깐 더 둘러보고 가겠어요.”

“혼자선 위험해! 숙부들은 곧 돌아올 거야. 그러니 함께 내려가.”

“……!”

연소민은 매우 불안한 심리 상태를 보이고 있었다.

정신을 잃은 뒤로 그녀는 작은 이상에도 필요 이상의 긴장이나 불안을 비쳤다. 지금도 담대소천 등이 없자 평소의 그녀와는 다르게 불안해하며 극심한 초조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우드가 따뜻한 말로 그녀를 달랬다.

“그분들도 그곳으로 돌아오시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돌아가시죠, 영주님!”

“그게 좋겠습니다.”

요란까지 거들자 그제야 연소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전원! 군영으로 돌아간다!”

헤론 후작의 눈짓을 받은 가투소가 큰 소리로 명령을 전달하자 기사들은 발길을 돌렸다. 그들이 방향을 돌려 조금을 이동했을 때였다.

갑자기 우측 숲, 전체가 크게 흔들렸다.

쿵!

“크아아…….”

콰앙!

“으악!”

거대한 무엇인가가 튀어나오며 그들을 덮쳤다.

화염이 솟구치며 기사들 몇이 엄청난 거리까지 날아가서 떨어졌다. 모두가 경악했다. 나타난 괴물은 실로 놀라울 정도의 크기를 지니고 있었다.

인간과 비슷한 얼굴에 오우거에 육박하는 체형을 지닌 그것은 놀랍게도 기사들처럼 시커먼 갑주를 전신에 두르고 어지간한 성인 장정의 몇에 해당하는 무지막지한 크기의 칼을 손에 쥐고 있었다.

거대한 칼은 붉은 화염이 뚝뚝 떨어지고 있어 절로 공포감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마치 핏물을 연상시키는 화염에게서 모두는 시선을 떼지 못했다.

“마마! 어서 아래로 피하소서!”

헤론 후작이 검을 뽑아 들며 소리쳤다. 가투소와 기사들이 레이나 공주의 앞을 막아섰다. 기사들은 검을 뽑아 들기는 했지만 워낙 섬뜩한 광경에 얼굴이 돌처럼 굳어 있었다.

“영주께서도 어서 내려가십시오!”

우드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요란은 이미 선두에서 양손에 마나를 끌어올리고 여차하면 공격을 가할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괴물의 붉은 눈동자가 우드를 향했다.

“후후후! 마계의 기운을 지닌 놈이 있었군.”

괴물의 입에서 놀랍게도 인간의 언어가 흘러나왔다.

우드가 사색이 되었다. 괴물의 눈동자가 자신에게 고정되었음을 본 까닭이다. 자신이 흑마법사임을 대번에 간파한 시뻘건 혈광으로 일렁거리는 눈동자는 소름 끼치도록 섬뜩함을 발산했다.

“감히 마계의 종속 주제에 나의 이 강대한 힘을 느끼고도 머리를 숙이지 않다니, 소멸되고 싶은 것이냐?”

“으……!”

우드는 두려움에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괴물은 다른 이들은 안중에도 없는 듯, 우드를 향해 그 큰 몸집을 움직였다. 한 걸음 내딛자 대지가 울렸다. 흑마법사의 기운을 간파한 괴물의 눈동자는 탐욕으로 번뜩였다. 모두는 혼란에 빠져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때였다.

우드에게 다가가던 괴물의 눈동자가 이채를 발했다.

“응! 묘한 기운을 지닌 계집이군.”

괴물의 시선이 연소민에게 돌아갔다. 연소민이 검을 뽑아 들며 소리쳤다.

“멈춰!”

챙!

“후후! 놀랍군. 마계의 것과 비슷한 힘을 지녔다니, 후후후! 꽤 좋은 힘을 가졌구나. 너희 둘은 나와 함께 가야겠다.”

“닥쳐! 어디서 온, 뭣 하는 놈이냐!”

연소민이 지지 않고 받아치자 괴물의 눈이 더욱 섬뜩한 빛으로 번뜩였다.

“후후! 먹음직스러운 힘이군. 너를 나의 수족으로 만들어 주마.”

화르륵!

거대한 화염이 괴물의 주변을 용솟음치며 뿜어졌다. 엄청난 화염이 동반한 열기 때문에 모두는 황급히 뒤쪽으로 도망가듯 물러났다. 레이나 공주도 검을 뽑아 들고 연소민의 옆에 섰다. 당황한 헤론 후작이 그녀를 말릴 사이도 없었다.

화르륵!

주변 나무들이 화염에 휩싸이며 순식간에 주변은 불바다로 변해 갔다. 기사들은 두려움을 떨쳐 내고 레이나 공주의 주변을 에워쌌다.

“목숨을 다해 마마를 호위하라!”

헤론 후작이 결연하게 외쳤다.

드드드…….

대지가 진동했다.

동시에 괴수의 거대한 양팔이 위로 치켜 올라갔다.

“후후후! 역시 미개한 종족들이군. 감히 어둠의 파괴신인 나, 칸빌에게 맞서려고 하다니…… 모조리 소멸시켜 주마!”

* * *

케논 산맥의 동북부 능선을 넘어가는 시커먼 그림자들이 있었다.

나는 새처럼 빠른 속도를 보이는 그들은 한 번 도약에 상상하기 힘든 거리를 날았다. 선두에 왕전의 모습이 보였다.

“조그마한 놈이 엄청 빠르네.”

옹고르 분화구로 나섰던 그들은 우드의 연락을 받고 되돌아오던 중, 산맥의 능선을 날아가던 카루가를 발견하고서 지금껏 뒤쫓는 중이었다. 왕전의 시선이 향한 전방에 카루가가 어디론가 쏜살처럼 질주하고 있었다.

“소천, 놈은 어디로 간 거야? 저 꼬맹이를 따라나섰다고 했잖아!”

“그러게. 다른 곳으로 갔나 본데?”

“일단 저 꼬맹이부터 잡자!”

쾅!

넷의 육신이 허공을 가르고 직선으로 쏘아졌다.

거리는 좀처럼 좁혀 들지 않았다. 지금 카루가는 변신을 한 상태로 달리고 있었다. 마계의 왕자라는 신분이 지금만큼은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상당한 속도를 내고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거리가 좁혀 들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끝내 왕전에게 뒷덜미를 잡히고 말았다.

“자식아! 불렀으면 서야 할 것 아니야!”

핀잔을 주던 왕전이 눈을 동그랗게 했다.

평소의 카루가가 아니었다. 붉게 물든 눈동자와 조금은 더 커진 듯한 체격에 화염으로 일렁거리는 채찍을 든 모습은 섬뜩하기 그지없었다.

카루가가 소리쳤다.

“이거 놔! 놓으란 말이야!”

“이 자식이! 무슨 일인지 말해 봐. 우리가 도와줄 테니까.”

왕전이 내공을 끌어올려 카루가의 몸 안으로 주입시켰다. 그러자 몸을 한 번 크게 휘청거린 카루가가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왕전의 내력이 카루가의 마기를 압도한 까닭이었다.

“이……!”

눈을 깜박이자 붉은 화염이 사라지며 맑은 눈동자로 바뀌었다. 북궁천소가 가볍게 머리를 쥐어박으며 불퉁거렸다.

“이제 정상으로 돌아왔네. 무슨 일이냐, 꼬맹이! 그리고 소천은 어디 갔어?”

“혹시 엄청나게 큰 덩치에 화염으로 이글거리는 커다란 칼을 든 놈, 못 봤어?”

카루가가 오히려 되물었다.

표정이 꽤 심각해 보이자 모두는 서로의 얼굴을 쳐다봤다. 조윤이 물었다.

“뭐 하는 놈인데?”

“아주 무시무시한 놈이야. 악질 중의 악질인데…… 놈이 왔으면 아마 형도 왔을 거야.”

모두의 표정이 급변했다.

카루가가 형이라고 칭하는 존재는 오직 하나, 혁련소뿐이다.

“자세히 말해 봐! 누가 넘어왔다고? 형이라면 소를 말하는 거냐?”

북궁천소가 다소 거칠게 묻자 조윤이 그의 어깨를 잡아당겨서 눈치를 주었다. 카루가의 얼굴이 붉게 변했다.

“크게 호흡하고 천천히 말해 봐.”

“후…….”

심호흡을 하자 정상으로 돌아온 카루가가 말을 이었다.

“마계의 문은 당분간 열리지 않게 되어 있었어. 예외라면 형이 넘어올 때, 딱 한 번만 열리게끔 아버지한테 부탁해 놨는데…….”

“그런데?”

“놈의 기운이 느껴져. 틀림없이 놈이야. 스스로 문을 열 수 없는 놈인데 이 세상에 넘어왔다면 형이 넘어올 때, 몰래 넘어온 것이 분명해.”

카루가의 일그러진 표정과는 달리 모두는 희열이 돌았다.

카루가의 중얼거림이 이어졌다.

“놈은 세상의 모든 몬스터를 조종할 수 있는 마력을 지니고 있어. 어쩌면 마계에만 서식하는 블랙 오우거와 블러드 와이번도 넘어왔을 거야. 놈들까지 왔다면 세상은 혼돈에 빠지게 될 거야.”

“혼돈이고 나발이고 어디서 그 새끼의 기운이 느껴지냐? 그곳에 소가 있을 것 아니냐?”

카루가가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몰라! 느껴지긴 하는데 위치를 모르겠어. 스스로 마나를 감출 수 있게 되었나 봐. 이렇게까지 강했던 놈은 아닌데…….”

북궁천소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하여튼 이 산 근처에 있는 것은 맞는 거냐?”

“응!”

“후후! 소가 넘어왔단 말이지? 그 아이가 살아서 돌아왔단 말이지……?

모두의 얼굴에 희열이 돌았다. 유일하게 자신들의 발목을 잡았던 부분이 해결된 것이다. 혁련소만 찾으면 더 이상 거칠 게 없다.

“움직여 볼까?”

“좋아! 모두 소를 찾으러 간다!”

모두는 최대한의 감각을 열어 놓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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